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윤리 외 1편
Daisy Kim
깨어지기 쉬운 것들
프라하의 뒷골목에는 유리를 부는 남자가 있었다
병의 입술로 바람을 밀어 넣을 때
긴 대롱의 끝에서
엿처럼 끈적이며 굳어지던 맑음
하나의 꽃병과 두 개의 낱말 사이에서
유리의 마음* 을 다하던 입김
반짝이는 날카로움으로 눈 마주치던
폐 속 가득 타오르는 온도
너는 뜨거워지는 그것을 윤리라고 발음했다
미끄러운 십이월의 계단 위에서
쉽게 금이 가는 유리의 뼈들
상처의 자리가 유리처럼 부풀어 오를 때
유리와 윤리의 간격만큼 분명해지는 흉터
작은 한숨에도 부서지는 속도로.
떨고 있는 일월이 와도 다음 계절이 와도
이곳은 얼음을 띄운 유리의 여름,
지문을 남기고 흠집을 가두고 발끝까지 단단해진다
투명한 고백으로
안과 밖이 다르지 않기 위해
* 나카모리 아키나
튤립의 분위기
Daisy Kim
여름 유리창에서 꽃잎들이 갈피를 채웠다
터번을 쓴 마음이 노란 꽃술로 뜨거워지는 그믐
폭풍을 견뎌온 밤의 튤립에게 손을 흔들었다
모국어를 엮어 뻗어나가는 황금의 잔뿌리들
들끓는 열대야의 뒷모습으로 꽃잎의 사연이 차곡차곡 내려앉았다
단단한 씨앗이 보랏빛의 다발들로 번지는 새벽 영토
낯선 색감으로 오랜 목마름을 채색했다
속도를 따라가려고 이방인의 처진 어깨를 튤립의 뜰에 가두었다
멍울진 튤립의 순간을 지우면 유리창이 꾸는 꿈이 깊어졌다
색이 다른 발소리를 모은 채
낯선 이웃들에게 둘러싸인 시절이었다
『시현실』2023년 봄호
Daisy Kim 시인
2020년 『미네르바』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