알바 끝나고 집에 가는데 오늘은 왠지 담력훈련을 하고싶어졌습니다. 길에서 모르는 사람 번호를 물어보면 어떨까 싶었죠.
예전부터 해보고 싶기도 했었거든요. 하다보면 부족한 사회성도 개발이 될것 같고 또 약간 게임같은 느낌이 있어요. 번호를 받냐 안받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스스로를 마케팅하고 상대방을 설득하는 과정이라고 할까요.
사람 많은 지하철역이나 쇼핑몰쪽 돌아다니면서 상대를 찾는데 쉽지 않더라고요.
오늘따라 딱히 예쁜 사람도 안보이고 어쩌다가 보이면 친구랑 같이 다니거나 너무 어려보였고...또 생각보다 말 걸기 적당한 곳이 없더라고요.
이런걸 사실상 처음 해보다보니 입도 한번 못떼보고 거진 세시간이나 싸돌아다녔습니다.
배고 고프고 다리도 너무 아팠지만 암것도 안하고 돌아가는건 사내가 할 짓이 아니라는 생각에, 입 한번은 열고 집에가자 의지를 다지면서 또 열심히 찾아 헤맸죠.
그러다가 지하철역에서 쇼핑몰로 연결된 통로를 지나가는 한 핀란드 여자를 봤습니다. 정석적인 베이지 코트를 걸친 성숙하고 스타일리쉬한 차림새가 눈에 딱 들어왔는데 이사람 괜찮겠다 싶더라고요.
그 사람은 얼마 안가서 어떤 가게 앞에서 멈취섰는데 저는 반대편에서 두꺼운 기둥 뒤에 은신했습니다.
막상 말 붙이려니까 심장이 엄청 뛰더라고요. 어? 이게 뭐라고 심장이 나대지? 웃기네? 심호흡 하고 멘트 생각하면서 망설이다보니 5분이 순식간에 지나버렸던거 같아요.
근데 떨 이유는 사실 하나도 없잖아요. 망신을 당해도 어디 소문 나는것도 아니고 계속 얼굴 볼 사이도 아니고 손해보는게 단 하나도 없어요. 말 한번만 걸면 최소한 좋은 경험은 생기는거고, 보너스로 번호도 받을 가능성이 있는건데 이대로 찌질하게 집에 기어들어가는것보단 무조건 이득이었습니다.
다행히 그분은 한 자리에 쭉 서있더라고요. 누군가 기다리는 것 같았습니다. 이거 이 이상 시간끌다가 친구라도 나타나면 말짱 꽝이라는 생각에 눈 딱 감고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저: 실례합니다
그녀: (옅은 미소) 네?
저: 방해해서 죄송하지만 잠시 애기좀 할 수 있을까요?
그녀: (미소) 그래요
어? 왜웃지? 마치 기둥 너머에 있던 저를 다 알고있었다는 듯한 미소에 묘한 부끄러움을 느꼈지만 어쨌든 의외로 친절하게 받아주니 나쁜 신호는 아니었습니다. 일단 말을 걸고 나니까 긴장도 가라앉았어요.
미소지을때 눈가에 굵직한 주름이 지는게 매력있더라고요. 20대 중반일까? 후반일까? 학생인 제 친구들에게선 보기 힘든 성숙한 사회인 여성의 매력이 색달랐어요.
저: 제가 저기 서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는데요
그녀: 네
저: 그러다가 그쪽을 발견했어요
그녀: 아, 언제요?
여기서 대사 계속 치느라 질문받았다는걸 순간 인지 못했어요ㅋㅋ;
저: 스타일이 되게 좋으신데 혹시 실례가 안된다면 번호를 좀 주실 수 있나요?
그녀: (빵긋 웃음) 저 남자친구가 있어서요. 좀 어려울거 같아요ㅎㅎㅎㅎㅎ
그 패턴은 이미 알고 있다. 제가 여자입장였어도 한방에 선뜻 번호를 주지는 않을겁니다. 그리고 이건 무의식적으로 던진 일종의 테스트 일수도 있습니다.
'당황스럽지? 어중이 떠중이는 여기서 포기해. 아니라면 잘 대처해서 니 가치를 증명해봐.' 얼굴 빨개져서 어버버 미안합니다 빤쓰런하면 '별볼일 없는 남자네. 잘 걸러졌다.' 인거죠.
저: 아, 네. 두분 사이를 방해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어요. 그래도 우리 친구하는건 어때요? 그러면 좋을거 같은데.
그녀: 인스타 하세요?
저: 네
그녀: 그럼 인스타그램 친추하는게 어때요?ㅎㅎㅎ
저: 좋아요
되게 시원시원하더라고요. 인스타 얘기는 협상 전략중 하나였는데 먼저 얘기를 꺼내다니. '번호 주기 힘드시면 인스타 교환은 어때요?' 하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매몰차게 거절하기 힘들테니까요.
어쨌든 연락처는 받은 셈이 되었습니다. 서로 팔로우 하고 간단하게 통성명 하면서 짧은 대화 한 다음에 주말 잘 보내시라고 하면서 헤어졌어요. 젠-틀한 느낌으로다가요ㅎㅎ
그분이 워낙 친절하게 웃어주시고 하니까 번호 받고 못받고를 떠나서 기분이 정말 좋아지는 대화였습니다.
담에 또 이런걸 하게된다면, 끝끝내 번호 못받더라도
낯선사람한테 번호 안주는거 당연한 거라고 이해한다고, 시간 내주셔서 감사했다고 미소 지어주고 서로 기분 좋게 대화를 마치는 방법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만약 좀 쌀쌀하게 나오는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요? 그건 또 그거 나름대로 사회성을 기를수 있는 좋은 챌린지가 될거같습니다.
아니 근데 진성정 의심되게 왜 하필 만우절인겁니까 뻥 아닙니다ㅋㅋㅋ
첫댓글 저도 비댓으로 그녀의 인스타 좀 알려주세요... 걍 한번 보기만 할게요... 귀찮게 안할게요 ㅋㅋㅋ
그냥 다 여행사진 그런거밖에 없더라고요. 그렇게 대단한 미인은 아니에요ㅎㅎ
만우절치곤 약하지만 재밌네요ㅋㅋㅋ
그냥 소소하게 일기ㅎㅎ
세 시간의 방황과 이 정도 분량의 글이면.. 만우절에 진심이시군요!
좋은 경험같아요 저는 거리에선 딱히 해본적이 없고 클럽에서나 해봤는데 보통 이런 경우 남자친구가 있으신 경우가 대부분이라..
비스게인의 적
글을 잘 쓰시네요 ㅎㅎ
감사합니당ㅋㅋ
엘시님 인스타그램이 궁금하다..
친추하실래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