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하고 사소한 사람들이 오늘도 우체국 유리문을 미는구나. 어쩌나, 고모여, 고모여 당고마기고모여, 스카치 테프 삐쭉한 소리 비명을 지르며, 빗방울같이 서걱거리는 저 유리문, 히말라야로 끝없이 편지를 띄우는, 히말라야 기러기같이 울고 선 저 유리문’
강은교 詩『샛골목 안 우체국』
시집〈미래슈퍼 옆 환상가게〉민음사
급한 성미라 기다리는 일에 익숙지 않다. 줄을 서느니 포기해버리는 게 속 편하다. 웨이팅이 있는 식당은 제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내어놓는다 해도 가지 않는다. 기다리는 택배 상자가 있으면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그런 내가 군말 없이 얌전해지는 장소가 우체국이다. 나는 우체국에 앉아 있기를 정말 좋아한다. 대기 순서가 길면 길수록 안도를 하며 기뻐한다. 번호표를 뽑고 내 차례가 오기까지 분주한 내 시선에 붙들린 우체국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온기 어린 일종의 평화가 있다고 믿는다. 성인도 들어갈 만큼 커다란 상자부터 손바닥만 한 엽서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사연이 잠시 머무르는 곳. ‘여기’에는 없는 ‘누군가’가 ‘거기’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 무게나 크기로는 경중을 따지기 어렵다. 그러니 우체국에 모여드는 것은 하나같이 소중하다.
우체국의 평화를 즐기게 된 건 지금으로부터 십수 년 전이다. 첫 직장 막내의 사무 중 하나는 매일같이 쌓이는 우편물을 해치우러 우체국에 가는 거였다. ‘할 일도 많아 힘든데.’ 투덜거리며 앉아 기다리고 있노라면, 세상과는 좀 다른 시간이 마음속으로 스며들어 나도 모르게 편안해지곤 했다.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절차가,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공평함이 나를 차분하게 만들어주었다.
내가 운영하고 있는 서점 가까이 우체국이 있다. 일에 지칠 때는 없는 일을 만들어서라도 우체국에 가려 한다. 여전히 무언가를 보내려 우체국을 찾는 사람들. 보내는 이도 받는 이도 보이지 않는 우편물로 가득한 가을 우체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