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도 찜통 그린 뚫고 ‘어벤쥬스’ 산뜻한 출발
[도쿄올림픽]여자골프 1R… 4인방 모두 언더파
고진영이 도쿄 올림픽 여자 골프 1라운드 18번홀 그린에서 땡볕을 피하려고 우산을 든 채 퍼팅 라인을 읽고 있다. 가와고에=AP 뉴시스
기온이 37도까지 올라가고 강렬한 햇볕이 내리쬔 4일 일본 사이타마현 가스미가세키CC(파71). 2020 도쿄 올림픽 여자 골프 1라운드가 열린 이 골프장 18번홀(파4) 그린에 오른 고진영(26)은 우산을 손에 든 채 퍼팅라인을 살폈다. 평소 같으면 우산을 접어뒀겠지만 체감온도가 40도를 넘어가는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땡볕 아래에서는 잠시만 서 있어도 숨이 막힐 정도였다.
박인비가 4일 일본 가와고에의 가스미가세키CC에서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여자 골프 1라운드에서 티샷을 하고 있다. 가와고에=사진공동취재단
박인비(33)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대회 금메달리스트로 올림픽 2연패를 노리는 박인비는 “20년 골프를 치는 동안 이렇게 더운 적이 없었다. 하루하루가 마라톤처럼 힘들다”며 “너무 더워서 후반 몇 개 홀은 어떻게 쳤는지도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고 했다.
한참 동안 헛웃음을 짓던 김세영(28) 역시 “제가 생각해도 선수 생활에서 가장 더운 것 같다”며 “평소에 땀을 잘 흘리지 않는 편이다. 오늘처럼 땀을 많이 흘린 것이 처음이다”라고 말했다. 김세영은 라운드 형태로 올라온 대표팀 골프복 상의의 목 부분을 살짝 잘라내 아래로 접어내린 채 경기에 나서기도 했다.
반바지를 입고 라운드에 나선 김효주(26)의 다리는 화상을 입은 것처럼 벌겋게 익은 모습이었다. 김효주는 “올림픽에 처음 나와 기쁘긴 한데 너무 더웠다. 물을 끊임없이 마셨다”고 토로했다. 미국 대표팀의 렉시 톰프슨의 캐디는 경기 도중 열사병 증세로 주저앉아 버렸다. 톰프슨은 15번홀부터 팀 매니저인 도나 윌킨스를 대동해 남은 경기를 치러야 했다.
이 같은 폭염 탓에 참가 선수 60명 가운데 언더파를 친 선수는 22명에 불과했다. ‘찜통더위’에 말라 버린 잔디로 그린이 딱딱해져 타수를 줄이기가 더욱 어려웠다.
하지만 ‘어벤져스’를 패러디한 ‘달콤한 어벤쥬스’라는 팀명을 붙인 한국 선수들은 악조건에도 모두 언더파를 기록하며 산뜻하게 출발했다.
세계랭킹 2위 고진영은 버디 6개와 보기 3개를 묶어 3언더파 68타를 적어 내며 한국 선수 중 가장 앞선 공동 4위에 이름을 올렸다. 단독 선두 마델레네 삭스트롬(스웨덴)과는 2타 차. 박인비와 김세영은 나란히 2언더파 69타로 공동 7위에 자리했고, 김효주도 1언더파 70타로 공동 16위에 이름을 올렸다.
국제골프연맹(IGF)은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다. 기온이 더 올라갈 것으로 예보된 5일 2라운드부터 1번 티에 선수와 캐디용 우산을 비치하고, 각 홀 티에도 우산을 든 자원봉사자를 배치하기로 했다. 또 얼음과 쿨링 타월을 싣고 코스를 다니는 카트를 운행하기로 했다.
4라운드 72홀 스트로크 플레이로 치러지는 이번 대회가 54홀 대회로 축소될 수 있다는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대회 조직위 관계자는 “일단은 예정대로 대회를 진행하겠지만 날씨 상황에 따라 54홀 대회로 축소될 수 있다는 사실을 출전 선수들에게 공지했다”고 전했다.
가와고에=김정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