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확행, 별스러운 거 아닐세
예전 전통적인 농사는 벼를 심어 거둔 뒷그루로 보리를 심는 이모작 영농이 대세였다. 이제는 보리쌀이나 쌀의 소비가 줄어들어 작목의 다양화가 이루어졌고 특히 비닐하우스에서 특용작물을 재배해 농가 수익을 높여갔다. 어제가 절기로 망종이었는데 보리를 베서 거둔 논에 모를 심은 적기다. 요즘은 어느 곳에서나 모내기 시기가 당겨져 망종 이전에 모를 거의 심은 경향이었다.
텃밭 농사를 짓지 않지만 나눔을 하는 찬거리가 더러 있다. 봄날에 근교 산자락으로 들어 뜯어 온 여러 가지 산나물을 이웃과 지기들에 나누었다. 상가 주점에서 전을 부쳐 지인들과 먹기도 했다. 외감 들녘에 자라는 돌나물도 수북하게 걷어와 꽃대감과 아래층 할머니한테도 보냈다. 엊그제 강변으로 나가 꺾어온 죽순도 나눔을 했다. 죽순은 연일 솟아나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망종이 지난 유월 초순 수요일이다. 아침 식후 산책 코스 행선지를 강변으로 정해 길을 나섰다. 집 앞에서 105번 시내버스를 타고 동정동으로 나가 유등 강가로 가는 2번 마을버스로 갈아탔다. 용강고개를 넘어간 버스는 용잠삼거리에서 동읍 사무소 앞을 지났다. 주남삼거리에서 주남저수지를 비켜 간 주남 들녘은 모내기를 마친 연녹색 어린 모들이 가지런히 줄지어 심겨 있었다.
내가 탄 2번 마을버스는 대산 일반산업단지에서 상포마을을 거쳐 대산면 소재지 가술을 지난 모산에서 북부동으로 향해 갔다. 강변 언덕에는 방송 드라마 배경이 되어 세인들의 이목을 끈 팽나무가 우뚝했다. 유등으로 가는 저지대 들판에는 벼농사가 아닌 연근 농사를 짓는 논이 나왔다. 가을에 연뿌리를 수확하려고 연을 재배하는 논으로 녹색의 연잎이 표면적을 넓혀가고 있었다.
종점 유등 배수장을 앞둔 유청에서 내렸다. 초등학교가 폐교된 터는 오래전 개인 미술관으로 바뀌었고 그 곁의 한 농가는 벌통을 다수 둔 양봉업을 하고 있었다. 야트막한 강변 언덕에는 규모가 작은 절인 서원사가 있었다. 하늘나라 신선이 춤을 추며 하강해 놀았다고 무선지로 명명된 공원 주변은 대숲이 우거졌다. 자전거 길인 강둑은 노란 금계국이 지천으로 피어나 절정이었다.
근래 유등 강가로 세 차례나 나왔다. 한 번은 두 지기와 동행해 죽순을 꺾어 일용할 찬거리로 삼았다. 지난번 걸음에서는 더 많은 죽순을 꺾어 꽃대감과 아래층 할머니한테 보내고 우리 집에서도 여유 있게 보관 중이다. 이번에도 강가에서 제철을 맞아 솟는 죽순을 꺾으러 나왔는데 형제들에게 택배로 보낼 요량이다. 예상한 대로 죽순은 어김없이 솟아나 넉넉하게 꺾을 수 있었다.
강둑 외딴집에서 강 언저리로 내려가니 대나무 숲은 울창해 해마다 세력을 넓혀 퍼지는 듯했다. 규모가 큰 강은 국가 하천이라 누구나 드나들 수 있었다. 배낭을 벗어두고 죽순을 꺾으니 짧은 시간 수북하게 쌓여 갔다. 꺾은 죽순을 문구용 칼로 세로로 금을 그어가며 껍질을 벗겨내니 노르스럼한 속살이 드러났다. 배낭은 물론 보조 가방까지 죽순을 가득 채워 대숲을 빠져나왔다.
유청에서 유일한 식당인 삼거리 뷔페로 들었다. 부산에서 출퇴근한다는 한 아주머니가 운영하는 식당이었다. 한적한 농촌이지만 일꾼들에게 한 끼 점심이 제공되었다. 넓은 들녘은 비닐하우스 농사 지대라 농번기 구분이 없어 사계절 일꾼이 필요했다. 나도 그들 틈에 끼어 점심을 먹고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정한 시각 유등을 출발해 온 버스를 타고 시내로 돌아왔다.
등에 진 배낭은 물론 양손에도 죽순이 채워진 보조 가방을 들고 집 근처 우체국으로 갔다. 창구의 종이 상자 세 개에다 죽순을 나누어 포장을 마쳤다. 울산과 부산에 사는 두 분 형님과 진주에 사는 여동생을 수취인으로 삼아 택배를 발송했다. 내가 비록 한 뼘 텃밭 농사를 짓지 않아도 떨어져 사는 육친에게 찬거리를 나눌 수 있음이 행복했다. 소확행이 별스러운 것이 아닐 걸세. 23.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