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 들녘으로 나가
고향을 지키고 계시는 큰형님은 나이가 여든을 앞둔 고령임에도 농사일을 놓지 않고 있다. 농번기 주말이면 진주와 마산으로 분가해 사는 두 조카가 아버지를 찾아뵙고 일손을 돕기도 한다. 막내아우인 나도 가끔 고향을 들리긴 했으나 근년에는 일손을 거들지 못했다. 일전에 거제로 가족 여행 때 만나 여쭤보니 마늘 수확은 마쳤고 모내기도 거의 마무리되어 도울 일거리가 없었다.
흐린 하늘에 성근 빗방울이 듣는 유월 첫날이다. 현관을 나설 때 우산을 준비하지 않은 채 길을 나서 엘리베이터를 나가니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새벽에 잠을 깨 인터넷으로 검색한 기상 정보에 점심나절 이후 우산이 그려져 있어 오전에만 서둘러 강변으로 산책을 다녀올까 싶었다. 꽃대감 꽃밭으로 가보니 친구는 폰 카메라로 끈끈이대나물 영상을 촬영 중이었다.
친구와 안부를 겸한 환담을 나누고 정류소로 나가 105번 시내버스로 동정동으로 가서 1번 마을버스로 갈아탔다. 용강고개를 넘어 용잠삼거리에서 동읍 사무소 앞을 지나 주남저수지를 비켜 갔다. 차창 밖은 면적을 넓혀 가는 연잎이 보였고 판신마을을 지난 들녘에는 모내기를 마친 논은 연두색 어린 모가 가지런히 줄을 지었다. 일부 구역은 트랙터가 무논을 다리는 중이기도 했다.
대산 일반산업단지와 면 소재지 가술을 지난 모산에서 제1수산교를 비켜 신전마을 종점에 닿았다. 가끔 1번 마을버스를 이용하는데 나처럼 현지인이 아니면서 종점까지 가는 손님은 드물지 싶다. 마을회관 앞 골목을 빠져나가 북쪽 들판으로 나가니 봄 감자를 캐는 인부들의 손길이 바삐 움직였다. 트랙터처럼 생긴 농기계가 감자 이랑을 지나니 감자 덩이가 가지런히 불거져 나왔다.
외지에서 동원된 듯한 수십여 명의 인부가 종이 상자에 감자를 담고 경운기 적재함으로 농로에 세워둔 대형 트럭으로 옮겨 실었다. 넓은 들녘에서 벼농사를 제외한 작물은 생산과 수확 이후 판매는 분리된 체제였다. 땅을 소유한 지주나 임차 농부는 감자나 당근을 길러 놓으면 외지의 상인이 밭뙈기 채로 사 인부를 동원해 와 수확해서 서울 가락 농수산물 경매장으로 올려보냈다.
엊그제 연일 비가 왔기에 감자 수확이 늦어지고 있는데 오늘도 강수가 예보되어 수집 업자는 마음이 바쁠 듯했다. 감자를 거둔 논에는 모를 내려고 수로의 물을 끌어와 물을 잡으려고 했다. 거기에 상품 가치가 떨어져 버려둔 감자가 보였는데 먹을 수 있는 것이 다수여서 몇 알을 주워 봉지에 담아 손에 들었다. 이후 창원 시민들의 상수원이 되는 대산정수장을 지나 강둑으로 올랐다.
강둑에 길게 이어진 자전거 길은 위로 가면 본포고 아래로 가면 수산교다. 둑 너머 둔치에는 취수정을 뚫어 모래밭 여과수를 퍼 올려 정수 과정을 거쳐 창원 시민들의 상수원으로 시내로 공급했다. 드넓은 둔치는 원시림을 방불하게 하는 정글과 같았다. 고라니나 꿩들이 몸을 숨기고 서식하기 좋은 공간이었다. 아마 어디선가 알을 품어 새끼를 친 까투리가 꺼병이를 키우고 있지 싶다.
긴 강둑길을 걷는데 둔치에 절로 자란 돌복숭나무가 여럿이었다. 그 가운데 일부는 누군가 열매를 따간 흔적이 보였다. 돌복숭이 우리 집에는 필요하지 않다만 꽃대감 친구에 보낼까 싶었다. 친구는 돌복숭으로 효소를 내어 식초로 만들어 때때로 음용한다고 했다. 수산교를 향해 걷던 발길을 멈추고 둑 아래로 내려가 돌복숭을 따기 시작했다. 얼마간 따고 있는데 비가 와 난감해졌다.
우산이 준비되지 않은 야외에서 비를 피할 데가 없어 그냥 맞고 따던 돌복숭 열매를 계속 따 모았다. 배낭에는 아까 이삭 감자가 채워져 있어 보조 가방에 돌복숭 열매를 담았다. 둔치에서 둑으로 올라 대산정수장 곁으로 지나는 국가지원 30번 지방도 굴다리 밑으로 갔다. 굴다리 아래서 비가 잦아들기를 기다리면서 젖은 모자와 옷가지를 수습해 1번 마을버스로 시내로 돌아왔다. 23.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