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이집트의 여성의 삶




고대 이집트 여성들은 집에서나 시장에서나 작업장에서나 나날의 삶의 책임을 남자들과 똑같이 짊어졌다. 식사를 준비하고, 아이들을 돌보고, 옷가지에서 바구니와 가구류에 이르는 모든 것을 자기 손으로 직접 만드는 일을 포함한 집안일들만 해도 실로 엄청난 부담이었다.
가정주부는 그에 더해 이집트 경제의 중추를 형성했던 다양한 시장에서 식구들이 만든 물건을 물물교환하는 식으로 집안 재산을 관리했다.
넓은 소유지와 많은 재산을 지닌 집안의 아내들은 자신의 하인들을 거느렸고, 가족의 재산에 농작물과 여러 가지 물건을 더해주는 농장과 작업장을 관리 감독했다.
남자 일꾼들과 여자 일꾼들은 밭에서, 이집트 사람들의 일상 음식 중에서 가장 중요한 빵과 맥주를 공급해주는 제빵소와 양조장에서 함께 땀 흘려 일했다. 이집트 관공서의 인력이 남자들로만 이루어진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많은 직업이 남자들에게만 문호를 개방했지만, 그럼에도 재주가 좋은 여자들은 제분업자·음악가·미용사·꽃장수·의사로서 일했다.
이와는 정반대로 한때 옷감 짜는 일은 여성들만의 영역이었다. 그것도 나중에는 남자들의 직업으로 바뀌어서 헤로도토스를 몹시 놀라게 했지만 말이다. 옷감 짜는 일은 농사 다음으로 중요한 일이었다.
아마포는 옷가지뿐만 아니라 수의를 만드는 데도 필요해서 그 수요가 대단히 많았다. 미라 한 구를 감싸는 데에는 아마포 400m 정도가 들었다. 신왕국 시대 이전까지만 해도 실을 잣고, 천을 짜고, 다른 직조공들의 작업을 감독하고, 그들에게 옷감으로 봉급을 지불해주는 일은 대개 여성이 맡았다.
여성 키잡이
여성 키잡이가 자신에게 빵을 건네주는 소년에게 “뭍으로 배를 몰 때 앞을 가로막지 말라”고 나무라고 있다. 이집트 미술에는 가끔, 다른 문화권에서라면 전통적으로 남성들만의 영역에 속하는 일을 하는 여성들의 모습이 표현되고 있다.
향유 만들기와 여성의 무용
① 심부름하는 이들이 부지런히 꽃잎을 나르는 가운데 향수를 만드는 두 여성이 두 개의 긴 막대를 이용해서 연꽃이 가득 들어찬 자루를 쥐어짜 연꽃기름을 뽑아내고 있다. 이집트 여성들은 자기네 몸이나 신들의 조각상에 바를 향유를 만드는 일에 참여하거나 그런 작업을 감독하기도 했다.
② 젊은 여성 무용수가 손가락들과 무성한 검은머리로 땅을 쓸면서 우아한 호를 그리는 모습을 BC 14세기경의 한 화가가 스케치했다. 여성 무용수들은 종교적인 축제 때나 신전에서 제사를 지낼 때 춤을 추었으며, 연주와 노래 역시 다른 여성들이 맡는 경우가 많았다.
고대의 한 연가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가사가 증언해주는 것처럼, 로맨틱한 사랑과 행복한 결혼생활은 이집트 여성의 삶에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내가 얼마나 그이를 끌어안고 싶어하는지, 그이가 우리 어머니에게 청혼의 말을 전하길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지 그이는 거의 모르고 있다.” 고대 이집트 여성들은 비교적 독자적이라 할 수 있는 지위를 누렸기에 이성과 얼마든지 교제할 수 있었고, 혼전 성관계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이집트 남녀의 이상은 결혼이었다. 결혼은 그 궁극적인 목표, 곧 아이를 갖는 데 가장 적합한 여건을 조성해주는 사회적 장치였기 때문이다. 앞으로 얼마든지 자식을 볼 가능성이 있는 젊은 남자들은 가급적 혼인을 뒤로 미루려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적절한 행위규범을 위한 지침서가 되어준, 이른바 지혜의 책들은 종종 남성 독자들에게 이렇게 권했다. “그대가 젊을 때 아내를 얻도록 하라. 자손이 많은 남자는 세상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므로 행복하리라.”
이집트 사람들은 처녀들이 성적으로 성숙한 연령에 이르면 결혼할 준비가 갖춰진 것으로 여겼으며 많은 처녀들이 12세에서 14세 사이에 결혼을 한 듯하다. 사촌들이나 그밖의 가까운 친척들끼리 결혼하는 일은 흔히 있었지만, 남매간의 결혼은 혈통의 순수성을 가장 중시한 왕실 내에서만 이루어졌다. 결혼식 날에는 가족과 친지들이 모여서 신랑 신부를 축하해주면서 연회와 여흥을 즐겼지만, 종교적이거나 공식적인 의식 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았다. 결혼한 뒤에는 대개 신부가 신랑집에 들어가서 살았다. 신부는 신랑집의 가정주부 역할을 맡았다.
이집트의 이상적인 부부관계에서 배우자들은 애정과 존경심을 갖고 상대방을 대했다. 묘지의 그림이나 부조에는 부부가 서로 손을 꼭 잡고 있거나, 한 팔로 상대의 목이나 어깨를 감싸고 있는 아주 다정한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어떤 경우에는 남편과 아내가 꼭 끌어안고 있는 장면도 보인다. 아내의 모습 주위에 ‘그가 가장 사랑하는 이’라는 명문이 새겨진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이집트 소녀
성숙기에 이른 소녀가 아버지와 사냥을 나가서 얻은 연꽃과 오리를 들고 있다. 소녀의 몸매는 제법 무르익었지만 얼굴은 아직도 앳된 티를 벗지 못했다.
이집트 부부의 애정
테베 시장 센네페르와 그의 아내이자 아몬 신전 음악가인 메리트가 센네페르의 무덤에 나오는 한 그림에서 반갑게 해후하고 있다. 그 부부가 내세에서 다시 만난 모습을 그린 이 장면은 고대 나일 계곡에 거주했던 부부들이 나누었던 깊은 애정을 새삼 다시 떠올리게 해준다.
“그녀의 모습은 나를 기쁘게 한다!
그녀가 눈뜰 때 내 몸은 풋풋해진다.
그녀의 말소리에 내 몸에서 힘이 용솟음치고,
그녀를 끌어안을 때 나의 병은 씻은 듯이 사라진다.”
고대 이집트 인들은 다산을 아주 중시했으며, 대부분의 여자들은 자식을 낳고 싶어했다. 갓 결혼한 신부는 흔히 1∼2년 안에 아이를 낳았다. 여자에게 아이가 잘 들어서지 않을 경우, 당대의 의학상식은 수태를 돕기 위한 수많은 양생법을 제공해주었다. 그중의 하나로 유향과 기름, 대추야자, 맥주를 섞어 그것에서 솟아나는 김 위에 쪼그려 앉아 있게 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임신한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여자들은 곡식 씨앗들 위에 오줌을 누어 그것들에서 싹이 나는지 시험해보기도 했다. 고대 이집트 인들은 호르몬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오늘날 임신한 여자의 오줌 속에 섞인 호르몬들이 발아를 촉진시킬 수 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이집트 여성들은 출산하기 직전까지 집안일을 계속한 듯하다. 그러다 산통이 시작되면 집안 여자들과 산파가 산모를 도우려고 모여들었다. 그들은 출산을 촉진시켜주기 위해 마법이나 여러 가지 처방을 동원했다. 그런 처방의 하나로 ‘산모의 몸 안에 있는 아기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처방이 있는데, 그것은 우선 바다소금과 에머 밀을 반죽해서 얼른 산모의 배에 붙여주는 방법이다. 산모의 집에 모인 여자들이 이시스, 하토르, 타웨레트 여신들에게 아무 탈 없이 출산하게 해달라고 비는 동안, 산모는 해산의 마지막 순간에 산파가 아기를 잘 붙잡을 수 있게끔 벽돌 위에 무릎 꿇고 앉거나 웅크리고 앉아서 아랫배에 힘을 주었다.
집안 여자들이 와서 격려하고 마법을 동원하고 신들에게 빌었음에도 불구하고 출산은 위험 부담이 따르는 일이었으며, 그때의 사망률은 분명 아주 높았을 것이다. 한 예로 제18왕조 때의 무트노즈메트 왕비의 경우를 들 수 있다. 그녀의 미라 속에서 완전히 제 형태를 갖춘 태아가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 그녀는 아마 아이를 낳다가 죽었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아이의 50% 정도는 다섯 살 이전에 사망했을 것이다.
그 시절에도 임신하는 것을 원치 않는 여자들이 사용하는 피임법이 있었는데, 그중의 하나로 악어 똥과 신 우유, 꿀과 탄산소다와 소금을 섞은 것에 식물성 섬유로 만든 스펀지를 적셔서 사용한 경우를 들 수 있다. 그런 노력들은 우유 속의 젖산과 탄산소다 같은 알칼리성 물질들이 정자의 운동을 늦출 수 있으므로, 가끔 성공을 거두기도 했을 것이다.
모자간의 특별한 유대
어머니가 아기 머리를 어루만지면서 젖을 먹이고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 모자간의 이런 특별한 유대관계는 세 살 때까지 계속되었고, 그것은 그때까지 임신하는 것을 억제해주는 기능을 했다. 다른 많은 문화권에서는 그런 관계가 더 오래 지속되기도 했다.
이집트의 출산, 육아
① 한 여성이 산통을 겪는 동안 해산 의자를 뜻하는 메스크헤네트에 앉아서 몸에 힘을 주고 있다. 암소뿔이 달린 여신 하토르 상들이 산모가 아무 탈 없이, 그리고 쉽게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거들어주기 위해 그 양쪽에서 팔꿈치를 떠받쳐주고 있다.
② 산모들은 악령이 자궁 속에 들어오는 것을 막아주는 부적을 휴대하는 것으로 유산을 막으려 했다. 위의 이시스 매듭 부적은 이시스가 태 속에 들어 있는 아들 호루스를 그의 삼촌 세트로부터 보호할 때 사용했다고 하는 질 마개의 모양을 따라 만들었다.
③ 임산부들의 수호신이요 다산의 여신인 타웨레트의 생김새는 나일 강에 사는 동물들 중에서 가장 사나운 동물들의 각 부분, 곧 하마 머리, 사자의 다리와발, 악어 꼬리 모양의 머리장식들에서 나왔다.
고대 이집트에서 부부들이 서로를 영원히 사랑하겠다고 말할 때 그것은 말 그대로 진실이었을 것이다. 그런 부부들은 죽어서도 살았을 때처럼 동반자가 되기를 기대했고, 따라서 그들은 내세까지 연장될 사랑과 애정을 굳게 다지려고 애썼다.
또 고대 이집트에서는 많은 부부가 묘지 그림이나, 조각을 제작하는 사람들에게 장례용 미술품들을 제작해달라고 의뢰했다. 그런 작품들은 그들이 사후 함께 보낼 생활이 행복한 것이 될 수 있도록 그들의 모습을 젊고 생기발랄하게 묘사했다.
산 배우자가 죽은 배우자와 사후에 재결합하기를 기다리는 기간 동안, 산 배우자는 편지를 쓰는 것으로 망자와 계속 연락을 취했다. 그런 편지들 중의 일부는 그저 일상의 문제들에 관해 조언을 해달라고 부탁하는 대화체 형식의 글에 지나지 않았다. 또 어떤 편지는 병 걸린 식구를 낫게 해주고 재정적인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간청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그런 편지들 중의 상당수는 짝을 잃은 사람이 느끼는 슬픔과 고통 같은 보편적인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아내를 잃은 한 남편은 아내의 묘에 남긴 편지에서 자신의 슬픔을 이렇게 절절하게 토로하고 있다.
“당신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먹거나 마시지 않고 8개월을 보냈소. 그 다음에 나는 3년을 홀로 지내왔소. 나 같은 사람이 이런 경우를 당하다니 참으로 부당한 일이 아닐 수 없소. 하지만 나는 당신을 위해서 그 세월을 감내해왔소.”
“느긋한 나날이오고 가는 동안
우리 조용한 애정을 품은 채 서로를 바라보도록 합시다.
늙도록 평화롭게 걸어봅시다.
평생토록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기가 소원인 여자로서
나는 한가로운 나날을 당신과 더불어 지낼 겁니다.”
세넨젬과 이네페레트
테베의 무덤 건축자 센네젬과 그의 아내 이네페레트(왼쪽)는 사후에 천국을 뜻하는 이아루의 들판에서 추수를 하는 자기네 모습을 묘지에 그리게 했다. 또 다른 부부는 자기네 미라가 손상되거나 파괴될 때, 자기네 영혼이 미라 대신 깃들 수 있게 하자는 생각에서 자기네 모습을 표현한 실물대의 조각상을 제작해달라고 의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