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서 받은 은혜
전날에 이어 새벽까지 비가 부슬부슬 내리다 아침이 되어 그친 유월 초순 금요일이다. 어제는 우산을 준비하지 않은 채 강변으로 산책을 나섰다가 소나기성 빗줄기를 고스란히 맞았다. 창원 시민들의 상수원을 공급하는 여과수 취수정이 있는 신전마을 강둑 너머 둔치에서 돌복숭을 따다가 비를 만났는데 어쩔 도리 없었다. 국가 지원 30번 지방도 굴다리 아래에서 젖은 옷을 수습했다.
날이 밝아온 아침에 인터넷으로 일기 예보를 검색해 보니 오늘 이후 당분간 강수는 없을 듯했다. 한낮에는 30도까지 이르는 고온이라 성큼 여름이 다가온 느낌이다. 집 앞에서 105번 시내버스로 동정동으로 나가 1번 마을버스로 바꾸어 탔다. 근래 들어 연일 낙동강 강둑으로 산책을 나서는 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산나물 채집 적기가 지난지라 산자락을 누빌 일이 없어서기도 하다.
용강고개를 넘어간 버스는 동읍 사무소 앞을 지나 주남삼거리에서 주남저수지를 비켜 갔다. 주남 들녘 일모작 지대 논에는 모내기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마을버스가 대산면 소재지 가술을 지난 송등에서 내렸는데 동구에는 여러 종류 채소 모종을 기르는 대형 육묘장이 있었다. 25호 국도 횡단보도는 보행자 조작 신호등이라 버튼을 눌렀더니 잠시 후 녹색불이 켜져 길을 건넜다.
대산 들녘에는 자연 상태의 하천이 들판을 구부정하게 흘러 유등에서 낙동강 본류로 흘러드는 샛강이 있다. 이 하천은 죽동에서 발원해 죽동천으로 불린다. 지난봄 지방지에서 냇바닥에 스티로폼이나 페트병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어 환경을 오염시켰다는 기사가 나와 당국에서 말끔하게 정비했던 적 있다. 이후 다시 천변에는 버려진 쓰레기가 보여 주민 계도가 더 있어야 할 듯하다.
국도변에서 죽동마을로 드는 십 리가 넘을 길섶에는 산수유나무가 심어져 이른 봄 노란 꽃을 피우면 볼 만했다. 서리가 내린 이후 늦가을에 이파리는 시들면서 붉게 익은 산수유 열매도 장관이었다. 나는 해마다 죽동천으로 나와 산수유를 따 씨를 꺼내고 말려 건재로 삼아 약차를 달여 먹는다. 산수유나무에는 지난봄 꽃이 진 자리마다 자잘한 열매를 맺어 과육이 여무는 중이었다.
구산마을로 가는 드넓은 들녘은 이모작이 이루어졌다. 여름 벼농사보다 뒷그루인 비닐하우스 특용작물 농사로 소득을 더 많이 올릴 듯했다. 예전에는 비닐하우스 수박 농사 일색이었는데 근년에 와서 작목의 다양화가 이루어졌다. 풋고추 농사로 연중 청양고추룰 따내고 겨울에 비닐하우스에서 키웠던 당근은 뽑아내고 벼를 심어둔 곳이 있었다. 멜론을 재배하는 비닐하우스도 보였다.
구산마을에서 강변 당리마을에 이르러 중국집에서 우동을 시켜 새참 격으로 점심 요기를 때웠다. 이후 일동마을에서 대산정수장을 거쳐 신전마을 뒤 들녘으로 가니 봄에 심은 감자를 캔 논이 나왔다. 농장주는 농사만 짓고 수집 업자가 인부를 동원해 감자를 캐 상자에 담아 서울 가락 농수산물 경매장으로 올려보냈다. 빈 논에 뒹구는 이삭 감자가 보여 몇 알 주워 봉지에 담았다.
감자밭에서 지방도 굴다리를 지난 강둑으로 오르니 창원 시민들의 식수원인 강변 여과수 취수정이 나왔다. 4대강 사업 때 모래를 퍼내지 않고 남겨둔 곳으로 넓은 둔치는 정글이 연상될 정도로 숲이 무성했다. 거기는 돌복숭나무도 여러 그루 자라 이맘때 과육이 여물어 갔다. 어제는 강둑으로 나온 김에 비를 맞으며 그 열매를 따 같은 아파트단지 꽃대감에게 보냈더니 고마워했다.
둑 아래 둔치로 내려서 돌복숭이 가득 열린 나무를 찾아 열매를 따 모았다. 짧은 시간에 보조 가방을 가득 채울 수 있었다. 돌복숭이 채워진 손가방을 들었더니 묵직했다. 지인에게 강변으로 나와 돌복숭을 땄다는 문자를 보냈더니 차를 몰아 나오겠다고 해 둑으로 올라 당리마을로 나갔다. 지인이 승용차를 몰아와 돌복숭은 트렁크에 실어두고 수산으로 건너가 추어탕을 들고 복귀했다. 23.0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