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시온의 노래
“여호와께 구속받은 자들이 돌아와 노래하며
시온으로 들어오니 영원한 기쁨이 그들의
머리 위에 있고 슬픔과 탄식이달아나리이다“
<이사야 51 : 11>
요즘 영국 프리미어 리그 축구에서 뛰고 있는
손흥민 선수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정도입니다.
거의 매 경기, 득점과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경기 최우수 선수, MOM에 선정되고 있습니다.
그가 소속된 토튼햄 팀이
공격적이고 재미있는 경기를 펼친다고 해서
인기가 식을 줄을 모릅니다.
관중들의 응원 열기는 엄청나서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성을 지릅니다.
그들이 부르는 응원가 가운데 자주 들리는 것이
‘Oh when the Saints’라는 노래입니다.
이 ’성자들의 행진‘이란 노래를 떼창으로 불러
선수들을 마치 ’성자‘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한국 관중들이 응원가로 부르는
“대~한~민~국”이나
“오 필승 코리아”처럼 부르는 것입니다.
’Oh when the Saints’는
원래 Funeral jazz (장례식 재즈곡)입니다.
루이 암스트롱이란 가수가
리메이크해서 불러 히트했던 곡입니다.
장례식 때,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영혼이
성자의 반열에 들어 천성문을 향해 행진하는
모습을 흑인 특유의 재즈 풍으로 부른 노래입니다.
특히 ‘Lord, I want to be in that number’
(주여 저도 그 성자들의 행렬에 속해
따르기 원합니다)라는 간구가 가사에 담겨 있어
’성자들의 행진‘의 영광을 염원하며 노래하는 곡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이 곡이 풋볼이나, 사커,
럭비 등의 경기 응원가로 불려지게 되었습니다.
선수들이 경기장에 뛰어들어 가는 모습을 마치
성자들이 ’전투’에 임하는 모습으로 비견한 것입니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스포츠의 우상화’가 여기에 있는지 모릅니다.
마귀는 은근슬쩍 사람들의 관념 속에
‘우상’의 개념을 불어넣어
신앙과 스포츠를 혼합시켜 놓고 있습니다.
‘시온의 노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의 강가에서 부른 노래를 그들을 잡아 간
지배자들이 ‘놀이 삼아’ 부르게 시켰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주문을 거부합니다.
(시편 137 : 3 - 4)
‘시온의 노래’는 문화 상품이 아니라
시온으로 돌아가기를 염원한 이스라엘의
소망을 노래한 것입니다.
영원한 기쁨이 그들의 머리 위에 있고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게 해주시기를
기원한 노래입니다.
불의한 것에 적응을 해버리면 무섭습니다.
불의한 것을 나중에는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구원자이십니다.
그렇게 들어왔고 고백도 합니다.
그런데 마음으로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상황과 현실을
보고 있으면 뭐가 나아지는 게 없었습니다.
믿음은 얇아지고 절망이 슬그머니 자리잡습니다.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사야가 외칩니다.
뿌리부터 다시 설명합니다.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낳은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혼자 있을 때에 내가 그를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하게 하였느니라.”
하나님의 꿈과 약속을 다시 환기시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뿌리인 아브라함은
희망이 없던 사람이었습니다.
고대에서 자녀가 없었다는 것은 저주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후손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후손이 민족을 이루고 창성하지 않았습니까?
이처럼 하나님께서 불가능한 자에게
희망을 가져다 준 분임을 이사야는 말합니다.
환경과 현상에 주저앉아 자포자기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 것을 당부합니다.
그것들은 잠시잠깐 지나가는
‘하루살이’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거기에 사는 자들이 하루살이 같이 죽으려니와”
하나님의 구원은 영원하고
하나님의 공의는 패하지 않는 것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줍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말씀에 말로는
아멘하지만, 실제 따르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언제 기도를 중단합니까?
포기하면 기도하지 않습니다.
오랜 시간 하나님께 간구했는데,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으면, 지칩니다.
희망은 사라져가고
점점 절망의 상태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성경은 이것을 ‘침잠’(沈潛)이라는
어려운 단어로 소개합니다.
’물 속에 빠져 깊이 가라앉은 상태‘입니다.
‘좌절에 빠진 상태를
그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바벨론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런 상태였습니다.
이사야가 그것을 보며 한맺힌 기도를 쏟아냅니다.
“여호와의 팔이여 깨소서 깨소서 능력을 베푸소서
옛날 옛시대에 깨신 것 같이 하소서..”
그리고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기쁨의 노래, 승리의 노래인
‘시온의 노래’를 부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결국’을 잊지 말고
그 약속을 붙드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꼭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이사야의 예언은 시제가 ‘과거형’입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눈에 보듯이 보고,
과거로 쓴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예언적 과거’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결국은 그만큼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오 주여!
우리에게 임할 하나님의 결국을 믿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환경의 어려움에
침잠하지 않고 깨어있게 하소서.
‘시온의 노래’를 늘 부르게 하소서.
이 아침의 기도입니다.
- 남아공 노록수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