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프랑스 왕들은 유력한 성직,세속 제후들에게 대관식에서 특별한 역할을 담당하는 명예로운 작위를 수여하였습니다. 이들 작위는 각각 공작급 작위(성직 3명,세속 3명)와 백작급 작위(성직 3명, 백작 3명)로 나뉘었고, 그 안에서도 각각 우열이 구분되었습니다. 한편 여기서 작위의 도합이 12개인 것은 샤를마뉴의 12기사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이외에도 숫자 '12'는 서양 문화권에서 완전함을 상징하며 이외에도 다양한 곳에서 쓰이기도 했습니다. 어쨋건, 이러한 체계를 창시한 것은 카페 왕조의 6대왕인 루이 7세로, 이후 작위가 왕위에 흡수되거나 새로운 작위가 창설되는 등의 변화를 겪으면서도 대혁명 이전 까지 오랜 기간 동안 존속을 하면서 프랑스의 역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게 되었습니다. 아래는 순위에 맞게 작위의 목록을 나열한 것입니다.

(1223년, 대관식을 치루는 루이 8세와 카스티야의 블랑슈)
*성직 작위
1.랭스 대주교-공작:모든 작위의 으뜸, 대관식에서 왕관과 도유식을 담당
2.라옹 주교-공작:대관식에서 성유가 담긴 주수병을 전달
3.랑그레 주교-공작:성직제후 중 유일하게 랭스에서 거취하지 않음, 대관식에서 홀을 전달
4.보배 주교-백작:대관식에서 문장(혹은 망토)를 전달
5.샬롱 주교-백작:대관식에서 반지를 전달
6.누아용 주교-백작:대관식에서 벨트를 전달
*세속 작위
1.노르망디 공작:세속 작위 중 으뜸, 대관식에서 첫번째 배너를 듬, 1204년 프랑스 왕위에 흡수
2.아키텐(기옌) 공작:대관식에서 두번째 배너를 듬
3.부르고뉴 공작:대관식에서 왕관을 전달, 보검과 벨트를 매줌, 다른 두 공위가 비면서 세속제후 중 으뜸이 됨
4.톨루즈 백작:대관식에서 박차를 전달, 1271년 프랑스 왕위에 흡수
5.플랑드르 백작:대관식에서 보검을 전달
6.샹파뉴 백작:대관식에서 왕좌를 지킴, 1284년 프랑스 왕위에 흡수
7,8,9.노르망디 공작위, 톨루즈,샹파뉴 백작위가 왕위에 흡수됨에 따라 앙주.브르타뉴 공작위, 아르투아 백작위가 신설
참조:https://en.wikipedia.org/wiki/Peerage_of_France
첫댓글 부르고뉴 1477년, 아키텐 1453년, 샹파뉴 1314년 왕령귀속입니다.
프랑스의 태자는 도팽 또는 비엔누와의 도팽이죠.
덤으로 왕령에 귀속된 후로도 몇차례 왕자들에게 주어졌는데 보통 후사없이 죽거나 본인이 국왕이 된 탓에 결국 다시 왕령이 되었다는게 참.
샹파뉴는 필리프 4세의 즉위 부터 보는 것 같고, 아키텐 같은 경우는 제가 해석을 잘못한 부분이네요.
필리프 4세 사후 카페 왕들의 요절이나 발루아 왕조의 잦은 단절을 보면, 프랑스 같은 경우엔 왕조의 명운을 처음에 다 썩먹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름짓기귀찮아 법적으로 필리프 4세는 나바라여왕 겸 샹파뉴여백인 잔느의 남편일 뿐이고, 그 상속자인 루이가 아버지 필리프의 뒤를 이른 1314년이 법적으로 통합된 해죠.
CK2 할 때 부인이 자신의 봉신이라고 그 작위가 플레이어캐릭터꺼는 아니고, 아들 낳아서 둘 다 상속받아야 자기꺼 되는거죠.
샤를 8세와 루이 12세가 브르타뉴의 안느와 결혼한 것도, 프랑수아 1세가 루이와 안느의 외동딸인 클로드와 결혼한 것도 마찬가지죠. 여계인정여부가 있으니 아들을 낳아서 걔가 상속해야만 통합이니까요. 실제로 브르타뉴는 프랑수아와 클로드의 차남인 앙리 2세의 즉위로 왕령이 되었고요.
물론 카페는 발루아, 발루아-앙굴렘은 부르봉에게 다 넘어갑니다만.
근데, 공작 백작 작위는 정부인 장자에게 세습되는건가요? 오를레앙 공작의 경우, 주로 현재 왕의 동생인 경우가 많은데 조선시대 대군과 같은 개념인가 해서요.
아들이 있으면 상속됩니다.
루이 13세 동생인 오를레앙공 가스통은 아들이 없어서 단절.
루이 14세 동생인 오를레앙공 필리프는 아들이 있어서 부르봉-오를레앙가가 되었죠.
영국도 차남에게 주로 요크공이 주어지는데, 아들이 있으면 상속됩니다.
요크공 앤드류는 딸만 있으니 죽고 나면 요크공작위가 없어졌다가 다시 만들어진 뒤 해리에게 주어지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