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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성은 거칠게 자동차를 멈춰 세웠다. 해성이 도착한 곳은 연기대상 세트장인 SBC 신관 공개홀이었다. 많은 취재열기와 함성소리가 한데 엉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해성은 사람들 무리를 무자비로 헤쳐 앞으로 나아갔다. 해성의 걸음이 바리게이트에 막혀 지체되었을 때, 행사장 안으로 리무진 한 대가 미끄러지듯 멈춰 섰다. 사람들의 함성과 함께 뒷문이 열리고, 곧이어 홍주가 모습을 드러냈다. 큐빅이 알알이 박힌 백색 드레스를 입고 머리를 단아하게 올려 묶은 모습이었다. 그녀의 구두가 레드카펫 위에 사뿐히 일어설 때를 맞춰 카메라 셔터소리가 경쾌하게 터졌다. 섬광을 받을 때마다 홍주는 그 누구보다 반짝이는 미소를 내보이고 있었다.
“이홍주!”
해성은 홍주의 이름을 외쳤다. 하지만 행사장의 소음 때문에, 해성의 목소리는 쉽사리 전달되지 않았다. 홍주는 왼손을 들어 사람들을 향해 흔들어 보였다. 사람들의 함성소리가 거세졌다. 몇 차례의 셔터소리에 맞춰 사방으로 포즈를 취하던 홍주는 해성의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홍주는 해성과 눈이 마주쳤지만 당황한 기색하나 없이 활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홍주의 미소에 사람들의 환호성이 커졌다. 그때, 홍주와 이전 작품을 함께 했던 남자배우가 홍주에게 다가와 에스코트를 신청했다. 홍주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해성의 입모양을 뒤로 하고 상대 배우의 팔위에 손을 얹었다. 해성은 레드카펫을 따라 사라져가는 홍주를 등진 채, 황급히 관중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
“너 오늘 홍주 만났냐?”
해성은 제오에게 전화를 걸자마자 다그치듯 물었다.
"형. 그 것 때문에 전화했어? 걱정 마. 우리 밖에선 되도록 말도 안 섞기로 했으니까."
“아니. 그게 아니고. 만약 오늘 홍주가 이상한 낌새 보이면, 너 나한테 즉각 보고 좀 해줘야겠다.”
해성은 관계자 전용 출입구로 들어섰다. 보안직원은 허리를 굽혀 해성을 맞이했다. 해성은 가볍게 목례 후, 누가 들을까 좌우를 살피고 다시 입을 뗐다.
“이유는 묻지 말고. 걔, 오늘 크게 일낼 것 같으니까. 내가 오죽하면 너한테 감시까지 시키겠냐.”
해성은 전화를 끊자마자, 홍주를 찾아 행사장 곳곳을 살폈다. 해성은 마주치는 스타들과 가볍게 눈인사를 나누었다. 그는 외투를 걷어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본식이 시작될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
“우리 오빠, 이번에 연기 좋았는데, 왜 상 못 탔지…….”
다이는 낙담한 표정으로 텔레비전 앞에 앉아있었다. 올해 연기대상은 이홍주에게 돌아갔다. 많은 사람들이 예상한 결과였지만, 다이만은 수긍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자 텔레비전 속 홍주가 깜짝 놀란 얼굴로 머뭇거리며 단상 위로 올랐다. 많은 스타들이 박수를 쳐주고, 축하해주는 장면도 함께 전파를 탔다. 박수갈채는 한참동안 이어졌다. 홍주는 꽃다발과 트로피를 품에 안아들고 영광스러운 미소를 보였다.
“솔직히 이홍주가 연기를 못해, 얼굴이 안 예뻐, 아니면 몸매가 별로야? 다 되잖아. 게다가 외국물 먹다 와서 영어까지 잘한대. 인기도 많고, 돈도 많이 벌고. 하여간 부러운 여자야. 도무지 깔 데가 없어 깔 데가. 한제오 따위가 상대가 되나. 이홍주 윈! 인정할 건 인정하자, 언니.”
주이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다이는 괜히 뾰로통한 낯빛으로 텔레비전 속 홍주를 흘겨보았다.
"이홍주씨,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어서 대상 수상소감 전해듣겠습니다."
홍주는 천천히 단상 가운데로 걸어와 카메라를 마주보았다. 모든 시선이 홍주를 집중하는 듯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리고 한참의 침묵 끝에, 그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먼저, 시상식장에 어려운 걸음 해주신 선배님들도 많이 계신데, 감히 제가 이렇게 큰 상을 받아도 될지…… 제 몫이 아닌 것만 같은 기분이네요. 제 작품 지켜봐주셨던 팬 분들, 시청자 여러분들께도 먼저 감사의 인사드립니다. 그리고 함께 고생하셨던 스텝 분들, ……예쁘게 카메라에 담아주신 촬영감독님, 좋은 작품 써주신 작가님께도 감사의 인사 올립니다."
홍주는 촉촉한 눈망울로 카메라를 다시 주시했다. 한참의 침묵 끝에 그녀가 조심스럽게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지금 제 모습을 어디에선가 지켜보고 있을 어떤 분이 있습니다. 그분이 있었기에 제가 믿고 의지하고, 도전할 수도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의 저를 만들어주신 그 분께 이 영광을 돌립니다. 감사합니다."
홍주는 그 말을 끝으로 관중을 향해 허리를 굽혀 정중히 인사를 한 뒤 유유히 퇴장했다. 한동안 시상식장이 술렁였다.
그리고 그날 밤, 홍주의 수상소감은 재생 플레이어 조회 수 10만 건을 찍으며, 다음날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장식했다.
*
정초부터 홍주의 사무실 직통 전화와 휴대폰은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이유야 뻔했다. 어제 그녀의 수상소감이 문제였을 것이다. 홍주는 사무실 벽에 등을 기대고 서있었다. 그녀의 맞은편에는 홍주의 어머니, 국화가 한참동안 침묵을 지키고 앉아있었다. 또 한 번, 그녀의 휴대폰이 울렸다. 홍주는 휴대폰 배터리를 제거하고, 전화선마저 뽑아버렸다. 그때서야 길고 긴 침묵이 뒤늦게 모녀를 덮쳤다. 침묵의 끝에 홍주의 어머니 국화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니?”
“……왜 그랬냐고는 묻지 않네.”
“너 똑똑한 애잖니. 생각 없이 그러진 않았을 거야. 엄만 다 안다.”
“엄마, 나 걱정돼서 찾아온 거잖아.”
국화는 테이블 위에 있는 커피 잔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이미 다 식어버린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커피 잔에 립스틱 자국이 한 겹 더 새겨졌다.
“그래서 내가 여길 잘 안 와. 내가 걱정하는 모습 보이면, 넌 또 마음 편할 애가 아니잖니.”
홍주는 가만히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해가 바뀌었으니 한국에 들어온 지 햇수로 6년째가 되었지만, 아직도 홍주의 본래 모습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다름 아닌 어머니 국화였다. 홍주는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했다. 한국에 와서 그동안 마음 하나 내보일 곳이 없었다는 것을. 홍주는 한국에 와서 배우가 된 것이 어쩌면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철저하게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연기해도 그들은 박수쳐 줄 테니.
“엄마니까 말할게. 솔직하게…….”
홍주는 국화의 옆자리로 옮겨 앉았다. 국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해성 오빠……. 아직도 날 인정하지 않아. 다들 이만하면 충분하다는데, 잘했다는데! 그래서 그랬어. 화가 나서. 비겁한 거 아는데, 몇 년 째 이러니까 화가 나더라.”
국화는 홍주의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국화가 어렵게 운을 뗐다.
“그 앨 좋아하니?”
홍주는 잠시간 미동 없이 앉아있었다. 홍주는 애꿎은 손가락만 꼼지락거리다가 고개를 들어 국화를 바라보았다.
“……숨겨야겠지?”
“그 쪽이랑 다시 엮여봤자 좋을 것 없다.”
“나도 알아.”
모녀의 대화는 홍주의 대답을 끝으로 오랜 침묵이 대신했다. 홍주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창가에 다가섰다. 홍주는 시상식 때도 나오지 않던 눈물이 흐르려는 것을 억지로 눌렀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홍주는 환하게 웃으며 어머니 국화를 향해 돌아섰다.
“기사 크게 났어? 사람들만 흥미로운 일 생겼겠다. 일은…… 이제부터 내가 해결할게.”
*
그 시각, 해성은 컴퓨터 앞에서 일분에 한번 꼴로 욕지거리를 토해내는 중이었다. 홍주의 수상소감 여파 때문에 어젯밤부터 스트레스로 밤을 꼬박 설친 것도 모자라, 지금은 컴퓨터로 에스앤필 주가를 확인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오는 그런 해성 옆에서 노트북으로 어제 있었던 시상식 기사들을 훑어보는 중이었다. 어떤 기사보다도 홍주의 수상소감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주가 하락 정도가 아니야. 이건 폭락이야, 폭락! 내가 진짜 이홍주 때문에…….”
“와. 홍주 고백 스케일 장난 아니다. 이제부터 꼬박꼬박 누나라고 불러줘야겠어. 어제 홍주가 나한테 고백한 거 형도 봤지?”
“야, 인마! 한제오. 그러게 내가 어제 이홍주 잘 감시하라고 했냐, 안 했냐.”
“형. 내가 시상식 워스트 드레서래. 기사 떴어. 내가 어제 말했잖아. 그 수트는 패션의 법칙에 어긋났다고.”
“하여간 여긴 맘 놓을 구석이 없어. 내가 핵폭탄만 두 개를 짊어지고 다니는 거 같다니까. 너 내가 아까 보내준 엑스파일 봤냐?”
“형. 거울 좀 봐. 지금 다크서클 장난 아니야.”
“아. 이홍주. 얘는 일을 이 지경을 만들어놓고, 뭐하는데 전화도 안 받아.”
두 사람 사이에 한동안 정신없는 대화가 오가고, 그 대화를 멈춘 것은 인터넷을 새롭게 달군 기사를 발견한 제오였다.
“형. 나 터졌나봐.”
“뭐?”
“홍주랑 열애설.”
해성은 다급히 제오가 바라보고 있는 노트북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포털사이트 홈 화면에 굵은 글씨로 링크된 기사였다. ‘[단독취재] 배우 이홍주-한제오 열애’ 해성은 긴장된 표정으로 기사 위에 마우스를 올렸다. 작성된 지 삼십분도 채 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기사의 조회 수가 벌써 2만이 넘어가고 있었다. 기사 상단에는 두 사람이 오붓하게 생맥주를 마시는 사진이 함께 첨부되어 있었다.
“세상엔 먹잇감을 노리는 승냥이들이 너무 많아.”
“그 승냥이 떼가 홍주를 노렸는데 어쩌다 네가 같이 얻어걸린 거겠지.”
제오는 해성의 비아냥거림에도 굴하지 않고, 소리 내어 기사를 읽어 내려갔다.
“배우 이홍주와 한제오가 열애중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홍주 측근에 의하면 두 사람이 인연의 첫 단추를 끼운 것은 5년 전, ‘이홍주 소속사’로 더 유명한 에스앤필과 한제오가 전속 계약을 하면서 맺어진 인연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두 사람이 연인으로 발전된 것은 불과 1개월 남짓. 1살 연상 연하 커플인 두 사람의 열애 소식은 소속사 내부에는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었다고 한다. 지난 31일, SBC 연기 대상을 수상한 이홍주의 수상소감 역시 한제오를 언급한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는 판국에, 국내 정상 자리를 지키고 있는 여배우 이홍주와 떠오르는 배우 한제오의 만남에 귀추가 주목된다…….”
제오는 실시간으로 달리는 댓글을 살펴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는 악플이 달릴 때마다 손가락을 하나 둘 접었다 폈다 반복했다. 그때 책상 위에 놓여있던 해성의 핸드폰이 울렸다. 해성은 책상 위로 다가가 휴대폰을 집어 들더니, 진지하게 전화를 받았다.
“이홍주가 고작 한제오를 만남? 이홍주가 봉사활동 하는 거 아님? 완전 의외임. 둘이 결혼까지? 절대 못 감! 네버!”
제오는 댓글을 소리 내어 읽으면서 열 받는지 머리를 소파에 쾅쾅 부딪혔다. 그러면서도 마우스를 쥔 손을 놓지 않았다.
“난 이제 관물대에 누구 사진을 붙여야 합니까? 아직 프린터 잉크도 안 말랐는데 이런 날벼락이……. 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육군 박이병-”
해성은 휴대폰을 들고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불투명 유리에 해성의 실루엣이 언뜻언뜻 움직였다.
“여러분. 소속사 공식입장 나오기 전까지 물 타기 노노임. 나는 절대 안 믿음. 아직 홍주누나 놓아줄 수 없음.”
제오는 홍주에 관한 기사와 댓글 뿐인 노트북을 덮어버리고 소파에 벌러덩 누웠다. 새삼 연인 홍주의 상대적인 인기를 객관적으로 체감하고 있었다. 잠시 후, 전화를 마친 해성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한제오. 네 드라마 해외수출 연기됐어.”
“왜? 내가 아이돌이야? 왜 고작 열애설가지고 일이 끊겨?”
“넌 아니지만, 이홍주가 국민의 아이돌 같은 존재지.”
제오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벌떡 일어나 자세를 고쳐 앉았고, 해성은 제오의 어께를 두드리며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 그때 또 한 번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해성의 핸드폰이 울렸고, 제오는 테이블 위에 있는 해성의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형. 홍준데? 홍주가 왜 형한테 먼저 전화해? 나한텐 안하고……..”
“뭐야. 홍주야?”
해성은 비밀이라도 들킨 듯이 화들짝 놀라서 제오에게서 휴대폰을 낚아챘다. 해성은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기다린 듯이 전화 받네? 고마울 정도야."
“너 뭐야. 제정신이야? 결국 일을 이렇게 만들어야 시원하겠어?”
"오빠 재밌게 해주려고 한 건데, 이렇게 빨리 터질 줄은 나도 몰랐네. 돈 좀 써서 기사 좀 막아줘. 내 덕에 돈 많이 벌렸잖아."
“뭐? 네 덕에? 네가 내 덕을 본 게 아니고?”
해성은 화가 나서 목소리를 높였다. 통화 내용이 궁금한지 옆에서 두 눈만 깜빡이던 제오가 ‘홍주에게 큰 소리 치지 말라’며 뜯어말렸다. 홍주는 하던 말을 마저 이었다.
"오빠가 내 덕 더 보고 싶으면 이제부터라도 잘해야겠어. 오늘부터 한제오 에스앤필 전속계약 파기 됐는데. 회사에서 아직 전달 못 받았나봐?"
해성은 혹시나 제오가 통화 내용을 들을까 제오와 멀찍이 떨어진 채 등 돌려 섰다. 해성은 하고 싶은 말이 굴뚝같이 솟아올랐지만, 옆에서 듣고 있을 제오 때문이라도 삼켜야 했다. 해성은 한숨을 깊게 내쉰 뒤, 나직이 말했다.
“이홍주. 너 지금 어디야. 잠깐 나 좀 보자.”
*
해성은 홍주의 사무실 문을 벌컥 열었다. 그곳엔 홍주가 기다렸다는 듯이 소파에 앉아 있었고, 그 옆에는 홍주의 어머니 국화가 함께 있었다. 해성은 국화를 보더니 잠시간 미간을 구겼다. 홍주는 해성에게 소파 자리를 손짓으로 안내했다.
“앉아.”
“네가 말 안 해도 앉을 거야.”
해성과 홍주의 기 싸움이 일었다. 해성은 당당하게 소파에 몸을 기대어 앉았다. 국화는 해성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구나.”
“요즘 회사에 다시 드나들기로 하셨나 보죠?”
해성의 비아냥거림에 국화는 애꿎은 커피 잔을 만지작댔다. 홍주가 신경질적으로 두 사람 사이를 가로질러 말했다.
“하려던 얘기나 해.”
“그래. 본론부터 얘기하자. 여기 내 회사야! 누구 맘대로 한제오를 계약 파기하네, 마네야?”
해성은 불같이 쏘아붙였다. 언젠가 홍주와 제오의 열애설이 터질 것이란 것을 해성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우려하던 열애설이 터졌을 경우, 회사에서 홍주의 이미지 쇄신을 위해 어느 정도의 비용이 투입될 것도 해성이 예상한 범위 내였다. 하지만 해성이 예상한 건 딱 거기까지였다. 한제오가 계약 파기라니……. 해성은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얼얼한 기분이었다.
“오빠, 말은 좀 똑바로 해. 아직은 아버님 회사지. 누가 보면 크게 오해하겠다.”
“그 놈의 아버님 타령은 집어치울 순 없냐?”
“억울하면 아버님께 가서 따져. 나한테 자꾸 이러다간 앞으로 오빠가 날마다 나를 찾게 될 수도 있어.”
홍주는 제 발로 해성을 자신의 사무실로 불러들인 것이 꽤나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동안 자주 있었던 상황이지만, 해성은 홍주와 말을 섞을 때마다 신경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국화는 해성 앞에서 죄라도 지은 것처럼 눈도 제대로 맞추지 못한 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내가 너, 제오 만난다고 할 때, 네 속셈 뻔히 다 알고도 참았었는데…….”
“…….”
“웬만하면 회사는 건드리지 말지.”
해성은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고 더는 들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출입문 쪽으로 걸어 나갔다. 홍주는 해성의 뒤통수에 대고 입을 열었다.
“내 입김이 이정도야. 오늘 그거 보여주려고 일부러 회사에 엄마 모신 거야. 이제라도 오빠가 원한다면 수습해줄 수 있어. 오빠 바지사장이잖아.”
홍주의 말에 해성은 머리끝까지 분노가 솟아올랐다. 바지사장이라는 말은 둘째치고서라도, 홍주의 어머니 앞에서 자신을 깔아뭉개고 싶은 그녀의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해성은 홍주가 이제 자신의 자리까지 빼앗을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꼈으면서도, 국화 앞에서 홍주에게 굴복하는 모습은 절대 보이고 싶지 않았다.
“넌 애초부터 그럴 속셈이었어.”
해성은 그 말만을 남기고 문을 세게 닫고 밖으로 나갔다. 해성도 이제 양보는 없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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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양보는 없겠지요
아마...이제... 없어야...되겠지요?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하채경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