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천리 산딸기
현충일을 하루 앞둔 유월 첫째 월요일이다. 계절감이 예전보다 빠름을 산딸기가 익어간 모습에서 알 수 있다. 내 어릴 적은 장맛비가 내리던 하지 무렵 산자락 절로 자란 딸기나무에서 선홍색 산딸기가 익었더랬다. 그런데 근년에 와서는 오월 말부터 산딸기가 익어갔다. 며칠 전 지기와 김해 한림 모정마을을 지날 때 산딸기를 따 먹었고 어제는 양미재를 오르다가도 실컷 따 먹었다.
아침 식후 여느 날과 다름없는 자연학교로 향했다. 지난달 용지호수 어울림 도서관에서 빌려다 읽은 책을 반납하려고 배낭에 채워 넣고 현관을 나섰다. 이웃 동 꽃대감이 가꾸는 꽃밭으로 가보니 친구는 어린 꽃모종 주변에 자라는 잡초를 뽑고 있었다. 아래층 할머니도 함께 나와 일을 거들었다. 두 분과 아침 인사를 나누고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용지호수 어울림 도서관으로 갔다.
도서관 출입구 바깥 무인 도서 반납함에 책을 투입하고 호숫가를 지나니 수면에는 잎사귀를 펼쳐 자라는 수련이 꽃을 피워 있었다. 용호동 상가 버스 정류소에서 북면으로 가는 농어촌버스를 탔다. 천주암에서 굴현고개를 넘어간 지개리 입구에서 내렸다. 대한마을과 고암마을로 가는 포장도로를 따라가다가 수로 건너 묵혀둔 밭뙈기로 가니 산딸기가 익어 있어 손을 뻗쳐 따 먹었다.
산딸기를 따 먹고 등산로가 없는 숲으로 개척 산행을 했다. 봄날이면 두릅을 채집하느라 올랐던 산기슭인데 지난봄은 들릴 기회가 없었더랬다. 남해고속도로 북창원 나들목에서 가까운 야트막한 산자락인데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무명고지로 지도 검색에도 나오지 않은 산이다. 남사면은 오리나무와 아카시나무가 우거지고 산등선 너머 북향 비탈은 단감 농원이 펼쳐지는 산자락이다.
숲 바닥에는 덩굴로 자라는 마삭이 지피식물이 되어주었다. 대개 마삭은 바위 더미를 덮고 자라기 일쑤인데 거기는 황토 흙살인데도 지표면을 덮어 무성했고 일부는 나무둥치를 타고 올랐다. 산마루로 오르니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들의 바퀴 구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산마루에서 산등선을 따라 북향 비탈로 나아가니 고압 송전탑이 지나가고 시야에 대규모 단감 농원이 들어왔다.
단감 농원과 숲의 경계에 산딸기나무가 군락을 이룸은 지난날 두릅 순을 채집할 때 봐두었더랬다. 예상한 대로 산딸기가 빨갛게 농익어 있어 손이 닿으니 연방 흘러내리기도 했다. 집에서 가져간 담금주용으로 쓰였던 빈 페트병에다 산딸기를 따 모았다. 조심스럽게 따긴 해도 손등이나 바짓단에 가시가 찔리기도 했다. 자연이 주는 선물을 접수하려면 감수한 기회비용이라 생각했다.
산딸기를 따느라 집중하고 몰입해 산언덕을 누비다 예상하지 못한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가시가 붙은 산딸기나무를 젖혔더니 새 둥지가 나왔는데 알이 세 개 담겨 있었다. 숲속의 은밀한 곳에서 박새가 알을 품고 있었는데 내가 그걸 모르고 건드리고 말았더랬다. 내가 모르는 사이 알을 품던 박새는 어디론가 몸을 숨기고 둥지에는 아직 온기가 남아 있을 새 알이 담긴 그대로였다.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바였는데 알을 품던 박새를 놀라게 해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이미 엎지러진 물이 되고 말았지만 젖혔던 산딸기나무로 새 둥지를 가려주고 얼른 그 자리를 떠났다. 마음속으로 박새가 다시 둥지로 찾아가 품던 일을 잘 지켜 새끼를 쳐주길 바랐다. 이후에도 개옻나무에 스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산딸기를 계속 따서 페트병의 주둥이까지 다 채울 수 있었다.
산기슭에서 산등선을 남으니 감계 신도시 아파트가 보였다. 경주 이씨 무덤을 지나 골짜기를 빠져나가니 남해고속도로 북창원 나들목이었다. 산딸기를 따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점심때가 늦어 허기가 졌다. 화천리 국숫집으로 가 콩국수를 시켜 점심을 때우고 감계 입구에서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탔다. 산딸기로 꽉 채워진 페트병이 배낭에 들었으니 등짐이 제법 무겁게 느껴졌다. 23.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