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지리산의 초입새 산청에서 부농의 둘째딸로 태어났고 몸이 약해
잔병치레는 많았으나 큰병없이 그렇게 자라났다.
조용하고도 똑똑하다고 주위에선 공주님이란 별명까지 붙여주곤 했는데
그녀가 중학교 2학년에 올라간 여름날 예기치않은 부모의 사고로 고아가
되고 말았다.
1년 전까지 이웃에서 도지농사를 짖던 금병이네가 진주로 나가서 조그만
구멍가게를 하게 되었고, 장성을 한 금병이의 큰오빠가 결혼을 한다고 기별이 왔었기에 명자의 부모님들은 마을사람들 몇과 예식장엘 갔었다. 돌
아 올 때에는 진주 시내에서 경운기 부속품을 살 것이 있어 따로 버스를 탄 것이 화근이 된 것이다. 진주에서 산청과 안의, 함양을 거쳐 거창으로 가는 버스엔 명자의 부모님과 십여명의 승객이 타고 있었다. 멀리 산청이 보이는가 싶었는데 그만 앞에서 달려오는 차를 피한다는 것이 옆의 가로수를
받고는 가드레인을 밟고 누워버린 것이었다. 4명 사망 12명 중경상.
부모를 잃은 명자네 3형제는 마산에서 살고 있는 큰아버지에게, 사고처리와 많던 농지의 처리를 맡겼으며 상당할 것 같은 돈은 큰아버지가 관리하며 3형제를 마산으로 이주시켰다. 그리곤 명자도 합성중학에 전학을 했고
언니 명숙은 마산여고에 남동생은 합성국민학교에 각각 전학수속을 마쳤다. 그들은 부모의 그리움과 잃은 슬픔이 간혹은 마음을 아프게 했지만
돝섬과 부곡하와이도 놀러 다닐 수 있는 여유로움도 생겨났다. 모두가 친자식처럼 생각하는 큰아버지의 배려 때문이었다.
명자는 어느덧 고등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었다. 부모가 없는 입장이라는
것이 못내 가슴이 아파, 굳이 괜찮다고 하는 데에도 큰아버지는 입학식에
따라나섰다. 큰아버지에겐 아들만, 그것도 말썽만 피우는 고3짜리 외아들 인 승민 뿐이었으므로 공부도 잘하고 다소곳 예쁘기만한 명자조카에게 항상 잘해주고 싶은 것이었을게다.
입학후 서너달이 지났을 때였다. 평소에 친오빠처럼 대해주던 승민 오빠가 큰아버지에게 야단을 맞고는 명자를 찾아온 것이었다. 평소에 잘 대해주긴 했어도 가끔은 아버지에 대한 질투로 명자에게 심술을 부리는 때도 있었다. 명자네는 큰댁에서 약 300미터 떨어진 합성국민학교 근처였는데
언니 명숙은 간호보조원이 되어 김 산부인과 원장댁에서 기거를 하며 일주에 한번 집을 다녀 갔고 남동생 기혁은 마산중학교 일학년이었다.
승민오빠는 술이 먹고 싶다고 했다. 학생이 무슨 술이냐고, 오빠는 대학에
않갈거냐고 명자는 넌지시 핀잔을 주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큰댁 오빠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술은 물론이고 담배고 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마산에서는 불량학생들 중 우두머리격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오빠는 사복이었다. 명자는 오빠가 자주간다는 싸리집이라는 허름한 선
술집으로 따라들어갔다. 오빠는 30은 되어 보이는 주인 아주머니에게 목
례를 하고는 구석진 자리에 앉는다. 명자도 집에 있다가 따라 나왔으므로 물론 앳된 사복차림이었다.
"누임예! 여기 두꺼비랑 뽁음 하나 주이소!"
"오빠야! 술 안함 안되나!"
"개안타 마!" "퍼뜩 주이소 누임!"
"네명임니데~ 누임"
"오빠야 누가 오나!"
"춘식이랑 찔찔이 녀석 온다 아이가!"
"오빠야! 난 갈란다 가고 싶데이!"
"쪼매 있어봐라 이노마야!"
"승민이 학생! 동생인가 본데 집에 보내면 않되겠나!"
"괘얀씹니더 야는 술만 않먹으믄 되는거 아임니꺼!"
이때 미닫이 출입문이 열리며 청바지 차림의 춘식 오빠와 찔찔이라는 돈규
오빠가 들어왔다.
"야야 승민이 왔나! 얜 누꼬?"
"왔나!"
"이놈으 짜슥들! 대낮부터 먼 사고를 칠라꼬 몰려 댕기나!"
"아임니더. 사고는 무슨...."
"안그라! 얀 내 사촌이고 마여고1학년 명자다!"
"야~이쁘게 생깄네~~"
"니 죽을래! 마 우리 명자는 우리하곤 질적으로 틀린 아데이~ 건들믄
캭 죽여뿐데이!"
승민, 춘식, 돈규오빠, 이렇게 셋이서 30분도 않돼 소주 세병을 간단히 비우며 오동동에서 터를 잡고 있는 두칠이파에 대한 선제공격을 계획하는
거였다. 같은 마산공고 였으나 학교내에서도 승민이 이끄는 터미널파와
오동동과 남성동 일대를 무대로 한 두칠이파가 갈려 서로의 눈치를 보며 마찰을 꺼려한 입장이었으나 두칠이파의 선태라는 아가 승민오빠네의 광수를 학교뒤 창고에서 몇대 친 것이 이빨이 나간게 문제였던 것이었다.
그 둘은 2학년이었는데 두칠이는 싸움이 확산될 것이 염려되어 승민에게
사과를 했지만 똑같은 댓가를 치루어야 한다고 승민이 거절을 한 상태였다. 그렇다고 두칠도 선태를 넘겨줄 수는 없는 것이었다.
승민파는 30명으로 각학년 열명씩 이었으며 학교의 유도부와 권투부가
주였고 두칠파는 20여명으로 태권부가 주였다.
춘식과 찔찔이는 승민파의 핵심으로 학교내에서는 감히 건드릴자 없었는데 그렇지 않아도 두칠이파로 인하여 심사기 뒤틀리던 차에 잘된 일인지
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들은 북마산의 아파트 공사장을 택했고 학교에서의 차후문제를 고려해
3:3으로 결판을 낼 것을 최종적으로 결론을 냈고 통보키로 했다. 이를테면
정식 결투였던 것이다.
좋다는 답이 왔고 3일후, 일요일 오후6시.
유월에 접어든 하늘은 맑기만하다. 승민은 춘식과 찔찔이와 함께 십분전에 도착을 했고 두칠이와 종만이와 상우는 미리와서 기다리고 있는 거였
다.
"시작해 볼까?"
"잠깐 너와 나 단둘이 하면 어떨까!
두칠은 고교 태권부 경남 대표로 대통령배에도 나간적이 있는 다부진 놈
이었다. 승민은 2학년 때 오동동의 건달 중간 보스와 똘만이 둘을 때려 뉜적이 있는 막싸움에는 일인자라는 소문이 있던 터였기에 두칠은 겁이 났
슴에도 피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한편 셋이 붙어봤자 불리하다 생각했기에 그나마 자신만을 믿었던 거였다.
승민은 그러자고 대답을 했고 춘식과 찔질이는 한발씩 물러섰다.
"좋아! 대신 네가지면 네조직은 내가 접수한다. 그리고 내가지면 나 또한
선태일은 없었던 것으로 할 것이다.!"
"좋아! 덤벼 !"
사실 태권도라는 것이 어느정도는 자기몸을 보호하거나 날렵함이 있기는 하겠지만 실전에서는 점수따기에 숙달된 터라 아무것도 아니었다.
5분도 않돼 두칠이가 나뒹군 것은 주위를 놀라게 했다. 두칠은 승민이의
어느 곳에도 가격을 못하고는 일방적으로 맞기만 했는데, 어찌나 빠른
주먹이었는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승민은 국민학교를 진주에서 나왔는데 그는 권투와 태권도를 동시에 배
우게 되었었고 중3 때는 또래들과 싸우기 일쑤였기에 그의 아버지로서는
외아들의 장래를 걱정해 마산으로 온 것이었다.
학교내의 파워게임은 그렇게 끝이났고 그뒤로는 오동동도 승민의 구역이
되었으며 사회의 건달들과 가끔은 충돌이 있었으나 평화로운 듯 달은 지나갔다.
고3이 되었다. 명자도 어였한 예비숙녀의 티가 났고 승민오빠는 서울의
모 전문학교 2학년이 되었으며 방학이 되면 내려와 오동동바닥을 헤집고 다니곤 했다.
철쭉도 다 져가는 5월 하순.
명자는 같은반 친구인 주희와 돝섬을 가기로 했다. 집안 청소를 끝낼즈음
주희가 찾아 왔고 날씨가 화창해선지 어여쁜 새색시 봄나들이 하듯 화사
한 복장이다. 일요일치고는 마치맞게 좋은 날씨다. 서둘러 집안 정리를 끝
내고는 둘은 가포를 가는 버스에 올라 탔다.
"이게 누꼬! 명자 아이가!"
"광수 오빠!"
"느그들 어데 가는데"
"돝섬에 놀러간다"
"우리도 놀러 가는데 같이 가자 마"
"그랍시다. 오빠야"
광수오빠는 승민오빠의 써클후배로 졸업을 했어야했지만 타교와의 패
싸움에 열루되어 퇴학을 맞은 상태였으나 승민오빠와 함께 몇번을 본 일
이 있어 명자는 서슴없이 동행을 하였던 것이었다.
물론 돌고래의 쇼나 동물들의 재미난 모습을 보기도 하고 줄타기를 하는
아가씨와 재주를 부리는 원숭이도 즐겁게 볼 수 있는 돝섬의 하루였다.
곳곳에 등들이 켜지고 하늘에는 샛별과 함께 북두칠성이 피어나기 시작하는 것으로 봐선 8시가 되지 않았나 싶다.
"명자야! 우리 저녁 먹으러 안갈래? 내가 사주꼬마~"
"주희야 같이 갔다가 가자~
"그라지머"
"어데로 갈껀데예 광수오빠"
"따라 오그라 마 "
작은 숲이라는 스낵이었다. 그곳은 분식과 김밥도 있었지만 메뉴판에는
술종류도 적혀 있었다. 우리는 떡볶기와 김밥을 먹었고 광수오빠 일행은
아구찜과 소주를 시켜선 먹고 있었다.
"느그들도 한잔씩 마셔볼래?"
"어데예~~"
하지만 집요한 광수오빠의 뚝심에는 명자의 의지도 무너지고 말았다.
"그라모 딱 한잔만 할낍니데"
"그래 한잔만 하그라 자.... 주희도...."
명자는 반복되는 광수의 권유에 벌써 다섯잔째를 미시고 있었다.
처음의 한잔은 쓴듯 했으나 두번째부터는 약간의 단맛도 있는듯 쉽게
넘어 갔으며 전혀 취기를 느낄 수가 없었다. 술을 처음 마셔보는 명자로서
는 한참 지나야 취기가 오른다는 것을 알지를 못했던 거였다.
다섯째잔을 비우니 하늘이 흔들린다는 것을 알게되었는데 주희 역시도
마찬가지였었다. 그때는 자라온 나날들의 서러움도 떠올랐고 몇잔을 더
한다해도 광수오빠가 알아서 데려다 주겠지 하는 믿음이 있기에 몇잔을
더 마실 수가 있었다. 명자와 주희는 일어설 수가 없었다. 앉아는 있겠어
도 몸을 가누고는 절대로 일어날 수가 없는 거였다. 광수일행은 각각을 부축하곤 여관을 향했다. 그때는 이미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을 뿐 아니라
집으로 가는구나하는 늘어진 모습뿐이었다.
명자가 깨어난 시각은 새벽 다섯시경이었다. 흐미한 불빛엔 어렴풋 광수오빠가 보였고 빈몸이었다. 허전했다. 명자역시 실오라기 하나없는 빈몸
뿐이었다. 울었다. 울음밖에는 없었다. 두려웠다. 명자는 옷을 챙기고는
빠져나와 집으로 가기위해 택시를 잡았다. 억장이 무너지고 또 울음이
났다.
그래도 등교는 해야겠기에 느즈막하게 학교를 향했다.
주희를 찾아보려 했으나 보이지를 않았다. 명자 자신도 문제였지만
주희의 일이 더 궁금했다. 무슨일이 있는걸까!. 별 상상이 다 들었다.
방과후에 전화를 했다. 울고 있었다. 아마 명자의 전화를 받고는 울음
이 터졌나보다.
서로를 위로하며 가까스로 학교생활에 적응이 되어갔다.
광수오빠에게서는 연락이 없다. 아마도 승민오빠가 알면 죽이려 들 것
이기에 연락을 못하는가보다. 사실 명자도 광수오빠에게서 연락이 올까
봐 두려워 하고 있었다.
일이 있은후 세달째이다. 차츰 잊으려할 즈음 몸이 이상해 온다. 무언가 먹고 싶기도 하고 헛구역질이 나기도 한다. 이상하다. 명자는 너무
허약해진 탓이라고 생각을 하고는 공부에 열중한다. 그래도 심상치가
않다. 그제서야 명자는 임신에 관한 책을 보며 임신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생리도 없었고 사고가 있던날이 생리기간의 중간쯤으로 배란기
라는 것도 그 뒷받침을 한다.
떨린다. 노래온다. 하늘이 깜깜해 온다. 하늘이 무너진다.
첫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