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의 역사추적에서 일전에 백제의 멸망과정을 방영했습니다
낙양에서 발견된 백제 사람 예식진의 묘비명에 의해 백제의 멸망과정을 비교적 상세하게 밝혀냈더군요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흔히 알고 있는것처럼 백제가 나당연합군의 위세에 어이없이 항복한건 아니더군요
흔히 나당연합군 18만 대군앞에 속절없이 무너진것 처럼 묘사되지만 사실은 한사람의 배신에 의해 멸망했습니다
전쟁 과정을 보면 백제에 상륙한 당나라군과 합세 하여 18만 나당 연합군은 주의의 성들을 무시하고
사비성으로 곧바로 쳐들어 가서 함락을 했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왕을 놓쳐버렸습니다
그당시의 일반적인 전쟁양상은 주의의 성들을 차츰 점령해서 배후를 든든히 한후에 차근차근 진격하는것이었는데
나당 연합군은 보급의 위험때문에 전통적인 전투양식을 무시하고 참수전략으로 곧바로 사비성으로 쳐들어 갔습니다
왕만 처단하면 백제는 저절로 무너진다는 작전이었죠
그와중에 계백장군의 5천 결사대가 몇일 방어는 했지만 불가항력으로 사비성은 함락되었습니다만 결정적으로
의자왕이 웅진성으로 도망갔습니다.
나당연합군의 전략자체가 완전히 틀어진거죠.
왕을 놓치고 나니 사태가 불리해진건 나당 연합군이었습니다
백제의 대다수의 성이 온존한 상태에서 독안에 든 생쥐꼴인데다 신라로부터의 보급도 백제군에게 막혀
전멸할 상태에 있었다네요
그리고 웅진성도 만만한 성이 아닌게 산성인지라 함락이 어렵고 근처에 흑치상치가 버티고 있는 난공불락의
임존성이 있어서 전황이 불리하지 만은 않았습니다
따라서 의자왕은 나당연합군을 충분히 몰아낼 자신이 있었습니다.
백제 지방군이 서서히 나당연합군을 옥죄고 있고 성들도 온전하고 보급로를 장악하고 있으니 나당연합군의 전멸은
시간 문제였는데 그때 의자왕이 몽진한 웅진성의 성주 '예식'의 배신에 의해 의자왕은 웅진성에서 잡혀 나당연합군에 항복을 했더군요
진짜 어이없는 항복이지 않습니까?
만약 예식이 배반하지 않았다면 백제는 나당연합군을 전멸시키고 삼국시대를 좀더 오래 끌고 갔을지도 모릅니다
일반적으로 아는것과 달리 백제는 강력한 고대국가였습니다
예식은 이름도 예식진으로 바꾸고 당나라에서 정 3품에 이르는 벼슬까지 하고 호위호식 했지만 그가 진정 행복했을까요?

전세계 한민족 커뮤니티의 중심 '한열사'
첫댓글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니까요.역사속의 정사가 반드시 진실은 아니지요.
저도 그 편을 몇일 전에서야 봤었습니다. '예식진' 역사에 배반자로 영원히 기억되겠지요 ㅇㅅㅇ
배신자 만들기는 중국의 특기죠...
공무원 시험 한국사에는 백제 의자왕이 사치와 향략에 빠져 망했다고 나와 있네요. 이것은 모두 거짓이죠. 승자인 신라에의한 역사 왜곡이죠.
제가 배운 공무원시험대비 한국사와는 다르네요. 의자왕은 상당히 카리스마가 있는 왕으로 중앙집권을 강화하려 중앙요직에 왕자들로 앉히자 그에 반발한 귀족들이 배신한 것으로 배웠습니다. 3000궁녀는 말도 안 되는 소리고요.
그래서 계백장군의 결사대가 꼭 자살부대였던 것만은 아니었던 거죠. 분명히 가능성은 있었습니다 ㅠ
허무하네요..
역사는 승자의 기록인데 신라가 동족 국가인 백제와 고구려를 기록 하는데도 승자의 입장에서 기록 하면서 약간의 왜곡이 되는데 이민족 국가로 한족의 국가인 당나라가 고구려와 백제를 기록 하는데 당나라의 입장에서 백제 보다 고구려는 더욱 고구려를 왜곡 하여 기록 할것이 뻔 합니다. 특히 연개소문에 관해서 치를떨정도로 두려운 존재 이니 더하면 더 했지 결코 덜 하지 않을겁니다.
연개소문은 귀신보다 두려운 존재였다죠..중국에선..
아이고~ 계속 삼국시대가 유지되는건... 최악의 시나리오 아닌가욤? 쩝
당시 보면 백제는 상업대국으로 평야지대에 도로망도 비교적 잘 정비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문제는 이 도로망이 군대의 빠른진격에도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죠. 이 때문에 국경선을 돌파하거나 영토에 바로 상륙을 할경우 바로 수도까지 빠르게 진격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그후 한국에서는 외적의 침입에 대비해서 도로망을 잘정비하지 않는 것이 국가 시책이 되어 버렸습니다. 고려만 해도 상당한 상업국가였는데도 해운에만 신경썼지 도로망은 신경쓰지 않았으니까요. 물론 고려의 상업세력은 명이 들어서고 해금정책이 생기자 치명타를 입은 것으로 보입니다. 조선이 건국할 수 있는 배경에는 상업귀족의 몰락이 있었다고 봅니다.
술 따르게 한 김춘추가 더 증오스럽습니다. 재수없는 김춘추.. 재수없는 문무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