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있는 찻집에서 / 여 래
지난해에 찾았던 암자를 이번에 또 찾아 나섰습니다
깊은 밤중에 산길을 헤매며 올랐던적이 엇그제 같은데 지금은 말끔하게 단장한 포장길이 되었고 우거진숲사이로 광음이 가까이왔다 멀어졌다 하고요 길옆에 넝쿨은 백년도 넘어 보이는데 태양빛이 작열하게 쬐고 그 사이로 오고가는 인적은 드물어 보입니다
지난해 가을에는 바쁜맘 바븐걸음에 길을 걸어도 길이 보이지 않고 나무를 봐도 잘 보이지도 않았고 오직 스님의 얼굴만 바라볼뿐이었는데 이번엔 산천초목이 반깁니다
마당에 우뚝선 석가탑을 돌고서 바로서니 하늘의 태양과 석가탑과 나와 일직선이되어 경배의 시간이 만들어졌습니다 앞마당의 누각은 바람이 두루고 있고 숲속엔 새들이 지저기는소리 흐르는 물소리 나비도 꽃이 없는 마당에서 마음껏 놀아난다
자연은 생멸변화의 진리에 순응하여 잎이 피어 푸르기도하고 가지만 엉성하기도하고 본래의 있는모습 그대로인데 사람 마음은 시시각각 바뀌는것 같습니다 만물이 인연법이요 이것 또한 윤회이지요. 넓고넓은 누각에 홀로 앉아 산아래를 바라보며 한참을 이야기하다 돌아보니 한 세월이 성큼 다가섭니다
그날 그때는 스님의 말씀만이 귀에 쟁쟁했는데 오늘은 삼라만상의 소리가 언어로 들리는듯 하고요. 어둠이 스며들고 스님의 독경소리는 청량한 공간을 뚫고 가슴속 깊이 들어오니 어찌나 아름다운지 세간의 모든 사람의 과거의 업장이 쇳물처럼 녹아내릴 장엄한 관음이요 묘음이였습니다
스님과 부족하기만 한 이 중생과 함께 이렇게 저녘예불을 올렸으니 또 새벽이 찾아왔습니다. 고요한 산사에서 청정 감로다를 올리고 중생을 제도하는 아침종송에 귀기울이고 있노라니 숙연해 집니다
오후엔 스님과 함께 산내 암자 순례를 나섰지요
중암에 다다르니 디딤돌에 고무신은 많은데 인적이 뜸하고. 넉넉하고 고요하고 큼직하고 공기는 묵직하게 자리잡은듯 합니다.
관응스님의 수행처를 안내해 주셨습니다. 팔각형으로 지어진 좌대는 있는그대로를 보여 주었고 아름다운 수행의 향기가 나는듯..., 여기서 자연을 벗 삼아 노닐다가 이마저 비웠겠지!, 하늘과 땅이 바뀌는듯 가슴이 뭉클합니다, 누가 이 기운은 느낄까, 그래, 바로 이런곳이야!, 옛날 경허스님이 자리했던곳, 여기 이자리, 바라보는 이곳에서 내가 머리깍으면 이렇게 할 수 있을까?, 나를 돌아보며 소리없는 질문을 하고서 백련암에 오르니 스님도 계시고 재가자도 계시고 티비에서만 보았던 미얀마 스님도 계시고 빨갛게 물든
벗지도 주렁주렁(소시적이 떠오름), 스님의 보약같은 차 대접에 고마움을 어찌해야 하는지 몸둘바를 모르겠네요. 서울 근교에는 이처럼 조용하고 아름답고 우아한 산사를 보기가 어렵죠, 하도 관람객이 모여들고 염불 음악소리에 오히려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하는 산사를 보다가 이곳의 이런 수행처를 보니 마음이 새로울 수 밖에, 잠시 스님과 환담을 나누고 중수암으로 올라갔지요.
여기에 와 봐도 역시 공부하는곳입니다, 이루 말 할 수 없이 산당정야 좌무언, 적적요요 본자연, 그냥 앉아 있기만해도 공부가 저절로 될것 같아요, 마당가엔 호두나무 한 구루가 백년쯤 되어보입니다 앗, 또 어릴적이 떠오릅니다 잊어버리고 다시는 생각나진 말아야 하는데 옛적에 학교길에 큼직한 절이 있었지요 담옆에 이런 호두를 스님 몰래 따다가 붓잡혀 벌도 받고 청소도 하고 다시는 아니 하겠습니다 라고 약속을 하고선 집에 간적도 있었지요. ㅎㅎㅎㅎㅎ,
본래의 자리로 돌아와 앉으니 여기는 주인도 없고 손님도 없고 어느 누구도 없는 감로의 찻집입니다 방문을 활짝 열어 놓고 “뜰앞의 감나무”를 감상하면서 아래에 놓인 탁자를 바라보니 누구든지 앉으면 되고 옆사람 미안해 할 일도 없고 의자는 셋인데 하나는 아내가 하나는 아들놈이 하나는 이몸이 앉았으면 좋겠지만 찻잔없는 반석 탁자네요. 그옆엔 항아리가 큼직하게 자리하고 한없이 뿜어대는 감로수 찻잔인가 봅니다 누구누구 가릴것 없이 뜨면 잔이요 보면 깊어집니다
이야기 할 대상도 무수히 많고 홀로 춤을 추어도 흉볼사람도 없으니 이 또한 이런 찻집이 어디에 있을까, 사랑의 속삭임에 푸우욱 빠져 긴 세월이 흐른듯, 삶의 고난도 잠시 뒤로하고 아픔도 미움도 잊고서 이 감로의 찻집에서 이렇게 살고싶다.
그날 그때는 설법만이 경청 했지만 오늘은 바람소리 물소리 새소리 벌 나비 꽃향기와 머무는듯 지나가는듯 산허리 감고 도는 저구름은 걷히고 하늘 만큼이나 한 웃음으로 한참을 놀았습니다.
멀리서 찾아온 바람꽃님께서 오셨습니다, 어찌 이 길을 왔느냐고 묻네요 고통의 바다에서 출발하여 이 깊은 산중까지 왔노라고, 이곳을 찾은 동기야 어떻든 살아있어 만남이 인연이요 헤어짐도 인연이라 삶의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고 행복해 보였습니다.
이젠 저 또한 떠나야지요 무엇때문에 여기를 왔다 갑니까, 묻지마오, 그냥 가면되지 뭘 그렇게 알려고 애를 쓰는가, 모든것이 살아가는 발걸음인듯 합니다
비어있는 찻집엔 누구든지 환영합니다 앉으면 주인도 되고 손님도 됩니다 돈 받는 사람도 없습니다, 가실땐 그냥 떠나시면 됩니다 한생각 일어나면 들리세요. 그럼 안녕.
초여름 유월(사월의 끝날) 명적암
첫댓글 직지사 산내 암자입니다 너무좋아 반했어요
비어있는 찻집에서 바람소리 물소리 새소리들으며 차 한잔하고싶네요....인연이 닿으면 그리되겠지요....잠시머물다 갑니가 감사합니다...()...
"비어있는 찻집" 여래님의 설명만 들어도 반하겠습니다. 명적암 인연이 닿아지길 빌어봅니다._()_
산당정야 좌무언, ......산집 고요한 밤에 말 없이 앉았네......여래님의 마음을 뵙고 갑니다. 직지사 다원의 우전도 그리운데...명적암 텅빈찻집... 벌써 마음이 그리로 향하고 있습니다._()_
조용한 산사에 찻집, 여래님의 하루가 여기에 이렇게 펼쳐져 제가본듯 눈앞에 그려지네요..
직지사에서 관응스님의 반야심경 강의를 이해도 못하면서 마냥 ..환희심 젖든때가 10여년전인가 합니다..명적암 에서 차한잔 하며 정모해도 되겠군요
()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