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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도탁스 (DOTAX) 원문보기 글쓴이: 청주시 상당구
<사전 고지>
본 게시물은 블로그 주인이 아닌, 북한을 여행한 일본인이 작성한 기행문입니다.
이 글은 북한 여행 · 입국, 대북 접촉을 장려 · 권장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대한민국 국적자는 정부의 허가 없이 북한에 입국할 경우 처벌을 받습니다.
또한 블로그 주인은 북한의 체제 · 사상을 결코 옹호하지 않습니다.
물론 굳이 말 안 해도 재미만을 위해서 올린 거라는 건 다들 아시겠지만, 그래도 북한 관련 게시물을 잘못 올렸다가 검은 차량을 탄 회사원들이 저를 찾아오는 건 좀 무섭단 말입니다.
원문 - 北朝鮮に鉄道マニア34人で押しかけた話 / by twinrail
대학 졸업 여행을 계획하다 보니 트위터에서 알게 된 철도 매니아 33명을 북한에 데려가게 되었다.
북한의 전차에 흥분하는 일본 철도 매니아와, 일본 철도 매니아 때문에 곤혹하는 북한의 가이드 사이에서 일어나는 문화 교류의 기록.
북한에 간다, 거기에 철도가 있으니까
이걸 읽고 있는 당신은 북한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을까?
대부분이 "미사일" "핵 실험" "납치 문제"와 같은 키워드를 떠올리지 않을까? "여행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일부 철도 매니아들에게 북한만큼 매력적인 곳은 없다. "전세계가 주목하는 와중에 여전히 수수께끼 투성이인 철도"가 달리는 북한에게 호기심이 자극받지 않을 리가 없었다.
한 등산가가 "왜 에베레스트에 오르는가?" 라는 질문에 "에베레스트가 거기에 있으니까"라고 대답했다는 일화가 있다. 똑같이 나도 "왜 북한에 가는가?" 라고 묻는다면 "철도가 거기에 있으니까"라고 대답할 것이다.
때는 2015년, 대학 생활도 끝물에 접어든 나는 그런 연유로 트위터에서 알게 된 철도 매니아와 북한에 가기로 했다.
북한에 싸게 가는 방법
북한에 간 이야기를 하면 많은 사람들이 "애초에 북한에 여행을 갈 수 있긴 해?" 라는 의문점을 많이들 묻고는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능하다.
개인이 자유롭게 여행할 수는 없지만 여행 대리점을 경유하여 비자를 신청하면 가능하다. 다만 아무래도 여러 조건이 있고, 개중에는 "가이드와 전용 차량이 필수"라는 조항이 있다. 이 조항이 있기 때문에 북한 여행은 금전적인 허들이 높다. 중국 출발 평양 2일 관광을 하기만 해도 17만엔이나 든다.
그러나 대학생인 내게 그런 돈을 낼 여유는 없었다. 어떻게든 싸게 안 될까 싶어서 여행 대리점에 상담해본 결과, "사람 수를 더 늘리면 1인당 가격이 낮아질 겁니다"라는 조언을 받았다.
아무튼 사람을 모을 수밖에 없겠구나, 싶었다.
철도 매니아 방북단이 결성되었다
대학이나 주위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꺼내봤더니, 철도 매니아나 여행을 좋아하는 이들이 많았기에 인원이 나름대로 모였다. 그러나 가격을 좀 더 내리고 싶었던 나는 "북한 철도에 타지 않겠습니까?" 라는 공지를 트위터에 올렸다. 다만 당시에는 인원이 늘어봤자 두세 명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트윗은 예상을 넘어 퍼져나갔다. 동시에 참가 희망자도 점차 늘어나, 많을 때는 매일 한 명씩 늘어나는 일도 있었다.
최종적으로 32명이 모였다. 여행 대리점에 그 사실을 전하니, "같은 시기에 여행하고 싶은 사람이 한 명 있는데, 동행해도 될까요?" 라고 물어왔다. 소중한 고객을 철도 매니아들과 함께 여행하게 둬도 되는 건가 하는 의문을 씻을 수는 없었지만, 지금 사람이 한 명 늘어난대서 달라질 건 없기에 흔쾌히 승낙했다.
아무튼 이걸로 33명, 나도 포함하면 총 34명이 모였다. 사실상 "방북단"이라고 불러도 될 규모 같았다. 여행 대금은 처음에 예상한 17만엔에서 무려 9만5천엔까지 할인되었다. 45% 할인이라면 33명을 모은 보람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정확히 말하면 34명이 모두 철도 매니아인 것은 아니었다. 때문에 이 기사의 제목에는 거짓말이 약간 섞여 있다. 그렇지만 "북한 철도에 타지 않겠습니까?" 라고 공지해서 모집한 여행에 참가했으니, 철도에 조금이라도 흥미는 있을 거라고 간주하기로 한다.
이렇게 2016년 3월, 북한 여행을 결행하는 날이 되었다.
공항 직원에게 심문을 당했다
여행 당일 아침에 공항으로 향해, 트위터에서 참가를 희망한 사람들과 합류했다. 첫 인사를 마치고, 항공 회사 카운터로 향했다. 여기까지는 지극히 평범한 오프라인 여행 모임이었다.
그러나 건너편에서 세관 직원이 다가왔다. 분명 무언가 조사하려고 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어디로 가시나요?" 직원이 물었다.
"중국이요"라고 답했다. 거짓말은 아니다.
"그 다음에는요?" 직원이 거듭 질문했다. 완전히 파악한 모양이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요"라고 답했다.
"그럼 이쪽으로 오시죠"라고 직원이 말함과 동시에, 별도의 방으로 안내받았다.
외무성이 제공하는 해외 안전 정보에서는, 각국 각 지역을 위험도별로 분류한다. 거기에는 지금도 세계에서 유일하게 북한만이, 저위험도 고위험도 아닌 "여행 자제"라는 특수한 카테고리로 분류되어 있다. 세관 직원의 대응은 몹시도 정당한 것이리라. 다만, 북한이 여행 자제 대상에 지정된 것은 2016년 2월, 여행의 불과 1달 전이었다. 여행을 계획할 당시에는 자제 대상이 아니었다는 말만 남기고 싶다.
결국엔 짐을 체크할 뿐, 출국 심사와 탑승은 정상적으로 이루어졌다. 입국을 막지는 않을까 직원에게 물어보니 "여행의 자유가 있으니까요"라고 대답했다. 어디까지나 "자제"를 부탁할 뿐, 금지하는 건 아니라는 말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북한에 가는 걸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봤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인터넷에 올리셨잖아요"
세관이 트윗을 발견한 건지, 아니면 누가 세관에 신고한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 다만 북한에 갈 때는 트위터로 사람을 모집하지 않는 게 낫다는 것만은 잘 알았다.
희귀한 북한의 티켓을 입수했다
비행기로 일본에서 중국으로 비행하여, 거기에서 야간열차로 북한 국경에 있는 단둥으로 향했다.
다음날 아침, 단둥역에서 참가자 34명 전원이 모였다. 그 광경은 마치 수학여행 날 아침의 집합 같았다. 일부러 여행 대리점 사장이 직접 인사를 하러 와서, 평양행 열차 티켓을 건네주었다.
무려 34명이나 있으니, 열차 티켓 표지에는 "단체" 스탬프가 찍혀 있었다. 실로 진귀한 북한의 철도 티켓 중에서도, 상당히 희귀한 티켓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게, 본래라면 외국인 관광객은 등급이 높은 2층 침대나 4인 1실이 할당된다고 하는데, 인원 수가 많기 때문에 특별히 가장 싼 3층 침대로 배정해준 모양이었다. 34명이나 있으니, 이런 부분에서도 득을 보는구나 싶었다.
세관 직원이 열차에서 내릴 곳을 놓쳤다
열차는 단둥역을 출발하여, 국경을 흐르는 강을 건너 북한 최초의 역인 신의주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자 세관 직원들이 열차에 올라타 수하물 검사를 시작했다. 검사는 나름 엄격했고, 가방의 내용물을 전부 개봉했다. 스마트폰이나 카메라, PC 안의 사진까지도 확인을 받았다.
모든 승객에 대한 검사가 끝나자 천천히 평양을 향해 출발했다. 차창으로 보이는 신의주의 거리는 바로 옆의 단둥과 비교하면 딴 세상이었다. 슬슬 북한에 왔다는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초조한 듯 전화를 하는 세관 직원이 있었다. 나중에 다른 멤버에게 물어보니, 우리가 스마트폰이나 카메라, PC를 대량으로 들고 탄 탓에 검사에 시간이 상당히 소요되어 직원 중 한 명이 내리지 못한 채 열차가 출발해 버렸다고 한다. 그 뒤에 어떻게 돌아갔는지 걱정되어 견딜 수가 없었다.
북한의 대지에서 열차가 고장났다
머지않아 열차가 역에 정차했다. 선로가 단순하니까 오는 차량을 먼저 보내느라 정차한 것이려니,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건너편에서 오던 열차가 통과해도 열차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어째서일지 궁금한 마음을 품고 차창을 빤히 바라보자, 기관차 한 대가 통과했다.
기관차에는 깃발을 든 직원과, 기관실을 들여다보는 직원 두 명이 타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일까? 종합적인 상황을 고려하여 떠오른 가능성은 단 하나뿐이었다.
이 열차의 기관차가 고장나서 어딘가로 사라진 것이다.
과연 앞으로 제대로 평양에 도착할 수 있을까, 나는 신경쓰여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러나 멤버들은 내 불안을 뒤로 하고 대낮부터 맥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트위터에서 만난 생면부지의 34명은 어느샌가 친해졌다.
운전을 멈춘 지 2시간 이상이 지나자, 어디선가 기관차 소리가 가까워졌다. 드디어 대체할 기관차가 온 모양이었다. 잠시 기다리자 기관차가 연결되어, 열차는 다시 평양을 향해 출발했다.
북한 철도의 명예를 위해 적어두자면, 가이드의 말로는 이런 고장은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북한에게 있어 해외로 통하는 거의 유일한 열차라서, 평소에도 점검에 공을 들일 터이다. 정말 실제로는 드문 일을 겪은 것일까?
노스 코리안 조크에 빵 터졌다
평양역에 도착하여, 승강장에서 여행사 가이드와 합류했다. 처음에도 언급했듯, 북한 여행에는 가이드와 전용 차량이 필수다. 통상적으로는 가이드 두 명이 담당한다고 했으나, 이번에는 34명이나 되니 3명으로 늘었다. 게다가 운전수도 카메라맨도 있었기에 여행사 직원은 총 5명이 되었다. 전용 차량도 원래라면 소형 버스라고 하지만, 이번에는 대형 버스가 왔다.
버스에 타자 가이드의 인사가 시작되고, 입을 열고 첫 마디에 이런 말이 나왔다.
"일본에서 단숨에 34명이 오다니 10년만이네요. 나도 모르는 새에 국교가 회복됐었나 싶었습니다"
갑작스러운 노스 코리안 조크에 차내의 승객들은 웃음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실제로 조선학교의 수학여행 등을 제외하면 일본에서 이런 대규모 단체 여행객이 오는 일은 실로 간만의 일이라고 했다.
참고로 북한을 방문하는 일본인 관광객은 상당히 적고, 해에 따라 다르지만 연간 300명 정도라고 한다. 이 해의 일본인 관광객 수의 10%는 우리 철도 매니아들이라는 말이다.
일본 철도 매니아 때문에 가이드가 곤혹했다
호텔에 도착하여 체크인을 한 뒤, 가이드가 밤의 평양역 앞에 데려가줬다.
역앞에는 때때로 노면전차가 다녔다. 이 광경을 보고 철도 매니아들은 환희했고, 대형 렌즈나 삼각대를 꺼내서 사진을 찍는 멤버도 있었다.
지금껏 본 적 없는 탈것에 우리들이 놀란 와중에 가이드도 우리만큼이나 놀랐다. "어째서 여러분께서는 전차를 보고 그렇게나 흥분하시는 건가요! ?" 라며 곤혹감을 감출 수 없는 모양새였지만, 그런 의문은 당연한 것이다. 일단 "우린 인터넷을 통해 모인 철도 매니아 단체라서……"라고 설명하자 어떻게 이해는 해주었다.
북한 군인과 친해졌다
다음날 아침, 버스에 타서 한국과의 국경선이 있는 판문점이라는 장소에 향했다. 원래 경계선 주변의 수 킬로미터는 남북한 둘 다 민간인이 진입할 수 없다. 다만, 판문점만은 유일하게 남북한 둘 다 관광 목적으로 방문할 수 있다.
판문점에 있는 사적을 견학한 뒤, 한국과 접한 건물의 전망대에 올라가 남쪽의 경치를 바라보았다. 뉴스에서 본 적 있는 사람도 있을 법한 바로 그 장소다.
판문점에선 험악한 얼굴을 한 병사가 안내원 역할을 맡았다. 북한 뉴스 방송처럼 강한 어조로 말하며, 의도적으로 긴박감을 연출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설명이 끝나자 멤버 중 한 명이 담배갑을 들이밀었다. 실은 사전에 여행사에서 "판문점 병사에게 팁으로 담배를 주면 좋습니다"라는 조언을 들은 바 있다. 담배는 북한 남성들이 가장 좋아하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멤버 한 명만이 아닌 몇 명이나 담배를 들고 왔기 때문에, 병사의 손에는 점차 담배가 산처럼 쌓이고 있었다. 군복 주머니에도 담배가 채워지자 다 들어가지도 않아서 빵빵해졌다. 처음의 험악한 얼굴은 어느샌가 곤란한 표정으로 바뀌고 마지막으로는 만면에 가득한 미소로 변했다.
마지막으로 안내원 담당 병사와 기념사진을 찍었다. 마치 수학여행 단체사진 같았다.
이렇게 아무 것도 모른다는 표정을 짓고 있지만, 주머니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담배가 꽉꽉 들어차 있었다.
레스토랑에서 특별 서비스를 받았다
해외여행의 즐거움이라면 음식 아닐까. 사실 북한 여행의 식비는 전부 여행 대금에 포함되어 있다. 매번 꽤나 격식을 차린 레스토랑으로 안내를 받고, 다 먹지도 못할 만큼의 요리와 무제한 맥주가 제공된다. 맛도 일본인 입맛에 맞춘지라 상당히 맛있다.
개중에도 판문점 근처의 도시, 개성에서 먹은 점심은 특히나 호화로웠다. 반상기라고 불리는 궁중 요리로 개성의 명물 요리다.
레스토랑에 들어와 방으로 안내받자, 테이블 위엔 온통 황금빛 그릇이 깔려 있었고, 방의 한편은 화려한 파스텔톤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마치 지금부터 결혼식이라도 열릴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반상기의 메인은 흰밥과 스프라는 단순한 구성이었지만, 밑반찬이 아주 많았다. 반찬 하나하나가 고급 재료와 정성스런 조리를 통해 만들어졌고 아주 고급스러운 맛이었다.
참고로 다음날 점심 때는 "많은 일본인이 와주셨으니 특별 서비스입니다"라면서 디저트로 쇼트케이크가 나왔다. 역시 34명씩 모아서 북한에 가니 이득이 많았다.
평양 지하철의 최신 차량에 탔다
오후에 판문점에서 평양으로 돌아와 지하철을 타게 되었다. 전용 차량이 있으니 원래라면 지하철을 탈 필요는 없지만, 지하철 자체가 평양의 명물이라서 정석적인 관광 코스로 짜여 있다.
지하철 승강장으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는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길었다. 높이는 60~70m 정도, 길이는 100~110m 정도였다. 너무 길어서 에스컬레이터 계단에 앉는 사람도 있었다.
에스컬레이터를 내리자 휘황찬란한 승강장을 마주했다. 이 장대한 역사야말로 지하철이 평양 관광의 핵심이 되는 이유이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한 몇 개월 전, 평양 지하철은 개업 이래 43년만에 새로운 차량이 등장했다. 꼭 타보고 싶었지만 많은 전차가 다니는 와중에 단 한 대밖에 주행하지 않는다고 했다.
15분 정도 기다려 드디어 신형 차량을 마주했다. 주행을 시작한 지 이미 수 개월은 지났을 터이나,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전차에 타자, 저녁 시간대 러시아워도 낀 탓에 내부는 몹시도 혼란스러웠다. 문 가장자리에 있는 TV 화면에서는 애니메이션이 방송되고 아이들이 줄곧 바라보고 있었다.
참고로 이때 차내의 풍경은 카메라맨이 촬영했는데, 어째선지 훗날 북한의 공식 관광 PV로 사용되고 있었다. 지하철에서 환장하는 매니아들의 모습을 공식 관광 PV로 쓰려고 한 담당자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한 것일까?
평양 버스와 전차를 전세 내다
다음날, 오전 중에 알짜배기 관광 장소를 둘러보고 오후에는 트롤리 버스와 노면 전차를 타게 되었다.
사실 지하철이 정석 코스가 된 한편, 트롤리 버스와 노면전차는 타고 싶다고 해도 보통 거절당하고 만다. "시민과 함께 탈 수는 없다"는 게 그 이유였지만, 지하철은 러시아워였는데도 탔었기 때문에 사실 잘 모르겠다. 아무튼 "한 대를 전세 내지 않는 이상 못 탄다"고 했지만, 상당히 고액이라서 쉽게 탈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나 이번엔 34명이나 있다. 한 대 쯤 전세 내도 1인당 비용은 그리 비싸지 않다. 33명을 모은 메리트가 가장 빛난 순간이었다.
출발 지점을 향해서 트롤리 버스에 승차했다. 우리 이외에도 모르는 사람들이 타는가 싶었는데, 무려 여행사 일본 부서의 부장님이 일부러 인사까지 하러 온 듯했다. 아무래도 일본인이 한 번에 34명이나 온 것도 모자라서 트롤리 버스까지 전세를 내는 게 꽤나 신기했던 모양이다.
잠시 버스에 타서 차창 밖으로 비치는 평양을 즐긴 뒤엔, 노면전차로 환승하게 되었다. 체코산 차량이라서 동유럽을 여행해본 사람이라면 본 적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차내에는 행선지가 적힌 보드가 꽂혀 있었는데, 멤버 중 한 명이 그걸 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자 곧바로 기념사진 모임이 열렸다. 일반 차량에 탔다면 이런 이벤트를 즐길 수는 없었을 터라서 전세를 내길 잘했을지도 모른다.
북한의 노래방에서 열창하다
북한에서의 마지막 밤을 맞이했다. 나는 철도 매니아지만, 북한 음악 매니아이기도 하다. 북한에서도 노래방을 이용할 수 있다고 들었기에 꼭 가보고 싶었다. 멤버들에게 말을 꺼내봤더니, 거의 대부분이 대학생쯤 되는 7명이 모였다.
숙박하는 호텔에도 가라오케 바가 있었지만, 이미 중국인 가족 여행객이 먼저 와 있었다. 가이드는 교대로 노래를 불러도 된다고 했지만 영 기분이 내키지 않았다. 매니아가 열창하느라 가족의 즐겁고 단란한 한순간을 망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근처 호텔의 노래방으로 가기로 했다. 택시를 타고 호텔에 도착하자 여성 점원이 우리를 안내했다. 일본의 가라오케 박스와는 다르게, 넓찍한 식당 단체실 같은 방이었다.
노래방의 카탈로그를 넘기며 곡을 찾아보고 있을 때 가이드가 "일본 곡은 별로 없는데요……"라며 미안하다는 듯 말했다. 그러나 우리는 "북한 노래를 부르러 왔으니까 괜찮습니다."라고 답하고서는 곡 번호를 입력했다.
*역주*
본래 여기엔 북한 군가 "공격전이다"의 유튜브 영상이 들어갑니다만,
제가 이걸 그대로 공유했다가는 처벌을 받을 수 있기에 삭제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듣는 건 문제가 없는 모양이니 알아서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공격전이다"를 불렀다. 일본 인터넷 일부에서도 유명한 곡이다. 진부할 수도 있겠지만 이걸로 방 안은 단숨에 달아올랐다.
그밖에도 차례차례 북한 곡을 입력했다. 북한 음악 매니아로서 본고장 평양에서 마음껏 노래하는 것만큼 기쁜 일은 없다. 대학생들의 노래방답게 8명으로도 분위기는 후끈후끈했다.
한편 가이드는 "북한 노래를 이렇게나 부르는 일본인은 처음입니다……"라며 아연실색한 모양이었다. 북한에서 노래방에 가서 노는 일본인은 적진 않은 모양이지만 대부분이 일본 노래만 부르는 듯했고, 북한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드물었다고 한다.
또 한 명 아연실색한 사람이 있었다. 아까 우리를 안내해준 여성 점원이었다. 사실은 이 점원은 노래방에 동반하여 노래를 부르고 같이 듀엣을 맞춰주는 역할을 하는데, 처음부터 방 안에 있었는데도 우리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 우리끼리만 흥분한 상태였다.
점원이 너무 심심해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에게 한 곡 보여주기로 했다. 중국 가요곡 중에서 중국인 관광객들과 동반할 때 자주 부르는 곡이라고 한다. 노래 실력은 무척이나 뛰어났다. 북한 노래방 점원은 음악대학 등지에서 가창 교육을 받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밤도 깊고 노래방도 슬슬 끝 무렵에 접어들었기에, 마지막은 북한 국가를 부르며 마무리하기로 했다.
*역주*
여기에도 북한 애국가 영상이 들어갑니다.
전 법이 무섭기 때문에 사리겠습니다.
노래를 끝낸 뒤 가이드는 "무슨 행사인가 했습니다……"라고 중얼댔고, 점원은 변함없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 8명에게 있어 인생에서 가장 흥분되는 노래방이었음은 틀림없다.
중국이 "자유로운 세상"이었다
다음날 아침, 슬슬 북한을 떠날 때가 왔다. 가이드와 이별하여 단둥행 열차에 올라탔다. 가이드는 열차가 출발하기 직전까지 우리를 배웅했다.
평양을 나간 뒤로는 줄곧 잤다. 차창 밖의 풍경은 여기에 올 때와 똑같았고, 요 사흘 동안의 피로가 몰려왔기 때문이다.
열차가 신의주에 도착하자, 입국했을 때처럼 세관 직원이 화물이나 사진을 검사했다. 그렇지만 정차 시간은 상당히 길었고, 출국 심사가 끝난 뒤로 꽤나 긴 시간 동안을 꾸역꾸역 기다렸다.
열차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중국과 북한의 국경을 흐르는 강을 건너 단둥의 풍경이 보인 순간, 어딘가에서 박수 소리가 쏟아졌다. 스마트폰이 인터넷에 연결되어, 요 나흘 동안 쌓일 대로 쌓인 알림이 단숨에 몰려왔다. 현세로 돌아왔다는 표현이 가장 들어맞을지도 모르겠다.
중국은 여러 의미로 자유와는 동떨어진 나라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중국에 입국하고서 처음으로 "자유로운 세상으로 돌아왔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열차는 머지않아 단둥역에 도착했다. 역을 나가자 여행 대리점 직원과, 마침 중국을 여행하고 있던 친구들이 날 맞이하러 와주었다. 이렇게 철도 매니아와 매니아는 아닌 사람, 내지는 여러 분야의 매니아 등 다양한 멤버 34명과 함께한 북한 여행을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
일본에 귀국한 후, 공항에서 "어디에서 귀국하셨나요?" 라는 심문을 받지는 않았다. 다만, 내 짐은 세관에서 아주 정성스럽게 검사받은 듯했다.
북한에 철도 매니아 34명이 들이닥치다
북한은 여전히 외무성에서 여행을 "자제"하도록 요청하고 있다. 나 또한 북한 여행을 적극적으로 추천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좀처럼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북한의 철도 사진을 모아 이렇게 전세계에 보여줄 수 있었다. 이걸로 여행의 본래 목적은 충분히 이룬 것 같다.
동시에 "트위터에서 만난 33명을 북한에 데려간다"는 건 상당히 특이한 경험이었다. 34명이나 되는 인원으로 떠나는 여행은 예상보다 재미있고,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여행이었다. 처음엔 생면부지의 남인 멤버들이었지만 이 여행을 통해서 오랜 친구처럼 친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본에서 보면 외국이라기보단 "이세계"와도 같은 북한에 가서 그 분위기를 직접 느낄 수 있는 경험은 귀중했다. 인터넷도 스마트폰도 못 쓰는 장소였지만 24시간 내내 마주하는 모든 것이 재미있어서 지루할 틈조차 없었다.
다만 의외로 북한 가이드에게도 일본 철도 매니아는 마찬가지로 "이세계"의 존재인 모양이었다. 훗날 여행 대리점 직원의 말을 들어보니, 우리가 평양 여행사 내에서 화제가 된 모양이었다.
"우리가 심연을 들여다볼 때 심연도 우리를 바라본다"는 말은 이런 게 아닐까 싶었다.
첫댓글 헉 살해안당했나 흥미진진 선댓후감상
나도 가고 싶다 궁금하네
다른나라도 아니고 일본이라...
아니 저사람은 북한노래매니아는 어쩌다가된거야????? 북한노래를 많이들을수있는 루트가 가능한가?
되게 흥미로운 글이다ㅋㅋㅋㅋㅋㅋㅋ
와 진짜 흥미돋이야ㅋㅋ공격전이다 저 노래 넘 궁금해서 들어봄ㅋㅋㅋㅋㅋㅋㅁㅊ
이거 다 읽어본다!!!!!!
신기하다
이래서 민간 교류가 중요한 것 같아...
철도 덕후들은 정말 대단하닼ㅋㅋㅋㅋ
와 그냥 존나한국이잖아 밥 보고 깜짝놀람
잼따
금영은 어떻게 북한에도 노래방 기계를 팔수있지??? 진짜 졸라 흥미돋 관광으로 한번쯤 가보고싶다 밥도 궁금하고 평양냉면도 궁금해 저기 관광 개방하면 한국인들 관광 진짜많이갈텐데 ...
노래방기기 익숙해서 봤더니 금영 ㅋㅋㅋㅋㅋㅋ 근데 좀 부럽다. 일본인도 갈 수 있는데 한국인은 못 가는 여행지.. 판문점 사진 보니까 기분 졸라 이상함
와 존나 흥미돋ㅋㅋㅋㅋ 재밌어 ㅋㅋㅋ
금영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존나신기하닼ㅋㅋㅋㅋㅋㅋ남한거는 무조건 아웃일줄 알았는데 ㅋㅋㅋㅋㅋ아니근데 북한노래는 어케 아는거임..?
정독했다 나도 가보고 싶네,,ㅋㅋㅋㅋ
아 ㅅㅂ ㅋㅋㅋㅋ 우리가 심연을 들여다볼때 심연도 우리를 들여다본대 ㅋㅋㅋㅋㅋ
와 ㅋㅋㅋㅋㅋ 나도 가보고싶다
북한노래 아는것도 어이없넼ㅋㅋㅋㅋ
진짜 본토 오타쿠들은 다르구만ㅋㅋㅋㅋㅋㅋㅋㅋㅋ무슨 북한가요까지 알아 ㅋㅋㅋㅋㅋ
부럽다 궁금해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