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없는 경제시대, IMF-인터넷 등 초국가적 질서 생겨
이것은 졸저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를 비판한 한영우 교수의 글 (10일자 17면)에 답하는 글이다. 한 교수께서 지적한 사항들은 여럿이지만, 중요한 것들은 둘이다. 하나는 경제 논리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구제국은 환상이라는 것이다.
경제학은 일반적으로 물자와 돈을 다루는 학문으로 여겨진다. 틀린 생각은 아니다. 그러나 경제학은 본질적으로 사람들이 행동하는 모습 을, 특히 그들이 시간이나 돈과 같은 자원을 여러 목적들에 나누어 쓰 는 모습을 연구한다. 그래서 그것은 너른 뜻에서의 심리학의 한 분야 다. 자연히 사람들의 활동들은 모두 경제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결혼, 출산, 선거, 또는 범죄처럼 일반적으로 경제적 활동으로 여겨지지 않 는 행동들도 경제학은 잘 설명하고 예측한다.
물론 경제적 접근엔 한계가 있다. 아마도 가장 심각한 한계는 경제 학이 사람들의 심리상태를 주어진 조건으로 여긴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래서 경제학은 사람들의 가치 판단에 대해 별다른 얘기를 하지 않는 다. 경제학의 틀을 따르면서, 나는 사람들의 가치 판단에 대해 직접 평가를하는 일을 되도록 피했다. '한국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이 없다'는 한 교수의 지적은 어쩌면 그런 점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졸저에서 '지구제국'이란 말은 다분히 상징적으로 쓰였다. 그 말은 근년에 세계가 하나로 통합되어 가면서 제국의 성격을 지닌 질서가 나 타났음을 가리킨다. 그 말을 엄격하게 해석할 경우, 한 교수께서 내놓 은 비판이 강력해진다는 것을 나는 선선히 인정한다. 현대판 로마 제 국이 나타나리라고 믿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반면에 지금 세계는 단순한 민족국가들의 조합은 아니며 주권국가들 을 넘어서는 초국가적 질서가 자리잡았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도 드 물 터이다. 정치적으로는 '국제연합'을 비롯한 국제 기구들이 나름의 몫을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우리가 이번에 아프게 경험한 것처럼, 국경은 상당히 낮고 성기어졌으며, '세계무역기구'나 '국제통화기금' 과 같은 국제기구들이 중앙정부 노릇을 어느 정도 하고 있다. 과학,기 술,예술, 종교와 같은 분야들에선 국적은 이미 큰 고려 상항이 아니다. 그리고 인터넷과 같은 통신수단들이 세계를 하나의 유기체로 묶는 신 경노릇을 하고 있다.
물론 '지구제국'이 이상적 사회는 아니다. 다른 사회들과 마찬가지 로, 그것은 중심부와 주변부로 나뉘고, 그것의 운영은 중심부의 강대 국들이 주도한다. 그러나 강대국들만이 그것에서 이득을 보는 것은 아 니다. 실은 약소국들이 상대적으로 더 큰 이득을 본다. 국제적 질서는 비록 공평한 것이 아닐지라도, 약소국에 이롭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지구제국'이 정복을 통해서 나온 것이 아니라 경제 활동을 통해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경제 논리는 사람들로 하여금 국경을 넘어 활동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그런 활동은 묵은 질서를 바 탕부터 허문다. 따라서 한 교수께서 전쟁과 노예-자유민을 대비한 것 은 적절한 틀이 되기 어렵다.
위에서 살핀 것처럼 '지구제국'은 이미 새로운 질서로 자리잡고 우 리 삶의 모든 부면들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 사실은 우리의 판단과 행동이 새환경에 맞게 조절돼야 함을 뜻한다. 거친 민족주의적 행동을 삼가고 실질적 국제어인 영어를 호의적으로 대해야 한다는 주장은 바 로 그런 논거에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