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이렇게 가더이다
봄의 끝자락 오월 하순 화요일이다. 삼월과 사월과 오월 석 달을 기계적 구분으로 봄이라 칭하지만 오월은 여름에 편입시켜도 무방할 듯하다. 어제는 종일토록 장마에 버금할 정도로 많은 비가 내렸다. 비가 그치고 나면 들녘 논밭에 자라는 작물은 싱그러움을 더해 갈 테다. 나는 텃밭을 가꾸지 않아도 봄 한 철 근교 산자락을 누비며 뜯어온 산나물을 찬거리로 삼아 잘 먹었다.
요새 며칠은 일전 창녕함안보 일대로 트레킹을 다녀오면서 뜯어왔던 야생의 가시상추로 만든 찬으로 비빔밥을 비벼 먹는다. 가시상추는 텃밭에서 기르거나 마트에서 구하는 상추보다 영양가에서 더 우수한 들나물이다. 그냥 생채로 된장에 찍어 먹어도 좋으나 아내는 그걸 데쳐 나물로 무쳐 놓아 밥을 비벼 먹고 있다. 이로써 장아찌나 냉동이 아닌 올해 산나물과 들나물은 동이 났다.
아침 식후 산행을 다녀오려고 빈 배낭을 둘러메고 현관을 나섰다. 이웃 동 아파트 뜰로 나가 꽃을 가꾸는 꽃대감을 만나 아침 인사는 나누었다. 친구는 어제 비가 온 이후 꽃밭을 둘러보며 모판의 어린 모종을 살폈다. 발아가 순조로운 녀석이 있는가 하면 싹이 제대로 트지 않은 꽃씨도 있었다. 친구는 특별한 기법으로 겨울을 넘겨 새순이 나온 란타나 잎줄기를 잘라 삽목을 했다.
친구와 헤어져 반송시장에서 김밥을 마련해 다니는 병원 진료와 처방전에 따른 약을 탔다. 이후 북면 온천장으로 가는 버스를 타서 외감마을 입구에 내렸다. 동구 밖에서 마을을 지난 달천계곡 들머리에서 남해고속도로 창원터널 곁으로 향했다. 양미재로 가려고 터널을 비켜 단감농원으로 가던 농로 길섶에는 산딸기가 빨갛게 익어 있어 손을 뻗쳐 따 입에 넣으니 시큼하고 달았다.
등산로를 따라 숲으로 드니 산딸기는 군락을 이루어 있었다. 예년 같았으면 유월 중순 되어야 맛을 보는 산딸기를 오월 하순에 따 먹었다. 산딸기는 넝쿨성 줄딸기와 목본으로 자란 산딸기로 두 가지다. 양미재 가는 숲에는 두 종류의 산딸기가 동시에 익어가고 있었다. 어떤 산딸기는 너무 농익어 금방이라도 지상으로 흘러내릴 듯했다. 한동안 먹을 과일의 양을 즉석에서 해결했다.
양미재 못 미친 너럭바위에서 숨을 고르고 가져간 김밥을 먹었다. 전날에 이이 새벽까지 내린 비로 나뭇잎은 젖은 상태라 숲으로 들면 바짓단이 젖어올 듯했다. 쉼터에서 일어나 양미재로 오르다 길섶에 빨갛게 익은 산딸기가 유혹해 발길을 멈추고 더 따 먹었다. 고갯마루 십자형 갈림길에서 상봉을 거쳐 천주산으로 가는 등산로로 올라섰다. 구고사가 내려다보인 상봉 꼭뒤로 갔다.
등산로를 벗어나 숲을 헤집어 스무날 전 다녀간 벌깨덩굴 채집 현장으로 가봤다. 다래 순이 무성하고 바위에 붙어 자라는 바위채송화는 꽃을 피웠다. 벌들에게는 아카시꽃 이후 좋은 밀원이 되는 싸리꽃도 피어 있었다. 정글을 헤집다시피 무성한 숲을 지나 벌깨덩굴 군락지로 가니 지난번 뜯은 이후 남겨둔 것을 마저 뜯어 모았다. 그 주변에서 쑥부쟁이와 참취 잎도 몇 줌 땄다.
철이 철인지라 산나물은 모두 쇠어 나물로서 가치를 잃어가는 때다. 내가 채집한 벌깨덩굴 외 몇 가지는 해발고도가 제법 된 북향 응달이라 그나마 한 봉지 뜯을 수 있었다. 양이 넉넉했으면 집으로 가져가 찬거리로 삼겠지만 그럴 만큼 되지 않았다. 숲을 빠져나오면서 꽃대감과 같은 아파트단지 퇴직 선배에게 연락을 보냈다. 나중 아파트 맞은편 상가 주점에서 얼굴을 뵙자고 했다.
토끼재에서 양미재로 내려와 왔던 길을 되짚어 숲을 빠져나왔다. 외감 동구에서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타고 집 근처 상가 주점으로 가니 퇴직 선배가 먼저 자리를 차지해 있고 뒤이어 친구가 나타났다. 주인 아낙에게 넘겨진 산나물은 그새 전으로 부쳐 나왔다. 벌깨나물 전으로 퇴직 선배는 즐기는 곡차의 안주로 삼고 나는 저녁 끼니를 대신했다. 계묘년 봄날은 이렇게 가더이다. 23.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