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남양주 성 요셉 수도원의 아름다운 메타쉐쿼이아 길에는 수도원 후원회 창립미사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장영식
남양주 성 요셉 수도원을 찾았습니다. 습하고 무더운 날씨였지만 수도원으로 들어서는 길은 아름다웠습니다. 아름드리 메타세쿼이아가 줄지어 서서 방문객을 따뜻하게 맞이했고, 곳곳에는 후원회원을 환영하는 ‘성 요셉의 배밭 친구들’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습니다. 수사님들은 7월 11일 성 베네딕도 축일을 맞아 열리는 후원회 창립미사를 준비하느라 각자의 소명에 따라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수도원의 아침기도와 미사는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7월 9일 아침미사에서 이 엘리야 신부님은 프란치스칸 영성의 핵심인 ‘무상성’(無償性)을 주제로 강론하셨습니다. 이날 복음(마태오 10, 7-15)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라는 말씀을 묵상하며 사랑은 계약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먼저 베푸시는 선물의 관계임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신부님은 먼저 “우리가 무엇을 거저 받았는지 기억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생명과 믿음, 용서와 사랑은 우리의 자격 때문에 얻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먼저 주신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다른 이에게 베푸는 사랑 또한 내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받은 사랑을 흘려보내는 일일 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며 무상성의 의미를 온전히 받아들일 때, 비로소 무소유와 가난의 참된 의미도 이해하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복음은 의무를 말하지 않습니다. 먼저 은총을 기억하게 합니다. 은총을 기억하는 사람의 삶에서는 계산보다 감사가, 거래보다 사랑이, 계약보다 무상성이 자라난다는 말씀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습니다.
남양주 성 요셉 수도원 후원회 창립 미사에는 400명이 넘는 신자들이 참석해서 성황을 이뤘다. ©장영식
무상성의 의미를 묵상하는 가운데 성 베네딕도 대축일을 맞았습니다. 수사님들은 자신에게 맡겨진 직분을 다시 새기며 손님맞이에 정성을 다했습니다. 200명 정도를 예상했던 후원회원 창립미사에는 400명이 넘는 신자들이 함께했습니다. 메타세쿼이아 길은 차량으로 가득 찼고, 성전은 물론 새롭게 마련된 테라스까지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성전에 들어오지 못한 이들은 단풍나무가 아름다운 테라스에 설치된 화면을 보며 미사에 함께했습니다.
지난 5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으로 취임한 고 이사악 신부님은 수도생활 26년을 돌아보며 “이제 한 가지 남은 소망이 있다면 수도서원에 끝까지 충실하며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 수사로 늙어가는 것입니다.”라며 담담하게 자신의 소망을 들려주셨습니다. 화려한 계획도, 큰 성공도 아니었습니다. 그 한마디에는 수도자의 삶이 무엇인지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신부님은 한 교수의 추도사에 등장하는 ‘물방울의 장력’이라는 표현을 소개하며 공동체를 이야기하셨습니다. “공동체는 손대면 금세 터질 것 같은 물방울처럼 연약합니다. 말 한마디, 눈빛 하나에도 서로 상처를 받을 만큼 우리는 모두 예민한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공동체에는 왕도가 없습니다. 서로를 이해하려는 인내와 하느님을 향한 믿음만이 공동체를 지탱하는 힘”이라는 말씀으로 들렸습니다.
고 이사악 신부님은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 역시 성 베네딕도께서 공동체 수도생활을 시작했던 시대와 마찬가지로 문명사적 전환기에 놓여 있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기후위기와 인공지능이라는 거대한 변화 앞에서 다음 세대에 전해야 할 베네딕도회의 영적 유산은 여전히 살아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신부님은 “친교와 우애가 꽃피는 공동체, 경청을 위한 침묵의 미덕, 모든 일을 하느님의 영광으로 돌리는 겸손, 육체노동의 신성함, 말씀에서 샘솟는 전례기도, 균형 잡힌 삶을 만드는 중용의 지혜, 그리고 모든 시간과 장소를 하느님을 만나는 자리로 만드는 일상의 영성 그것이 1500년 동안 이어져 온 베네딕도회의 불씨이며, 오늘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삶의 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남양주 성 요셉 수도원 원장 고 이사악 신부님은 후원회 창립 미사에서 "남양주 성 요셉 수도원은 하느님의 것입니다. 우리 수사들은 나무에 잠시 깃들었다가 떠나는 새와 같습니다. 여러분이 나무가 되고 숲이 되어 이 터를 함께 지켜 주십시오. 우리 모두 더불어 숲이 되어 이곳을 지켜냅시다."라며 조용하지만 깊은 부탁을 전했다. ©장영식
남양주 성 요셉 수도원 후원회 창립 미사에 참석한 신자들이 예수성심상 앞에서 함께 했다. ©장영식
미사의 마지막에서 신부님은 참석한 후원회원들에게 “남양주 성 요셉 수도원은 하느님의 것입니다. 우리 수사들은 나무에 잠시 깃들었다가 떠나는 새와 같습니다. 여러분이 나무가 되고 숲이 되어 이 터를 함께 지켜 주십시오. 우리 모두 더불어 숲이 되어 이곳을 지켜냅시다.”라며 조용하지만 깊은 부탁을 전했습니다. 그 말씀은 후원을 부탁하는 호소가 아니라 공동체를 함께 세워 달라는 초대처럼 들렸습니다.
1987년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의 분원으로 설립되어 2014년에 자립 수도원으로 승격된 남양주 성 요셉 수도원은 개원 이후 가장 큰 행사를 치렀습니다. 많은 이들이 후원회원으로 함께하며 수도원의 ‘배밭 친구’가 되었습니다. 성 요셉 수도원의 수사님들은 성 베네딕도의 가르침인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를 구호가 아니라 삶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기도로 하루를 마치며, 그사이에는 묵묵한 노동으로 하느님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수도원을 굽어보는 불암산의 거대한 바위는 계절이 바뀌고 시간이 흘러도 흔들림 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은 신앙의 반석이었던 베드로 사도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이번 성 요셉 수도원 방문에서 ‘기도하고 일하라’라는 성 베네딕도의 가르침은 수도원 안에서만 실천되는 삶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신앙의 길임을 다시금 마음에 새기게 되었습니다. 오늘 현재가 바로 하느님의 거룩한 선물임을 잊지 말 것을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남양주 성 요셉 수도원을 상징하는 수제 맥주와 소시지를 만들고 있는 이 엘리야 신부님이 갓 나온 따뜻한 소시지를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장영식
남양주 성 요셉 수도원 수사님들은 대부분 중장비들을 다뤘다. 수도원 부원장인 마르코 수사님은 1980년대에 독일에서 2년간 소시지를 만드는 과정을 배우고 오셨다. ©장영식
남양주 성 요셉 수도원의 수사님들은 성 베네딕도의 가르침인 "기도하고 일하라"라는 말씀을 구호가 아니라 삶으로 살아가고 있다. ©장영식
장영식(라파엘)
사진작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s://www.catholicnews.co.kr>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