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룡강은
많은 김용의 팬들이 한국무협을 자질이라고 폄하 하는데
중요한 이유가 되는 삼류포르노 무협의 대가 이지요
처음 김용의 무협을 접하고 그의 작품들을
모두 섭렵한 무협팬들은 다른 책들을
찾아 나서다 도서대여점의 절반?을 차지하는
와룡강무협을 보고 무심코
뽑아 들어 보게 됩니다(제가 그랬습니다)
그리고는 기대에 차서
김용류의 멋진 무협을 기대 하면서
읽어보다가 아연질색 책을 집어 던지게 됩니다
그 다음 순서는 한국무협은 저질 이다를 외치게 되는거지요
와룡강은 사마달, 검궁인과 더불어서
아예 무협은 쟝르소설로서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하게
만드는데에 지대한 공을 세운 작가 이기도 합니다
사실 상업적으로 이 세 거마들은 다른작가들에 비해서
많은 성공을 거둔 작가 이기도 합니다
그말은 그들의의 무협?이 시장성이 있다는 말이고
시장성이 있다는 것은 그들의 무협을 읽는 독자가 많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와룡강이 컬트 인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컬트란 숭배를 뜻하는 라틴어 ‘cults’에서 유래한. 일반의 평가와 관계없이 소수의 집단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와룡강의 무협(?전 무협이라고 붙이고 싶지 않습니다)이
그런가라고 묻는다면 전 아니라고 생각 합니다
그는 그냥 한창 성에 관심이 많은 청소년들에게
저질스럽고 외설적인 글을 제공하는 글 장사일뿐입니다
침고로 월간웹진 이매진에 실린 와룡강과의 전화 인터뷰를
같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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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와룡강님은 그 지명도에 비해 통신이나 언론 매체 등에 드러난 예가 별로 없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와룡강: 통신상의 무협 동호회 게시판 활동 같은 것을 쭉 지켜보면서 든 생각이, 긍정적인 기능보다는 부정적인 기능이 더 활발하다고 생각해서입니다. 실제로 초기에는 야설록 씨나, 금강 씨나 많은 무협작가들이 동호회 활동에 관심을 갖고 참가했었지요. 하지만 요즘은 이런저런 트러블들 때문에 활동이 축소되거나 떠나거나 하지 않았습니까? 심지어 동호인들에게는 가장 많은 지지를 받는다고 할 만한 좌백 씨 같은 작가마저도 말이죠. 더구나 그 와중에 일어난 논란이라는 것이 작품 내적인 문제에 대한 비평도 아니고 그 외의 문제들 - 예의라든가 인간적인 문제 같은 것들 때문이었거든요. 때문에 저는 한발 떨어져서 그냥 지켜보는 쪽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합니다. 게시판에서의 논쟁은 흔히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기 마련이고, 자칫하다가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로 착각할 수도 있거든요. 그런 것에 휘말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질문: 와룡강님에 대해 쏟아지는 비판들의 대부분은 많은 작품들에 드러난 외설과 도색의 색채 때문이라고 여겨지는데요. 그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와룡강: 그 문제에 대해서는 반문하고 싶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쓰여지는 - 무협이 아닌 다른 분야까지 포함해서 - 그 많은 소설들이 <이것은 성인을 위한 성인전용 소설이다>라고 명시합니까? 아니죠. 일반적으로 소설은 성인을 위한, 어떤 내용이라도 기본적으로 받아들일만한 양식과 연륜을 갖춘 사람을 대상으로 쓰여집니다.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무협을 씁니다. 저는 무협을 쓸 때 어린 독자를 대상으로 삼지 않습니다. 무협은 어른들을 위한 판타지라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우리나라의 도서심의는 보수적인 성향을 띠고 있습니다. 마치 청소년 대상의 책들만 골라내려는 것처럼 말이죠. 게다가 무협은 이중적인 어려움을 지니고 있죠. 장정일이나 마광수, 그리고 최근에 본 '떨림' 같은 소설들을 생각해 보세요. 무협은 '대중소설'이기 때문에 이중적인 잣대로 평가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협의 일반적인 경향은 '권선징악'이지요. 이 권선징악은 나름대로 순기능도 있습니다. 결국 악이 멸망하고 선이 승리하니까요. 그런데 이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묘사하기 위해서는 악행을 더욱 세밀하게, 그럴 듯하게, 독자가 보아도 정말 치가 떨리게 묘사해야 합니다. 따라서 자극적일 수도 있지요. 나는 무협을, 무슨 상을 타거나 고매한 자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쓰지 않습니다. 나는 도락으로서의 장르가 인정받기를 원하고, 그것을 위해 글을 씁니다.
질문: 무협 작가로서의 와룡강님의 경력을 한 번 짚어보기로 할까요? 데뷔작과 대표작 제목들도요.
와룡강: 처음 무협작가로 데뷔한 것이 83년입니다. 대학 재학중이었지요. 요즘 작가들도 많이 그런 것 같은데, 나도 아르바이트 삼아 무협을 쓰기 시작했다가 그게 본업이 되어버린 케이스입니다. 데뷔작은 <무림군웅보>였습니다. <군마무><금포염왕><질풍록><철환교> 이런 작품들이 대표작이랄 수 있겠지요.
질문: 와룡강님의 작품을 평가하는 사람들의 시각은 둘로 갈라집니다. 흔히 '와룡강' 브랜드의 대표 이미지로 이야기되는 '야한 성인물'이 일반적일 테지만, 초기 작품들부터 눈여겨 본 독자들은 다른 작가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동양적이고 장쾌한 환상세계의 표현을 와룡강님의 또 다른 성향이라고 평가하더군요. 본인 스스로의 평가는 어떠신지요?
와룡강: 다른 사람들이 내 글을 보고 '몽환적이다'라고 평가들을 많이 해요. 90년대 들어 발호한 신무협의 경향은 주로 현실적이지요. 하지만 나는 보다 몽환적이고 공상적인 작품을 쓰는 걸 좋아합니다.
질문: 야한 성인물이나 와룡강이라는 이름으로 발간된 무수한 작품들에 대해서는요?
와룡강: 처음 <무림군웅보>로 데뷔한 후 초기 10작품 - 그러니까 일련의 <보> 시리즈들은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썼습니다. 하지만 일단 책이 팔리기 시작하면 시장의 요구라는 것이 있게 마련이고, 출판사의 요구라는 것도 생기지요. 그때부터 가필자를 두기 시작했습니다. 가필자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대필'하고는 좀 다릅니다. 대필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쓴 작품을 상업적인 이유 때문에 유명작가의 이름을 붙여 출판하는 것인데 반해, 가필은 내가 스토리와 작품의 얼개를 잡고, 가필자들이 그대로 써나가는 겁니다. 하지만 아무리 가필이라고 해도 역시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쓰는 것 만하지는 못했습니다. 질의 차이가 많이 생기고, 때문에 많은 비판도 듣게 된 것이지요. 사실 그때 나는 학생 신분이었습니다. 당시 시장의 요구는 한달에 1작 이상을…… 그러니까 원고지로 치면 3500매 이상을 내야 하는 지경이었습니다. 초기 10작품 정도를 내가 쓸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써놓은 습작물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학업에 충실해야만 하는 입장과 출판사의 요구에 따라야 하는 프로 작가로서의 입장 사이에서 가필이라는 제도를 수용하게 된 것이지요. 가필 체제를 시작한 것은 군마무 2부부터입니다. 군마무 1부까지는 내가 직접 썼는데 2부부터 가필이 시작되었습니다. 일단 그 체제를 따르기 시작하자 여러 모로 본래의 의미가 변색된 측면도 있습니다. 대중소설에서의 자극성이라는 것은 에스컬레이터와 같은 성격이 있어서 점점 과장이 심해지고, 오락성을 조절하기가 어려워진 측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몇몇 대필 작품도 있었습니다.
질문: 그렇다면, 와룡강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나온 80년대와 90년대의 무수한 작품들 중에서 어느 것이 가필을 거친 것이고 어느 것이 와룡강님 본인의 진필인지 리스트 확인을 할 수 있을까요?
와룡강: 83년 데뷔한 이후부터 84년 중반까지 일련의 '보' 시리즈부터 군마무 1부까지가 제 진필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가필 체제가 시작되었고, 무협시장이 붕괴되었다가 90년대에 다시 살아난 이후 현재, 몇몇 가필자들과 함께 작업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만 그 분들의 주된 작업은 80년대 작품들의 재간 가필 - 150개 정도 되죠 - 이며, 신작들은 제가 쓰고 있습니다. 한동안 무협계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서 쓰기 시작한 게 바로 <금포염왕>과 <구정모련기>이죠. 금포염왕은 뒤를 좀더 쓰고 싶었으나 여러모로 힘이 들어서 2부로 끝을 맺었고, 구정모련기의 경우는 완성이 안 되었죠. 무협과 SF, 판타지 등이 섞인 퓨전 소설인데 나름대로 힘을 기울여 구상하고 썼지만 집필 과정이 너무나 힘이 들어서 현재는 중단 상태입니다.
질문: <금포염왕>에 대해서는 통신상에서 많은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요?
와룡강: 사실 내 답변은 시공사를 통해 이미 전달을 했습니다. 거기 적힌 그대로일 뿐입니다. 남들이 모르는 중국 무협을 번역해서 낸 것이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서는 다소 어이가 없기도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중국 무협 번역 붐이 한동안 이 땅을 휩쓸었지요. 중국과 우리나라 사이에는 마땅한 저작권 관계도 없습니다. 그냥 먼저 본 놈이 임자였죠. 원작자 찾을 필요도 없이 번역해서 내기만 하면 됐습니다. 말도 안 되는 작품도 다 번역되었습니다. 그런 시절, 그런 분위기에서 <금포염왕> 정도의 재미라도 갖춘 작품이 있었다면 혈안이 된 무협 출판계에서 그걸 안 냈겠습니까? 사실 <금포염왕>에 대해서는, 뛰어난 번역자만 있다면 중국어로 번역해서 내보고 싶다는 생각도 합니다.
질문: 현재 무협시장에 대한 견해는 어떠신지요?
와룡강: 사실, 무협 어렵게 쓰면 외면을 받아요. 내가 나름대로 공을 기울여서 쓴 것이 <지백천년>이나 <벽공일월>입니다. 하지만 별로 반응이 신통치 않았습니다. 시장의 반응이 실제로 그럴 때, 작가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무협작가에게 이것은 아주 심각한 생존의 문제입니다. 사명감 이전의 문제예요. 무협의 가장 큰 경쟁자는 판타지도 아니고 다른 소설도 아닙니다. 오히려 나는 PC방 문화 같은 것이 더 큰 경쟁자라고 생각합니다. 아주 절박합니다. 책을 읽지 않고도 즐길 수 있는 문화가 생겼으니까요. 앞으로 1,2년 사이가 기로라고 보는데, 잘못하면 시장 자체가 없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요새 한 달에 무협이 한 10종 나옵니다. 그 중 3종 정도가 내 것입니다. 80년대 시장에 비하면 턱없이 작은 종수죠. 무협시장이 살아나려면 보다 많은 종수가 나오고, 경쟁이 치열해지고, 그래서 세대 교체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현재 무협시장 위축의 원인은 진정한 세대 교체가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질문: 무협시장의 위축 원인에 대해서 두 가지 상반된 의견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일각에서는 "너무 많은 종수가 쏟아져 나와 무협이라는 장르가 전반적으로 질이 떨어진 것이 원인이다. 더 절제하고 보다 높은 질의 작품들을 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지요. 와룡강님의 견해는 그와 상반된 듯이 보이는군요.
와룡강: 내가 신인 시절에는 무협계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데뷔하고 나서 1-2년 내에 10개의 작품을 써내라." 그걸 써내지 못하면 그냥 반짝 작가일 뿐이고, 그걸 써내면 프로 작가의 길에 들어선 것입니다. 난 더 많이들 써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작가들 중에 그나마 많이 쓰는 사람은 용대운 씨 한 사람 정도죠. 하지만 본질적으로 용대운 씨는 새로운 세대의 작가는 아닙니다. <태극문>을 통해 자기 이름을 얻었기 때문에 마치 90년대 작가인 것처럼 평가되지만, 원래 그 전부터 쓰던 분이죠.
질문: 하지만, 신무협 작가들은 이렇게도 말하지 않습니까? '많이 써내는 것에만 집중하다보면 질을 보장할 수가 없다. 따라서 1년에 한 타이틀 쓰기도 벅차다'고요.
와룡강: 음. 이렇게 말하니까 마치 무협시장 붕괴가 신무협 작가들의 책임인 것처럼 떠넘긴 것 같이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뜻으로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었지요. 시장이나 독자, 출판사의 문제들도요. 그러나 전 이렇게 생각합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쓴 마가렛 미첼은 평생 그거 하나 썼습니다. 만약 평생에 하나를 쓴다면, 누구라도 역작을 써낼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무협작가에게 요구되는 것은 단 하나의 역작이 아니죠. 무협시장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려면 세대 교체가 완벽하게 이루어져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신진들이 나 같은 노마를 거꾸러뜨려야 합니다. 결과적으로 거꾸러뜨리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노마들을 위협할 만한 신진 작가는 몇 사람 안 됩니다. 좌백 씨라든가 진산 씨라든가……. 우리들 같은 노마들이 글을 접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잘 쓰는 사람들이 나와서 시장을 점령해야 세대 교체가 되죠. 그게 시장의 논리입니다. 나는 신진 작가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물론, 보다 높은 퀄러티의 작품을 쓰기 위해 느리게 쓸 수밖에 없다는 그 이야기에도 어느 정도 공감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반문하고도 싶습니다. 작가는 동호인이 아닙니다. 전업작가가 되려면 보다 수십 배의 노력을 해야 하지요. 요새 <백만장자 마인드>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백만장자가 되기 위해서는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성실하게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좀더 수십 배로 성실하게 말이죠. 나는 좀더 신진 작가들이 상업적 성과나 돈 같은 것에도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돈을 밝히라는 뜻이 아닙니다. 한 마디로 직업정신이라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애호가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전업작가가 돼서, 좀더 좋은 작품을 좀더 많이 내서 시장의 판도를 바꿨어야 한다는 거죠. 결국 교과서적인 대답이긴 하지만 '좋은 작품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이 되겠지요.
질문: 무협작가로서 포부가 있다면요?
와룡강: 내 꿈은 남녀노소나 세대의 구별 없이 좀더 다수 대중에게 읽힐 만한 무협을 쓰는 겁니다.
질문: 좋아하는 무협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주시겠어요?
와룡강: 우선, 김용의 작품들을 좋아하지요. 그는 인생을 보는 관점이 매우 삐딱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도 곧 따뜻한 인간애로 다시 감싸안기는 하지만요. 그 외에 와룡생이라는 작가는 대중 속에 무협을 뿌리내리게 만든 장본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처음으로 읽은 무협이 바로 와룡생의 <무명소>였습니다. 또 고룡도 좋아하지요. 그는 어레인지의 대가라고 생각합니다. 서구의 작품들을 무협화시키는 데 탁월한 재능이 있었지요. 그의 그 현란하고 빛나는 문장은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지요.
무엇보다도 나는 한국 무협작가들을 좋아합니다. 금강 씨, 야설록 씨, 사마달 씨는 나보다 좀더 일찍 데뷔한 선배작가들입니다. 중국 작가들 중에도 그분들의 작품에 필적할 만한 것이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작고한 서효원 씨의 작품들이 보여주는 깊고도 넓은 상상력의 세계 역시 좋아합니다. 또한 왕명상 씨의 <독목수라> <신풍금룡> 같은 작품은 내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지요.
녹음이나 캡춰 등으로 기록할 수 없는 전화 인터뷰를 마친 뒤, 기자는 어지럽게 적힌 메모들을 정리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과연 이 인터뷰 하나로, 우리가 와룡강이라는 작가에 대해 알고 싶은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을까? 물론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새삼스럽게 면죄부를 발행해야 한다거나, 또는 80년대의 변명을 들으며 다 함께 비웃자는 것이 이 인터뷰의 목적도 아니다. 와룡강이라는 이름과 그 이름을 둘러싼 후광, 그리고 그런 이름의 작가를 만든 것은 오늘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무협계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용서나 적대와 같은 감정적인 차원의 일이 아니다. 말 그대로 현재이며, 말 그대로 미래이다. 부정할 수 없는 한국 무협의 또 다른 이름, 와룡강. 그 이름을 가진 사람의 말을 통해서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현재와 미래의 무협은, 어찌될 것인가. 혹은 또 어찌되어야만 할 것인가.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 질문을 던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