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
삼상 25:14-22
14 하인들 가운데 하나가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에게 말하여 이르되 다윗이 우리 주인에게 문안하러 광야에서 전령들을 보냈거늘 주인이 그들을 모욕하였나이다
15 우리가 들에 있어 그들과 상종할 동안에 그 사람들이 우리를 매우 선대하였으므로 우리가 다치거나 잃은 것이 없었으니
16 우리가 양을 지키는 동안에 그들이 우리와 함께 있어 밤낮 우리에게 담이 되었음이라
17 그런즉 이제 당신은 어떻게 할지를 알아 생각하실지니 이는 다윗이 우리 주인과 주인의 온 집을 해하기로 결정하였음이니이다 주인은 불량한 사람이라 더불어 말할 수 없나이다 하는지라
18 아비가일이 급히 떡 이백 덩이와 포도주 두 가죽 부대와 잡아서 요리한 양 다섯 마리와 볶은 곡식 다섯 세아와 건포도 백 송이와 무화과 뭉치 이백 개를 가져다가 나귀들에게 싣고
19 소년들에게 이르되 나를 앞서 가라 나는 너희 뒤에 가리라 하고 그의 남편 나발에게는 말하지 아니하니라
20 아비가일이 나귀를 타고 산 호젓한 곳을 따라 내려가더니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자기에게로 마주 내려오는 것을 만나니라
21 다윗이 이미 말하기를 내가 이 자의 소유물을 광야에서 지켜 그 모든 것을 하나도 손실이 없게 한 것이 진실로 허사라 그가 악으로 나의 선을 갚는도다
22 내가 그에게 속한 모든 남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아침까지 남겨 두면 하나님은 다윗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삼상 25:14-22 / [미련한 남편의 슬기로운 아내] 그런데 나발의 종들 중에서 한 사람이 어느새 아비가일에게로 달려가서 이렇게 알려주었다. `방금 다윗이 보낸 부하들이 다녀갔습니다. 다윗은 우리의 주인께 친절한 인사를 전하였으나 우리 주인은 그들에게 호통만 치고 빈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15-16) 그러나 그들은 우리가 들녘에서 양 떼를 지킬 때 언제나 우리를 도와주었지, 괴롭힌 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마치 밤이나 낮이나 우리를 보호해 주는 성벽과 같아서 우리가 그들 곁에서 양 떼를 먹이는 동안에는 양새끼 하나도 잃은 적이 없었습니다! 17) 그러므로 여주인께서 지금이라도 얼른 손을 써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주인 어른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몰살당합니다! 사태가 이렇게 위급한데도 바깥 주인은 고집만 세울 뿐, 어느 누구의 말에도 귀 기울이지 않기 때문에 이리로 달려왔습니다.' 18) 아비가일은 즉시 나귀들을 끌어다가 음식을 싣도록 하였는데, 무려 떡 200덩이, 두 가죽부대에 가득 찬 포도주, 요리해 놓은 양 다섯 마리, 볶은 곡식이 ㄱ) 일곱 말쯤 담긴 자루 하나, 건포도떡 100덩이, 무화과떡 200덩이나 되었다. (ㄱ. 다섯 세아는 65.5리터) 19) 아비가일은 일꾼들에게 `나는 뒤따라가겠으니, 너희가 앞서 이 나귀들을 몰고 가라'고 지시한 후 남편 나발에게는 이 일을 전혀 알리지 않았다. 20) 아비가일은 나귀를 타고 종들을 뒤따라갔다. 아비가일은 어떤 산모퉁이를 돌아 내려가고 있었기 때문에 부하들을 거느린 다윗이 벌써 가까운 거리에까지 접근하였으나 전혀 볼 수가 없었다. 이제 곧 그들이 서로 마주치게 될 순간이었다. 21) 다윗은 점점 더 화가나서 속으로 벼르며 언덕을 내려오고 있었다. `그런 비열한 놈을 어디 내가 그냥두는가 보아라! 나는 저 들녘에서 그의 가축이라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잘지 켜 주어 양새끼 한 마리도 잃어버리지 않게 하고, 그에게 손해를 끼친 일이란 하나도 없는데, 그것이 이제는 모두 헛일이 되었다! 그는 나의 선을 악으로 갚는구나. 22) 내가 내일 아침까지 그녀석의 패거리 중에 단 한 사내라도 살려 둔다면 내가 마땅히 하나님께 어떤 형벌이라도 달게 받겠다'
나발은 다윗이 보낸 종들을 빈손으로 돌려보냈을 뿐만 아니라 모욕적인 말을 서슴치 않았습니다. 다윗이 도움 받기를 포기할 수 도 있었지만 자존심을 건드렸기 때문에 일이 커지고 말았습니다.
하인의 보고(14-17) 나발이 다윗의 종들을 모욕하고 빈손으로 돌려보낸 후 다윗은 분노하여 나발을 치기위해 자기 사람들을 데리고 올라갑니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하인 한 사람이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에게로 나아가 말합니다. 하인은 먼저 자신들이 광야에 있을 때, 다윗의 사람들이 밤낮으로 담이 되어 줌으로써 나발에게 속한 사람과 가축이 안전하게 보호받았다는 것을 자세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발은 이러한 사실을 묵인하고 다윗이 보낸 사람을 빈 손으로 보냈으며 다윗에게 모욕을 주는 말을 함으로써 다윗이 지금 군사들을 데리고 올라오고 있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나발의 하인들도 다 알고 있는 이러한 사실을 나발은 일부러 모르는 척 한 겁니다. 종들은 다윗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수 있었던 양털 깎는 행사의 공을 다윗에게 돌리고 있습니다. 이런 말을 주인에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나발이 불량한 사람이기 때문에 더불어 말할 수 없다고 합니다. 하인들이 주인을 이렇게 생각하면 무슨 일을 해도 잘 될 수 없습니다.
아비가일의 지혜(18-22) 아비가일은 하인들의 말을 듣고 즉시 물건을 준비합니다. 아비가일은 하인들이 한 말을 전혀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였으며 사태의 심각성을 곧바로 알아챘습니다. 급하게 떡 이백 덩이와 포도주 두 가죽 부대, 양 다섯 마리와 볶은 곡식 다섯 세아와 건포도 백 송이와 무화과 뭉치 이백 개를 가져다가 나귀에 싣고 다윗에게로 갑니다. 다윗의 분노한 감정을 진정시키기 위한 최선의 준비를 한 것입니다. 다윗의 분노는 생각 이상입니다. “내가 그에게 속한 모든 남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아침까지 남겨 두면”이라고 말 할 정도였습니다. 나발의 배은망덕한 행위에 대하여 철저하게 응징하겠다는 태도를 보입니다. 그러나 한 편으로 보면 다윗이 지나치다는 생각도 듭니다. 왜냐하면 이전에 사울이 자신에게 한 행동도 나발과 비교하면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대신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골리앗에게서 구했으나 사울 역시 은혜를 원수로 갚았습니다. 그 때는 다윗이 지금처럼 이렇게 분노하지 않았습니다. 사울에게는 다윗이 함부로 할 수 없는 힘이 있었다면 나발은 성질이 고약한 힘없는 부자에 불과 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지금 다윗의 극한 분노의 감정을 진정시키기 위해 아비가일은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적 용 : 내가 나이나 직책이 많거나 높다고, 혹은 상대방이 나보다 힘이 없다고 함부로 말하거나 행동한 적은 없습니까?
실제 미국에서 강도가 슈퍼마켓에 들어갔을 때 ‘어떤 곳에서 더 많은 강도질을 하는가?’ 하는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정말 재미있고 놀라운 사실은 일하는 종업원이 많이 웃는 곳에서는 총과 칼을 꺼내지 않게 되더라는 겁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종업원이 많이 웃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무의식속에서 나는 저 사람하고 친하다고 느낀다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칼을 꺼내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종업원이 웃지 않고 무표정하고 무뚝뚝하게 되면 나와 아무런 관계없고, 또 나도 모르게 기분이 나빠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칼과 총을 꺼내서 훔치기도 하고 강도를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어떤 태도와 모습으로 가족과 이웃을 대하고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호크마 주석
=====25:14
본절의 언급은 나발의 하인들도 분명히 다윗에 대해서 호의(好意)를 갖고 있었으며, 자신의 상전 나발이 다윗에 대해 취한 태도를 못마땅히 여겼음을 시사해 준다(17절). 수욕하였나이다 - 기본형 `이트'(* )는 `매우 화나게 하다', `격동시키다'란 의미인데(Davidson). 그 어원은 매나 독수리 등 맹금류(猛禽類)를 쫓아내는 행위에서 연유된다.
=====25:15,16
여기서 나발의 하인은 나발이 다윗에 대해 취한 태도가 극히 부당한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하여 다윗이 그동안 자신들에게 선(善)을 베풀었던 일을 아비가일에게 세세히 아뢴다. 상종할(* , 하트할라케누) - 이 단어는 `다니다', `왕래하다'란 의미를 갖는 `할라크'(* )의 재귀적 사역형이다. 따라서 `자신들을 위하여 왕래하다'란 의미로 이해해야 하는데, 결국 이것은 나발의 하인들이 다윗의 보호를 요청했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암시해 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밤낮...담이 되었음이라 - 여기서 `담'(* , 호마)은 `성' 또는 `성벽'이란 의미이다(레 25:29; 삼하 11:20; 왕상 3:1; 왕하 14:13). 그런데 성경 용례상 이 `성'(城)은 `확실한 보호'를 뜻하는 은유적 표현으로는 `산성'(시 9:9; 28:8), `요새'(시 18:2; 144:2), `반석'(시 31:3; 62:2)등이 있다. 구체적으로 다윗 일행은 나발의 가축과 양치기들을 사나운 광야의 맹수와 사막의 약탈자인 아랍계 베드윈 족속들의 공격으로부터 지켜 주었을 것이다(Fay, Keil).
=====25:17
주인은 불량한 사람이라 - 여기서 `불량한 사람'(* , 벤 벧리야알)은 문자적으로는 `사악한 자의 아들' 혹은 `무익한 자의 아들'이란 뜻인데, 곧 그 악한 성품과 못된 성질 등으로 인해 `아무런 쓸모없는 인간' 즉 `백해 무익한 인간'이란 뜻이다. 한편 이와 같은 호칭은 지극히 타락했던 엘리의 두 아들들에게도 적용되었었다(2:12).
=====25:18
아비가일의 급히...취하여 - 아비가일의 기지(機智)가 엿보인다. 특히 여섯 종류의 음식을 준비한 데서 그녀의 세심한 정성과 배려를 느낄 수 있다. 이처럼 정성스런 예물은 맹렬한 분노마저도 그치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잠 18:16; 21:14). 떡 이백 덩이 -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한 가족에게 필요한 떡의 양(量)을 `떡 세 덩이'로 보았다(눅 11:5-8). 따라서 육백 명의 병사를 거느리고 있던 다윗에게 이같은 양(量)은 결코 많다고 볼 수 없다. 볶은 곡식 다섯 세아 - 한 `세아'는 약 13.5 이다. 따라서 `다섯 세아'는 약 70정도에 해당되는 분량이다. 그런데 이처럼 그 양이 너무 적다는 이유 때문에 어떤 학자는 `오백 세아'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Ewald). 또한 같은 맥락에서 70인역은 `다섯 에바'로 보고 있다. 그러나 앞에 언급된 떡의 양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음식물은 다윗의 출격 소식을 들은 아비가일이 그 노(怒)를 일단 진정시킬 목적으로 급히 준비하여 간단히 요리된 관계로 적을 수 밖에 없었다. 다라서 본문 그대로를 정확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한편 여기의 `볶은 곡식'은 야전(野戰)에 나가 있는 군인들에게 적적한 음식으로 인정되었다(17:17). 건포도...무화과 - 이 같은 식품들은 지극히 곤비한 자들의 원기 회복을 위하여 매우 적절한 음식으로 사용되었다(30:11, 12).
=====25:19
내 앞서 가라...뒤에 가리라 - 이것은 `아비가일'이 음식을 실은 나귀보다 훨씬 뒤쳐져서 따라가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왜냐하면 `앞서'는 `면전(面前)에서'란 의미이기 때문이다(수 4:12). 즉 `아비가일'은 그때 짐을 실은 나귀의 뒤를 바로 좇은 것이다. 이처럼 예물을 앞서 진행시키는 것은 상대방의 호의와 은혜 입기를 소원한다는 뜻이 담긴 관례였다(창 2:13-23). 남편 나발에게는 고하지 아니하니라 - 이것은 아비가일이 음식을 갖고 다윗에게 가는 것을 나발이 알게 될 경우 틀림없이 적극 막을 것이 뻔하였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현명한 자는 때에 따라 침묵하고, 때에 따라 말한다. 말하기에 적당한 때를 분별하는 것이야말로 매우 큰 지혜라고 할 수 있다(잠 15:23; 약 3:2).
=====25:20
산 유벽한 곳 - 이는 마치 산에 의하여 덮여진듯 은밀한 곳을 가리킨다(27:5; 31:2 0). 한편 카일(Keil)은 `산의 두 정산 사이에 움푹 들어간 곳'이라 했다. 그리고 NI V는 `협곡'(ravine)으로 번역했다. 좇아 내려가더니 - 이 말은 고지에서 저지로 내려가는 행위를 뜻하는 `야라드'(* )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좇아'는 문맥상의 의미 강화를 위한 번역자의 삽입이다. 다윗...마주 내려오는 것을 만나니라 - 그 당시 다윗은 나발이 살고 있었던 `갈멜'의 맞은편쪽 `요새'에 자리 잡고 있었음을 시사해준다. 즉 `마온 황무지'는 여러 개 의 고지(高地)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갈멜'이며, 또 다른 하나가 다윗이 머물고 있었던 `요새'였을 것이다.
=====25:22
남자(* , 마쉐틴 베키르) - 문자대로 직역한다면 `벽을 향해 오줌을 누는 자'(that pisseth aginst the wall, KJV)란 의미인데, 이 말은 남자를 경멸적으로 일컫는 표현이다(왕상 16;11; 21:21; 왕하 9:8). 결국 다윗의 이 말은 나발에게 속한 모든 자들을 다 죽이겠다는 단호하고도 분노에 찬 결의이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벌을 내리시고 - 맛소라 사본(M.T.)과 칠십인역(LXX)은 `다윗의 원수들에게'로 되어 있다. 바로 이같은 사본상의 차이로 인하여 이 어구에 대한 여러 견해들이 제시되었다. (1) 마소라 사본이나 칠십인역의 기록을 옳은 것으로 보고,`하나님은 다윗의 원수들에게 벌을 내리시고'로 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Lange, Keil, Smith). 즉 랑게(Lange)와 카일(Keil)은, 당시 다윗이 나발에 대한 공격을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義)를 위한 싸움으로 생각함으로써, 이같은 형식의 저주를 했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스미드(Smith)는, 다윗이 `나발'이라는 명칭 대신에 `원수'라는 보다 특수한 용어를 사용한 것은, 그 같은 용어의 사용에 따라 나발에 대한 자신의 저주가 훨씬 더 효험을 잘 나타낼 것이라는 미신적 판단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2) 마소라 사본이나 칠십인역이 다위 스스로가 자신에 대한 저주를 선언한다는 것은 불가하다는 판단에 따라 그같은 모순을 피하기 위하여 `원수들'이란 말을 공연히 삽입하였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Hertzberg, Klein, NIV, 공동번역). 이같은 견해를 주장하는 자들은, 구약 성경의 용례상 상대에 대하여 하나님의 저주를 직접적으로 선포하는 경우는 없으며, 그리고 본문과 동일한 저주의 형태가 때때로 언급되고 있다는 사실을 그 증거로 제시한다. 우리는 위의 두가지 견해 중 첫째, 나발에 대한 자신의 공격 행위를 다윗 자신이 성전(聖戰)으로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며 둘째, 다윗은 자신의 한(恨) 풀이를 위해서 하나님을 저주의 도구로 이용하려 할 만큼 미신적 사상의 소유자는 아니라는 점등으로 미루어 볼 때 (2)의 견해가 타당한 듯하다.
< 설 교 >
다윗의 분노
삼상 25:14-22
의사가 병을 고치는 것은 그 사람의 재능이며 기술입니다. 때문에 스스로 고쳐본 경험이 있는 질병에 대해서는 자신있게 고칠 수 있다고 나설 수가 있습니다. 의사뿐만이 아니라 자동차 정비사, 건축가 등등 기술과 재능을 요하는 모든 분야에서는 인간이 경험하고 습득한 재능과 기술이 발휘되어서 모든 일을 성취하게 됩니다. 재능과 기술은 날마다 반복된 일을 합니다. 그러므로 실수가 아닌 이상 어제는 할 수 있었던 일을 오늘은 하지 못하는 경우는 없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어제 있었던 기술과 재능이 갑자기 사라져 버리면 모르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기술과 재능은 인간의 몸에 축척되는 것이기에 몸이 고장 나지 않는 이상 갑자기 사라진다거나 기술력을 잃어버리는 경우는 없을 것입니다. 만약 기술력이 사라졌다가 다시 생기는 성질의 것이라면 사회적으로는 큰 혼란이 발생하게 될 것이고 인간의 경험과 경력이라는 것도 무의미한 것이 되어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기술과 재능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분명 경험이며 경력입니다. 1년간 환자를 돌본 의사와 10년간 환자를 돌본 의사의 기술력이 같을 수 없는 것처럼 기술은 경험 속에 쌓아져가는 것이고 따라서 세월이 흐르고 많은 경험을 할수록 실력 있는 사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기술과 재능 경험과 경력 등등이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무의한 분야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애당초 믿음은 우리의 실력이 아닙니다. 경험도 아니고 재능으로 되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믿음의 경험이 많다고 해서 실력 있는 신앙인이 되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가령 누군가를 용서한 경험이 있다고 할 때, 그 경험이 실력이 되어서 다음에는 용서를 더 잘하는 사람이 되어지는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오히려 오늘은 용서를 했는데 내일은 용서한 자신의 일을 잊어버리고 분노하고 미움만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인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는 신앙 경력과 경험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때문에 교회를 몇 년을 다녔다느냐는 것은 아무짝에도 필요 없는 질문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교회를 들여다보면 믿음을 실력과 경험으로 오해한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출석한 사람보다는 십년 이십년 교회를 출석한 사람이 신앙에 있어서는 더 우위에 있다는 생각을 버리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고 먼저 된 자가 나중 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해 보면 신앙은 경험과 년 수로 결정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자신의 경험과 출석 년 수로서 다른 사람과 차별을 두려고 하는 것을 지극히 삼가야 함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오늘 본문도 이러한 점을 생각하게 하는 내용입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다윗은 나발이 양털 깎는 날에 소년을 보내서 나발의 소유 중에 얼마를 줄 것을 요구합니다. 이 요구에 대해 나발은 철저히 무시해 버리고 결국 다윗은 분노하여 칼을 찬 사람 400명을 데리고 나발을 칠 계획을 세우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의 계획을 나발의 소년 중 하나가 나발의 아내인 아비가일에게 고하게 되고 아비가일은 먹고 마실 것을 많이 준비하여(18절) 다윗을 찾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다윗은 아비가일을 만났을 때 “내가 이 자의 소유물을 광야에서 지켜 그 모든 것을 하나도 손실이 없게 한 것이 진실로 허사라 그가 악으로 나의 선을 갚는도다 내가 그에게 속한 모든 것 중 한 남자라도 아침까지 남겨두면 하나님은 다윗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고 말합니다.
이것을 보면 다윗은 나발과 나발에게 속한 모든 남자까지 한 사람도 남겨두지 않고 죽이겠다고 맹세까지 할 정도로 나발에 대해 분노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나발에 대한 다윗의 분노를 대하면서 한가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나발보다 더 원수라고 할 수 있는 사울은 죽일 기회가 있었음에도 죽이지 않고 놓아주면서 나발에 대해서는 왜 이토록 분노하고 죽이려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24:12절에서 다윗이 말한 “여호와께서는 나와 왕 사이를 판단하사 나를 위하여 왕에게 보복하시려니와 내 손으로는 왕을 해하지 않겠나이다”라는 구절을 보면 다윗은 분명 판단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보복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울이 악하다면 그의 악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보복하실 것이기에 자신은 보복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다윗이 왜 나발에 대해서는 친히 보복하기 위해 나서는 것입니까? 원수인 사울을 그냥 놓아준 다윗이라면 나발에 대해서도 판단하시고 보복하실 분은 여호와임을 알고 그분께 맡기는 것이 옳지 않습니까? 그런데 다윗은 나발에 대해서는 사울의 경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발을 치는 다윗의 행위가 정당한 것은 아닙니다. 25:33절의 “또 네 지혜를 칭찬할찌며 또 네게 복이 있을찌로다 오늘날 내가 피를 흘릴 것과 친히 보수하는 것을 네가 막았느니라”는 구절을 보면 다윗은 자신의 행위가 정당치 못한 것임을 아비가일로 인해서 깨닫게 됩니다. 자신이 친히 복수할 뻔한 것을 아비가일이 막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친히 판단하시고 보수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다윗이 나발에게는 왜 친히 보수하려고 했을까요? 하나님이 친히 보수하신다고 하면서 사울을 놓아준 다윗의 믿음은 어떻게 된 것일까요? 이 점을 생각함으로써 믿음은 무엇이고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앞서 말한 대로 일단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믿음은 실력도 재능도 기술도 경험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믿음을 쌓아가는 것으로 여겨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되면 어제 잘한 사람이라면 오늘도 잘할 것이고 어제 못한 사람은 오늘도 못할 것이라는 선입견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게 됩니다.
그러면 믿음은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말해서 은혜입니다. 단 한번 주어진 것으로 충족되는 은혜가 아니라 날마다 우리에게 필요한 은혜라는 것입니다.
대개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은 믿음과 은혜의 관계입니다. 믿음을 은혜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을 보이지 않지만 은혜로 믿음이 주어졌다는 것에서 많은 오해가 발생합니다. 즉 은혜로 믿음이 주어졌기 때문에 믿음이 나에게 존재한다고 여김으로써 믿음을 자신의 소유물처럼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처음에는 은혜이지만 다음부터는 자신의 실력으로 등장해 버리는 것이 현대 교인들의 믿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믿음은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은혜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은혜가 아니면 한순간도 믿음에 머물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연약함이고 악함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조차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써 포기한 사람입니다. 그러한 그가 나발에 대해서는 극도의 분노를 보이며, 나발에 속한 모든 남자들을 죽이기로 맹세까지 하는 악함을 보입니다. 단 한 번 모욕당한 것으로 인해 땅을 온통 피로 물들일 생각을 한 것입니다. 이 생각은 분명 정당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울을 대했던 다윗의 성품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어디로 간 것일까요? 이것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은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믿음에 거할 수 없음을 말씀드린 것입니다.
사울을 죽이지 않고 놓아준 다윗의 믿음이 실력이었다면 나발에 대해서도 같은 실력이 나와야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실력이 아니었기 때문에 사울과 나발의 경우가 각기 다르게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다윗을 그토록 분노하게 했습니까? 사울과 나발을 두고 비교하자면 사울이 훨씬 더 다윗에게 악행을 저지른 사람입니다. 나발은 한번 다윗을 모욕한 것으로 그치지만 사울은 계속해서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다녔습니다. 한 사람은 자신을 죽이려 하는 원수고 다른 한 사람은 단순히 자신을 무시하여 자존심을 상하게 한 사람일 뿐입니다. 누가 봐도 나발보다는 사울에게 더 분노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수하신다는 것을 잊어버릴 정도로 분노하는 이유는 다윗이 나발에게는 뭔가를 기대했다는 것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다윗은 사울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사울이 자신을 잘 대해주기를 기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적대감을 가지고 자기를 죽이기 위해 쫓아다니는 사울에게 익숙해져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울에 대해서 어떤 선도 기대하지 않은 이상 사울이 어떻게 대하든 분노가 일어날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울의 적대감에서도 하나님이 보수하심을 생각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나발의 경우는 다릅니다. 21절의 “다윗이 이미 말하기를 내가 이 자의 소유물을 광야에서 지켜 그 모든 것을 하나도 손실이 없게 한 것이 진실로 허사라 그가 악으로 나의 선을 갚는도다”는 말을 보면 다윗은 나발이 자신을 우호적으로 대할 것을 기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 덕분에 나발의 소유가 온전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나발이 자신의 은혜를 알고 자기 요구에 우호적으로 대할 것을 기대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기대가 무너지고 오히려 무시함을 당했을 때의 분노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경우가 없습니까? 평소 자신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고 험담을 자주 하는 사람이 자신을 욕하는 경우 자기 마음을 조금만 추스르면 얼마든지 너그러움을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그 사람에 대한 기대가 없었기 때문에 쉬운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 절친한 사람이거나 평소 도움을 많이 주었던 사람이 자신에 대해 험담을 하거나 욕을 하고 다니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분명 사이가 나쁜 사람에 대해서보다 더 큰 분노가 일어날 것입니다. 저 사람은 나에게 좋게 대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 더 큰 상처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줬다 할지라도 ‘내가 저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잘 대해줬으니까 저 사람도 나를 선하게 대할 것이다’라는 기대는 갖지 않는 것이 지혜인 것입니다. 때문에 누군가를 도왔다 할지라도 ‘주님의 은혜가 나를 행하게 한 것뿐이다’라는 생각에 머물 뿐, ‘내가 저 사람을 도왔다’는 생각에까지 나아가지 않도록 자신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저 사람을 도왔다’라는 생각이 ‘저 사람은 나에게 우호적으로 대해야 한다’라는 기대를 갖게 하고 그러한 기대가 결국 어느 순간에 배신감과 분노를 가져오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배신감과 분노는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이나 말씀에 따라 행동하는 것에 걸림돌로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죄를 짓지 말라는 뜻으로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라 신자는 반복되는 믿음의 실패에서 자신을 지켜주실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이 여전히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함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죄로부터의 구원은 그리스도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계속 날마다 경험하는 것입니다. 은혜가 아니면 존재할 수 없음을 자신의 죄악으로부터 발견하고 깨닫는 것입니다. 자신의 실력으로는 한발자국도 믿음을 행해 나아갈 수 없음을 발견하는 것이 은혜이며 믿음의 본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발에 대한 다윗의 분노에 대해 의아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울을 놓아준 다윗이 왜 나발에게 분노할까?’라는 의문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애당초 사울을 놓아준 것은 다윗의 실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믿음은 실력이 아님을 알아야 하고, 과거의 성공이 미래의 실패를 막아주지 못하며, 과거에 잘했다고 해서 미래에도 잘한다는 보장은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은혜를 말한 사람이 곧 이어 죄악에 머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식하지 않을 때 나타나는 결과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원수보다는 친구에게서 더 많은 것을 기대합니다. 하지만 이 기대가 서로를 미워하는 관계가 되게 할 수 있습니다. 신자는 서로 뭔가를 기대하고 만나는 관계가 아니라 은혜를 나누기 위해 만날 뿐입니다. 뭔가 베풀었다면 그 심령에 손길에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한 결과임을 먼저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행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아무것도 기대하지 마십시오. 나 역시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존재임을 날마다 되새기며 살아가십시오. 사실 조그만 일에서도 마음이 토라지고 분노하고 다투는 우리의 실체를 생각하면 부끄러울 수밖에 없지 않습니다. 이러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의 은혜가 참으로 크다 아니할 수 없습니다.
얼마 안 있으면 2018년 한해가 시작됩니다. 올 한해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날마다 그리스도 안에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에 머무는 것입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길
삼상 25:14-31 / 이한규목사
위기 때 잘 변화되면 더 나은 인생이 되고 더 놀라운 복이 주어진다. 사람이 위기를 만들지만 위기가 사람을 만들기도 한다. 성경의 많은 인물들이 위기를 통해 인격이 다듬어지고 믿음이 깊어졌고 더 큰 비전을 품고 미래를 개척했다. 본문에 나오는 아비가일을 통해 얻는 교훈으로서 위기를 기회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감사의 예물을 드리라
다윗이 피신 중에 물자와 양식이 필요해서 평소에 도움을 준 나발에게 사환들을 보내 정중히 도움을 요청했다. 그때 나발이 도움은커녕 모욕을 주고 냉대해서 다윗은 400명의 부하를 데리고 출정했다. 다윗의 출정 소식을 듣고 한 하인이 아비가일에게 말했다. “다윗이 우리 주인에게 보낸 전령들을 주인이 모욕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우리 주인과 주인의 온 집을 해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주인은 불량한 사람이라 더불어 말할 수 없습니다.” 하인이 주인의 아내에게 주인이 불량하다고 말할 정도라면 나발의 불량함은 누구나 인정할 정도였다.
그때 아비가일은 가문의 위기를 직감하고 단호하고 지혜롭게 그 상황에 대처했다. 먼저 급히 떡 이백 덩이와 포도주 두 가죽 부대와 잡아서 요리한 양 다섯 마리와 볶은 곡식 다섯 스아와 건포도 백 송이와 무화과 뭉치 이백 개를 가져다가 나귀들에게 실었다(18절). 그녀가 다윗의 분노를 가라앉힐 선물로 급히 여섯 종류의 음식을 준비한 것은 그녀의 지혜롭고 정성스럽고 배려하는 성품을 잘 보여준다. 계산적인 뇌물은 나쁜 것이지만 감사가 담긴 진심 어린 선물은 사람 마음을 움직인다. 예물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리면 은혜가 더해진다.
하나님은 지금도 감사 예물을 드리며 하나님의 일을 이뤄낼 아비가일이나 루디아를 찾으신다. 지금 하는 일에서 사명감을 가지고 성공하고 성공하면 선교를 위해 사용하라. 나의 성공을 통해 이룬 열매와 물질로 사랑하는 사람을 돕고 하나님의 일이 진전되게 하는 것처럼 보람된 일은 없다.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드리는 예물과 선물로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하나님의 일을 진전시키고 행복의 탑을 쌓아가라.
2. 겸손한 자세를 갖추라
아비가인은 다윗을 위한 선물을 준비하고 소년들에게 자신을 앞서 가라고 한 후 남편 나발에게는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19절). 그리고 혼자 나귀를 타고 산 호젓한 곳을 따라 내려갈 때 마주 내려오는 다윗 일행을 만났다(20절). 그녀가 급히 나귀에서 내려 다윗 앞에 엎드려 자신의 얼굴을 땅에 댔다(23절). 대부호의 안주인이면 교만할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겸손함을 잃지 않고 다윗 앞에서 최상의 예우를 표했다. 겸손은 비유적인 표현으로 늘 남는 장사임을 잊지 말라.
아비가일이 다윗의 발에 엎드려 말했다. “내 주여 원하건대 이 죄악을 나 곧 내게로 돌리시고 여종에게 주의 귀에 말하게 하시고 이 여종의 말을 들으소서(24절).” 그녀는 행동뿐만 아니라 말도 겸손하게 했다. 그리고 가장 먼저 한 말이 나발의 죄를 자신에게 돌리라고 한 말이었다. 집안의 모든 남자를 구하려고 그녀는 최대한 겸손하게 십자가의 희생을 앞세운 말을 했다. 그때 다윗의 마음은 많이 누그러졌을 것이다.
아비가일처럼 섬김의 자세를 가지고 겸손하게 자기를 부인하고 살 때 영혼이 풍성해지고 대인관계도 좋아지고 하나님 관계도 좋아진다. 높은 자리에 있으면 자부심은 가지되 너무 높은 마음을 품지 말라. 반대로 낮은 자리에 있으면 자존감을 잃지 말고 너무 낮은 마음을 품지 말라. 자신을 지나치게 낮추는 것도 교만의 산물일 수 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얼마나 부족한 존재인지를 생각하고 동시에 하나님 안에서 내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를 생각하면서 겸손하게 십자가를 지고 나아가면 어떤 위기가 닥쳐도 그 위기는 조만간 기회로 변할 것이다.
3. 축복의 말을 해 주라
아비가일은 나발의 평소 행실을 실상대로 말해서 다윗의 노기를 가라앉힌 후 여호와께서 다윗이 피를 흘려 친히 보복하는 일을 막으실 것이란 확신을 전하며 자신이 다윗에게 가져온 예물을 다윗을 따르는 소년들에게 주라고 했다(26-27절). 그다음에 바로 이어서 끊임없이 다윗을 높이며 축복의 말을 했다(28-31절). 그처럼 남을 축복하면 세 가지 축복이 임한다. 첫째, 축복의 말을 받는 사람이 변한다. 둘째, 축복하는 말대로 변한다. 셋째, 축복의 말을 주는 사람이 변한다. 결국 축복의 말은 지상 최대의 변화를 낳는 기적의 도구다.
한 축구 선수가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다. 그래서 아들 경기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아들에게 한 번도 격려나 칭찬을 하지 않았다. 아들은 아버지의 인정과 칭찬이 그리웠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실제로 그 아버지는 아들 경기에 자주 왔었다. 그러나 멀리서 보고 그냥 조용히 떠났다. 아들 친구에게 술꾼 아버지의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아들이 나중에 신학대학원에 가서 훌륭한 목사가 되었다.
어느 날 그의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쓰러졌다. 그가 급히 응급실로 가자 그의 아버지는 거의 혼수상태에 빠진 채 아들을 의사로 착각하고 말했다. “의사 선생님! 저는 아들이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그는 훌륭한 축구 선수였고 지금은 훌륭한 목사가 되었습니다. 나중에 제 아들을 꼭 만나보세요.” 그날 그는 지난 35년 동안 그토록 듣고 싶었던 아버지의 인정과 칭찬의 말을 들었다. 그 축복의 말은 그의 마음을 감격과 기쁨으로 들끓게 했고 그의 모든 상처와 아픔을 씻는 치료제가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축복의 말이 많이 해 주라. 소리 없이 하는 축복 기도도 중요하지만 소리 내어 하는 축복의 말도 중요하다. 특히 “너는 내 자녀이기 전에 하나님의 자녀다. 하나님이 너를 지켜 주실 거야. 네가 자랑스럽다.”라고 하는 부모의 축복의 말은 하나님의 언약처럼 자녀에게 평생의 힘이 될 것이다. 축복의 말은 결코 헛되지 않다. 축복의 말을 많이 해 주면 위기가 기회로 변하는 놀라운 역사가 이뤄질 것이다.
4. 지혜롭게 말을 하라
본문 24-31절에 나오는 아비가일의 말을 간단히 요약하면 이런 말이다. “내 주 다윗이여, 당시의 분노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앞으로 위대한 리더가 되어 백성들의 지지도 받고 양심의 가책도 없도록 칼을 거두어 주십시오.” 특히 본문 24-31절을 보면 거의 매 구절마다 그녀는 다윗을 끊임없이 ‘내 주’라고 호칭했다. 지혜롭고 교양 있는 호칭과 말은 상대의 폭력성과 공격성을 크게 완화시킨다.
사람들은 언어가 바른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본능이 있다. 그러므로 위기 중에 언어에서부터 침착함을 잃지 말라. 말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다. 말을 판단 도구로 삼지 말라. 남을 판단할 때는 그 전에 자신부터 판단하라. 파스칼은 말했다. “이상한 일이 있다. 사람은 남의 죄와 잘못에 대해서는 대단히 분개하면서 자신의 잘못된 점은 인식하지 않고 찾지 않으려 한다.” 비판의 말을 절제하고 억울해도 힘써 참으면 때가 되어 하나님이 “됐다. 합격.”이라고 하시면서 큰 은혜의 손길을 펴실 것이다.
누군가 나의 말을 듣고 그 영혼이 살아나도록 지혜롭게 말하라. 나의 비판으로 남을 쉽게 변화시킬 수 있다고 자신하지 말라. 나의 말 몇 마디로 어떻게 남이 쉽게 변하겠는가? 예수님도 그것이 어려운 줄 알라는 의미로 친히 십자가를 지셨다. 말할 때 영혼을 살려 주는 말을 많이 하라. 믿음의 말, 교양 있는 말, 적절한 호칭, 그리고 지혜롭게 말하는 기술까지 있다면 복된 삶을 위한 훌륭한 무기를 소유한 셈이 된다.
사도 바울은 성령의 은사 중 첫 번째 은사로 지혜의 말씀을 언급했다(고전 12:8). 예수님의 제자들은 많이 배우지 않았어도 성령 충만 후에 누구보다 지혜롭게 되었다. 지혜로운 말은 사람을 무기력과 두려움에서 해방시켜 능력과 확신을 가지게 만들고 심문받는 자리를 증언하는 자리로 만들고 피고의 입장에 선 사람을 원고의 입장에 선 사람처럼 만든다. 특히 복음이 깃든 지혜의 말씀을 앞세우면 하나님의 최상의 은혜가 따를 것이다.
< 위기를 기회로 만들라 >
처음 복수심에 불타 칼을 들었던 다윗은 아비가일의 겸손한 말에 감동되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 후 그녀에게 말했다. “오늘날 너를 보내어 나를 영접하게 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양털을 깎는 마을의 즐거운 잔칫날이 칼에 의해 피바람이 부는 날로 바뀔 뻔한 위기를 지혜로운 믿음의 여인이 막아냈다. 그처럼 위기에 빠진 가정과 교회와 나라와 민족을 구하는 지혜로운 성도 한 사람이 되라.
위기 때 침착함을 잃지 말고 위기를 기회로 만들라. 다급한 문제가 생겨 정신없어 하면 사탄이 신나서 더 공격한다. 사탄은 상당히 똑똑하지만 전지하지는 않기에 성도의 내면은 알지 못한다. 다만 내면 상태가 겉으로 드러나면 즉시 알아차리기에 속으로는 불안해도 겉으로는 태연한 모습을 보이라. 그러면 사탄은 믿음이 있는 줄 알고 공격을 멈춘다. 사탄과의 심리전에서 지지 말라. 말씀과 기도로 태연하게 나가고 게다가 웃기까지 하면 사탄은 불안해지고 실수가 늘어나고 졌다고 하면서 줄행랑을 칠 것이다. 그러면 위기는 기회가 된다.
살다 보면 위기가 수시로 찾아온다. 그때 믿음을 통해 불가능 속에 담긴 가능성, 절망 후에 찾아올 소망, 불행 중에 찾아낼 행복, 위기 중에 숨은 기회를 찾아내면 미래는 훨씬 나아진다. 믿음과 소망과 사망은 위기 중에 확인된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도 위기 중에 더 크게 나타나고 역사한다는 사실을 일지 말라. 아비가일처럼 위기를 기회로 만들면서 가정과 교회와 사회의 거룩한 파수꾼과 살림꾼 역할을 하는 복된 심령이 되라.
지혜로운 아비가일
삼상 25장 14~35절 / 한대근목사
오늘은 마온의 탐욕스러운 부자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의 지혜로운 처신으로 피의 보복을 막고 화평을 이루게 된 이야기를 통해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아비가일’은 다윗의 무너진 자존심을 세워주었습니다.
나발은 양식을 청하는 다윗을 주인에게서 탈출한 노예들을 모아서 몰고 다니는 불량배의 우두머리와 남의 재산을 탐내는 악한 사람으로 몰아세웠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아비가일’은 그 사실을 알고 다윗 앞에서 철저하게 자세를 낮추고 다윗을 “내 주”라고 부릅니다. 그런 다음에 자신의 남편 나발의 미련한 행동에 마음을 두지 말라고 말합니다. ‘아비가일’은 다윗이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을 알고 그에 합당한 호칭을 함으로써 장차 이스라엘의 왕이 될 사람이 어리석고 바보 같은 나발과 감정싸움이나 하는 것은 다윗답지 않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다윗의 존재가치를 다시 생각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아비가일’은 다윗이 지도자로서 책임 있는 행동을 하도록 도왔습니다.
다윗은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고 흥분하고 있었습니다. ‘아비가일’은 “원수 갚는 일이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26절).” 나발과 같이 악한 사람은 하나님이 친히 심판하실 것임으로 다윗의 손에 불의한 피를 묻힐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다윗이 나발을 죽이게 될 경우에 나중에 왕이 되었을 때에 크나큰 정치적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30,31). 다윗은 잠시 이성을 잃고 분별력 없이 행동한 자신의 모습에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의 손으로 무고한 피를 흘리지 않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충동적으로 일어난 분노를 잠재우지 못하고 나발에게 복수하여 자신도 모르는 상에 자신의 미래를 곤경에 빠뜨릴 뻔했던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도록 해 준 아비가일을 축복했습니다.
우리는 지혜로운 ‘아비가일’의 처신을 통해서 매우 중요한 삶의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① 좋은 말은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입니다. ‘아비가일’은 끊임없이 다윗을 높여주고 인정해줍니다. 다윗을 향해 “내 주여”라고 부르며 그가 장차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이라고 인정해 주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믿음의 언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항상 긍정적이고, 축복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믿음의 말은 사람을 살립니다. 칭찬하는 말, 그리고 희망이 넘치는 긍정적인 말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좋은 말로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삶이되기를 바랍니다.
② 위급한 상황에서 지혜롭게 행동하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비가일’은 차근차근 주의 깊게 행동합니다. 다윗에 대해서 연구하고 어떻게 행동하고 말할 것인가 준비했습니다. 한 가정의 살림을 책임진 여인이었지만, 늘 하나님을 두려움으로 섬기고, 그 뜻을 받들며 살기를 원했던 그녀에게는 시대를 분별하는 지혜가 충만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움으로 섬기며 그분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소원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늘의 지혜가 임하게 됩니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우주의 역사를 운행하시는 지혜의 원천이신 하나님의 지혜를 깨달아 그 인생을 성공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③ 사소한 일에 연연하지 말고 대범하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사소한 감정 때문에 앞으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을 때에 큰 오점을 남길 뻔했습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중요한 일과 그렇지 않은 일, 먼저 해야 할 일과 나중에 해야 할 일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사소한 일에 연연하다가 하나님이 주시는 큰 축복을 빼앗기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다윗의 슬기로운 아내 아비가일
김영수목사(늘찬양교회) / 삼상 25:15-42
젊은 한 신혼부부가 이혼을 했습니다. 결혼한 지 겨우 1 년 밖에 안 되어서였습니다.
두 사람은 신앙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성격이 안 맞고 이상이 틀리다는 이유로 끝내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이들은 입을 모아 아직도 서로를 원망하고 비방합니다. 자신의 잘못은 눈곱만치도 없고 오로지 상대방이 잘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한 달 전에는 재혼한 중년부인이 또다시 이혼을 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아이도 올 봄에 중학생이 되는데 ... 아이의 장래가 무척이나 걱정이 되고 염려가 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생활보호대상자이며 아들만 셋을 두고 저희 교회 놀이방/선교원에 아이를 맡기는 어머니가 아이들을 남겨둔 채 가출을 해버렸습니다. 벌써 집 나긴지 4달째입니다.
IMF이후 세계경제공항과 더불어 우리 주위에 이혼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경제문제 때문이라고만 생각하기에는 잘 이해가 안 되는 이혼들이 우리 주위에 너무나도 많습니다. 이혼 문제 외에도 요사이 주차문제로 이웃 간에 언성을 높이고 싸우며 심지어는 멱살을 잡고 주먹다짐까지 하다가 살인까지 저지르는 우리 사회의 아픈 현실입니다. 그 만큼 사람들 속에 남을 생각하고 배려할 만한 여유와 평안의 마음이 없다는 것이겠지요...정말 삭막한 세상입니다.
Ⅰ. 남에게 사랑을 베풀 줄 모르는‘나발’
오늘 본문에도 아주 삭막한 인심을 가지고 조금도 남을 배려하지 않는 ‘나발’이라고 하는 사람이 나오는가 하면 그런 남편을 도와 슬기롭고 지혜롭게 위기를 모면하더니만 나중에는 다윗 왕의 아내가 된 ‘아비가일’이라는 여인을 만나게 됩니다.
다윗 왕에게는 아내가 여덟 명이 있었는데 그 중에는 입술과 혀를 조심하지 않아 남편으로부터 소박을 당한 ‘미갈’이라는 여인도 있습니다. 부드러운 말은 화를 가라앉히고 거친 말은 노여움을 일으킵니다. 슬기로운 사람의 혀는 바른 인생길을 깨우쳐 주지만 미련한 사람의 입은 어리석은 소리를 뱉습니다(잠언 15장).
입이 어리석어 남편에게 버림받은 미갈 과는 달리 슬기로운 언행으로 다윗 왕의 사랑을 받는 아내가 되고 가문을 죽음의 위기에서 건져낸 여인이 아비가일입니다. 우리는 ‘아비가일’이라는 여인을 통하여 아내의 사랑스러운 말 한마디와 따스한 섬김의 대접이 가정을 아름답게 만들고 인생을 얼마나 축복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가? 에 대하여 배우게 될 것입니다.
다윗은 사울에 이어 두 번째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울이 다윗을 미워하고 시기하여 여러 번 죽이려하였기에 다윗은 사울 왕을 피해 도망하는 방랑자의 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은 이런 다윗에게 600여명의 추종자들을 붙여주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외롭지가 않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모인 무리들이 많다보니 이들이 함께 나눌 식량의 문제가 다급했습니다. 더욱이 바란 광야는 사막지대 이어서 목축업이나 할 수 있지 곡식을 파종하며 농작물을 생산하기에는 너무나 메마른 땅입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600명의 사람들이 매일 끼니마다 무엇을 먹어야 하는가? 하는 걱정을 해야만 했습니다. 더욱이 이 사람들을 책임지고 있는 다윗으로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지 재정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다윗은 조금도 망설임 없이 그 길을 택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나발’에 대한 개인적인 계획이었습니다. ‘나발’은 양 삼천 마리와 염소 천 마리를 치는 당대의 대 부호였습니다. 다윗은 나발이 요청하지는 않았지만 나발의 양떼와 염소를 잘 돌보아 주면 그로부터 음식과 필요한 일용품들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더욱이 인근에 있는 블레셋 사람들은 도적 떼들처럼 남몰래 쳐들어와 수많은 양떼와 가축들을 자주 잡아갔습니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누군가 자신들을 지켜줄 보호자가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자원하여 군사를 이끌고 ‘나발’의 양떼와 염소를 지켜준다고 하였으니 얼마나 큰 횡제를 맞았습니까? 호박이 넝쿨째 거저 굴러들어 온 것과 마찬가지이지요.......
다윗은 군사들을 보내어 ‘나발’의 양떼와 염소 떼를 매일 매일 안전하게 보호해주었습니다.
그러던 무렵이었습니다. 나발이 양털을 깎는 큰일을 한다는 말을 듣고 이 경사스러운 날을 이용해 사람을 보내어 도움을 청하기로 하였습니다. 목축하는 사람들에게 털 깎는 날은 잔치하는 날로 정하고 여러 사람들을 초청하여 음식을 나누는 일종의 축제 무드 속에서 양털을 깎습니다. 이런 축제의 잔치에 다윗은 부하들을 보내어 재정적으로 어려운 형편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받기로 결심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나발이 그동안의 은혜를 무시하고 도움의 청을 거절했습니다. 거절했을 뿐만 아니라 다윗을 모욕하는 말을 퍼부으며 다윗의 병사를 쫓아 보내었습니다.
“도대체 다윗이 누구냐? 이새의 아들이란 자가 누구냐? 요즈음은 종놈들이 저마다 우두머리가 되는 세상이거든. 내가 어찌 털을 깎느라고 수고하는 내 일꾼들에게 주려고 마련한 떡과 술과 고기를 어디서 굴러왔는지도 모르는 놈들에게 주랴?”(삼상 25:11)며 비난의 말을 퍼부었습니다.
“다윗이 누구며 이새의 아들이 누구뇨?” 이것은 몰랐다는 말이 아닙니다. 아는데 아니꼽게 본 것입니다. 나발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근일에 억지로 자기 주인에게서 떠나는 종이 많도다, 주인 밑에서 충성할 생각은 않고 주인을 떠나서 도망 다니는 놈들이 많은데 그 중에 한 놈이 다윗이다.” 그 말입니다. 주인을 떠나 제 멋대로 나돌아 다니는 망나니로 다윗을 표현한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나발의 정치 성향이기도 합니다만 다른 면으로는 너무나 재산을 아끼는 사람이기 때문에 한 푼이라도 내 놓지 않기 위해서 첫 말에 거절하는 투로 이야기한 것이기도 합니다. 쉬운 말로 다윗과 그 일행을 개떡으로 핫바지로 취급해버린 것입니다.
이 말을 전해들은 다윗은 분기탱천하여 부하 사백 명에게 칼을 차게 하고 자신도 전투준비 무장을 하고는 나발을 단칼에 쳐 없앨 마음을 갖고 나발의 천막으로 향했습니다.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 벌어지기 직전이었습니다.
Ⅱ. 아비가일의 슬기로운 행동
바로 그때 이 끔찍한 위기의 상황을 한 일꾼이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이 말은 들은 아비가일은 즉시 지혜롭고 슬기롭게 대처하였습니다. 그는 떡 이백 개, 술 두 부대, 요리한 양 다섯 마리, 볶은 밀 열 말, 건포도 백 뭉치, 말린 무화과 과자 이백 개를 서둘러 마련하여 나귀에 실려서 남편 몰래 시종들을 시켜 다윗에게 보내고 자신은 조금 뒤쳐져서 다윗을 정식으로 마중하고자 길을 떠났습니다.
아비가일은 곧, 나발의 일꾼들을 모조리 죽이겠다고 벼르고 오는 다윗과 마주쳤습니다. 다윗의 일행을 보는 순간 아비가일은 나귀에서 급히 내려 땅바닥에 엎드려 절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겸손하게 탄원했습니다. “내 주여 원하건대 오늘의 사건의 발단은 저에게 있습니다. 나리께서 보내신 사람을 제가 만나지 못해서 그리 된 것입니다. 그러니 이 불량한 사람 나발의 행의에 개의치 마옵소서...”(삼상 25:25) 아비가일은 뒤이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리께서 직접 피를 보며 원수를 갚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갚아 주실 것입니다. 나리의 원수들이 모두 나발처럼 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고 나리께서 살아 계시듯 확실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리의 집안을 정녕 튼튼히 세워주실 것입니다. 나리께서는 한 평생 어떤 재난도 겪지 않으실 것입니다. 나리를 쫓아다니며 죽이려는 사람이 있다 하여도 나리의 하나님께서 나리의 목숨을 보물처럼 감싸주시고 그 대신 원수의 목숨은 팽개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온갖 복된 일을 이루시어 나리를 이스라엘의 수령으로 세우실 터인데, 이런 실수를 해서 두고두고 마음에 걸리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손수 원수를 갚느라고 공연히 피 흘리는 일은 없도록 해주십시오.”(삼상 25:24-26)
아비가일은 다윗이 반박할 수 없는 신앙적인 논리를 가지고 듣는 자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비가일이 다윗 앞에 엎드려서 청원한 이야기의 골자가 무엇입니까?
1) 일단 남편이 어리석은 짓을 했다는 것을 시인했습니다(25절).
2) 다윗이 직접 원수를 갚는 다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야기 합니다.
(26절) 그래서 하나님이 자기를 내 보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왜 보복하는 것을 막으셨을까요? 그 이유는 다윗의 신앙양심에 조금이라도 거리끼는 것이나 가책 받는 일이 없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이스라엘백성의 왕이 되는 날 과거를 돌아볼 때 양심에 가책 받는 부끄러운 일들이 자꾸 일어나면 왕에게 좋을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다윗의 신앙에 대해 말하기를 “모든 원수는 하나님이 갚으신다.” 하는 것이 왕의 신조라는 것을 이 부족한 사람(아비가일)이 들어 알고 있는데 지금 칼을 들고 내 남편 죽이고 집안에 있는 모든 남자들을 다 죽이면 왕의 신앙하고는 다른 결과가 나타나므로 나중에 왕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는 날 반드시 양심에 가책을 받게 될 것입니다. 더불어 많은 사람들이 왕을 무서운 살인자로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것을 막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아비가일이 말한 것 중 중요한 것은 다윗의 장래에 대한 확신의 말입니다. “다윗은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28절) “하나님이 끝까지 보호하실 것이다.” (29,31절) 이 모두다 다윗이 반드시 왕이 된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비가일이 이렇게 조리 있는 말을 함으로서 다윗의 마음을 감동 시켰습니다. “보복하는 것은 당신이 할 일이 아닙니다.” 하는데 다윗이 더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원래 말은 남자 보다 여자가 더 잘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은사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아비가일이 지혜로운 여인이 아니고서는 대답할 수 없는 말입니다. 참으로 아비가일은 성령 하나님을 통하여 온 예언적 발언을 한 것입니다.
아비가일은 이어서 말하기를 “여기 여종이 가져온 선물이 있습니다. 나리의 병사들에게 먹이십시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리의 운을 터 주시는 날, 이 여종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삼상 25:27)라고 청원했습니다.
다윗은 감동하여 아비가일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그대를 보내시어 이렇게 만나게 해 주셨으니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할 뿐이오, 그대는 사리를 참 잘 판단하였소. 하마터면 내 손에 피를 묻힐 뻔했는데 오늘 이렇게 말려 주어서 정말 고맙소. 그대가 재빨리 말리지 않았다면 나발 집안에서는 모든 사내가 내일 아침까지 죽고 말았을 것이오. 그대를 해치지 않도록 나를 막아 주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합니다.”(삼상 25:32-
34) 이렇게 아비가일은 나발의 온 집안이 몰살당할 위기에서 지혜롭게 처신하므로 나발과 그의 종들을 구하였으며, 더불어 다윗의 분노를 진정케 했습니다.
아비가일은 다윗의 마음을 진정케 한 후 36절에 있는 대로 나발에게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나발은 왕의 잔치 같은 잔치를 배설하고 술에 취하여 각종 이야기를 떠벌이고 있었습니다. 남을 동정할 줄 몰랐던 나발은 자기의 지나친 사치와 방탕도 몰랐습니다.
지혜로운 아비가일은 날이 밝는 아침까지는 다윗과의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지 않고 조용히 기다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술에 취해 있는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아마 아비가일이 술에 취한 남편에게 지금까지의 일을 이야기했다면 술김에 다윗을 더 저주하고 악담했을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아비가일이 남편에게 꾸중을 듣거나 내침을 당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때를 따라서 말을 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모든 일에 사리 판단을 하며 지혜롭게 행동해야 합니다.
혹시 남편이 술에 취해 들어오실 때 믿는 여인들은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술 취한 사람 붙들고 무슨 일을 끝장내려고 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깨고 나면 아무 것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비가일은 아침까지 조용히 참아 기다리고 있다가 나발이 약간 제정신이 들자, 그때서야 어제의 일촉즉발 위기상황을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나발의 행동이 얼마나 어리석었으며, 또 그로인해 그의 가족들도 얼마나 위험했던가를 말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멸망을 막기 위해 자기가 얼마나 애를 썼는가를 말해 주었습니다. 그 말을 듣자 "그의 마음이 죽어 그의 몸이 돌과 같이 굳어졌습니다."(37절) 그리고 몸이 돌 같이 굳어 열흘이 된 후에 하나님이 나발을 치시므로 죽고 말았습니다. “나발이 하나님의 벌을 받아 죽었다.”(39절)는 소식만 난무할 뿐 나발의 죽음에 대해 통곡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 손으로 나발을 죽이지 않게 하여 주신 것을 다음과 같이 찬송하였습니다. "종으로 악한 일을 하지 않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39절) 다윗은 아비가일이 염려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자신으로 하여금 죄를 짓지 않도록 지켜 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하였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명예를 높여 주셨고, 자기를 모욕한 자를 그대로 내버려 두시지 않으신 것을 인하여 하나님을 소리 높여 찬양했습니다. 이로써 다윗의 세력은 다시 한 번 공고해졌고, 그를 따르는 모든 자들이, “다윗은 하나님께서 대신 싸워 주시는 사람”이라고 믿고 따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Ⅲ. 다윗의 아내가 된 아비가일
다윗은 나발의 죽음으로 인해 과부가 되어 있을 아비가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비가일의 아름다운 인품과 그녀의 남다른 정중한 태도와 말솜씨에 매력을 느꼈던 다윗은 나발의 죽음 소식을 듣자마자 사람을 보내어 “다윗이 당신을 아내로 삼고자 하여 우리를 당신께 보내더이다.”(40절)며 아비가일을 자기의 아내로 삼고자 한다는 다윗의 마음을 전해주었습니다. 다윗의 이렇게 행동한 이유는 그녀가 자기의 아내가 되리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발과 같은 남편 밑에서도 훌륭한 아내의 자질을 보여 주었던 아비가일이 자기 아내가 되면 더욱 훌륭한 아내가 되리라는 것을 또한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다윗은 아비가일이 자기를 존경하며, 자기가 장차 왕위에 오르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다윗의 전령들로부터 소식을 접한 아비가일은 “내가 지금 상(喪)을 당해 아파하며 고통하고 있으니 상을 다 마친 후에 간다고 전해주십시오! ” 말하거나 “나를 어떻게 대우할지에 대해서 어찌 말이 없는 것이오!” 반문하지도 않았습니다. 아비가일은 다윗이 매우 선한 사람임을 잘 알고 있었으며, 또 조만간에 위대한 인물이 되리라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본문 42절에 있는 대로 아비가일은 "급히 일어나서 나귀를 타고 따르는 처녀 다섯과 함께 다윗의 사자들을 따라가서 다윗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 예수를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은 지금은 주님 때문에 많은 어려움과 고난을 당하지만 종래에는 주님과 더불어 이 땅을 정복하며 다스릴 뿐만 아니라 저 하늘나라에서 주님과 왕 노릇 할 것을 믿고 고난의 길,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이기 때문입니다.”(히 11:1)
그녀는 이제 신분이 바뀌었습니다. 불경건하고 완고하고 교만하고 탐욕에 사로잡힌 나발의 아내가 아니라 이제 어엿한 다윗의 아내가 되어 귀한 혼례를 올릴 수가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훗날 모든 백성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국모가 된 것입니다. 그동안 다윗은 미갈 과의 원만한 부부관계를 맺지 못하였는데 이렇게 지혜롭고 슬기로운 아비가일을 아내로 얻은 다윗은 신바람이 났습니다. 그리고 그녀를 특별히 사랑하였습니다. 이제 아비가일은 다윗의 아내가 되어 온 민족으로부터 슬기로운 여인으로 존경받게 되었습니다.
결론으로 말씀드립니다.
욕심 많고 미련한 나발의 아내에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받고 추앙 받는 다윗의 아내가 된 슬기로운 여인 ‘아비가일’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은 아비가일이 다윗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분명히 보았으며,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슬퍼하시는 일들이 무엇임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비가일은 비록 남편의 허락을 받지 아니하고 임의로 다윗을 도와주었지만 그것은 남편을 미워하거나 교만해서 그런 것이 아니 남편이 술에 취해 있어서 어떤 돌발적인 상황이 일어날지 전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술에서 깨어난 후 아침에 그 이야기를 남편에게 상세에게 전한 상냥하고 공손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남편이 사망한 후 다윗이 보낸 사자를 따라 담대하게 그 뒤를 따라간 것은 물질보다 남편의 사랑을 더 받고 싶어 하는 여인의 본능입니다. 아비가일은 맨 처음 단순하게 어떻게 서든 전 가족이 멸망당하는 위기만은 넘겨야 한다는 일촉즉발의 위기감을 갖고 달려갔는데 그 결과는 다윗의 아내로까지 발전하는 놀라운 단계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집에서 여러분의 남편을 예수님처럼 섬길 때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과 은혜가 임할 것입니다. 배웠다고, 가진 것이 있다고 권력과 명예가 있다고 자만하지 말고 항상 겸손하게 엎드리며 남을 섬길 줄 아는 영적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 귀한 섬김과 순종을 통하여 가정이 살고 믿음이 살고 교회가 성장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지혜로운 여인, 아비가일
삼상 25장 17~31절 / 김철한목사(오목천교회)
사람이 사노라면 ‘이렇게도 사는구나!’할 때가 있다. 아비가일이란 여인의 삶을 보노라면 가장 악하고 어리석은 남편인 나발과 가장 지혜롭고 현숙한 여인이 부부가 되어 산 것을 보게 된다. 어떻게 이 두 남녀가 부부가 되었는지 알 길은 없으나 ‘이렇게도 사는구나’의 부부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읽노라면 지혜로운 여인, 아비가일이 자신의 남편과 가정을 지키는데 최선을 다한 것을 알게 된다. 또 남편 사후 자신의 삶을 운명에 맡기지 않은 여인임을 알게 된다.
오늘 본문을 보면 아비가일의 삶은 이렇다.
1. 겸손하고 유순한 여인이다. (삼상25:14~17)
나발의 가정에서 일하는 하인들 중 하나가 아비가일을 찾아왔다. 삼상25:14~17을 보면 주인되는 나발이 다윗의 전령들을 모욕하고 주인의 양을 지켜주고 보호해 준 다윗의 요청을 외면하므로 다윗의 분노를 사서 피할 길이 없다는 내용을 전한다. 삼상24:3을 보면 나발은 완고하고 행실이 악한 이다. 그는 양이 삼 천 마리요, 염소가 천 마리나 되는 큰 부자다. 그러나 오늘 본문 삼상25:17을 보면 나발이 불의한 사람이어서 더불어 말할 수 있는 상황이 못 되기에 안주인되는 아비가일에게 다가오는 위기를 알려드리려고 찾아온 것이다. 이때 아비가일은 하인이 조목조목 알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에 대해 올바르게 반응을 한다.
대개 악한 남편의 사는 모습이 아내에게도 투영되고 부부가 나쁜 점도 닮아간다고 하지만 이들은 그렇지 않다. 하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나발과는 달리 아비가일은 하인의 말에 허리를 굽혀 들을 줄 아는 겸손함과 유순함이 몸에 베어 있다. 집안에 들이닥칠 위기를 감지하지 못한 남편과 달리 아비가일은 하인이 전해주는 정보 속에서 긴급한 일들을 감지하여 움직인다. 대개 사람들이 큰 부자집의 안 사람으로 많은 하인들을 거느리고 사노라면 하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교만한 목과 흘기는 눈으로 으스대기 쉽다. 하지만 아비가일은 듣는다. 작은 자의 말에 겸손히 귀를 기울인다. 그것이 지혜자의 모습이다.
2. 위기를 대처하는데 신속한 여인이다. (삼상25:18~19)
아비가일은 하인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에는 내일 할 일이 있고 모래 할 일이 있지만 다윗이 마을 땅에 사는 자기 집을 공격하기로 결정하였음을 들을 때 그녀는 잠시의 시간도 미루지 않았다.
위기는 신속한 대응만이 피해를 줄이고 파멸을 막는다. 성냥불이 켜지기 전에 바로 손바닥으로 덮으면 큰 화재를 막을 수 있듯이 위기 상황 앞에 지체하고 우유부단하면 시장과 도시를 다 불태울 수 있다. 세월호의 교훈은 무엇인가? 위기 시 신속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헬기, 구명조끼, 구조선, 어선, 군함까지 다 있으면서도 어리석고 우둔한 행동만 했던 것이다.
삼상25:18을 보라. “아비가일이 급히 떡 이백 덩이와 포도주 두 가죽 부대와 잡아서 요리한 양 다섯 마리와 볶은 곡식 다섯 세아와 건포도 백 송이와 무화과 뭉치 이백 개를 가져다가 나귀들에게 싣고” 다윗에게로 나아갔다. 위기 앞에서 물질을 사용하는 것, 그것이 지혜다. 기민하게 대책을 마련하여 위기 상황을 극복하려는 신속한 모습은 우리가 배워야 할 모습이다.
삼상25:19을 보라. “그의 남편 나발에게는 말하지 아니하니라.” 물질을 아끼려고 다윗의 호의를 배은으로 갚은 나발, 돈 밖에 모르는 나발의 동의를 받아서 일하려다간 밀려오는 죽음의 파도를 막을 수 없다. 오히려 얽힌다. 신속한 대처, 그것만이 위기 시의 선이며 옳음이기에 아비가일은 독자적 판단으로 위기를 읽고 위기를 대면하고 위기를 피하는 방안을 만들었다. 사람의 능력은 위기 시에 무엇을 하는가로 판단된다. 그런 면에서 아비가일은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다.
3. 남편의 허물을 자기의 허물로 돌리는 여인이다. (삼상25:24, 28)
위기를 극복하려고 나귀를 타고 가던 아비가일이 다윗의 일행을 만난다. 아비가일이 다윗을 볼 때 나귀에서 내려 다윗 앞에 엎드렸다. 그리고 삼상25:24에서 “내 주여 원하건대 이 죄악을 나 곧 내게로 돌리시고 ... 이 여종의 말을 들으소서.”, 삼상25:28에서도 “주의 여종의 허물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아비가일은 남편 나발이 불량한 사람임을 인지하고 있었다. 자신의 남편이 미련한 자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비가일은 다윗의 베푼 은혜, 남편의 양떼를 지켜주고 보호해주고 울타리가 되어 준 은혜를 보답하지 못하는 나발의 죄악을 외면하지 않고 자신이 짊어졌다. “이 죄악을 내게로 돌리세요.” 아비가일은 참으로 책임을 다하는 여인이다. 아니 성숙한 여인이다. 남편의 허물을 자기의 허물로 수용하고 책임감 있게 서는 이 모습은 더욱 더 총명하고 지혜로운 여인이 어떻게 나발의 아내로 살게 되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더해간다.
사실 이런 삶이 인생이다. 행복하고 짝이 잘 맞는 인생도 있지만 가장 예쁜 미스코리아가 가장 못난 사람과 부부가 된다. 가장 멋진 남자가 허리를 쓰지 못하는 여인의 수발을 드는 부부가 된다. 여하튼 더 중요한 것은 아비가일이 남편의 그 허물을 자기가 짊어지고 심판과 피흘림의 도륙으로 다가오는 다윗에게 용서를 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가올 심판을 피하려 죄 짐을 짊어졌다는 것이다. 참으로 귀하고 보배로운 여인이다.
4. 가정과 그 재산, 생명을 지켜낸 여인이다. (삼상25:32~35)
삼상25:32~35을 보면 아비가일의 지혜와 용기를 대면하는 다윗은 마음이 자애로워졌다. 나발의 집의 남자들을 해하게 하지 않음을 고백하면서 다윗은 심판의 칼을 거둔다. 결국 다윗에게 아비가일의 태도, 아비가일의 대화, 아비가일의 진지성, 아비가일의 겸손, 아비가일의 용감무쌍한 화술, 그녀의 삶 전체가 지혜로 반짝이는 시간이었다. 다윗은 아비가일을 통해 다윗을 영접하게 하신 이가 하나님이라고 생각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한다. 이는 다윗의 마음이 녹아지고 다윗의 마음에 기쁨이 가득했다는 뜻이다. 다윗이 아비가일을 만난 것, 하나님이 만나게 하신 은혜라고 하나님을 찬송하니 얼마나 큰 칭찬과 인정이 아닌가?
다윗은 칼을 거두고 부하들을 이끌어 감으로 피흘림을 멈춘다. 아비가일은 연약한 여인이지만 그의 지혜로운 말과 행동으로 가정을 지키고 생명을 지키고 재산을 지켜냈다. 그녀는 성을 지키는 용사 100명보다 강한 용사가 된 것이다. 지혜의 강함이 여기에 있다.
5.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자가 누구인지를 아는 여인이다. (삼상25:26~31)
아비가일은 다윗이 누구인지를 한 눈에 알아보았다. 삼상25:26~31을 보면 아비가일은 다윗이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사람이 일어나서 다윗을 추격하고 그 생명을 찾을지라도 망명자 다윗에게서 세 가지를 알아보았다.
① 하나님이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이 임을 알아보았다. 삼상25:29 “내 주의 생명은 내 주의 하나님 여호와와 함께 생명 싸개 속에 싸였을 것이요.” 여호와가 다윗을 안전하게 보호하심을 알아보고 고백하는 것이다.
② 하나님이 다윗의 집을 든든히 세우시리라고 고백하였다. 아비가일은 놀라운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 심판의 위기가 다가오는 것을 즉각 알아차렸을 뿐만아니라 다윗이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를 알고 있었다.
③ 다윗과 그의 부하들은 모두 하나님이 지도자로 세우실 사람임을 알아보았다. 이것은 대단한 지혜다.
하나님의 사람을 알아본 수넴 여인, 그는 가뭄을 이겨내었다. 많은 사람 중에 하나님의 사람을 알아보고 하나님의 사람답게 귀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 그는 축복의 사람이 된다.
바로 아비가일, 다윗과 함께 하는 하나님,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다윗의 장래를 다 알아보았다. 그러므로 다윗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지하고 귀중히 여겼다. 이런 안목이 어디서 온 것일까?
6. 과거를 청산할 줄 아는 용기있는 여인이다. (삼상25:39~42)
아비가일은 가정을 지켰다. 재산과 생명도 지켰다. 이런 위기를 예측할 줄도 모르는 나발은 왕의 잔치와 같은 대연을 배설하였다. 그리고 크게 취하여 기뻐했다. 육으로만 기뻐한다. 닥쳐올 위기의 폭풍우 앞에서 말을 아끼는 아비가일이 그 다음날 나발이 술에서 깼을 때 어제 일어난 일들을 말하게 되는데 나발이 그것을 수용하지 못한 것 같다. 오히려 나발은 아내의 말을 듣고 낙담을 한다. 이것이 어리석은 자의 문제다. 칭찬, 격려, 감사가 가득해야 하지 않은가? 그런데 왜 낙담하는가? 양 다섯 마리가 죽어서, 포도주 두 가죽 부대가 다윗에게 선물로 드려져서, 물질의 손해 때문인가? 왜 낙담하는지 이해가 안된다. 그 충격으로 나발은 몸이 돌처럼 되고 10일이 지나 나발은 죽는다. 하나님이 치셨다고 써 있다.
이제 아비가일은 남편을 잃은 과부가 된다. 반면 다윗은 자기 손을 사용하지도 않고 나발의 악행을 그의 머리로 돌린 하나님을 찬양한다. 피 흘리지 않는 다윗이 되었으니 너무도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일이 종료된 후 다윗을 사람을 보내 아비가일을 아내로 삼고자 한다. 한 남편에게 매여 삶을 살아온 아비가일, 그를 아내로 초대하는 다윗의 전령들 앞에서 아비가일은 일어난다. 처녀 다섯과 함께 다윗의 전령들을 따라가서 다윗의 아내가 된다.
아비가일은 놀라운 용기의 여인이다. 남편이 죽으면 여자는 사실 법적으로 더 이상 그 남편에게 매이지 않는다. 그러나 여러 가지 환경 등으로 인해 새 출발을 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대개 지나간 과거의 기억에 붙잡혀 우물쭈물한다. 연약한 한 여인이 생의 반려자를 잃고 혼자가 되었을 때 슬픔의 늪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더군다나 재혼하는 중대사는 쉽고도 녹록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아비가일은 특별하다.
사람을 살리는 말, 언어, 대화
삼상 25장 18~31절 / 배영진목사(하늘문교회)
오늘은 사람을 살리는 말에 대하여 설교하려고 합니다. 부부지간이나 공동체에서 나 가장 중요한 것은 말입니다. 그런데 살리는 말이 있고 죽이는 말이 있습니다. 잠언 16장에 선한 말은 꿀송이같아서 마음을 즐겁게 하고 쑤시는 뼈도 낫게 한다 그랬어요. 의인의 입은 생명의 샘이라고 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의 말입니다.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계속 생명을 주는 것입니다. 오늘 저는 지혜로운 아내 씨리즈 두 번째로, 아비가일이 다윗에게 한 말에 집중, 살펴보려고 합니다. 지혜로운 아내는 집을 세웁니다. 특히 그 아내는 남편을 살립니다. 그 입이 생명의 샘인 거예요. 부부지간에 아내의 말은 신기한 능력이 있습니다. 아내 말에서 남자는 힘을 내고, 아내 말로 힘이 빠지기도 합니다. 물론 남편의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잠언 12장에 지혜로운 말은 약의 효과가 있고 치료제가 된다고 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칼로 찌름같이 말을 한다고 했습니다. 물론 본인은 자기가 어떻게 상대 마음을 찌르는지 잘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늘 아비가일의 말에 집중해보려고 합니다. 오늘 다윗이 불같이 화가 난 상태였어요. 그런데 아비가일이 3분 정도 말을 했고, 아비가일의 그 말을 듣자 다윗의 분노가 완전 가라앉아버리고 심지어 즐거워합니다.
다윗의 아내 중 미갈이 있습니다. 미갈은 사울의 딸입니다. 다윗과 미갈은 대화가 잘 안된 케이스입니다. 미갈의 말은 항상 남편의 마음을 격동시켜버립니다. 사무엘하 6장에 다윗왕이 아주 즐거운 상황, 언약궤를 모시고 오고 있었습니다. 너무 마음이 기뻤어요. 그 영혼이 즐거워 다윗왕이 언약궤 앞에서 춤을 춥니다. 하나님앞에 예배드리는 기쁨, 오늘날로 말하면 워십 댄스입니다. 다윗이 좀 격렬히 춤을 추다가 옷이 조금 벗겨지고 몸이 드러나요. 그것을 2층 창문 너머로 미갈이 봅니다. 모든 행사가 끝나고 다윗이 즐겁게 방에 들어오는데 빈정댑니다. 칼로 찌름같이 한 마디, 왕이 체통없이 온 백성 앞에서 벗은 몸을 드러내셨네요. 그 말이 다윗의 마음을 안좋게 만듭니다. 남편 다윗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해요. 내 남편이 언약궤 앞에서 왜 저렇게 기뻐하는지 전혀 이해를 못하는 아내입니다. 이것이 사람을 죽이는 말입니다.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집니다. 다윗이 화를 내고 부부싸움이 벌어져요. 당신이 내 기쁨을 알고 있소? 그놈의 체통이 뭐라고, 내가 주님앞에 기쁨을 표한 것을 당신은 이해를 못할거요. 주님을 기뻐하는 일이라면 난 그보다 더할 수도 있소! 하나님이 그런 미갈을 안좋게 보십니다. 이런 일로 미갈이 죽는 날까지 자식을 낳지 못했다고 성경이 기록합니다.
우리가 오늘, 사람을 살리는 말을 살펴볼텐데, 아비가일의 말을 알아야 합니다. 그는 다윗에게 어떻게 말했는가? 두 가지입니다. 공감의 말과 격려의 말입니다. 공감이란 내가 그 사람의 감정을 함께해주는 것입니다. 논리나 판단이 아닙니다. 격려란 내가 그 사람 마음에 힘을 불어넣는 것입니다. 그말을 듣고 힘이 납니다. 저는 우리가 같이 살면서, 부부가 같이 살죠, 부모 자녀간에 같이 살죠. 목장모임에 모이고, 교회에 모일 때 우리가 같이 합니다. 이 모든 시간에 이 말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렇게 말하면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살아납니다. 생명의 샘입니다.
첫째, 공감의 말입니다. 공감의 말은 사람을 살립니다.
오늘 아비가일이 가장 먼저 한 것이 뭐냐? 화가 난 다윗의 마음을 공감해줍니다. 그런데 사람은 다 그래요. 누군가에게 공감을 받으면, 그게 마음이 푸근해집니다. 공감이란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 마음을 같이해주는 것입니다. 심리학에서는 공감을 ‘정서적 산소’ 라고 합니다. 다같이 25절을 읽겠습니다. 이게 아비가일이 화가 잔뜩 난 다윗에게 한 말입니다. 다윗장군께서는 나의 몹쓸 남편 나발에게 조금도 마음을 쓰지 마십시오! 나발이 누구냐면, 자기 남편입니다. 나의 몹쓸 남편 나발이라며 엄청 욕합니다. 우리로 말하면 아이구 그 인간이 본래 그래요. 그런데 거기서 한걸음 더 나갑니다. 그 사람은 자기 이름 그대로예요. 못된 사람입니다. 그 이름이 나발인데, 나발은 어리석다 완고하다 라는 뜻입니다. 왜 이렇게 아비가일이 남편 나발을 마구 욕할까요? 그럴만한 배경이 있습니다. 지금 다윗이 나발에게 엄청난 분노를 갖고 있어요. 다윗이 격분상태에 있습니다.
이때가 다윗이 좀 우울하고 서러운 상황입니다. 사울을 피하여 쫒겨다니다 배신을 받아요. 그일라 주민들이 다윗 숨어있는 곳을 밀고해요. 마음이 복잡합니다. 그때 사무엘 선지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어요. 그런데다 다윗이 배가 고파요. 사울을 쫒겨다니며 들판에 있다가 허기집니다. 다윗과 부하들 6백명이 다니는데 얘들을 좀 먹였으면 해서, 다윗이 갈멜지역의 부자 나발에게 먹을 것 좀 구하러 사람을 보냅니다. 2절에 나발은 아주 부자였습니다. 다윗이 도움을 요청할만한 사이예요. 다윗의 부하들이 나발의 종들 양을 칠 때 지켜주기도 하고, 서로 같이 친하게 지냈습니다. 뜬금없이 뭘 달라 한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나발이 먹을 것 가지고 문전박대를 해버립니다. 다윗의 부하들에게 욕을 바가지로 해서 빈손으로 돌려보냅니다. 나발은 부자인데 어리석고 고집세고 해서, 안할 말을 해버립니다.
10절에 보면 나발의 이 말로 다윗이 격분합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말입니다. 뭐 다윗? 다윗이 누군데? 요즘에 종들이 다 자기 주인을 배신하고 뛰쳐나가더라! 너희 주인에게 가서 알려라.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 자들에게 줄 것이 없다고! 요즘말로 하면 다윗을 듣보잡으로 몰아버려요. 다윗의 자존심이 엄청 상합니다. 가장 억울한 말이, 누명 뒤집어쓰는 거죠. 다윗이 사울을 배신하고 반역을 했대! 배신자에게 밥한그릇도 못준다! 다윗이 여기서 격분합니다. 다윗을 보면 이 정도로 분노하는 모습이 이곳이 처음이 아닌가 싶어요. 모두 허리에 각각 칼을 차라, 오늘 저 나발 내가 죽인다! 사람이 서럽게 화가 나면 멈출 수 없습니다. 21절, 저 나발이 선을 악으로 갚았다. 내가 그동안 그놈의 재산과 양들 다 지켜줬는데 다 헛것이었어! 내일 아침까지 나발의 집 모든 남자는 하나도 살려두지 않겠어!
바로 이 소식듣고 아비가일이 황급히 다윗에게 간 거예요. 남편에게 전혀 알리지 않습니다. 오늘 자칫 집이 완전 몰살당하는 시간입니다. 18절 아비가일을 보면 먹을 것을 엄청 쌉니다. 빵, 포도주, 양고기, 볶은 곡식, 건포도뭉치, 무화과뭉치, 그리고 나귀타고 다윗에게 갑니다. 23절입니다. 그리고 먼 발치에 다윗이 보여요. 불같이 화가 났고, 4백명이 허리에 칼을 차고 달려옵니다. 졸도할 상황입니다. 저 다윗의 마음을 달래줄 방법이 없어요. 그런데 24절과 25절, 아비가일이 무슨 말을 했는지 보세요. 이것이 사람을 살리는 말입니다. 24절과 25절을 읽습니다. 다윗은 나발에게 화가 머리끝까지 났고 그 나발의 아내가 왔어요. 나발의 아내가 다윗의 분노를 가라앉힐 수 있을까요? 여러분 남편이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는데 화가 잔뜩 났어요. 아 그 놈 죽여버려야겠어! 아 그 김부장 그 자식 집에 불을 질러버리든지, 어떻게 하지, 와 나! 미치겠네! 흥분하면 어떻게 해줘야 할까요? 누군가 감정이 격해졌을 때 어떤 말을 해줘야 할까요?
아비가일은 정말 지혜롭게 말합니다. 그 지혜로운 말이 뭐냐? 공감의 말입니다. 다윗앞에서 자기 남편 나발을 사정없이 욕하는 겁니다. 여러분 이게 공감입니다. 지금 나발에게 누가 화가 났어요? 다윗입니다. 다윗이 나발에게 너무 화가 나요. 나발이 부당하게 다윗을 모욕했어요. 그렇게 화가 난 다윗의 마음을 공감합니다. 다윗의 감정을 공유해요. 그러려면 나발을 같이 막 욕해주는 것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아비가일이 나발을 욕해요. 내 남편 몹쓸 남편, 이름도 나발, 미련곰탱이!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이 공감의 말이 얼마나 효과가 있나 보세요. 다윗이 화가 잔뜩 나있었는데 그렇게 말하는 아비가일을 보고 더 화가 치밀고, 더 분노가 폭발하지 않습니다. 화가 났을 때 공감을 해주면, 마치 압력밥솥이 치크치크 하면서 압력이 올라갈 때 꼭지를 풀어주는 것과 같아요. 열기가 식어요.
래리 크랩의 결혼건축가에 보면, 부부의 대화편이 상당히 나옵니다. 공감입니다. 부부대화는 놀랍게도 둘중 하나, 공감인가 조작인가? 둘 중 하나로 설명합니다. 우리의 대화가 공감의 말이면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고, 공감이 아닌 말은 나를 헤아리는 것입니다. 남편이 퇴근했어요. 집에 오자마자 김부장 욕을 합니다. 나 그 자식 때문에 회사 그만둬야겠어! 내일 사표야! 자 이 상황, 아내가 어떻게 말해야 돼요? 당신 화 많이 났구나? 아 또 김부장이야? 그 사람 또라이 아니야? 당신 그 사람하고 같이 일 못하겠네! 진짜 세상에서 돈버는 일이 제일 힘들어! 여러분 이것이 뭐예요? 공감입니다. 이러면 남편이 화가 식어요. 아주 좋습니다. 화가 가라앉아요. 와 씨 그래도 내가 마누라는 잘 얻었네! 집에 오니까 내 편이 있는 거예요. 공감이 아닌 말은 뭡니까? 여보! 뭐라고? 당신 내일 사표 쓴다고? 아이구야 당신은 회사에서 무슨 일만 있으면 그만둔다고 그래? 좀 참고 다녀요! 남의 돈 벌기가 뭐 쉬운가? 이러면 그 남편은 엄청 열 받습니다. 화가 더 나요. 이거 뭐예요? 완전 비공감! 자기심리학에서 비공감은 산소가 희박한 상태입니다. 회사도, 집에도 산소희박, 숨을 못쉬어요. 공황장애는 산소부족 숨을 못쉬어요.
오늘 아비가일은 어떻게 말을 했어요? 따라서 합시다. 공감은 사람을 살립니다! 화가 잔뜩 난 다윗의 분노와 함께 해줍니다. 장군, 그 사람은 몹쓸 남편 나발! 어리석고 바보같고 쓸모없는 인간입니다! 욕을 해요. 남편이 김부장 욕을 해요. 그럼 아내는 어떻게 해요? 같이 욕으로 쏴주는 거예요. 아 당신 또 그 김부장? 그 사람 왜 그래? 당신 오늘 진짜 열받았구나! 아니 그 자식은 왜 매일 GR이야? 여러분 이것이 공감입니다. 성경의 원리입니다. 최고로 지혜로운 아내가 됩니다. 공감의 말이 뭐냐? 로마서에 우는 자와 함께 울고 슬퍼하는 자와 함께 슬퍼하고, 기뻐하는 자와 함께 기뻐하라 했어요. 남편이 김부장 땜에 못살아, 회사 때려치운다 하면, 아내도 김부장 실컷 욕한다! 까짓거 그 회사만 회사인가? 진짜 당신 열받겠다! 이 공감이 사람을 살립니다. 지혜가 부족한 아내는 이 시간 남편을 설득할려고 애씁니다. 여보 그래도 회사는 다녀야지, 얘들 학비는 어떻게 해요? 대출이 어떻고, 이자는 어떻고, 할부가 어떻고, 이것은 절대로 공감이 아닙니다. 남편도 공감의 말을 연습해야 합니다. 아내가 오전에 아래층 아줌마하고 틀어져서, 퇴근하는 남편 들어오니까, 불만을 말합니다. 여보 저 아래층 그여자 말이야, 오늘 짜증나게 올라와서, 윗집 때문에 시끄러워서 이사가야 되겠다고 말을 하네! 막 화를 내고 갔어! 그러면 남편이 뭐라고 해야 돼요? 아 그 여자는 왜 그런대? 맨날 당신한테만 그러네? 당신 열 많이 받았겠네? 그 여자 성격 더럽다고 동네 소문나겠어! GR이야? 이게 공감의 말입니다. 이게 아비가일이 한 말입니다.
둘째, 격려의 말입니다. 격려의 말이 사람을 살립니다.
26절입니다. 아비가일은 심리학의 대가입니다. 아비가일이 다윗의 진정성과 믿음, 다윗이 걸어온 길을 인정해줍니다. 여러분 아내가 이걸 남편에게 해줘야 합니다. 저는 딱 이 부분에서 다윗이 완전 좋았을 거 같아요. 아비가일이 뭐라고 합니까? 장군은 이제까지 사람을 죽이거나 원수를 갚지도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장군과 함께 계시는 것을 내가 압니다. 무슨 얘기인가요? 24장에 그 일이 있었습니다. 다윗이 사실 두 번이나 사울을 죽일 기회가 있습니다. 보복할 기회가 있었어요. 그런데 다윗이 사울에게 원수를 갚지 않습니다. 여호와의 기름부은 왕이다. 내 손으로 죽일 수 없다, 그러고 사울의 옷자락만 베어나오고. 다음번엔 사울의 물병만 갖고 나옵니다. 여러분 믿음이 아니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아비가일이 이것을 인정해줍니다. 오늘까지 당신이 걸어온 길 맞습니다! 당신이 지금 살아있는 사실은 그동안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하나님과 동행하려 애쓴 것을 인정해줍니다. 다윗의 진정성, 넓은 인격! 이것을 인정해주는 말을 계속 다윗에게 합니다. 없는 말 지어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정이 아니라 아첨이죠. 그런데 상대가 옳은 길을 가려고 애쓴 그것을 인정해주는 것은 격려라고 합니다. 격려는 인커리지! 커리지는 용기와 힘입니다. 인커리지는 그것을 불어넣는 거예요. 격려는 상대의 마음에 힘을 불어넣습니다. 다윗이 아비가일의 말을 듣는데 왠지 힘이 나는 느낌이 들어요. 불같이 화가 난 사람도, 공감의 말을 듣고 격려의 말을 들으면 쫘악 가라앉고 차분해집니다.
27절, 그렇게 다윗의 그동안의 발걸음을 인정해주고나서, 아비가일이 뭘 합니까? 자기가 가져온 음식보따리를 풀어요. 여러분 사람에게 격려는 꼭 먹을 것이 함께 합니다. 그런데 격려와 밥상 중에 말로 하는 인정과 격려가 먼저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먼저 위로와 격려를 받아야 그 다음에 밥도 들어가고 물도 들어갑니다. 빵 이백덩어리, 포도주와 볶은 곡식, 건포도, 무화과가 계속 상차림이 나옵니다. 다윗이 마음이 푸근해지고 그것을 받아요. 얘들아 와서 이거 갖고가서 먹어라! 선물을 받았다는 것은 다윗의 화가 풀리고 마음이 누그러뜨려졌다는 뜻입니다. 아비가일이 또다시 격려하는 말을 합니다. 격려의 말 한두번 하는 게 아닙니다. 28절입니다. 당신은 이제까지 주님의 전쟁만을 했습니다. 저는 이 말로 다윗이 완전 아비가일에게 사로잡혔다고 봅니다. 다윗의 중심이 바로 이것이었거든요. 다윗의 전쟁은 사사로운 땅 뺏기 권력추구,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이제까지 주님이 가라고 하면 가고, 주님이 멈추라고 하면 멈추었어요. 주님앞에 충성되고 순종의 삶이었다는 것을 인정해준 것입니다. 계속 말합니다. 당신이 사는 동안에 주님이 틀림없이 지키시고 도와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당신 편입니다. 여러분 상대의 노력, 상대의 중심을 알아주는 말처럼 격려가 없어요. 가장 큰 격려의 말이 뭐냐? 상대가 그동안 힘쓰고 애쓴 것을 알아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내가 남편에게 이런 말을 넣어주면, 그 남편 절대로 기죽지 않습니다. 그 마음에 산소가 엄청 들어가는 것입니다. 살 맛이 나구요, 일할 맛이 나구요, 저 마누라 절대 고생 안시켜야 되겠다, 이런 결심이 마구 샘솟구요, 그렇습니다. 마지막으로 29절부터 31절까지, 아비가일은 다윗이 왕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다윗이 여기까지 듣고 화가 완전히 풀려버립니다.
32절을 읽어봅니다. 다윗이 마음이 차분해지고 분노가 가라앉고, 즐거워집니다. 그대를 보내어 만나게 하신 주님을 찬양하오! 내가 오늘 피를 흘리지 않도록 지켜준 것은 당신이요. 참 슬기롭게도 격려해줘서 고맙소. 하나님이 그대를 축복하기를 바라오. 당신이 아니었다면 내 분노를 아무도 가라앉히지 못했을 것이고 당신 남편도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오. 엄청나게 칭찬을 하고 축복을 하고 돌아갑니다. 평안히 돌아가시오. 가져온 것은 고맙게 잘 받겠소! 다윗은 정말 놀랐습니다. 이스라엘에 이렇게 지혜로운 말을 하는 여인이 있구나. 우리 옛말에도 있어요.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아요!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합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느니라.
그 후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그 다음날 나발이 어제 일을 듣고 심장마비가일어납니다. 나발의 몸이 돌처럼 굳어졌는데 열흘 앓다가 죽어요. 주님께서 나발을 치십니다. 나발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다윗이 사람을 보냅니다. 지혜로운 여자 아비가일을 아내로 삼고 싶어요! 그 소식을 듣자 아비가일이 다윗에게 갑니다. 나중에 다윗이 왕이 될 때 아비가일은 뭐가 될까요? 이스라엘의 왕비가 됩니다. 지혜롭고 사람을 살리는 말을 하는 아비가일을 하나님이 높여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지난 주일과 오늘, 두 번을 말씀드렸습니다. 지혜로운 아내는 반드시 집을 세웁니다. 그리고 그 모든 상급은 바로 그 여인에게 다 돌아갑니다. 오늘 자신의 말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내 필요만 채우려 하면 공감과 격려를 할 수 없어요. 저 사람의 필요가 무엇일까? 아비가일을 배우시면 여러분에게 복이 돌아갑니다. 공감의 말, 격려의 말을 연습해야 합니다. 사람을 살리는 말을 훈련해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집을 세우고, 하나님이 복을 주시고, 반드시 상급을 받습니다.
온 가족을 살리는 지혜로운 대처
삼상 25:14-22 / 행복한 말씀묵상팀
<말씀묵상>
하인은 아비가일에게 다윗의 사람들이 행한 일에 대해 어떻게 보고했나요?
어리석은 가장은 가정을 몰락의 길로 인도합니다. 나발의 어리석은 처사로 인해 나발 집안의 모든 남자가 죽을 상황에 처합니다(22절). 이에 하인 하나가 여주인 아비가일을 찾아가 상황을 보고합니다. 그는 나발이 다윗을 모욕한 것과 더불어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자신들의 양들과 목자들을 선대한 사실을 아비가일에게 알려 줍니다. 하인은 양을 치는 동안 자신들이 얼마나 안전하게 지냈는지 다윗의 군사들을 '성벽'(16절)과 같았다고 표현합니다. 하인이 평가하는 나발은 불량해 더불어 말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아비가일에게 달려와 살려 달라고 호소한 것입니다. 아비가일은 남편 나발의 처사가 지극히 부당함을 알고, 여주인으로서 온 집안을 살릴 지혜로운 대책을 강구합니다.
드러나진 않지만, 내게 성벽이 되어 주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인가요?
흔히 신앙은 하나님과 나의 1대 1 관계라고 말합니다. 맞는 말이지만 반쪽 진리입니다. 신앙은 하나님 앞에서 이웃과 나, 즉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이기도 합니다. 이런 원리를 망각하면 신앙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은혜의 삶을 누리지 못합니다. 오히려 시험과 고난 가운데 흔들리고 실패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함께하는 신앙’이 중요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도 서로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약화되지 않도록 서로 격려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드러나지는 않지만 우리를 격려하고 힘이 되어준 신앙의 동역자가 있습니다. 우리 또한 그런 신앙의 동역자로 섬기도록 세움 받았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다윗의 분노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아비가일은 무엇을 준비했나요?
상황을 파악한 아비가일은 다윗에게 줄 양식을 준비합니다. 아비가일의 지시에 따라 하인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순식간에 상당한 양의 음식을 준비합니다. 아비가일은 '급히' 움직여 많은 식량을 짧은 시간에 준비하는데(18절), 이는 그가 유능한 여인임을 보여 줍니다. 모든 준비를 마친 아비가일은 양식을 앞세워보내고 자신은 뒤따라 갑니다. 양식을 통해 다윗의 분노를 누그러뜨리고자 한 것입니다. 나발이 알면 반대할 것이 분명했기에 그에게는 알리지 않고 출발합니다. 아비가일은 어리석은 남편의 권위보다 온 가족의 생명을 살리는 일을 중시했습니다. 아비가일은 위기에서 무엇을 우선시할지 아는 지혜로운 여인입니다.
누군가의 어리석은 선택으로 어려움이 생길 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나요?
지혜는 단순히 지식이나 경험을 쌓는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혜는 문제의 핵심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통찰력으로 이 땅에서 겪게 되는 위험과 위기를 잘 극복하고, 좋은 선택을 통해서 올바른 길을 알아내는 능력을 말합니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력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지혜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뜻 가운데 경건한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잠언에서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경외심으로 그분의 뜻을 따라 경건한 길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경건한 선택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모든 복을 내려 주시고 구원을 얻습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위기의 순간에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영적 순발력을 간구합니다. 문제의 핵심을 잘 파악해 신속하게 해결할 수 있는 하늘의 지혜를 갖게 하소서. 어리석은 자존심으로 공동체를 위험에 빠뜨리지 않고, 위태로울 때도 사랑으로 생명을 구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아비가일의 지혜로운 중재
삼상 25:14-35 / 우인택 목사
오늘 본문은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의 지혜로운 중재에 대한 말씀입니다.
나발이 다윗의 정중한 도움 요청을 거절하며 인격적으로 모욕하자 다윗은 나발을 응징하기 위하여 군사를 준비시킵니다. 그러나 다윗이 이처럼 하나님께 묻지도 않은 채 자신의 감정을 자제하지 못하고 분노하며 동족을 죽이기 위해 군사를 움직인 것은 그 자체가 이미 잘못된 일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지혜로운 여인 아비가일을 등장시키셔서 다윗의 분노를 가라앉히십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이 범죄하지 않도록 도우신 것입니다.
1. 먼저, 14-17절에, 한 하인이 나발이 일으킨 사건을 아비가일에게 보고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이 하인은 다윗 일행이 나발의 양치기들에 대하여 얼마나 호의적이었는지 말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을 모욕한 나발에 대하여 17절에 “주인은 불량한 사람이라 더불어 말할 수 없나이다”라며 사태의 심각성을 더했습니다. 하인의 이러한 표현은, 주인인 나발은 자신이 한 행동이 얼마나 심각한 것이었는지 전혀 알지 못했음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그래서 하인은 자신이 아비가일을 찾아와 다윗에 대하여 보고한 것을 나발이 알게 되면 큰 질책을 받을 것을 알고 있었지만, 주인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어리석은 나발은 큰 잘못을 하고서도 자신이 잘못을 한 줄도 몰랐지만, 그에게는 총명한 아내와 충성된 하인이 있었습니다. 나발은 이처럼 참으로 큰 복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큰 복을 받고서도 복을 지켜낼 능력이 없었습니다. 하인의 표현처럼 그는 불량한 사람이었습니다. 오죽하면 하인이 나발에게 직언을 하지 못하고, 단걸음에 달려와 그의 아내인 아비가일을 찾아왔겠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나발보다 더 큰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나발처럼 어리석게도 손에 움켜쥐고 자신만을 위해 누려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로부터 완고하고 행실이 악하며 불량하다는 소리를 들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이 복을 주실 때, 세상 모든 사람과 나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땅끝까지 가는 곳마다 나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주신 복은 나눌 때 그 값어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받은 복들을 나누는 삶을 사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나눌수록 더욱 풍성해지는 하나님의 법칙을 날마다 체험하며 누리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18절 이하에는 하인의 말을 들은 아비가일의 지혜로운 행동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비가일은 급히 다윗 일행에게 줄 양식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그 양식을 가지고 다윗 일행이 있는 곳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나발에게는 이 일을 비밀로 했습니다. 그가 알면 방해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비가일이 이처럼 서둘렀던 이유는 다윗이 갈멜에 도착하기 전에 만나야 했기 때문입니다. 만일, 아비가일이 조금이라도 지체했다면 34절의 다윗의 고백처럼 나발과 그의 일족이 죽임을 당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23절에, 다윗을 만난 아비가일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겸손으로 다윗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녀는 24절에, 나발의 죄악을 자신에게 돌리고 자신의 말을 들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이 범한 죄도 가능한 타인에게 돌리려고 애쓰는데, 아비가일은 정반대였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다윗을 ‘주’라고 부르며 남편 나발의 잘못에 대하여 용서를 빌었는데, 23절-31절까지 무려 29번이나 ‘주’라고 다윗을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여종’이라고 무려 6번이나 반복하며 낮추었습니다, 아비가일은 자신의 가문에 닥칠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다윗을 높인 것이 아니라, 그가 장차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을 믿고 그를 ‘왕’으로 대하며 엎드렸습니다. 지금 다윗이 사사로운 감정으로 나발을 죽이면 그것이 왕이 되었을 때 큰 흠이 될 것이므로 은혜를 베풀어 주기를 간절히 간구했습니다.
특히 26-31에, 아비가일은 ‘여호와께서’라는 말도 무려 6번이나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아비가일의 고백에서 우리는 그녀가 철저한 신앙의 사람임을 알게 됩니다. 그녀는 26절에 여호와께서 살아 계시고, 여호와께서 다윗이 직접 원수 갚는 일을 막으셨고, 28절에 여호와께서 다윗의 집을 든든히 세우시고, 29절에 여호와께서 다윗의 원수를 던지시고, 30절에 여호와께서 다윗을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시고, 31절에 여호와께서 다윗을 후대하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곧, 다윗이 직접 원수 갚는 일을 막은 분도 하나님이시고, 다윗의 집을 세워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다윗의 원수를 갚는 것도 하나님이시기에 만일, 지금 다윗이 나발을 죽이면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하는 것이 되니 한번 깊이 생각해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어떤 일을 할 때, 그 일을 함에 있어서 혹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하는 일은 없는지 스스로를 살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늘 본문의 다윗처럼 하나님 앞에서 돌이킬 수 없는 범죄 앞에 설 수 있습니다. 그러할 때 아비가일 같은 총명한 사람이 다윗에게처럼 실수를 막아주면 다행이겠지만, 만일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여지없이 죄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작은 일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은 없는지 늘 스스로를 살피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러한 사람만이 하나님 앞에서의 범죄를 피할 수 있습니다. 오늘, 스스로의 삶을 깊이 돌아보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34-35절에, 아비가일의 말을 들은 다윗은 분노와 흥분을 가라앉히고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하기로 마음을 돌이켰습니다.
시대의 영웅인 다윗이 일개 아녀자에 불과한 아비가일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그녀가 하나님의 주권에 근거하여 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은 아비가일에게 설득을 당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이었습니다. 만일, 자신이 아비가일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하는 것이 됨을 변명할 여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비가일이 하나님 주권에 근거를 두고 자기의 견해를 당당하게 밝히고, 또 다윗이 그 말을 받아들이는 것을 보면서, 우리도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과 자신이 해야 할 일의 경계선을 분명하게 구분해 내는 영적인 지혜를 소유해야 합니다. 더욱이 다윗과 같은 신앙의 사람이 분노를 이기지 못해 하나님의 주권을 잊어버리고 혈기로 행한 것을 볼 때, 우리야 오죽하겠습니까? 그러므로 다윗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역과 자신의 영역을 예리하게 구분함으로써 하나님의 영역을 침해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나발은 주위에 총명한 아내와 충성된 하인들이 있었음에도 그들의 충고를 외면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자신만을 위해 누리다 사람들로부터 완고하고 행실이 악하며 불량하다는 소리를 들었고, 결국에는 그러한 버릇때문에 죽음의 위기 앞에 서고야 말았습니다. 저희는 나눌수록 더욱 풍성해지는 하나님의 법칙을 따라 살아가는 복된 자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주권과 내가 해야 할 일을 올바르게 분별하여 주어진 모든 일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하여 주옵소서. 위기의 순간에 아비가일의 지혜를 나타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하나님 앞에서 지혜로운 자
삼상 25장 14~22절 / 윤희주 목사
●(14절) 소년 중 하나가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에게 고하여 가로되 다윗이 우리주인에게 문안하러 광야에서 사자들을 보내었거늘 주인이 그들을 수욕하였나이다.
아비가일은 지혜로운 사람이고 또 평소에 남의 말도 잘 들어주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에게 자기 주인이 큰 잘못을 했음을 깨달은 소년 하나가 이때는 아비가엘에게 일의 전모를 말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지요. 평소에 선하게 살면 이처럼 생명까지도 구할 수 있는 도움을 받게 됩니다. 아무도 지난 번의 일을 알려 주지 않았다면 아비가일 역시 생명 보존하기가 어려운 상황이 되었을 것입니다. 아비가일이 평소에 지혜롭고 현명하게 처신했기에, 아랫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했기에 종이 달려와 일러주었지 아비가일 역시도 나발 같았으면 아무도 도움을 주지 않습니다.
●(15절) 우리가 들에 있어 그들과 상종할 동안에 그 사람들이 우리를 매우 선대하였으므로 우리가 상하거나 잃은 것이 없었으니.
[선대]-'잘 대접함' 입니다. 이 말을 읽어보면 다윗이 나발에게 보낼 신하들에게 했던 말 그대로입니다. 다윗의 사람들이 나발의 목자들을 평소에 잘 대해 주었고 보호해 주었다는 말을 나발의 종이 아비가일에게 했습니다. 왜 그들을 수욕하면 안되는지에 대한 이유까지도 종이 설명해 주었지요. 그러니 이 종도 참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무조건 그들이 겁이나 잘 대해야 한다고 하지 않고 왜 그들을 선대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유까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16절) 우리가 양을 지키는 동안에 그들이 우리와 함께 있어 밤낮 우리에게 담이 되었음이라.
이 종은 있는 그대로를 진실하게 설명했습니다. 다윗의 사람들이 담같이 보호해 주어서 다른 사람들이 자기들을 해하지 못했고 양들도 잘 지킬 수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다윗의 사람들을 마땅히 대접해 주어야 하는 이유이지요.
●(17절) 그런즉 이제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을 알아 생각하실찌니 이는 다윗이 우리 주인과 주인의 온 집을 해하기로 결정하였음이니이다 주인은 불량한 사람이라 더불어 말할 수 없나이다.
다윗의 군사들과 나발의 종들이 평소에 들판에서 자주 만나 이야기도 하고 신세타령도 하다보니 친한 사이가 되었겠지요? 그러니 다윗이 분노하여 나발을 칠 것이라는 말을 다윗의 사람이 나발의 종에게 일러 주었고 이 종이 아비가엘에게 와 그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윗의 사람과 나발의 종들의 소통이 아비가일을 살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소통이란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나라가 대통령의 소통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다고 여기저기서 말들을 합니다. 사실인지는 잘 모르지만 만약 대통령이 소통이 부족하다면 나라가 불행해 짐은 맞습니다. 여기서 보듯 일개 종들이라도 서로 소통하니 생명까지도 건질 수 있지 않습니까? 가정에서도 아버지와 자식간에 소통이 없으면 가정에 화목이 없습니다. 교회에서 목회자와 장로들 간에 소통이 없고 교인들과도 소통이 없다면 교회에 화목도 성장도 기대하면 안되지요. 하물며 우리가 하나님과 소통치 못하면 우리의 생활은 물론 생명까지도 보존받지 못함을 갚이 깨달아야 합니다. 주인은 불량한 사람이라 더불어 말할 수 없나이다 말할 수야 있겠지만 말해도 소용이 없는 사람이라는 말이지요. 주인 나발에게 말하지 않고 아비가일 당신에게 말하는 이유까지 설명했습니다. 우리가 성도라면 누구든지 우리에게 와 어려운 말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평소에 남들과 소통을 잘하고 이해하고 도울 줄 아는 사람이어야 남들이 찾아오는 법입니다. 주님은 공생활을 3년 밖에 하시지 않았지만 어려움에 처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교인된 지 30년이 되어도 어려운 사람이 그리 오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내가 나발과 같은 사람은 아닌지 짚어봐야 합니다. 사실 아비가일이 누구입니까? 나발의 아내이지 않습니까? 종이 아비가일에게 와 이런 말을 한다는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 평소에 아비가일이 어떻게 처신했는지를 잘 알 수 있지요. 아비가일이 이 소식을 전해 듣고 어떻게 처신했는지를 다음 절에서 보게 됩니다.
●(18절) 아비가일이 급히 떡 이백 덩이와 포도주 두 가죽 부대와 잡아 준비한 양 다섯과 볶은 곡식 다섯 세아와 건포도 백 송이와 무화과 뭉치 이백을 취하여 나귀들에게 싣고.
[세아]-'유대인들이 곡식 등 고체의 부피를 측정했던 단위로 에바의 1/3에 해당하는 7.3ℓ정도임. 스아와 동일한 단위' 다윗이 지금 출동 준비를 했는데 머뭇거릴 시간이 없습니다. 종의 말을 듣고 "그래? 그렇다면 내가 자초지정을 확인도 하고 깊이 생각해 보겠네..." 라 하지 않고 즉시 준비하는 아비가일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다면 지체하면 안됩니다. 순종은 즉시 할 때만 그 가치가 있음을 명심하십시다. '저런 상황을 보니 나도 도와야 되겠구먼!' 이라는 생각은 불신자들도 다 합니다. 깨달음을 주시는 이유는 생각해 보라? 고 주시는게 아니라 즉시 순종하라고 주심을 명심하십시다. 아비가일은 비록 종의 말이라도 "아~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리시려고 주시는 말씀이구나!" 로 깨달았습니다. 그러니 즉각 행동에 옮기는 것이지요. 유대인들의 떡은 우리의 식빵 정도의 크기입니다. 그러니 600명이 먹을 수 있는 량을 나름대로 계산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화과 뭉치란 유대인들은 무화과 열매를 따서 두둘겨 발효시켜 놓습니다. 그러면 곶감처럼 겉에 하얀 분이 생기고 아주 달게됩니다. 주로 간식용이지요. 아비가일은 남을 도와도 간질나게 돕지 않았습니다. 충분하게 도왔지요. 지혜로운 사람들의 방법입니다. 간식까지도 챙겨주는 세심한 도움도 볼 수 있지요. 참된 성도의 모습을 배울 수 있습니다.
●(19절) 소년들에게 이르되 내 앞서 가라 나는 너희 뒤에 가리라 하고 그 남편 나발에게는 고하지 아니하니라.
여기 소년들은 집안 사환을 말합니다. 물건만 덜컥 주면 된다? 가 아니라 자기가 직접 가서 만나겠다는 것입니다. 상황은 급한데 아무래도 아녀자이니 종들보고 먼저 가라 했지요. 그리고 남편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했습니다. 나발은 아내하고도 소통이 되지 않는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20절) 아비가일이 나귀를 타고 산 유벽한 곳으로 좇아 내려가더니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자기에게로 마주 내려오는 것을 만나니라.
[유벽]-'깊숙하고 한적하며 구석짐' 이란 말입니다. 급히 좇아가니 저쪽에서는 칼을 들고 쳐들어 오고 이쪽에서는 선물을 들고 찾아가고, 유벽한 곳에서 서로 만난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하나님께서 평강을 구했던 다윗에게 평강을 주시고 계신다는 말입니다. 자기 성질을 못이겨 분노에 차 큰 일을 저지려는 다윗을 막으셨다는 말이지요.
●(21절) 다윗이 이미 말하기를 내가 이 자의 소유물을 광야에서 지켜 그 모든 것을 하나도 손실이 없게 한 것이 질실로 허사라 그가 악으로 나의 선을 갚는도다.
앞에서 다윗은 선한 마음으로 말했지만 지금은 성질에 못이겨 자신의 공로를 따져 말하고 있습니다. 아주 세상적인 발언을 하고 있지요. '"내가 그만큼이나 했는데?" 라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 다윗도 부족한 사람임을 알게 합니다. 하나님의 생명싸개에 싸여 있는 다윗도 이런 부족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잘못을 저질러 놓고 한다는 말이 '다윗도 그러한데 나라고 어찌 부족하지 않겠나?' 라 하시겠습니까? 간음하고서 들키니 사죄한다는 말이 성군 다윗도 그러했으니 용서를 바랍니다? 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사죄가 아니라 정말 가증한 모습입니다. 채찍을 벌지요...
●(22절) 내가 그에게 속한 모든 것 중 한 남자라도 아침까지 남겨두면 하나님은 다윗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다윗도 이런 지경까지 빠질 수 있음을 알게 합니다. 성도이면서 기도없이 인간적인 생각으로 하면 이런 꼴이 되는 것이지요. 잘못을 저지르면서도 반드시 저지르겠다고 하나님께 맹세하는 어리석음을 볼 수 있습니다. 왜 이런 말을 합니까? 사울이 이런 말을 아주 잘했지 않습니까? 그러니 욕하면서 배운다는 말처럼 된 것입니다. 사탄의 방법이 일정하니 다윗 역시 사울처럼 된 것이지요. 그러나 이런 잘못된 맹세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회개해야 할 문제를 오히려 맹세의 문제로 바꾸는데 어찌 하나님께서 들어 주시겠습니까? 나중에 나옵니다만 단 한 사람도 죽이지 않았지요. 21절의 다윗이 이미 말하기를 지도자인 만큼 이미 말한 것은 책임을 진다, 이 말입니다. 헤롯을 보면 세례요한을 죽일 때도 이미 맹세했던 일이기에 아닌 줄 깨달았으면서도 시행해 버렸지요? 우리도 내가 하나님께 이미 서원했던 문제이니 실천해야만 한다? 고들 하지만 잘못된 서원은 회개할 문제지 실천하면 더 큰 잘못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성도의 지혜입니다. 다윗도 잘못된 맹세를 했지만 지혜로운 여인의 말을 듣고 그 맹세를 포기했지요. 포기할 수 있었다는 이것 역시 다윗의 지혜로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지혜로운 자가 되려면 하나님 뜻에 자기를 굴복시킬 줄 알아야 합니다. 다윗의 지혜로움이 자신이 요구했던 이상으로 얻게 하였고 무엇보다 잘못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지혜로워야 할 이유이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