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은사지 3층 석탑
이 탑은 건립 년대가 682년으로 뚜렷하게 알려져 있다. 전체적인 모습은 고선사지 탑과 거의 비슷하다. 고선사지 탑이 건립 년대가 비슷하다고 추정한다.
이 감은사지 탑은 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경주에서 바다에 닿을 수 있는 길은 대종천을 따라서 이곳으로 나오는 길과, 울산으로 내려가는 길, 두 갈래 뿐이다. 대종천을 따라가는 길이 쉬운 길이지만, 왜구가 처들어오기 쉬운 길이기도 하였다. 이 길은 가을이면 단풍이 곱기로 전국에서 손꼽는 명소이기도 하다.
1238년에 몽고병이 황룡사를 불태우고, 황룡사의 거대한 종(40만 근-봉덕사는 12만근)을육로로 운반하기 힘드니까 추령 고개를 넘어 대종천에 땟목을 만들어서 싣고 갇다하여 대종천이라고 한다. 이 종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앞 바다에서 바다에 빠뜨렸다고 한다. 지금도 바람에 세게 부는 날은 바다속에서 종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문무왕이 바다를 지키는 용이 되겠다고 하여 대왕암에 장례를 지낸 일은 유명하다. 문무왕의 아들인 신문왕(-효소왕-성덕왕-경덕왕-) 아버지의 호국 영령을 위로하기 위해서 지은 절이 감은사이다.
2층 기단에 3층 탑신 양식으로 고선사지 탑과 같다. 따라서 3층 석탑의 시원이라고 한다. 옥개석은 5층 층단의 받침과 낙수면은 층단이 없다. 탱주는 2-3양식이다.
고선사지 탑과 같이 기단과 초층 탑신 등이 면석으로 되어 있고, 그 내부는 자갈로 채워져 있다. 그래서 세월이 지나면 틈새가 벌어지고, 안에서는 뱀이 살기도 한다.
사진에서 보면 꼭대기에는 우리가 보륜이니, 보개니 하는 상륜부가 없어져 버렸다. 쇠로 막대가 꽂혀 있다. 이 쇠막대가 바로 찰주에 해당한다. 상륜부를 돌로 만들어서 이 찰주에 꽂아 놓았으나 쇠가 삭아져서 없어지는 바람에 상륜부도 소실되어 버렸다.
찰주 즉 우주 기둥이 끝나는 부위에 사리를 봉안하는데, 이 탑은 3층 탑신에 봉안되어 있다. 고선사지 탑처럼 문비의 조각은 없다.
감은사지 청동 사리함은 아주 유명하다.
이 절은 사진에서 보듯이 쌍탑-1금당 양식이다. 이것도 고선사와 차이가 난다. 감은사는 호국 신앙의 결정체이지만, 문무왕을 영령을 비는 ‘기복 신앙’의 뜻도 있다.(순전히 내 생각) 통일 신라 시대에는 불교가 호국신앙에서 기복신앙화하는 것을 말하는 것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