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오늘 제가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한 사람의 절규에서 시작됩니다.
중상해를 입은 피해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가해자를 방조한 국가 공무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당연한 권리였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
1심 판사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재판 진행을 "불가능한 것"으로 몰아갔습니다. 이유도 명확하지 않은 채 원고의 요구를 거부했습니다. 항소했습니다. 2심 판사는 핵심 증거를 의도적으로 누락했습니다. 이치에 맞지 않는 논리로 또다시 패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대법원은 어땠을까요? 심리불속행기각. 이유조차 밝히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오판이 아닙니다. 이것은 시스템의 배신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이것은 당신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피해자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헌법재판소에 갔습니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편향적이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어땠을까요? "삼권분립의 원칙"을 들먹이며 발을 뺐습니다. "법은 법원의 판결로 하는 것"이라며 재심을 권고했습니다.
언론에 호소했습니다. 침묵이 돌아왔습니다. 향후 있을지 모를 송사에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서였죠. 시민단체는요? 공익변호사 그룹은요? 국회 청원은요? 국민권익위원회는요? 모두 같은 이유로 외면했습니다.
모든 제도가 서로를 보호하는 카르텔처럼 작동할 때, 권력 없는 개인은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절망은 끝이 아닙니다. 절망은 새로운 시작의 신호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새로운 현상이 아닙니다. 당나라 시인 두보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주문주육취, 로유동사골(朱門酒肉臭 路有凍死骨)" 붉은 대문 안에서는 술과 고기가 썩어가고, 길거리에는 얼어죽은 사람의 뼈가 굴러다닙니다.
1,200년 전 중국에서도, 지금 이 땅에서도, 권력자는 호의호식하고 약자는 길거리에서 죽어갑니다. 국제사회에 알리면 어떻게 될까요? 힘 있는 기관이나 개인이 도와줄까요? 그들도 결국 자신의 이익을 계산합니다. 확고한 진리와 정의감이 없다면, 그들은 영향력 있는 자를 분별하여 힘 있는 측의 편에 설 것입니다.
이것이 동서고금을 관통하는 인간의 본성입니다. 권력자들은 손바닥 뒤집듯 해석을 바꿉니다. 자신의 이익에 따라서 말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이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인간에게는 또 다른 본성이 있습니다. 정의를 향한 갈망입니다.
성경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려는 하나님께 아브라함이 간청합니다. "의인 오십 명이 있어도 멸하시렵니까?" 결국 의인 열 명만 있어도 멸망시키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냅니다.
의인 한 명이라도 있으면 세상은 멸망하지 않습니다.
인류의 평화, 자연의 평화, 우주의 평화를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합니까? 정의와 진리를 바로 세우는 강한 힘을 가진 자가 필요합니다. 그가 나타나지 않으면, 그 끝은 희망적이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우리는 그저 기다리기만 할 필요가 없습니다.
공자는, 맹자는, 소크라테스는, 예수는 교육을 강조했습니다. 다음 세대를 통해 그러한 인물을 길러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들은 알았습니다. 변화는 기다림이 아니라 준비에서 온다는 것을.
호사가들은 말합니다. 500년에 한 번씩 위대한 인물이 등장한다고. 그때마다 부조리한 것이 하나씩 제거된다고. 노예제는 수천 년 지속되었습니다. 링컨과 윌버포스가 나타나기까지 말입니다. 여성은 수천 년간 참정권이 없었습니다. 서프러제트 운동이 일어나기까지 말입니다. 식민지배는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간디와 만델라가 나타나기까지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역사는 발전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저절로 온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의 피와 땀과 눈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을 키워낸 무명의 교육자들이 있었습니다.
여러분께 묻습니다. 우리는 500년을 기다릴 것입니까? 아니면 오늘, 그 인물을 키우기 시작할 것입니까?
"하지만 나에게는 역량이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분이 계실 겁니다. 여러분, 제 말을 들어주십시오. 당신에게는 가장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부당함을 견딜 수 없는 마음. 이것은 도덕적 감수성입니다. 진실을 향한 갈증. 이것은 지혜를 향한 열망입니다. 다음 세대를 위한 책임감. 이것은 사랑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육자의 자격입니다. 당신은 이미 자격을 갖추었습니다.
역사를 보십시오. 위대한 인물은 홀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간디에게는 수많은 비폭력 저항 운동가들이 있었습니다. 만델라에게는 아프리카민족회의(ANC)와 수천 명의 동지들이 있었습니다. 킹 목사에게는 흑인 교회 공동체와 시민권 운동이 있었습니다.
그들 뒤에는 이름 없는 어머니들이 있었습니다. 자녀에게 정의를 가르친 아버지들이 있었습니다. 용기를 북돋운 스승들이 있었습니다. 씨앗을 뿌린 활동가들이 있었습니다.
당신도 그 중 한 명이 될 수 있습니다. 토양을 만드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정의에 대한 갈증을 일깨우는 질문을 던지고, 비판적 사고를 가르치고, 용기의 본보기가 되는 것입니다.
씨앗을 뿌리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10명에게 영향을 주면, 그 중 1명이 100명에게 영향을 줍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누군가의 소명이 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증언이 천 명의 각성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연결고리가 될 수 있습니다.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을 이어주고, 작은 불씨들을 모아 큰 불로 만드는 것입니다. 고립된 개인들이 연대하면 움직일 수 없던 것들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첫째, 기록하십시오. 당신의 사건을 시간순으로 정리하십시오. 증거를, 판결문을, 대응 과정을 아카이브로 만드십시오. 유사 사례들을 수집하고 분석하십시오. 사법부 부조리의 패턴을 데이터베이스화하십시오.
이것은 미래의 개혁자들에게 무기가 됩니다. 지금은 무력해 보일지 몰라도, 언젠가 누군가가 이 자료를 발견할 것입니다. 그리고 말할 것입니다. "이미 누군가 길을 닦아놓았구나."
둘째, 교육 컨텐츠를 만드십시오. 당신의 경험을 사례 연구로 정리하십시오. 사법 시스템의 맹점을 교육 자료로 만드십시오. 블로그를 쓰고, 유튜브를 만들고, 책을 출간하십시오.
청소년용 교재를 만드십시오. 대학생용 토론 자료를 만드십시오. 시민 교양서를 만드십시오. 한 명이라도 당신의 글을 읽고 생각이 바뀐다면, 그것은 변화의 시작입니다.
셋째, 네트워크를 형성하십시오. 같은 피해를 입은 사람들과 연대하십시오. 법학도, 사회학자, 활동가들과 협력하십시오. 온라인 커뮤니티를 구축하십시오. 고립은 무력함을 낳지만, 연대는 힘을 낳습니다.
넷째, 다음 세대를 교육하십시오. 청소년 대상 강연을 하십시오. 대학생들과 워크숍을 여십시오. 법학전문대학원생들과 토론 모임을 만드십시오. "정의란 무엇인가"를 함께 고민하는 공간을 만드십시오.
지금 당장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씨앗은 땅속에서 싹을 틔웁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자라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500년을 기다릴 수 없다면, 우리는 500명을 키워야 합니다. 그 중 하나가 위대한 인물이 될 것입니다. 아니, 500명이 함께 움직이면 한 명의 영웅보다 강력합니다.
여러분, 당신은 역량이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당신에게는 가장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눈. 역사적 통찰. 그리고 절망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실천 의지.
당신은 이미 명확한 진단을 내렸습니다. 문제의 본질을 개인의 실수가 아닌 시스템의 문제로 인식했습니다. 이것은 지혜입니다.
당신은 이미 역사적 통찰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보의 시를, 성경의 지혜를, 호사가들의 통찰을 현재에 연결시켰습니다. 이것은 깊은 이해입니다.
당신은 이미 결단했습니다. "기다릴 수 없다면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용기입니다.
지혜와 이해와 용기. 이것이 변화를 만드는 세 가지 요소입니다. 당신은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부터 시작하십시오. 아카이브를 구축하십시오. 당신의 사건을 시간순으로 정리하고, 법적 쟁점을 분석하고, 시각화하십시오. 교육 자료로 활용 가능한 형태로 가공하십시오.
교육 커리큘럼을 개발하십시오. "사법 정의와 시민의 권리" 강의안을 만드십시오. 사례 중심 토론 교재를 만드십시오. 청소년용과 성인용 버전을 만드십시오.
온라인 플랫폼을 기획하십시오. 유사 피해자 증언을 수집하는 사이트를 만드십시오. 사법 개혁을 위한 지식 공유 공간을 만드십시오. 법조계 부조리 데이터베이스를 만드십시오.
출판을 기획하십시오. 당신의 경험을 책으로 만드십시오. 증언록으로, 분석서로, 교육서로 만드십시오. 크라우드펀딩으로 출간하십시오. 대학 교재나 시민 교양서로 활용하십시오.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십시오. 크든 작든, 보이든 보이지 않든, 모든 노력은 의미가 있습니다.
두보는 붉은 대문 안의 부조리를 노래했습니다. 그의 시는 천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에게 울림을 줍니다. 성경은 의인 한 명의 가치를 말했습니다. 그 말씀은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희망을 줍니다. 호사가들은 500년에 한 번 위대한 인물이 온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압니다.
변화는 저절로 오지 않습니다. 누군가 시작해야 합니다.
노예제 폐지도, 여성 참정권도, 민주화도 모두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소수의 의인들이 시작했고, 씨앗을 뿌렸고, 결국 세상을 바꾸었습니다.
그들은 생전에 보상받지 못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감옥에서 죽었고, 비난받았고, 잊혔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뿌린 씨앗은 오늘 우리가 누리는 자유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그 씨앗을 뿌릴 수 있습니다. 당신도 뿌릴 수 있습니다.
500년을 기다리지 마십시오. 500명을 키우십시오. 그 중 당신이 첫 번째가 되십시오.
오늘부터 시작하십시오. 기록하고, 교육하고, 연대하고, 다음 세대를 키우십시오.
당신의 고통은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의 절규는 메아리가 되어 돌아올 것입니다. 당신의 씨앗은 언젠가 숲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가 함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지성인의 성찰]
아무리 방대한 지식과 세련된 언어를 갖추었더라도 눈앞의 부정과 부조리에 침묵하는 순간 그것은 지성이 아니라 비겁함이며, 우리는 그 구조를 떠받치는 공범이 됩니다. 지성은 정보의 축적이 아니라 옳지 않은 것 앞에서 불편함을 느끼고 외면하지 않는 태도에서 드러나며, 정의를 말하는 언어는 실천과 만날 때에만 힘을 얻습니다. 고통을 보면서도 안전한 자리에 머무는 지식은 살아 있는 지혜가 아니라 박제된 형식에 불과합니다. 진정한 지성인과 지도자는 생각에 머무르지 않고 책임을 선택하며, 스스로 먼저 불의 앞에 서는 사람입니다. 결국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화려한 문장이 아니라, 양심이 이끈 작은 행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