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고 간 건 아니었지만
간 자리마다 허무 가득한 심연이다
떠나자고 떠난 건 아니었지만
두고 온 자리마다 가시덤불 무성한 통곡이다
지금껏 품은 뜻은 내 것이 아니었고
꾸었던 꿈도 내 소유가 아니었는데
지나온 길 위에 남긴 흔적에
왜 가슴은 식을 줄 모르는가
멈추자 해도 가야 하고
머물자 해도 떠나야 하는데
왜 설렘이고 번민인가
바람이고 생명인가
-『내외일보/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2024.08.23. -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이야길 할 때, 획일화된 삶의 기준으로 서로를 평가하면서 생기는 서열화 문제를 지적하는 글을 가끔 만나게 됩니다. 학교에서의 성적뿐 아니라 사회에서 가지게 되는 직업이나 직장, 사는 동네와 아파트 브랜드까지 서열을 매기는 게 일상입니다. 그러다 보니 진짜 하고 싶은 일은 가슴에 묻어두고 남들이 좋다고 하는 길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 역시 거기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내 것이” 아닌 “길”을 가는 그런 선택은 깊은 “허무”를 남기는 법입니다.
저의 경우 과감하게 문학으로 방향을 틀면서 가지 못한 길에 대한 한을 풀 수 있었지만, 패배자 혹은 낙오자로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을 견뎌야 했습니다. 멀쩡한 직장에 다니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서열화는 결국 정량화하기 쉬운 돈을 최고의 가치로 섬기는 배금주의, 물질만능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을 만들고 말았습니다. 자살률 1위가 말해주듯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는 데 아주 큰 용기가 필요한 사회는 모두가 불행한 사회입니다.
〈최형심 시인〉
Richard Marx- I will be right here waiting for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