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대 육군참모총장 채병덕 (일본육사 제49기, 일본군 소좌(소령)) 인천항 조병관리창 공장장(지금의 군수사령부 참모)으로
해방을 맞음
3대 육군참모총장 신태영 (일본육사 제26기, 일본군 중좌(중령)) 그 이후에 연합군참모총장 국방부장관 역임
5~8대 육군참모총장 정일권 (1940년 일본육사졸, 만주군 상위(소령)) 그 이후에 외무부장관, 국무총리, 국회의장 역임
6대 육군참모총장 이종찬 (일본육사 제9기 졸, 일본군 소좌(소령)) 그 이후에 육군대학 총장, 국방부장관 역임
7~10대 육군참모총장 백선엽 (봉천군관학교 졸, 만주군 중위) 그 이후에 연합참모부총장, 교통부 장관 역임
9대 육군참모총장 이형근 (1942년 일본육사졸, 일본군 대위, 군번 1번), 그 이후에 연합참모부총장 역임
11대 육군참모총장 송요찬 (일본 육군 군조로 임관) 그 이후에 외무부장관, 내각수반 역임
12대 육군참모총장 최영희 (일본군 소위) 그 이후에 연합참모부 총장, 국방부 장관 역임
13대 육군참모총장 최경록 (일본도요하시 예비사관학교 졸, 일본군 소위) 이후에 재향군인회장 역임
14대 육군참모총장 장도영 (일본군 소위) 그 이후에 5.16 이후 반역사건으로 군법회부, 도미, 미시건대학교 교수
15대 육군참모총장 김종오 (일본군 소위) 그 이후에 연합참모부 총장 역임
16대 육군참모총장 민기식 (일본군 소위)
17대 육군참모총장 김용배 (일본군 소위)
18대 육군참모총장 김계원 (일본군 소위) 그 이후에 대통령 비서실실장, 중앙정보부장 역임, 10.26 사건 관련 군법회부
19대 육군참모총장 서종철 (일본군 소위) 조선경비사 1기(육사 1기), 그 이후에 국방부 장관, KBO총재 역임
20대 육군참모총장 노재현 (일본군 소위, 육군사관학교 3기) 그 이후에 국방부장관역임, 12.12 당시 국방장관
21대 육군참모총장 이세호 (일본군 소위) 육군사관학교 2기, 월남전 지휘관
이씨왕가직속중에도 대일본국육군중장이 두명이나 있었죠
송호성국가경비대 총사령빼고 독립군,조선의용대,조선의용군,조선혁명군,대한독립군 어떠한 형태등
일제에 항거 무장독립군중에서 장군 된 분 한분도 없다는 남한 군부현실이죠
얼치기 국민당군복무하고 왕조위군대에 근무한 사람도 낑간다면 할말 없구요 ...
철저한 반공주의자였던 철기 이범석이 육사 방문시 “송호성은 단상에서 내려오라”고 했던 배경에는 이런 이유도 있었던 것이다.
좌도 좋고 우도 좋다고 했던 경비대총사령관 송호성의 말대로 남로당이 조직적으로 침투를 시작한 육사 3기에서는 좌익이었던 생도대장 오일균, 교수부장 조병건의 영향으로 여순 반란사건의 주모자인 김지회, 홍순석 등 60명이 좌익에 물들어 숙청되었고 6기에서는 김학림, 황택림 등 좌익 교관의 영향으로 1949년 숙군시 임관자의 10%에 해당하는 25명이 숙청되었다.
전쟁 발발 후 송호성은 “정부를 따라 남하하자”는 전 헌병사령관 장흥의 권유를 뿌리치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그놈들이 나를 버리고 다 도망가고 말았는데 나는 됨박이 아니다. 이범석에게 채이고 채병덕에게 채이고 내가 갈 곳이 어데냐? 나 혼자 여기에 남겠다. 당신 혼자서 가시오.”
북한측 조선인민보에 따르면 1950년 7월 4일 송호성이 방송을 통하여 “나는 인민군대가 인민의 이익을 철저하게 옹호하는 군대라는 것과 인민정권은 조선인민을 위한 정권이라는 것을 똑똑히 알게 되었다”면서 국군병사들과 군관, 삼천만 동포들에게 인민군과 빨치산으로 넘어와 자기를 본받아 “총부리를 돌려 인민의 원쑤 미제와 매국노 이승만 괴뢰도당을 타도하라“고 부르짖었다.
송호성은 1953년 인민군해방전사여단 단장을 지냈고, 휴전 후 조소앙(趙素昻)·안재홍(安在鴻) 등과 함께 '자주적 통일방침'이라는 6인 공동성명을 발표하였으며, 1956년 재북평화통일촉진협회 상무위원을 지낸 것으로 되어 있다.
그의 말대로 그는 좌도 좋고 우도 좋은 심지어는 인민군도 좋은 대한민국의 초대 육군총사령관이었다.
대한민국의 육군총사령관을 지낸 송호성이 설령 납북되었다 하더라도 북한정권을 옹호하고 대한민국을 비난하며 한 때 자신의 부하들이었던 국군장병들의 투항을 요구하는 방송연설을 하고 국군포로들로 구성된 부대장을 했다는 점 때문에 국군은 그가 경비대 총사령관과 육군총사령관을 했다는 것을 그리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첫댓글 별로 좋지 않은 현실이고 과거사 입니다. 다만 이렇게 밖에 없었던 현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