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유영희님은 불행을 딛고 우뚝 선 수필가이다
지금도 1급 지체장애인이다
몸은 비록 장애지만 그의 마음은 한없이 건강하다
폭넓게 건강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그녀는 스물네 살 때 연애결혼을 했고 큰아들을 낳을 때까지만 해도
남부러울 게 없이 행복했었다
그러나 둘째 아들을 임신하고서
‘전신류마티스관절염’이란 의사의 진단을 받았다
가까스로 둘째를 낳았으나 젖을 먹일 수도, 숟가락을 들 수도 없었으며
누운 채 대소변을 받아내야 했으니 얼마나 참담했겠는가?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그녀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남편 김기창氏의 헌신적인 뒷바라지 때문이었다
3년 동안의 기도원생활을 포함하여 23년 동안 아내의 병수발을 하면서
한 번도 등을 돌린 적이 없는 남자가 바로 그녀의 남편 김기창氏다
그러기에 2005년에는 『남편의 외박을 준비하는 여자』란
처녀 수필집을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전신류머티스관절염'은
연골이 없어지는 병으로 손가락, 발가락이 휘어지고
입까지 벌릴 수 없을 정도로 마비되고 굳는 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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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이야기 - 유영희님/수필가
1급 지체 장애인! 내가 가진 또 하나의 신분증이다
스물넷에 결혼을 하여 아들 둘을 낳은 후
의사는 ‘전신류머티스관절염 환자’라는 이름표를 붙여 주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바늘이 찔러대는 듯한 통증에 의식은 있으나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식물인간과 다름이 없는 삶이 되어 버렸다
갓난아이가 배고파 울어도, 아이를 들어 젖을 먹일 수가 없었다
머리맡에 놓여진 젖병을 누운 채 물리다 보면
아이는 늘 사래가 들렸고, 기침을 하다가 젖을 토했다
배가 고프다는 네 살짜리 큰 녀석 손에 동전을 쥐어주며
빵과 우유를 열심히 가르쳐서 보내면
아이는 배부르지 않을 껌이나 사탕을 손에 들고 왔다
배고픈 아이에게 밥을 줄 수 없다는 내 설움에 펑펑 울어 제치면
아이는 덩달아 서럽게 따라 울었다. 어미도 굶고, 두 아이도 굶고......
누운 채 대소변을 해결해야 했고 숟가락을 들 수도 없었다
통증보다 더 견딜 수 없는 아픔은 남편과 아이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을 누운 채
바라 보아야만 하는 것이었다
스테로이드 중독과 극심한 합병증으로 생명도 보장할 수 없다는 선고를 들었다
“미련을 버리거라. 미련을 가질수록 더욱 애착이 가는 게 삶이다
산 사람이나 살아야지 않겠니?”
아직 숨쉬고 있는 딸을 향해 고인이 되신 친정아버지께서 하셨던 말씀이다.
부모, 형제마저 포기한 목숨을 악착같이 붙잡고 있는 사람은 남편이었다
공기 좋은 요양원을 찾아 아내를 맡겼다
아직 땅에 소명이 남아서 일까?
한 달 뒤를 보장할 수 없다던 생명은 회복이 되어 띄엄띄엄 집을 찾게 되었다
작은 녀석은 몇 달 만에 손님처럼 오는 어미가 낯설어 선뜻 다가오지도 못하였다
그러다 어미의 살 냄새가 좋다고 느낄 무렵이면 어미는 또 다시 훌쩍 집을 나섰다
아이는 어미와 떨어지지 않으려 온 골목을 뒹굴며 울었다
큰 녀석은 자다가도 화들짝 놀라며 어미의 존재를 확인하는
상처 깊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 가정의 며느리, 아내, 어미의 자리를 고집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내 욕심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저들에게 따뜻한 밥을 해 먹이며
옷을 빨아 줄 건강한 사람이 필요하였다
이혼을 요구하였으나 남편은 도리질만 하였다
부부는 살 중의 살이요, 뼈 중의 뼈이니 어느 한쪽이 약하면
강한 쪽이 채우면 된다는 것이다
3년의 요양원 생활로 목숨은 건졌으나 전신의 연골은 갈수록 말라갔다
남편은 느닷없는 수술을 제의해 왔다
나는 선택의 여지조차 없는 입장이었다
지방에서의 수술은 믿을 수 없다며 서울 S병원에 덜컥 진료 예약을 하고
곧바로 수술 스케줄을 잡았다
1989년부터 시작한 수술은 작년까지 열 번의 수술을 해야만 했다
무릎, 팔꿈치, 어깨 주관절을 전부 인공관절에 끼우고 시간이 지나
닳아진 관절은 또 교체를 하곤 하였다
23년 동안 아내의 수발 앞에서 한 번도 등을 돌린 적이 없는 남자
불편한 아내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여행길 어느 곳이든
해외에 나가서도 스스럼없이 아내를 업고 길을 걷던 남편이었다
교사 월급으로는 감당도 어려웠을 수술비를 대면서도
아내가 집을 떠나 써야 할 돈을 마르지 않도록 공급하던 손길이었다
결혼 만 2년 후부터 사람 구실을 못하는
며느리나 올케를 곱게 봐줄 시댁은 없었을 것이다
남편은 그때마다 온 몸으로 투쟁하다시피 하여 아내의 자리를 만들어 갔다
남편이 만들어 놓은 아내의 위치는
시댁행사에 나는 참석만 해줘도 고마운 사람이 되어 있었다
숱한 날, 아내의 빈자리를 보며 그가 소리 없이 흘렸을 한숨과 눈물을
어찌 짐작이나 할 수 있을 것인가?
아내가 죽어도 상관없다는 수술 동의서에 열 번의 도장을 찍으며
가슴은 이미 숯이 되었을 것이다
올해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하여 소위로 임관한 큰 녀석이나,
금오공과대학에 학부 수석으로 입학하여 지금까지 전과목 A+를 받는 작은 녀석
두 녀석은 주말이면 집에 오는 게 가장 큰 즐거움이다
아이들에게 어미의 공백을 채워 주려고 숯이 된 가슴으로 웃음을 잃지 않던
아빠의 눈물어린 헌신은 튼실한 열매를 맺은 것이다
포기하지 않았던 사랑의 결실인 것이다
아들의 며느리에 대한 사랑이 한 때는 밉기도 했다는 시어머님도
할머니의 손길을 통해 바르게 자라는 손자들을 보며 죽지 않고 살아 준
며느리가 그저 고맙다고 하신다
4년 전부터 고혈압과 당뇨, 협심증과 관절염으로
시어머님은 걸음을 걷지 못한 채 앉아서만 사신다
스스로 몸도 부지하기 어려운 처지에 거동 못하는 어머니를
어찌 모시느냐고 말들을 한다
나는 억지로 효도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다만 어머니는 설 수가 없는 대신 나는 혼자 앉을 수가 없으니
서서 하는 일은 내가 하고 앉아서 하는 일은 어머님이 하시며
더불어 살아갈 뿐이다
필요하면 24살, 22살로 장성한 두 녀석의 등을 고부간에 빌리기도 한다
열 번의 수술을 받고 보행이 가능한 나는 수필을 공부한다
등단의 과정을 거치도록 도와 준 남편과 두 아들, 그리고 어머니
그동안의 가족들의 헌신이 부족하다는 듯 올부터 디지털대학교의 학생이 되었다
새로운 시작에 무조건 격려의 박수를 보내던 남편과 아들들이 마냥 고맙기만 하다
평생 동안 병원을 내 집처럼 드나들며 진통제에 의지하며 살아야 하는 아내
머리 감기기, 옷 입혀주기, 양말 신기기 등 끊임없이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아내
남편인들 어느 구석에 짐을 벗고 싶은 마음이 왜 없었으랴마는 그의 가슴엔 끝없이
솟아나는 사랑의 샘이 자리했나 보다
더도 말고 마흔까지만 살기를 소원했던 여자는 벌써 쉰을 바라보는 나이를 산다
가정이라는 울타리의 사랑 안에서 굽고 휘어진 손발이지만 어깨가 쳐지는 적이 별로 없다
죽음이라는 고비도 함께 넘어선 동지들이 곁에 있는데
어찌 세상을 향해 당당히 고개를 들지 못하겠는가?
앉은 채만 살아가시는 83세의 어머님이 건강하신 게 감사이다
진수성찬을 마련할 힘이 없어 김치와 국뿐인 밥일망정
내 손으로 어머님 식사를 드릴 수 있음도 감사이다
어머님께 주어진 세월이 얼마인지 알 수는 없지만
우리는 여전히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할 것이다
유치한 장난으로 끊임없는 웃음을 짓는 우리를 향해 어머님은
언제 철들 것인지를 걱정하신다.
그런 부모가 이미 익숙해져 버린 아들들의 건강한 웃음이 늘 담을 넘는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웃으며 걸어가자는 남편의 철학이 뿌리를 내린 셈이다
건강한 가정은 환경에 의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약함을 강한 자가 담당하고 보완하여
건강한 가정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내가 사는 이야기를 감히 자랑하여 본다
출처-『가정의 날 기념 우리 가족이야기 공모전 최우수상 수상작』
수필가 유영희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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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렇게 건강히 생활하는 나 자신에게도 고마움입니다 좋은 가족 더 좋은 행복이 왔음합니다 모든 분들도 건강하셨으면 하네요 늘 감사하며 살겠읍니다
가끔씩 뵙기도 하지만 대단하신 분들이세요. 얼마전 큰 며느리도 보시고 아픈몸으로 지역사회에서 장애우들을 위해 일하신 유영희님 !! 참 삶을 실천하신 모습에서 제 자신의 부끄러움을 느낌니다.....오늘 부부모임에 나오시겠죠?
목이메어 간신히 읽었습니다.참 대단하신 남편분의 사랑 부럽습니다.비록 몸은 힘든 분이지만 참으로 행복하신 분이십니다.좋은 글 많이 쓰시길 바랍니다.
살아가는것만으로도 감사한 세상이라는 생각을 가슴에 담고 갑니다. 좋은글 고맙습니다 ^^
고통을 사랑으로 승화시킨 감동적인 삶... 한해를 접으며 많은것을 느끼게합니다
요즘세상 에 사실 너무너무 삭막하기까지한 결혼관.조건부터따지는 사람들.등등등...매번 참 부부가 뭔가 하는생각에 씁쓸할때가 많았는데...
이글읽으면서 훈훈한 감동이 오네요,아직도 이세상에는.헌신적인 사랑이 존재하고..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는것을..몸소실천하시는분들이
계시고...비록 힘든삶이지만.진정행복하신 분들이시네요.오래오래 건강히.행복하시길요..^^*
좋은글 보니까 훈훈한 감동이네요 아직도 이세상에는 헌신적인 사랑이 존재하네요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는 몸소 실천하는 남편분이 되단합니다.늘 행복하세요
글을 읽으며 지금의 나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저 주어진 삶에 감사하며 살아가야 되겟습니다가슴이 저려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