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빠 거의 한달만에 시골로 내려오니 마당의 잡초는 내 키만(?)해 질 정도고,
입구 어리어리하던 꼬마 코스모스는 장년으로 성장해 있다.
깔끔하게 정리해두고 올라갔다 다시 내려오면 기다리는 일거리들..
자연의 이치인걸 그 누가 막으랴만은, 거침없는 번성함이 때론 무정하고 야속하기까지 하다.
특히 대추나무밑에서 더부살이하던 코스모스는
한들거리는 꽃을 보고 싶어 시작한 나의 돌봄으로 완전 날개를 달아
주인장인 대추나무네를 위협할 정도다.
대추나무와 코스모스의 한지붕 두가족 동거.
서로 엉켜서 누가 주인이고 누가 셋방살이인지 모를 만큼
후발대의 선전이 하늘을 찌를 기세다.
8월이면 이렇게 대추가 영글어 익어간다.
탐스럽기 그지없고 올해도 나뭇가지가 늘어질 정도로 주렁주렁 매달렸다.
나의 차와 간식거리롤 제공할 반갑고 고마운 친구다.
근데 푸짐하게 자란 잡초야 힘들어도 시간과 내 노동력을 투자해 잘라주면 그만이지만
문제는 이 두 가족을 어찌 분리시키냐가 관건이다.
거의 썀쌍둥이 수준으로 자리를 잡아 수술하기 힘든 상태에 이르렀다.
들다 아끼는 친구들이라 대추나무를 자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코스모스를 쳐 낼 수도 없는 내 입장..
더군다나 대추나무와 코스모스 둘다 가을이 전성기니 이 둘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누구네를 분가시키느냐고요???
모르겠다, 지네들끼리 알아서 평화협정을 맺고 적당히 조화롭게 살길 바랄 뿐이다.
집앞의 논에서는 벼가 쑥쑥 자라 가을날 누렇게 익을 일만 남았다.
동네 한바퀴를 해보니 열매들이 실해 8월이 익어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도라지~ 도라지~ 화사한 꽃이 피어서 마당을 한가득 청초하게 채운다.
정선 삼시세끼네 옥순봉 옥수수밭은 어마어마한 양으로 수매까지 하고
배우 이서진네는 정선 만스르가 될 정도로 풍년이더라.
나도 내년엔 옥수수 등을 심어 볼 생각인데 이러다 진주 만수르가 될 날이 머잖아 보인다.
올해도 어김없이 은행나무의 은행도 영글고...
저주지 옆동네 밤도 가을을 기다리며 제 빛을 내고 있다.
자연은 계절마다 알아서들 새옷을 갈아입고 꽃단장을 하니,
도회지와는 역시나 다른 볼거리를 제공하는 농촌 생활이다 .
이웃의 소마굿간은 그새 새식구가 늘었다.
엄마 찌찌먹느라 매달린 송아지.
지날 때마다 들여다보면 마을에서 제일 불쌍한 암소 두마리다.
아무런 자유도 없이 마굿간에 갇혀서 몇달에 한번씩 송아지를 잉태해 주인장네 주머니를 채워준다.
마주치는 소의 눈빛이 다 내려놓은 듯 선하기만 하다.
여름중에서 난 8월이 좋다.
아마도 더위가 한풀 꺾이면서 잦아 들어가는, 차분해지는 시기여서가 아닐지.
아님 만물이 익어가고 완숙되기 시작해서 일까?
나의 삶이 8월에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욕심일까?
이미 가을이 문턱에 와 있지만 언제부턴가 가을이기를 거부하고 있다.
그렇다고 마음처럼 청춘이라며 허욕을 부릴 생각은 없지만 지금 이곳엔 머무르고 싶다.
8월이 익어가듯 우리도 익어가리.
아름답고 풍요롭게 말이다.
벌써 창밖에는 개구리, 매미소리 대신에 귀뚜라미 소리가 들린다.
찌르찌르 찌르르.
코스모스, 조관우
첫댓글 좀 있으면 길에 익은 밤이 떨어져 뒹글 듯....., 헌거로운 동네입니다. 어딘지는 모르지만
그렇겠죠. 그러면 밤줍느라 바쁠것 같아요. 경남의 농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