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땅에는 사람들의 흔적이 겹겹이 쌓인다. 충청남도 예산은 1,100년 넘게 그 이름을 이어 온 고장이다.
태조 왕건부터 추사 김정희, 화가 이응노까지, 시대를 달리한 인물들의 자취가 곳곳에 남아 있다.
그 발자취를 따라 예산으로 떠나 보자.
★ 예산 역사 여행 추천 코스 ★
- 예산 1100년 기념관: 백제부터 오늘까지 이어진 예산의 역사를 영상과 체험으로 풀어낸 전시관
- 추사기념관: 추사가 태어난 용궁리에 세워진 추사의 생애와 학문, 글씨를 담은 기념관
- 수덕사(예산): 고려 때 지은 국보 대웅전이 자리한 덕숭산 사찰
예산 1100년 기념관
예산읍에 자리한 예산 1100년 기념관 외관
예산 1100년 기념관은 백제부터 오늘까지 예산이 걸어온 시간을 영상과 체험으로 풀어낸 전시관이다. 이어서 살펴볼 추사 김정희와 수덕사 이야기도 이 전시관에서 만날 수 있다. 이곳에 먼저 들러 이야기를 배우면 현장에서 더 많은 것이 눈에 들어온다.
오산현에서 예산군까지 이어진 예산 지명 유래 전시
돛단배와 함께 바다와 강이 만나는 땅 내포를 소개하는 전시
전시는 예산이라는 이름의 내력에서 시작한다. 이 땅은 백제의 오산현, 통일신라의 고산현을 거쳐 919년 예산현이 됐다. 다음은 내포의 물길이다. 1979년 삽교천 방조제가 생기기 전까지는 바닷물이 예산까지 들어왔다. 돛을 단 나무배 한 척이 그 시절 포구 풍경을 보여 준다.
934년 태조 왕건의 예산진 행차를 그린 영상
919년은 태조 왕건이 고려를 세운 이듬해다. 전시에서는 통일을 앞둔 934년, 왕건이 예산진에 행차해 전쟁에 지친 백성을 달래는 조서를 내렸고 그해 가을 이웃 운주(지금의 홍성)에서 후백제군을 크게 꺾었다고 소개한다. 어두운 방 한쪽 벽에 그 행차가 영상으로 펼쳐진다. 깃발을 든 군사와 붉은 옷의 관리들 사이로 가마가 지나고 화면 아래로 조서의 글귀가 흐른다.
화전리 석조사면불상 사진과 수덕사 연화대좌를 본뜬 대좌
수덕사 노사나불 괘불탱 영상
전시실 한가운데는 예산의 불교 유산이 자리한다. 천장에 매단 기둥 네 면에 백제 때 만든 보물 '예산 화전리 석조사면불상'의 사진이 붙어 있다. 면마다 아래에 놓인 촉각 모형으로 돌에 새긴 부처를 손으로 느껴 본다. 그 뒤로는 수덕사 대웅전 목조연화대좌를 본뜬 하얀 대좌가 서고, 위쪽 화면에 부처의 모습이 차례로 떠오른다. 이 대좌의 실물은 수덕사 근역성보관에서 볼 수 있다.
다음 방에서는 수덕사의 불화를 만난다. 1673년에 그린 보물 '예산 수덕사 노사나불 괘불탱'이 커다란 화면을 가득 채운다. 괘불탱은 큰 법회 때 법당 밖에 내거는 대형 불화다. 노란 얼굴의 부처 둘레를 보살과 제자들이 빼곡히 에워싼다.
추사 김정희를 소개하는 전시
의좋은 형제 볏단 나르기 체험
불교 유산 다음은 추사 김정희의 방이다. 한쪽 벽에서 그의 생애와 학문, 예술을 짚는다. 옆 벽 화면은 추사의 삶과 고택 이야기를 들려준다.
'의좋은 형제' 이야기의 주인공 이성만·이순 형제는 예산 대흥면 사람들이다. 그 곁에서는 형과 아우가 되어 서로의 곳간에 볏단을 날라 주며 우애를 체험한다. 마지막 공간에서는 내포의 천주교와 3·1 만세운동, 윤봉길 의사 이야기로 근현대 예산을 돌아본다. 한 층을 다 돌고 나면 예산의 1100년 흐름이 한눈에 들어온다.
예산 1100년 기념관
- 주소: 충청남도 예산군 예산읍 벚꽃로 214-14
- 운영 시간: 09:00~18:00
※ 매주 월요일, 공휴일(일요일 제외), 1월 1일, 설·추석 연휴 휴관
- 문의: 041-339-8082~4
추사기념관
추사 인장이 그려진 추사기념관 외관
추사 김정희가 태어난 곳은 신암면 용궁리다. 예산군은 추사 탄생 240주년을 맞아 고택과 백송 사이에 새 기념관을 짓고 2026년 7월 문을 열었다. 이제 고택에서 기념관을 거쳐 백송까지 걸어서 한 번에 둘러보기 좋다.
'吉祥如意(길상여의)' 네 글자를 건 1층 로비
추사고택을 그림으로 담은 영상이 나오는 쉼터
1층 로비에 들어서면 추사의 서첩「길상여의관」에서 따온 '吉祥如意(길상여의)' 네 글자가 먼저 눈에 든다. 모든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길 바라는 의미다. 상설전시실 앞 쉼터에서는 추사고택의 사계절을 그림으로 담은 영상이 나온다.
관복 차림의 추사 인물상
전시실 첫머리에서 관복 차림으로 앉은 추사를 만난다. 뒤편 가계도에는 영조의 사위이자 추사고택을 지은 증조부 김한신이 나온다. 그 옆에는 '올곧은 도리로 살라'는 집안의 가르침 '直道以行(직도이행)'이 적혀 있다.
청나라 학자 옹방강의 서재를 재현한 공간
재현한 북한산 진흥왕순수비와 추사의 금석학 전시
1809년 겨울, 스물네 살 추사는 아버지를 따라 연경(지금의 베이징)으로 떠났고, 이듬해 초 청나라 학자 옹방강을 만났다. 말이 통하지 않던 두 사람은 붓으로 한자를 써 가며 묻고 답했다. 옹방강의 서재를 재현한 공간에 그 필담지가 놓였다. 조선으로 돌아온 추사는 1816년부터 북한산의 비석을 정밀하게 조사하여 신라 진흥왕순수비임을 밝혀냈다.
삿갓을 쓴 유배객 추사 인물상과 대련 작품
추사체가 무르익는 과정을 담은 「추사서첩」과 영상
추사가 쉰다섯에 떠난 제주 유배 생활은 햇수로 9년이었다. 군더더기를 덜어 낸 추사체가 이 시절 무르익었다. 국보 세한도도 1844년 제주에서 그렸다. 귀양 온 스승에게 변함없이 책을 구해 보낸 제자 이상적에게 건넨 그림으로, 겨울에도 푸른 소나무와 잣나무에 그 의리를 빗댔다.
추사의 간찰과 글씨를 우리말 풀이와 함께 펼친 전시
추사의 글씨와 탁본을 모은 진열장
추사의 일생을 보는 영상실
곳곳에서 추사가 벗이나 가족과 주고받은 간찰(편지)도 만난다. 편지에 담긴 사연을 살피고 시기마다 달라지는 글씨체를 짚어보는 재미가 있다. 전시 끝 영상실에서는 빈백에 기대 누워 추사의 일생을 한 번 더 훑는다. 1층에서는 화면에 추사체를 써 보고, 2층 체험실에서는 먹으로 붓글씨를 쓰고 탁본을 뜬다.
하얀 줄기를 받침대로 괸 예산 용궁리 백송
2층 옥상정원 '백송 전망대'에 올라 용궁리 백송을 내려다본다. 예산 용궁리 백송은 추사가 연경에서 돌아올 때 가져와 고조부 묘소 앞에 심었다는 천연기념물이다. 중국이 고향인 소나무로, 나이가 들수록 껍질이 벗겨지며 줄기가 하얘진다. 우리 땅에서는 보기 드문 나무다. 추사의 서울 집에도 영조가 내린 백송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기둥마다 추사의 글씨를 옮긴 주련을 건 추사고택 사랑채
'석년' 두 글자를 새긴 해시계 돌기둥
예산 1100년 기념관에서 영상으로 본 추사고택에도 직접 들러 보자. 사랑채에는 기둥마다 추사의 글씨를 옮긴 주련을 걸었다. 사랑채 댓돌 앞에는 해시계 받침으로 쓰였던 돌기둥이 서 있다. 기둥에 새겨진 ‘石年(석년)’은 추사의 아들 김상우가 추사체로 쓴 글씨로 전해진다.
추사 김정희가 써 준 '一山二水亭' 현판을 건 일산이수정
여행 TIP
시간이 넉넉하다면 일산이수정(一山二水亭)도 가 볼 만하다.
추사가 제주 유배에서 풀려난 이듬해 며칠 머물며 현판을 남긴 정자다. 산 하나와 물 두 줄기가 만나는 언덕 위에 자리한다.
한국관광공사의 무료 오디오 가이드 '오디(Odii)'와 함께 여행지의 숨은 이야기를 들으며 걸어보세요.
추사기념관
- 주소: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추사고택로 295
- 운영 시간
[하절기(3~10월)] 09:00~18:00 (입장 마감 17:30)
[동절기(11~2월)] 09:00~17:00 (입장 마감 16:30)
※ 매주 월요일(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그다음 날), 1월 1일, 설·추석 당일 휴관
- 문의: 041-339-8248
수덕사(예산)
숲길 가운데 '덕숭산수덕사' 현판을 단 일주문
마지막 여정은 백제 때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수덕사다. 사찰 입구 일주문에는 '덕숭산수덕사' 현판을 걸었다. 일주문에서 경내까지는 계곡을 낀 숲길이 터널처럼 이어진다. 오르는 발걸음이 가볍다.
사찰 아래 자리한 수덕여관
이응노가 문자 추상을 새긴 수덕여관 옆 바위
일주문을 지나면 왼편의 초가집 한 채가 수덕여관이다. 본래 수덕사 비구니들이 머물던 집으로, 여관이 된 뒤 예술인들이 즐겨 묵었다. 화가 나혜석은 출가한 벗 김일엽처럼 스님이 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이곳에 머물렀다. 홍성 출신 이응노 역시 이곳을 찾아 나혜석과 교류하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는 1944년 이 집을 사들여 화실로 썼다. 여관 옆 바위에는 그가 새긴 문자 추상이 남았다.
단풍나무 그늘 아래 사천왕문으로 오르는 돌계단
덕숭산을 등지고 선 수덕사 대웅전과 삼층석탑
금강문과 사천왕문을 차례로 지난다. 황하정루 누각 아래 계단을 오르면 대웅전을 마주한다. 정면 3칸, 측면 4칸 규모로 꾸밈없이 반듯해 기품이 있다. 좌우로 관음바위, 관음전, 명부전이 자리하고 앞마당에는 삼층석탑이 섰다.
들창을 들어 올려 막대로 받친 대웅전 정면
대웅전은 고려 충렬왕 34년인 1308년에 지은 국보다. 수리 때 대들보에서 집을 올린 해를 적은 먹 글씨가 나왔다. 정면의 창살문은 들창이다. 그 틈으로 법당 안의 세 부처가 보인다. 처마 밑을 보면 지붕을 받치는 나무 짜임(공포)이 기둥 위에만 놓인다. 이를 주심포라 한다.
맞배지붕 아래 기둥과 보가 드러난 대웅전 측면
소꼬리처럼 휘어 내려간 우미량과 측면 나무 짜임
수덕사 대웅전은 맞배지붕을 인 대표적인 건물이다. 맞배지붕은 지붕면이 앞뒤 두 쪽뿐이어서 건물 옆면을 덮지 않는다. 측면으로 돌아가면 이 법당의 구조와 곡선미가 한층 또렷하게 드러난다. 노란 벽 위로 기둥과 보가 서로 받치며 지붕까지 오른다. 그 가운데 소꼬리처럼 휘어 내려간 나무가 우미량이다.
대웅전 앞에서 내려다본 덕숭산 자락과 들판
대웅전을 등지고 돌아서면 시야가 트인다. 소나무와 단풍나무 숲 너머로 들판이 펼쳐지고, 그 끝에 낮은 산줄기가 줄지어 물러선다.
괘불탱 그림으로 한쪽 벽을 꾸민 수덕사 근역성보관 외관
고려 시대 수덕사 대웅전 목조연화대좌
절을 내려오는 길에는 맨 아래 입구의 근역성보관에 들른다. 수덕사와 말사들의 불교문화유산을 모은 박물관이다. 예산 1100년 기념관에 재현해 둔 대웅전 목조연화대좌를 여기서 실물로 마주한다. 고려 14세기에 만든 대좌로, 대웅전 삼불좌상과 한데 묶어 보물로 지정했다. 지금까지 확인된 고려 시대 목조연화대좌는 이것뿐이다. 대웅전에서 쓰던 옛 나무 부재와 불화도 전시한다.
여행 꿀T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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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사(예산)
- 주소: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수덕사안길 79
- 문의: 041-330-7700
| 글, 사진: 김덕식 여행작가
※ 위 정보는 2026년 10월에 작성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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