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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도송
誰敢得悟趙州無 수감득오조주무
如來開口下殺劍 여래개구하살검
若人問我當何事 약인문아당하사
昨夜三更月呑月 작야삼경월탄월
전법계
(혜암현문 선사께서 법호(청봉)와 함께 내려주신 게송)
示 淸峯 容遠禪子
上方春日花如霰 상방춘일화여산
異鳥聲中年夢甘 이조성중년몽감
萬法通光無證處 만법통광무증처
唯有揷天是淸峯 유유삽천시청봉
봄날의 꽃이 눈싸라기 같고
기이한 새소리 가운데 낮잠이 달다.
만법이 밝게 통하여 증함도 없는 곳에
오직 하늘을 꽂은 이 청봉이구나
世尊應化 二五二九年 一月 二九日
滿空門人
惠菴玄門 稿
게송 (금강경오가해 중에서)
끝이 없으니 더 이상 클 수가 없고
길다 짧다 이를 수 없도다.
본래로 공한지라 색깔도 없으나
경계 따라 응하여 항상 나투도다.
선악이 본래 둘 아닌데
누가 감히 헤아릴꼬?
예나 지금이나 알 수 없으니
알지 못할 줄 알면 그것이 참 아는 것이니라.
본래 청정한 그것이 이름도 형상도 없으나
있음이 없이 있어 일체를 나투니
두두물물이 이로부터 나투었고
온갖 것의 근원이요 청정하나 모두를 갖추었네
한 물건이라 해도 맞지 않으니
그럼 무엇인가? 알 수 없어라.
불은 불에 들면 뜨거운 줄 모르고
물은 물에 들어도 젖지 않느니라
정, 혜를 쌍수(雙修)하라 누가 일렀던가?
닦을 것도 얻을 것도 없음을 알면
곧 그것이 정, 혜 증득(雙收)이라
법으로는 바늘 끝도 통할 수 없으나
사사로이는 거마(車馬)도 통하느니라.
사람마다 보물을 창고에 쌓아두고
가난하다고 애통하누나.
남의 일이랑 관계 하지말고
홀로 앉아 일 만금을 마음대로 쓰라.
화신 응신이여 평지풍파이니
풍류 없는 곳에서 풍류를 즐김이로다
가도 감이 없고 와도 옴이 없으니
자! 참 부처는 어디 있나?
잠깰라, 쉿.
공양을 드시고, 발우를 씻고, 발을 씻고,
자리를 펴시고, 가만히 앉아(양구) 계심이
참으로 희유하고
참으로 희유하시도다.
임제의 할도 2구요 덕산방도 2구라
양구라면 또한 2구가 아니련가?
외도가 세존의 양구 하심을 보고 깨우쳤어도
다문 제일 아난은 채찍을 맞고도 뛰어나지 못했느니라.
많은 사람이 밥 먹고 그릇 씻고 발 닦고
앉아도 희유하다 하지 않았어라.
다만 말없음으로 말없는데 이르름을
지음(知音)자는 스스로 안다네.
기쁨도 슬픔도 네가 만든 것
본래로 그러한 것 있지 않아,
너는 상에 쫓아 헛꽃에 매달리고,
나는 스스로 본래 적묵(寂默)하니라. 악!
대통지승 여래불이 십겁을 앉아 몸과 마음 움직이지 않으나
불법이 현전하지 않아 부처를 이루지 못함이여,
손가락은 달을 가리키는데
중생은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보도다.
묻는 곳 답하는 곳 크고 넓어
끝간 데 없어서 보지 못하네
어리석은 이는 밖을 찾아 헤매고
지혜 있는 이는 집밖을 나서지 않느니라.
밝고 밝음은 무엇으로부터 쫓아 나옴인가?
만상을 머금어 낱낱이 갖춤은 어디에 머물고 있나?
우주의 주인이요 만법의 왕은 다름이 아니라
밥 먹고 잠자는 그것이니
봄바람 남쪽에서 불고 꽃은 스스로 피도다.
번뇌가 곧 보리요
부처가 곧 이 중생이거늘
사상에 집착할 때 중생이라 하고
일체 평등을 요달하면 부처님이라 하니라.
크게 죽어 크게 살면 생사가 둘 아니요
산은 산, 물은 물 옛 그대로이네
일체를 요달해 살펴보니
본래가 제도할 것이 있음이 없어라.
비단(반야 지혜)이 무늬가 없고 깨끗한 대로(定) 좋으나
거기에 무늬(무상보시행)를 더하므로
더욱 비단다워(정혜를 갖추니 체와 용이 묘함)지니
본래 남과 북이 둘 아니니라.
日照萬像不增減 일조만상부증감 이니
佛恩極大亦無量 불은극대역무량 하니
永劫現用不增減 영겁현용부증감 하며
如來不動常如如 여래부동상여여 하니라
태양이 만물을 비추나 늘고 줌이 없으니
부처님 은혜가 크고도 무량하니
무량 겁을 나투어 써도 늘고 줄지 않으며
여래는 움직임도 없이 항상 여여 하니라.
그림자 없는 나무(佛)는 갓이 없이 커
활짝 핀 꽃(무상주 보시 복) 또한 한량없어
걸림 없는 행이 임의자재하여
열매 따서 주어도 주고받음이 없어라.
세존이 육신을 들어 설하시고자 하니
수보리 존자는 그 뜻이 어디에 있음을 알고
형상 있는 몸을 이르심이 아니라 하나
형상 없는 몸이 형상 있음을 여의지 않았노라.
항상 하는 몸(法身佛)은
色身(응신인 현상계)을 떠나 달리 있지 않으니
단멸공에서 빠져 법신을 구하려고 하는 것은
바다에서 산삼을 구하는 것과 같으니라.
전삼삼 후삼삼이여
묻지 말라 전삼삼 후삼삼
전과 후가 둘 아니니
무엇이 전이요, 무엇이 후이련가?
형상이란 그 있음이 항상 하지 않고
본래 공한 가운데 나툰 마음의 그림자이거늘
범부는 형상에만 쫓아 그 실다움을 보지 못하나
그 상을 여의고 실상이 또한 달리 있지 않으니라.
是心是佛作分別 시심시불작분별 하고
一念萌動萬里差 일념맹동만리차 하나니
山則是山水是水 산즉시산수시수 이라
山水以前是甚 산수이전시심마 던가
마음이라 부처라 이름지어 분별하고
한 생각 싹터 움직이면 곧 만리가 어긋나나니
산은 곧 산이요 물은 물이라
산 물 이전에는 이 무엇이던고?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
다만 산과 물이 실다움이 아닐진대
실다움은 또한 어느 곳에 있는가?
산도 아니고 물도 아니요 아닌것도 아니라.
상도 없고 구할 것도 없어야 실답다 하나
없음에 치우치면 변견이라 하나니
상은 공을 여의지 않고 공은 상을 여의지 않아서
다만 명백히 우주에 두루하네.
화신 부처님이 출현하심도
인연 따라 나투시나 참이 아니니
천강에 물이 있으면 천강에 비춤도
하나의 법신이 일체에 나툼과 같으니라.
일체의 모든 상은 허환과 같으니 모든 상이 실다움이 아닌 것을
증오하여 볼 줄 알면 볼 줄 아는 그것이 곧 부처니라
너무도 깊고도 커서 미혹중생이 의심할까
의심을 풀어주어 신심을 키우도다
비록 말세라 하나 믿음이 지극하고
바르게 닦는 이 이에 해당되지 않느니라
법신이 실다웁고 보신, 화신은 방편이라 하나
법신은 보신, 화신 두 부처님을 여의지 않았노라.
戒를 지키면 천상에 나고
定을 증오하면 경계에 물들지 않고
慧를 증득하면 일체에 밝으니
이 가운데 하나가 빠져도 솥은 바로 서지 못하니라.
색, 성, 향, 미, 촉, 생각은 생하여 멸하는 것
보신, 화신인들 어찌 항상하랴
삼신 가운데 보, 화는 법신을 쫓아 나툼이라 덧없는 것,
항상 함은 상이 없는 곧 이 법신이니라.
파도는 물을 여의지 못하고 물은 파도를 여의지 못하니
파도가 물이요 물이 곧 파도로다.
법신도 법신이 아니요 보신, 화신 또한 그러하니
보, 화신이 그로부터 나툼이라 그것이 진신이니라.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남 같이
신심의 바탕으로 닦아옴이 因이 되어 반드시 果報를 이루리니
6 바라밀행으로 무루공덕을 성취함을
초발심시 변정각이라 하느니라.
가고 옴이 자유롭고 앉고 섬이 그대로다.
항상 하는 이 일이 그의 부림이니
이 도리 아는 것 예사 일 아니라
전생에 오래 믿고 닦은 선근이 분명하도다.
내라고 하는 나는 참이 아닌 헛것이요
사람도 중생도 법도 헛것이로다
나도 헛것이요 헛것도 헛것이며
헛것이라는 것 마저 헛것이로다. 악!
나라는 것이 공 하여 실다움이 없으니 오온이 공하고
사대는 지수화풍이니 사람이라는 것이 또한 공하며
생하고 멸함이 없으니 범부 중생이 또한 공하며
본래 내 몸이 공 하여 목숨이 없어 생사 또한 공 하니라.
사상을 떠나 유무의 집착을 여의니
번뇌 망상이 어디에 머물 건가?
반야바라밀은 반야바라밀이 아니며
반야바라밀은 반야바라밀 이니라
손바닥을 폄이 곧 손등이 아니나
또한 손등이 곧 손바닥과 둘 아니니라
모든 것 항상 함과 모든 것 없음이
이 모두 실이 아니니 양변(兩邊)을 여의어야만 곧 실이니라.
법이라 법 아니라 어느 것도 집착 말라
법도 법 아니요, 비법 또한 법 아니니
법, 비법을 모두 여의면
법도 법이요 비법도 또한 법임을 알리라.
泥牛潛泳入龍宮 니우잠영입용궁 이요
金獅隱藏虛空中 금사은장허공중 이니
已離分別離禪定 이리분별리선정 하여
似是虛空無思量 사시허공무사량 이니라
진흙소는 용궁에 헤엄쳐 들어갔고
황금사자는 허공 속에 숨었으니
이미 분별 떠났고 선의 고요함도 떠나
허공 같아도 허공이라는 헤아림도 없나니라
법이 곧 비법이요
비법이 곧 법이어서
진공 법계는 시비가 없으니
법도 비법도 집착하지 말지니라.
상이 없다는 것은 그대로 상이 없다는 이름은 있다 함이고
있다 없다는 것은 상으로 쫓는 명사이니
참 있다면 그 무엇이고? 참 없다면 없다는 건 무엇인가?
있다 없다는 건 실상을 모르는 집착이니라.
정(定)을 얻었다 하면 정이 아니니
얻었다는 그마저 얻음이 없어야
참정(定)에 듦이요
없고 없음마저 없음이 참 없음이니라
渡江不顧船 도강불고선 하고
到家杖便休 도가장편휴 하니
得魚更忘筌 득어경망전 이오
得意忽忘言 득의홀망언 하라
강을 건너면 배를 버리고
갈 곳에 이르면 지팡이를 버리리니
고기를 잡은 후엔 그물을 버릴 것이요
뜻을 얻었으면 말을 잊어 버려라
물은 물이 아니니
바다 물을 말해도 입술도 적시지 못하니라
입술을 적시지 못하는 것이라도 물은 물이니
물과 물 아님 모두를 떠나야 참다운 물을 아니라.
참을 방편을 통해 일러주니 방편이 곧 참으로 통하고
참은 곧 방편으로 아나니 손가락을 통해 가리키는 달을 보라.
진제를 가리킴은 속제의 일이니,
속은 진을 벗어나지 않고 진은 속을 여의지 않았음이니라
진불(眞佛)은 부동(不動)해도 쓰임에 자유롭고
한 생각 일으키지 않으면 본래 천당 해탈이 잠꼬대이니라.
사람도 일체도 모두 공하니
일체의 참 성품이 모두 공함을
의심 없이 믿어(깨달아) 가지되
공 하다는 그마저 없어야 하느니라.
무유정법은 본래 정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니요
만들어진 건 변동 없음이 또한 아니니
무상정등정각이니 설법이라 함은 방편이요
본래 그러한 것 있음이 없도다.
밥그릇에 밥 담고 국그릇에 국 담음이 비록 옳으나
국그릇에 밥 담고 밥그릇에 국 담은들
그 또한 그르지 않으니
근기 따라 방편으로 이름 짓도다.
바로 쓰면 약이요 잘못 쓰면 독이라
차별(事)로써 평등(理)을 가르키니
차별은 곧 평등이 아니요 평등은 곧 차별이 아니로되
차별이 곧 평등이요 평등이 곧 차별로 양변을 여의네
결정(고정)된 것 없어 가히 취할 것이 없고
결정된 것 없어 가히 설할 것이 없으니
결정된 것 없는 것을 설한 것 있다 하면 있지 않음은 어찌하며
결정된 것 없기에 설한 것 없다 하면 없지 않음은 어찌하나? 악!
若色名色非眞色 약색명색비진색 이요
空亦說空非眞空 공역설공비진공 이니
一念動卽非實相 일념동칙비실상 이요
天然自在卽是眞 천연자재즉시진 이니라
색은 색이라 하면 참 색이 아니요
공도 또한 공이라 하면 참공이 아니니
한 생각 곧 움직이면 실다움이 아니요
다만 있는 그대로가 옳은 것이니라.
이렇다 저렇다 말로써 이를 수 없으니
일체가 환이요 꿈일진대
환도 꿈도 아닌 건 무엇이련가?
흙 소가 용궁에 들어간 뒤 소식이 없어라. 악!
心欲度衆生 심욕도중생 하고자
用無數方便 용무수방편 하여
以有爲之事 이유위지사 로써
顯現無爲理 현현무위리 로다
중생을 제도하고자
무수한 방편을 써서
함이 있는(事) 것으로써
함이 없는 것(理)을 드러내 보였도다.
비춰보아 공함을 깨달음이 각이요
없이 있으나 일체를 나툼을 밝게 앎이 혜가 되니
覺은 體를 요달함이요 慧는 用을 요달함이라
체와 용을 요달하면 반야바라밀이 그것이로다.
정각을 이루니 일체가 둘 아니어서
바르고 삿됨도 둘 아니라
꽃을 꽃이라 함에 옳지도 그르지도 않아
근기 따라 설함에 걸림이 없어라
함이 없는 무위법은
본래 차별상이 없으니
구름 없는 허공의 달이
만강에 떠 있음을 알라
천 강에 뜬 달은 곧 하나의 달이요
하나의 달이 강마다 떠 있으니
일체의 달이 둘 아니라서
하나의 달이 일체를 거두도다.
하나가 일체요
일체가 한 맛으로 돌아가니
이 오묘한 도리를
누가 알아 더불어 논하리요
복을 지음은 유루며 과보의 인을 심음이니
육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공덕을 이룸은 정혜를 증득함이니
무루의 성취로 부처를 이루어 보살행을 하니라.
사구게는 경의 대의요
그 가운데 육바라밀이 모두 있으니
가르침에 따르고 수행하여 깨달으면
함이 없는 참 낙을 얻어 중생을 제도하게 되리라.
양무제의 보시행을 공덕 없다 하는 것은
복 얻음이 없다는 말 아니니
복은 쌓았어도 공덕이 없어
그 복이 공덕에 미칠 수 없음이니라.
眞知諸佛出此經 진지제불출차경 하면
市中雜話皆法輪 시중잡화개법륜 하고
逐句執言沒迷惑 축구집언몰미혹 하면
龍宮藏經都夢 용궁장경도몽예 이리라
삼세제불이 이 경에서 나왔음을 참으로 안다면
시중잡담이 법륜의 굴림인 줄 알 것이고
문자에 좇고 말에 끄달려 어리석으면
용궁장경 일지라도 모두가 잠꼬대이리라
모든 부처님과 위없는 깨달은 지혜의 진리가
이 경으로부터 나왔으니
그럼 그 나온 곳은 이 경 어디일까?
입에서 연꽃핀 곳이니라. 악!
법신이라 이름하는 것도
그 또한 옳지 않느니
법신이라 함도 평지풍광이라
명사로 이를 수 없는 것이니라
불성은 體요 定이니 근본이요 본래면목이며
그 성품은 혜로써 用이니 일체를 나투고 작용함이라
혜로써 체를 깨달으면 작용함에 걸림 없고
用을 거두고 定에 들면 일체가 공하니라.
간절히 경계하나니 잘못 알지 말지니라
어찌 하늘을 향해 쇠 배 띄움을 알까?
실다움을 이름하여 방편으로 베풂이니
방편에 국집하면 참을 잃으리라
若人從言文 약인종언문 하면
難免凡夫昧 난면범부매 이니
莫論無生死 막론무생사 하라
當知生滅常 당지생멸상 하니라
말에 쫓고 문자에 따르면
범부의 어리석음 면하기 어려우니
생사 없다 말하지 말라
항상 나고 멸함을 마땅히 알아야 하니라
그것이 그것이요, 그것이 그것 아니기도 하다 하니라.
水不離波요 波不離水로다
불법이 불법 아니라면
불법은 무엇인가?
불법이 불법이니
산 넘어 연기를 보라 불 있음을 알리라.
불법은 불법이 아니요
부처는 부처가 아니니라
참 부처는 부처라 말하지 않으니
불법도 부처님도 그의 자식이니라.
불법이라 해도 옳고 아니라 해도 옳으니
관운장의 청룡도요, 손오공의 여의봉이라
깨친 이의 살리고 죽이고 뺏기고 뺏음이
임의 자재함을 始覺이라 하니라.
복은 지은 만큼 거두어 써버리고
공덕은 지은 만큼 갈무리되니
애써 보시해 얻고자 말라 사구게에 의지해서
본처에만 이르면 가득한 게 보물이니라
일체가 공하니 我도 없고 人도 없어
육경이 환이요 몸매 또한 인연 결합이라.
무상한 육진을 쫓으면
곧 고에 빠짐이 되도다
塵을 벗어났다 하면
眞 俗이 둘이리니
眞도 俗도 본래 없어
진 속이 본래 둘 아니로다.
보고 듣는 것이 공하고
보이고 들리는 것도 공하여
차별심을 여의어서
집착욕이 없게 됨을 다툼 없다 하느니라.
걸림 없이 공하되 또렷해야 삼매요
경계에 있으나 끄달림이 없고
정에 있으나 없음이 아니니
이쪽 저쪽 치우친 분별을 쓸어 다 하니라.
말이라 이름해도 참 말이 아니요
소라고 이름해도 참 소가 아니나
참(理)을 이르기 위해 차별(事)로써 드러내나니
진제(眞際) 속제(俗際)를 분별하지 말지니라
'무심이 도라 하나 무심에도 한 관문이 있으니' 이 도리를 요달하면 아라한이라 이름한다. '허공에 뼈 생기고, 곧은 것이 구부러진 것 가운데 있음이라'
土壤之高山 토양지고산 이어도
其山不知高 기산부지고 하고
水流流不息 수류유불식 하여도
自不知其流 자부지기류 하니라
흙이 산을 받치고 있어도
그 산의 높이 모르고
물이 쉼없이 흘러도
스스로 그 흐름을 알지 못하니라
일체가 필경 공하니
환화 같은 경계에 욕심이 없도다
욕심이 없으니 다툼이 없고
시비가 없으니 분별도 없어라.
중생이 부처요 부처라 할 때 중생이니
비록 증오라 해도 깨달았다는 생각이 있으면
상견이 있어 곧 매함이 되리니
실다움도 이름도 모두 여의어야 하니라.
조개도 방편이요 구슬도 방편이며
사향도 비유요 향기도 비유라
본래 빈 가운데 지혜 성품은 보이지 않아도
일체를 나투고 작용 하니라
닦음도 여의고 마음도 여읨이
다툼 없는 제일의 이라면
무심이 도가 아니면 무엇이련가?
무심도 여의고 여의었음도 여의어라.
정에 드는 자기 만족만을 구한다면
소승의 아상에 머무는 근기요
상구보리 하화중생이라야
비로소 대승 일승불이니라.
석가모니는 연등 부처님께 수기를 받았으니 곧 취함이 되고
연등불은 법을 설해준 바가 있었거늘
어찌 설하지 않고 취하지 않았다 하는가?
본래 말로 이르지 못하고 본래 구족했음을 알아야 하니라.
설해도 설함이 없고
받아도 받음이 없음이여
물을 말한들 입술을 적시지 못함이고
내 주머니 보물 찾음이 누구에게 받음이랴?
연등불이 말로써 설한 그 말 참이 아니니
석가는 그 말을 얻어가진 것이 아니요
본래 법(眞理)이란 말로써 이를 수 없으니
설해도 설함이 없고 들어도 들음이 없는 것이니라.
일체가 幻이요, 색신도 또한 實 아니니
실다움은 법성이나, 그 또한 공 한데
어디에 因이 있어 果를 받으며
연등불이 무얼 주어 석가가 받았으랴?
천상천하 유아독존이여!
어찌 석가를 이르름이랴
간이 커서 부처와 조사들을 삼킴이여
일체중생의 실상면목이 그러하니라.
言及虛空有骨胎 언급허공유골태 하고
說道無心一關隔 설도무심일관격 이니
大道無門君了知 대도무문군요지 하라
東西南北皆是門 동서남북개시문 이니라
허공이라면 뼈가 있고
무심에도 한 관문이 있으니
대도는 문이 없음을 그대여 똑똑히 알라
동서남북이 모두 문이니라
장엄이라 장엄이라.
식정 경계는 치장이 장엄이나
실상 장엄은 함이 없음이 장엄이니
불국정토는 청정한 그대로 장엄이니라.
형상 있는 불사도 장엄이요
두루 베풂도 장엄이요
청정한 定과 밝은 慧가 그대로 장엄이니
그 가운데 정혜의 청정함이 제일 장엄이라.
어머니의 속옷은 보이지 않으니 드러나지 않는 체인 정이요
청주의 베적삼은 소박한 지혜의 반야라
꾸미는 건 조작이요 더럽힘이니
참장엄이란 원래의 정과 혜가 그것이니라.
번뇌를 제하면 그대로 청정하니
정과 혜가 밝게 드러나도다
그러나 그대로 머물러 있음이
밝은 대로 쓰고 씀에 어찌 미치랴?
법계가 공함을 통달하면
취할 것이 없고 집착함이 없게 되어
묘한 지혜가 밝게 드러나나니
걸림 없는 청정심이 곧 이 해탈이로다.
교만은 내가 있음이요
집착은 사람이라 고집함이니
경계 속에 살되 경계에 끄달리지 않고
시비 속에 살되 시비를 여읨이 불국정토니라.
공적한 성품을 요달하여 지혜의 눈이 밝아지면 도무지 형상(幻)에 집착하지 않고 행하게 되니 곧 보살행인 것이다.
'공적 영지한 것으로부터 나투니,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但心生生 단심생생 하여도
應無所住 응무소주 이니
波上月影 파상월영 하니
散如不散 산여불산 이니라
다만 마음을 내고 내어도
머무는 바 없이 머무니
물결 위에 잠긴 달이
흩뜨려도 흩어지지 않는 것과 같으니라
경계에 끄달려 망상을 일으킴이 옳지 못하니
정(應無所住)가운데 계합 해 있으되 혜로써 경계에 응(而生其心)하는
마땅히 취함이 없는 이것이 바른 행이니
육진 경계에 집착하지 않음이 곧 머무름이 없는 주함 이니라.
굳은 돌이 움직임은 거북이 털 남이요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 곧 움직임이네
본래 부동의 체는 항상 작용하나
작용이 집착이 없을 때 곧 옳은 것이로다.
산사에 말없이 앉음은
요요적적 본 진여요
기러기 맑은 소리 허공을 흔듦은
걸림 없는 반야 작용의 묘함이로다.
산 가운데 수미산이 왕이라 크고 크나
거북이 털 같은 몸은 큼이 한량없어 그 가운데 작음이라
경계는 비유로써 크다 작다 헤아려도
진여는 토끼 뿔 같아 비할 수 없는 큼이로다.
수미산이 크다 하나 진신에 비유할 수 없고
칠보의 보시는 샘이 있고 인을 심어 과를 받고
유위는 환과 같아 경계에 끄달리게 하나
샘이 없는 무위의 실상이 참 큼이니라.
참 큼은 무엇으로도 비유하지 못해
감히 가리켜 비유해 보이는 모두가
법계의 빈 성품가운데 먼지 같으니
무엇이라도 크게 있다 없다 못하니라
산 넘어 연기 남을 보아 연기 일으킨 곳을 쫓아 계합할 지니라.
상이 없으니 내가 없고
능소가 없으니 상이 없도다
상대가 없으니 장엄할 主도
장엄 받을 客도 없느니라
공적함을 요달해 정안을 얻어
일체가 비고 고요함을 밝게 알면
무심, 무아가 곧 열반 그것이니
얻을 것도 꾸밀 것도 없는 것이 참 장엄이니라.
하나 하나 모두가
일체를 구족했으니
하나 가운데 모두요
모두 가운데 하나니라
寶貨滿積不知有 보화만적불지유 하고
勞索其物本在我 노색기물본재아 이네
一擧便得虎頭尾 일거변득호두미 하니
孫悟空持如意棒 손오공지여의봉 이로다
보화가 가득히 쌓여 있어도 모르고 있다가
찾고 보니 본래 그것이 내 것이었네
호랑이 머리와 꼬리를 거두니
손오공이 여의봉을 얻음이로다
금강경은 곧 진과 속을 갖춤이라
곧 삼신불과 다르지 않으니
탑에 모신 부처님과 다름이 없어
모든 세간 천인이 모두 공경하게 되니라
경전 전체도 아닌 사구게의
공덕이 그토록 뛰어남은
사구게가 경 전체요, 경 전체가 사구게이니
하나 가운데 모두요, 모두 가운데의 하나니라.
體란 定이요 근본 바탕인 진불이고
用이란 慧요, 일체의 작용인 응신이니
문자가 眞이 아니로되 문자를 여의고 또한 진이 없어
진과 俗이 곧 하나임에 이 경이 참이 되니라
외움도 마음(根本)에 계합하고
그 뜻도 마음에 계합하고
무상무착의 도리도 계합하여
말과 행이 일치함을 一如라 하니라.
이로써 경이 부처요 제자임을 아나니
칠보의 보시 복도 한갓 허공 꽃과 같아서
죽이고 살림이 자재하게 됨이
청산(體)이 구름(用)을 머금은 것과 같으니라.
쓰고 또 쓰고 굴리고 굴려도
늘고 줌도 없고 움직임도 없으며
나눌 수도 없앨 수도 없는 물건이 있으니
이 무엇인고? ○ 악!
誰敢得證悟 수감득증오 인가
本無迷且悟 본무미차오 이니
悟了證得智 오료증득지 하면
悟無得之智 오무득지지 이니라
누가 깨달아 얻을손가?
깨닫고 얻은 것 본래 없으니,
깨달아 지혜를 얻게되면,
깨달아 얻은 것이 없는 것이 반야니라.
설함도 있고 이름도 두었으나
말과 글은 참이 아니라 하고
반야바라밀은 반야바라밀이 아니라 하심은
불을 일러도 입술을 데지 않기 때문이라.
나 있고 법 있음에 집착해서
나고 죽음에 끄달리나
생멸이 없음을 요달하면
곧 이 피안이니 한 법도 가히 없음이로다.
들어 설하되 흔적을 지우고
임의자재 하되 함이 없어라
설해도 설함이 없음이여
이치는 문자에 있지 않아 자취를 쓸었도다.
知佛無言口生蓮 지불무언구생연 하리니
流水靑山共一家 유수청산공일가 이라
以法裁官不容針 이법재관불용침 이어도
法外私通車馬行 법외사통차마행 하니라
부처가 말이 없음을 알면 입에서 연꽃이 피리니
흐르는 물 청산은 한 집안 일이라
법으로는 바늘 하나 통할 수 없어도
사사로이는 거마도 통하는 것이니라
무심에도 관문이 격해 있으니
말없을 땐 말 없다는 것도 없으니
소리를 낮추고 낮춤이여
낮춘다는 그 마저도 여의어라
俗에서도 찾을 수 없고 眞에서도 찾을 수 없으니
알음알이를 모두 떠나야 참을 보리라
비록 그러하나 진속(眞俗)이 둘 아니라
일체에 두루한데 알 수 없는 물건이로다.
세계를 부수면 티끌이요
티끌이 사라지면 하나의 빈 것이라
말로 이른 일승조차 본래 없으니
삼승, 사제, 반야경도 방편임을 알라.
미진이 미진 아니요 세계가 세계 아니니
미진 세계를 관하면 공한 것이니라
보시의 복으로 天子가 될지라도 번뇌를 여의지 못하나
4구게를 수지하면 보리를 증득하니 인도 없고 과도 없느니라.
삼천 대천세계의 미진 수의 망념이 공한 것이니
티끌 같은 망이 곧 진임을 깨달으면
진도 망도 공적하여 달리 없는 虛名이니
번뇌가 없으면 불 세계요 번뇌가 있으면 중생계니라
하늘을 가리키고 땅을 밟고서
주리면 먹고 곤하면 잠자는 것
이것이 한가한 무심 도인이니
조작 없는 삶 가운데 소요자재 하도다.
見尾識隱虎 견미식은호 하고
視角亦知牛 시각역지우 나니
道本無修得 도본무수득 이나
不修不免凡 불수불면범 하리라
꼬리를 보고 호랑이를 알고
뿔을 보고 소를 아나니
도는 닦아 얻을 것이 본래 없으나
익혀 닦지 않으면 범부를 면치 못하리라.
물은 파도를 여의지 못하고
파도는 물을 여의지 못하니
상과 상 아님을 여의면
상도 곧 상 아님도 아닌 理事가 不二로다.
보리를 구하고자 보시를 한다면
보리는 보시로 구할 수 없느니라.
보시는 능소의 相이 있음을 들어 밝히니
이 경을 지녀 설해줌이 뛰어난 것이니라.
무위의 일을 유위로써 보이니
유위의 상은 곧 실상이 아니로다
사람이 공함(我空)만 깨치면 완전함이 아니니
일체가 공한 것(法空) 마저 깨달아야 부처님이라 이르니라.
하지만 숯불장수는 불씨를 남에게 구하지 않느니라.
하나를 세우면 상대가 있으니
有와 無를 함께 여의면
일체가 둘 아니니
세존의 양구하심은 不二 법문이니라.
보시로 구하고자 하는 것은
인천의 과보로 애욕에 잠기게 하여
보리를 구함에 오히려 장애가 되나니
원숭이가 물에 달을 건지려는 듯 허망 무실한 것이로다
구하고 베푸는 것은 함이 있음이요
사구게를 받아 지님은 함이 없음이니
함이 없으면 보리를 증하고 함이 있으면 업을 쌓으니
함이 있고 함이 없음의 우열이 이러하도다.
보시와 경을 지님이 우열이 분명하나
구경각을 얻고자 한다면
베풀고 닦는 일상생활이 둘 아니니
경을 지니고 보시함을 스스로 겸할지니라.
신통을 달리 구하지 말라
행주좌와 가운데 쓰는 것이 묘용이니
새는 짖어 유정설법을 하고
꽃은 피어 무정설법을 하도다.
설해도 설함이 없음이여!
세존이 방편으로 열어 보이셔도
일찍이 한 글자 한 말씀도 하지 않으셨으니
말과 글을 쫓게 되면 흙덩이를 무는 개꼴이 되니라.
元자에 본래 다리가 없네
본래 元이 다리가 없으니 둘이 아니라
둘 아닌 공함이면 이름이 없으니
밖을 향해 구하지 말라, 일체가 환이니라.
古來無生有 고래무생유 하나
有而無有有 유이무유유 하니
眼不自見眼 안불자견안 하고
團團不知團 단단부지단 하니라
옛부터 남이 없이 있으나
있어도 있다는 있음이 없으니
눈은 눈을 스스로 보지 못하고
둥글고 둥근 것은 둥근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세존이 말없음으로 말없음을 보이시니
상근기가 이 희유함을 알고
말 있음으로 말없음에 이름을 보이심은
하근기도 알게되어 희유하다 하니라.
普遍三世界 보편삼세계 하여
有應無所住 유응무소주 하는
此理卽本體 차리즉본체 요
本體如虛空 본체여허공 이니라
삼세에 두루하여
마땅히 머묾 없이 머물고 있는
이 실체(理)가 곧 본체요
본체는 허공과 같으니라
맑아 깨끗한 그것이 곧 실상인 것이라
보고 듣는 말과 글이 실다움이 아니니
유와 무를 초월하여 공적영지한
그것이 실상이라 하나 말로써 이를 수 없는 이 것이로다.
산하대지는 본래부터 있음이 아니로다.
산하대지는 어느 곳에서 왔는가?
누가 만일 이를 묻는다면
바다 밑에서 연기 난 곳이라 하리라.
있다 하면 작용이요 환이니
본래 실상은 있어도 있음이 없어
만물의 체가 본래 진공이라
일체의 체가 절대 평등하니라.
부드럽다니 쉬운 것 같고
철벽같다니 어려운 것 같도다
그러나 어렵지도 쉽지도 않으니
다만 본래 나를 다시 찾으려 하지 말라.
배고프면 밥 먹고 곤하면 잠자니
행주좌와 일체처 일체시 기거동작이
이 한 물건의 나툼인데 무엇이 희유인가
잊었던 것을 찾았을 뿐이니라.
항상 평등하다는 것은
북두를 남쪽으로 향해 봄이라
서쪽 집 말이 여물 먹으니 동쪽 집 소가 배가 터짐이요
남산에 구름 일기 전에 북산에 비가 온 소식이니라.
비로자나불 법신은 동함이 없으나
지혜 문수와 보현 행이 있어 수승하며
한산(靑山)의 지혜가 습득(途中)의 행과 더불어
성인의 경계를 보이니 부끄러움이 없도다.
법신과 보신이 공적함을 깨쳤으니
걸림 없는 마음이라 무애자재하도다.
本覺과 始覺이 둘 아니니
청정(眞諦)한 가운데 밝게 행(俗諦)하도다.
'달이 달을 삼키고, 물에 도장을 찍었으되 흔적이 없음이로다.'
풍족함을 스스로 갖추고 있어도 모르면 가난하고
갑자기 자기의 것임을 알 때 놀래기 쉬워
오묘한 이치를 능히 알면 희유할 것이나
계합해 깨달아 증오하면 놀랠 것이 없으리라.
驚怖畏가 사람의 감정이 다르니
놀랜다(驚)는 것 두려움이 생긴 때문이요
두려워한다(怖)는 건 의심스럽기 때문이며
겁낸다(畏)는 것은 한결같이 두렵기 때문이니라.
어리석어 집착이 있으므로 저열한 수행인이
부처님의 말씀을 듣되 소리와 문자에 집착하나
소리나 문자는 황엽(黃葉)과 같아 방편일 뿐임을 알라
일체 상이 상 아님을 깨달으면 심히 희유함이 되니라.
작은 것과 큰 것이여! 작음이 큼이요 큼이 작음이니
공한 것과 공함은 곧 공함이라
깨쳐서 알 바요 생각으로 이를 수 없으니
겨자 속에 수미산 넣고 터럭 끝에 바다가 듦이로다.
공한 것은 유위의 형상이 아니나
유위를 떠나고 무위의 실상이 머물곳이 없으니
물은 파도를 여의지 못하고 파도는 물을 여의지 못함을
밝게 깨달아 알면 희유하다 하니라.
안다는 것은 알음알이요
마음에 계합해야 곧 옳으니
마음에 함이 있으면 곧 차별이 되고
마음에 함이 없으면 비로소 옳다 하니라.
만약 내라는 상에 집착하고
사람이라는 상, 중생이라는 상,
죽지 않고 오래 살겠다는 상이 있다면
참는 것에 한계가 있게 되는 것이다.
몸이라는 것이 실상으로 항상함으로 생각하면 옳지 못하고
몸이라는 것이 환과 같음을 알면 옳으니
신체가 찢기고 끊어져도 원망이 나지 않음은
나라는 상이 없음에서이니라.
어려움을 만나 동하지 않으니
망(妄)이 곧 반야임을 요달했음이라
그러므로 어리석음과 지혜가 분명하니
어리석은 이는 지혜로운 이의 가르침을 받아야 하니라.
내가 공하니 걸림이 없어
해함에도 방해롭지 않다네
어두움(愚昧)이 곧 보리이니
팔풍인들 어찌 항상한 것이랴?
참음으로써 고통을 참은 것이 아니라
고통을 참아야 할 내가 없음을 요달한 것이니
인욕은 참는 것이 아니요, 참을 것이 없음(空)을 보아
참아야 할 생각을 일으키지 않음인 것이니라.
의심되는 것 깨뜨리면 밝게 깨우치니
무엇이 의심인가? 아상의 실상이라
내가 공하고 고가 공하니
고통 받을 나도 고통도 더불어 공하도다.
오랫동안 참고 내가 공함을 관하여
원수도, 친한 이도, 남의 시비도 보지 않으며
남의 해침을 당함에도 기쁘게 받아들여 공경하면
능히 인욕바라밀을 성취하게되니라.
자기마음이 부처인 줄 안다면
객진 경계에 집착하지 않고
상을 여의면 마땅히 불지에 오르나
여의어야 할 상이 본래 없음을 요달해야 하느니라.
汝我本來則無二 여아본래즉무이 이요
主客實相有而無 주객실상유이무 이니
金獅子脫外虛空 금사자탈외허공 이라
無相無空無無空 무상무공무무공 이어라
너와 내가 본래 곧 둘 아니요
주인과 객이 실상은 있으나 없음이니
황금사자가 허공 밖을 벗어남이라
본래 상도 없고 빈 것도 없고 비어 없음도 없어라.
식정이 물결치면 경계가 요동하고
엉기어 고요하면 지혜가 밝으리니
고요한 것은 고요하다는 생각이 없음이 참 고요함이며
무릇 응하여 쓰되 무념으로 행함이 보살행이니라.
자기가 집착하면서 어찌 남에게 욕심을 버리라 하며
자기가 허물이 많으면서 어찌 남의 허물을 이를 것이며
자기가 증오(證悟)하지 못하고서 어찌 남을 제도한다 하리요?
유주, 무주, 중도도 집착하지(변견) 않아야 참으로 머묾 없는 행이니라.
부처가 있다 해도 곧 옳지 못하고
부처가 없다 해도 곧 옳지 못하며
유무를 여의고 또한 중도마저 여의어야 하나니
훗날 일러주지 않았다고 말하지 말라.
항상하여 남(生)도 없고 없어짐도 없는 것이 여래이니
일체 제상이 불생(不生)하고 본각이 불멸함이로다
따라서 온 곳도 없고 갈 곳도 없으니
나도 중생도 모든 것이 실상이 아니며 아니라는 것도 아니니라
말에 굴림을 당해 말끝을 쫓는 이는 많고
말뜻을 깨달아 말을 굴리는 이는 적으니
부처님의 말뜻을 깨달으면 은혜를 갚음이고
말을 쫓아 알음알이를 내면 은혜를 저버리는 것이니라.
子卽是母母是子 자즉시모모시자 이니
當知方物不塞圓 당지방물불색원 하고
方圓各有所有理 방원각유소유리 이니
月照萬像無自影 월조만상무자영 이니라
아들은 곧 어머니요 어머니는 아들이니
당연히 모난 것으로 둥근 구멍을 막지 못하고
모난 것은 모남으로 둥근 것은 둥글어야 맞으나
달이 우주를 비춰도 제 그림자 없음이니라.
공이 실이라니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있어서 실다운가? 없어서 헛됨인가?
있어도 있음이 없고 없어도 없음이 없으니
바닷물 속의 짠맛 같도다.
두두물물이 이 한 물건의 나툼이나
이를 찾으려면 보이지 않으니
밥 먹고 잠자는 때 늘 함께 해도
그를 알지 못하노라.
暗者遮明是暗 암자차명시암 이고
明者却暗是明 명자각암시명 이니
明頭來明頭打 명두래명두타 하고
暗頭來暗頭打 암두래암두타 하라
어둠은 밝음을 가리어 어둡고
밝음은 어둠이 물러나면 밝음이나
밝음이 오면 밝음으로 치고
어둠이 오면 어둠으로 치노라
베푸는 자, 받는 자, 그 베푸는 것인 육진경계에 집착하면
실상이 공함을 요달하지 못하게 되어 법문을 들어도 눈먼 자가 사물을분별하지 못함과 같고,
집착을 여의고 일체를 본다면
눈이 있고 밝은 태양 빛이 있어 만물을 봄에 걸림이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니라.
月照千江月千個 월조천강월천개 이나
千個更在一個中 천개경재일개중 하고
一建一切一生多 일건일체일생다 이니
一切物物皆含一 일체물물개함일 이네
달 하나 천강 위에 비춰 천개의 달이나
그 모두를 하나가 거두고 잡고 있어
하나가 모두를 건립하고 일체는 하나에서 생기니
물건마다 모두가 하나를 머금고 있네.
몸은(體 : 定) 곧 공하니 있음에 집착말고
작용(慧 : 用)은 곧 묘용이 있으니 없음에 집착하지 않아야
정과 혜를 어기지 않나니
정혜를 계합한 즉 만덕이 현전하니라.
유루의 복은 다함이 있으나
무루 공덕은 다함이 없으니
이 경을 믿고 계합하면 사상(四相)이 나지 않아
이것이 불지견이며 곧 정각을 얻음이라.
海上起塵山頂浪 해상기진산정랑 이니
雲自離鄕已遠久 운자리향이원구 이요
耳聽目見遠本元 이청목견원본원 이니
耳觀目聽目前現 이관목청목전현 하니라
바다에서 먼지 일으키고 산 위에서 풍랑을 일으킴이니
구름은 스스로 동구 밖을 벗어난지 이미 오래요
귀로 듣고 눈으로 보면 본원에서 멀어지니
귀로 보고 눈으로 들어야 눈앞에 현전하니라
최상승은 무념 무상의 경지이니
곧 일체지요, 무생법인이며, 대 반야요
대승은 일체 진리인 종지를 증오함이니
믿고 깨친 최상승법을 남을 위해 설하니라.
한 주먹에 팔만 사천 법을 설하고
한발로 차서 일체를 쓸어 뜨리도다
대승설, 최상승설 모두가 잠꼬대이니
부처와 더불어 둘 아닌데 달리 누구를 의지해 구하랴?
부처의 지혜를 둘 아님으로 짊어졌(荷擔)으니
내가 佛이요, 불이 또한 나로다.
대승법을 설하는 이, 듣는 최상승인이 둘 아님은
다만 부처님의 지견을 증오함인 때문이니라.
일체 두두물물(頭頭物物)이 塵과 幻인 用이요
주인인 體는 크고 고요함이로다.
그 가운데 주인은 理도 밝고 事에도 걸림이 없어
밖으로 온갖 인연 따라 응해도 안으로는 항상 고요하도다.
본래 구족한 지혜를 발현해 쓰지 못하는 것은
믿고 닦고 익히지 않음이니
어질고 지혜로움 닦아 깨달으면
본래 갖춘 것 마음대로 쓰리라.
不容神在由無智 불용신재유무지 이요
盲信奉鬼亦愚癡 맹신봉귀역우치 이니
智慧無別知分別 지혜무별지분별 이라
般若本來無內外 반야본래무내외 하니라
신령함을 부인하는 것은 무지한 소치요
귀신을 믿고 섬김은 또한 어리석은 소치이니
지혜(智)는 무분별지(般若)요 지식(知)은 분별지(解)라
반야는 본래 안과 밖이 없이 있느니라.
옛부터 서로 앉고 눕고 함께 해도
알지 못하고 있는 이라.
밖으로 찾아서는 보지 못하니
그대로 그것이 곧 그것이니라.
큰 역량 있는 이는 부동이어도
일체를 나투고 작용하니라.
아무리 움직여도 미동도 하지 않아
큰 역량인은 옛과 같이 고요하도다.
지혜의 칼 취모검이여
일체의 번뇌 망상도 용납하지 않아
범부, 성인도 잘라 버리는
비로자나 법신의 성품이로다.
아상이 있으면 타인을 무시하고
아만이 생하여 남의 위가 되고자 하나
아상이 없으면 천함도 귀함도 분별하지 않아
남의 업신여김을 즐거움으로 삼으리라.
비록 전생의 죄업이 무거워도
이 경 수지 독송하면 업신여김 받을지라도
그 죄업 곧 소멸되고 정각을 이루리니
이 경 받아 지닌 공덕 한량없어라.
가장 큰 이 일을 알고자 하면
이 하나를 깨우치라.
이 하나는 부증 불감한 마하이니
칭찬도 헐뜯음도 미치지 못하니라.
믿고 닦음도 나 스스로요
깨우침도 행함도 나 스스로다
일체가 공하여 무상 무착하는
이 도리 깨우침이 곧 보리로다.
從物卽過 종물즉과 이요
動念卽乖 동념즉괴 리니
呑下諸佛 탄하제불 인데
何處有生 하처유생 인가
사물에 쫓아 보면 곧 잘못됨이요
한 생각 일으키면 어긋나리니
삼세 제불을 한 입에 삼켰는데
어느 곳에 제도할 중생이 있는가?
내가 제도할 중생이 있다는 생각이면
상대적인 차별상의 소견을 지어
내다, 사람이다 등의 4상을 집착함이니
4상과 능소심(能所心)이 몰록 다해야 진제(理)에 계합되니라.
내가 있다, 사람이다 등의 4상은 번뇌의 근본이니
4상이 공함을 밝게 깨달으면 무심이 되고
무심이 곧 각이니 이것이 보리(菩提)라
이미 이러할진대 어디에 我가 있고 法이 있으랴.
謂得已應錯 위득이응착 이요
無得是眞得 무득시진득 이니
鳥飛虛空後 조비허공후 에는
蒼空亦無蹟 창공역무적 이어라
얻었다 하면 이미 응당 어긋난 것이요
얻을 것이 없는 것이 참으로 얻는 것이니
새가 허공을 날아간 뒤에
창공에는 자취조차 없어라
안팎이 가난해야 보리를 얻었음을 수기하니
4상이 없어야 참으로 증득할 것이니라
가난하기는 송곳조차 없어도
의기는 일체를 움직이도다.
밖에도 안에도 아무 것이 없으니
위로는 기와 조각이 없음도 없고
아래로는 송곳 없음조차 없어라.
이 무엇인가? 악!
색,성,향,미,촉,법의 본질이 일체 평등하여 如이니
청정한 성품이 칭찬이나 헐뜯음에 動할 리 없고
청정한 진성은 볼 것이 없고 이름조차 없되
佛이라 예경하나 개구즉착(開口卽錯)이로다.
(움직이면 곧 30방이라! 그러나 그 방망이는 어떻게 처리할고? 억!)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
물과 산이 함께 하나로 돌아가도다
만년의 즐거움이라
항상 하는 즐거움인 無生樂 뿐이로다.
瞬目又揚眉 순목우양미 가
皆是眞佛現 개시진불현 이니
圓物生圓物 원물생원물 이고
方亦生方物 방역생방물 이니라
눈을 감고 뜨고 눈썹 치키고 내리는 것
모두가 참 부처의 출현이니
둥근 것은 둥근 것을 낳고
모난 것은 모난 것을 낳느니라
일체 상이 모두가 허망해서
말씀하신 모두가 실다움이 없으나
또한 일체 상이 제각각 이로되
본질을 觀해 보면 모두가 실상 아님이 없도다.
맛있는 술을 빚고 환화(幻花)의 꽃을 피우고
맑고 푸르른 거문고 소리 내는 이 모든 재주여
신통을 달리 구하지 말라
스스로 갖추어 쓰고 있음이로다.
거두면 無實이니 있음이 없음이요
놓아주면 無虛이니 법의 실상을 드러냄이라
법이 곧 법 아니라고 하는 것은 법이 있음이 없음이요
佛이 곧 법(一切)이요 일체(法)가 곧 不二니라.
相이 없고 집착함이 없다면
항상 나투고 작용하되 무념 무상의 마음이요
체, 용(體用) 일체를 불법이라 하나
체, 용이 상이 없으니 일체가 법이요 또 법 아니라 하니라.
천하의 성인을 일러 上大人이라 칭하나니
성현 공자를 상대인이라 함은
다만 그가 이 도리를 깊이 체득하여 널리 알렸음이요
위없는 天眞佛體인 부처를 증오(覺)하였더라면 부처님이라 하였으리라.
말과 말은 소리요 실상이 아니요
실상은 여여하여 항상 적적묵묵하니
천지에 가득한 것이 마음도 아니요 법도 아닌
본래면목인 실상이니라.
사람의 진신이 큰 몸이 아니라 함은
머무는 곳 없이 머무는 두루함이기 때문이요
또한 법신이 한량이 없고 끝이 없으므로
이름하여 큰 몸이라 하는 것이니라.
색신이 작을지라도 큰 몸을 깨달으면
크고 큰 몸이라 이름하나
비록 깨쳐 지혜가 있어도
행함이 같지 못하면 큰 몸이 아니니라.
부처도 아니요, 마음도 아니요, 법도 아니라 하나
큰 몸을 깨쳐 그 지혜로써 행함을 큰 몸(부처님)이라 하니라.
見與所見俱空寂 견여소견구공적 이니
生死涅槃都是塵 생사열반도시진 이네
本無束縛無解脫 본무속박무해탈 이며
全身是手全身眼 전신시수전신안 이니라
보는 것도 보이는 것도 모두 공적하니
생사와 열반이 티끌일 뿐일세
본래 속박이 없으니 해탈도 없으며
온몸이 손이요 온몸이 눈이니라.
일체가 본성이 공하여 제도할 중생도 4상도 없으니
이렇게 항복 받고 이렇게 머물도록 가르치시니
佛, 法, 道 모두가 공하여 머묾이 없음을 깨달으면
일체 법이 我가(四相) 없는 청정진여에 이르니라.
설법하여 번뇌를 없앤다 하면 法我가 있음이요
능히 중생을 제도한다 하면 내라는 것(我所)이 있음이니
비록 중생을 제도할지라도 我相이 있으면 보살이 아니요
무수한 방편으로 중생을 제도하되 能所가 없으면 곧 보살이니라.
있음도 아니요 없음도 아니라
불법도 아니요 불법 아님도 아니니
불법이라 해도 옳고 불법 아니라 해도 옳으니
실상이 여여하여 작용에 흔적이 없도다.
惟願諸君莫尋佛 유원제군막심불 하라
行住坐臥與君俱 행주좌와여군구 하도다
唯在目前不見面 유재목전불견면 이나
知不見者是佛也 지불견자시불야 니라
오직 바라노니 그대들이여 달리 부처를 찾지 말라
행주좌와(行住坐臥)에 그대와 함께 하도다
오직 눈앞에 두고도 그 얼굴 못 보나
못 볼 줄 아는 그가 다만 이 부처니라
오온으로 뭉쳐진 몸이 공함을 깨치면
삼천 대천 세계가 같은 몸임을 알리니
그러므로 한산(體: 定)과 습득(用: 길)은 동체이며
문수(寒山)와 보현(拾得)이 반야 작용으로 오고 가느니라.
사람과 법이 서로 상대하나
본질이 서로 공해 같으니
사람도 법도 실다움도 헛됨도 아니므로
얻음이 있지도 없지도 않는 것이니라.
망이 진이니 중생도 부처도 본래 없어
아공(我空) 법공(法空)한데 보리는 본래 원만히 구족되어
옛부터 영원히 신령스레 빛나나니
다시 달리 구할 것이 없도다.
여래는 5안이 갖추어져 있으니
육안은 일체의 모습을 보고
천안은 일체의 불 국토를 모두 보고 일체중생이 불성이 있음을 아는 것이며
혜안은 근본 지혜의 눈이니 일체종지를 요달함이고
법안은 깨달아 얻은 지혜(後得智)로써 중생을 제도하되 진리에도 집착함이 없는 것이며
불안은 일체종지를 갖춰 있어서 무여 열반의 능소가 영원히 끊어진 것이니
일체를 한 눈 한 가지로 보심으로 차별이 없는 하나의 눈이 일체요
일체의 눈이 하나라, 따라서 일체 차별상을 알며 일체 차별상이 둘 아님도, 실상이 공함도 알게 되는 것이다.
여래에게는 육안, 천안, 혜안, 법안이 모두 불안이니
불성을 보아 구경각을 이루고
육안, 천안은 모습을 거두어 보고(色攝)
혜안은 구경의 진리를 거두어 보며
법안은 세간의 진리를 모두 거두어 보나니라.
일체 갈무리된 각기 다른 종자가 일체종지라
불안은 이 일체를 거두어 보나니
여래는 5안과 일체종지를 갖추시고
써도 씀이 없어 한량없이 써도 功을 요하지 않도다.
일체중생도 5안이 있으나 미혹으로 인해 보지 못하므로
부처님이 애석히 생각하셔 깨우쳐 주시니
미혹함을 제하면 육안이 밝아지고
다시 모든 중생이 불성이 있음을 깨달아 보면 천안이요
어리석지 않은 슬기가 혜안이며
법상에 집착함이 나지 않음이 법안이요
무여 열반으로 뚜렷이 밝게 비춤이 불안이니라.
다시 이르니 육안은 몸 안에 법신이 있음을 볼 줄 알며
천안은 일체중생이 반야를 갖춤을 볼 줄 알고
혜안은 반야바라밀법이 능히 삼세(三世)의 모든 법을 냄을 볼 줄 알며
법안은 모든 진리가 본래 구족해 있음을 볼 줄 알고
불안은 능소를 영원히 없앰을 보는 것이니라.
여래는 5안이요, 중생은 육안(肉眼)이니
중생의 봄과 여래의 봄이 어찌 같으랴?
중생은 모습 있음만 보고
여래는 모습 있음을 없음으로 봐 자취가 없도다.
欲은 5욕이니 곧 色등 다섯 가지 티끌(번뇌 망상 집착)이다.
마음이 욕으로 더불어 합한 것이므로 이름하여 共(함께)이라 하는 것이다.
온갖 가지가지 마음이라 하나
깨끗한 마음과 오염된 마음이니
깨끗한 마음은 일체가 공함을 요달함이요
오염된 마음은 상에 집착하여 망상을 일으킴이니라.
月光照物物不染 월광조물물불염 이고
常用天下不增減 상용천하부증감 이라
板齒生毛鬼氣毛 판치생모귀기모 하고
鬼食和聲鼠無角 귀식화성서무각 이니라
달이 비춰도 물듦이 없고
항상 쓰지만 늘고 줄지 않는 것이라
판대기 이빨에 털나고 귀신방귀 털이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요 쥐뿔도 없도다
번뇌망상이 끊임이 없어 일파만파라
지혜의 칼로 단박 끊으면 참마음이 드러나니
허망한 망상의 뜬 마음 그칠 줄 몰라도
지혜의 칼은 단박 끊을 수 있느니라.
항상 머무는 묘하고 뚜렷한 참마음(常住妙圓眞心)이여!
그 빛이 삼세에 통해 시방세계에 두루하니라.
중생의 마음 또한 부처와 다름이 없으니
제행이 무상하여 일체가 공한 이것이 여래의 大圓覺이로다.
과거의 마음은 이미 멸하였으니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은 현재는 텅 비고 고요하니 얻을 수 없으며
미래의 마음은 아직 온 것이 없으니 얻을 수 없음이니
허망한 뜬 마음을 버리고 항상 머무는 참마음에 계합케 하시니라.
공하니 찾아도 자취가 없으며
상이 없으니 눈으로 볼 것이 없고
또한 설 수 있는 처소도 없는 은산 철벽이나
몰록 땅이 꺼지듯 깨우쳐 알 것이니라.
어리석은 자는 상을 쫓아서
물에 빠진 칼을 찾고자 뱃전에 표시를 하나니
옛 거울(마음)속의 그림자를 달리 찾지 말지니
두두물물이 부처의 나툼임을 알면 다시 찾지 않으리라.
깊고 미묘한 말재주와 세상의 요긴함을 다하고
천경만론을 다해도 구경에 이르지 못할지니
진성(眞性)은 법계에 두루하나
그 묘한 작용반야는 불안으로도 볼 수 없는 것이로다.
실상은 모양이 아니므로 실다운 상이라 하시니
실상은 일체법의 실다운 상임을 이르니
실상은 본래 생도 멸도 없는 일체 평등하고 원만해 장애가 없으며
실상은 시작 없는 옛부터 끝없는 미래까지 상주할 곧 나요 반야며 모든 것이니라.
복만 탐하는 것은 코끼리(智慧) 몸의 칠보에 끄달려
근원은 등한하고 지엽적인 상에만 집착함이요
모든 성품 공함만 알고 복 지을 줄 모름은
아라한이 공덕을 깨쳤으나 소승에 머물러 복록이 엷음만 같으니라.
공덕이 복에 비해 더욱 뛰어난 것이므로
공(空)을 관해 앉아 있음이 계교보다 수승함이니
비록 그러하나 양족존(복, 혜구족)이어야
구경의 대도에 완전한 계합인 것임을 믿어야 하니라.
큰 코끼리 몸에 두른 칠보를 탐하면 더러운 부자요
깨끗한 가난에 비할 바 못되나니
과보를 얻음에 치우쳐 닦으면 항상 함(空寂)을 잃으니
복과 공덕을 함께 닦아 증득함이 대도에 이르니라.
보시로 인한 복덕은 덧없는(有漏) 과보요
무위의 공덕은 범부와 성인을 뛰어 넘는 것이나
유위가 참이 아니나 유위로 닦아 부처를 이루고
무위가 참일지라도 헤아리면 불과(佛果)를 증득(證得)하지 못하노라.
그러므로 베풀되 집착함이 없고 무위로써 분별이 없게 되면 청정지혜에 장애가 없도다.
체란 본래의 근본 바탕이니
일체법이 본래 텅 비어 청정하나
묘한 있음은 묘하게도 인연에 응하여
일체를 나투어(妙用) 보이니라.
만가지 형상은 응하여 나툰 마음의 그림자요
4상과 법상을 여의어야 곧 보리를 증득하리니
여래는 상이 없는 법신이요 진신이라
혜안으로 계합할 수 있는 것이로다.
이치로는 개구즉착(바늘도 용납지 않음)이나
세속현상으로야 어찌 만법이 통(수레도 통함)하지 못하랴
일체 법이 본래 비어 청정하여 설함도 들음도 허용치 않으나
세존의 일대시교가 방편(수레도)으로 통함이니라.
허공 같은 진신을 볼 수 없으나
한번 몸을 굴려 크게 죽어(我) 크게 살면(반야)
일체 세간의 일마다 물건마다
부처의 나툼이 아님이 없음을 알리라.
누가 불신을 상호나 구족색신으로 찾으려하는가?
능소를 모두 여의고 군(主: 체)신(客: 용)이 계합하여 둘 아니게 되면
진불(眞佛)이 相도 身도 없는 그윽함을 알 것이나
넓고 탕탕하여 안다는 생각을 내었을 땐 벌써 늦느니라.
법으로는 바늘 끝도 허용되지 않으나
사사로이는 거마가 통하는 것이니
있다 해도 틀리지 않고 없다 해도 틀리지 않아
부처가 말이 없이 입에서 연꽃을 피우도다.
설해도 설함이 없는 뜻 분명하나
부처님의 일대 시교는 천하에 넘치는데
이 법문은 어디로부터 쫓아 나온 건가?
그러므로 옳지(是)도 않고 그르지(非)도 않다 하니라.
路逢劍客須獻劍 노봉검객수헌검 하고
不逅詩人莫獻詩 불우시인막헌시 하리니
愚鈍猛犬逐土塊 우둔맹견축토괴 하고
伶리獅子應咬人 영리사자응교인 하니라
길에서 검객을 만나면 칼을 바치고
시인이 아니면 시를 바치지 말지니
어리석고 사나운 개는 흙덩이를 좇고
영리한 사자는 응당 사람을 무느니라.
설법이란 설할 것이 없는 것을 설함이요
들을 것이 없는 것을 들음이니
법신은 부동하여 설법하지 않고
듣는 것도 공하여 들음이 없는 것이니라
거북이 털과 토끼 뿔은 어디로 쫓아 나온 것인가?
허공에 가득한 거북이 털과 토끼 뿔과
눈송이가 불타는 화롯불 가운데 떨어짐은
설함이 없는 신묘한 나툼이요 들음이 없는 흔적 없는 있음이라.
세존이 맨발로 동분서주하며 횡설수설 설해서
고해 중생을 제도했다 하니
토끼 뿔 주장자와 거북이 털이요
중생이 듣고 제도되었다 하나 불 속의 눈이로다.
설해도 설함이 없음이여!
석마가 백호 광명을 놓고 허공에 一喝함은
바다 밑에 연기 남이며
불 가운데 눈이니 자취가 없음이로다.
'약은 병든 이에게 필요하나, 병이 없으면 약이 본래 필요 없는 것이다'
此心彼心本不二 차심피심본불이 이요
不尋本家由迷惑 불심본가유미혹 이나
泥牛破絶須彌山 니우파절수미산 하고
角兎呑下老野狐 각토탄하노야호 하도다
마음과 마음 본래 둘 아니요
미혹하여 본가를 찾지 못하니
진흙 소는 수미산을 쪼개 버리고
뿔난 토끼가 늙은 여우를 삼켰도다
본래 병이 없거늘 중생이 미혹하여
약을 써 낫게 하는 것이다
병이 없으면 약은 있어도 없는 듯 하나
병든 이를 위해서는 약을 필히 응해 써야 하니라
'구름이 걷히면 본래 있던 달이 그대로 있었음을 아는 것과 같으니라.'
一念頓絶一念慧 일념돈절일념혜 하면
卽是般若自然發 즉시반야자연발 이니
一切如如是佛法 일체여여시불법 이요
別揚佛法非佛法 별양불법비불법 이니라
생각 끓어지고 한 생각 슬기로우면
반야는 저절로 발현하게 되는 것이니
일체의 것 그저 그대로 불법이요
따로 세우면 불법은 불법이 아니니라
보리는 한 법도 없음을 깨달아 증득하니
얻을 것이 없음이 보리로다
일체 평등하여 본래 나와 둘 아니니
어찌 보리가 보리를 찾으리오?
비록 이 같이 덧없는 현상은 끝없이 생멸하니
그 생멸하는 낱낱의 것들이 모두 부처의 나툼이요
생각이 멸하면 법이 멸하여
청정한 마음밭 같이 일체가 끊어짐이로다
얻을 것이 없고 전할 것 없음이 무상보리요 해탈의 종지이니
그러므로 얻어도 얻을 것이 없고 전해도 전할 것이 없음이로다
한 생각 일으키면 벌써 문 밖이라
말과 침묵과, 있고 없음을 여의어야 오직 청정하리라.
중생 중생도 참이 아닌 거짓 이름이요
얻어도 얻을 것이 없는 깨달음을
거짓 이름하여 무상보리라 하니
중생도 부처님도 거짓 이름이라 본래는 다르지 않도다.
얻음 없음이여
공적한 가운데 본래 구족함이요
얻음 있음이여
닦아 증오하여 제불과 더불어 둘 아니게 됨이로다.
둥근 것은 둥글고 모난 것은 모난 것이니
평등을 잘못 알지 말지니라
길고 짧음이 같은 것이 평등 아니니
일체 평등은 둘이 없는 하나인 것이니라.
하나를 세우면 상대가 있게 되어
제도할 자 있다면 제도 받을 이가 있느니
악도 선도 거짓 이름으로
선악의 본성은 함께 공(空)하니라.
같은 곳에서 중생이 성도하고 부처님이 참을 증오했나니
그러므로 염불과 참선이 둘 아니니라
염불하되 공함을 깨닫고 참선 또한 공함을 깨달으면
둘이라 할지라도 옳고 둘 아니라 해도 옳으니라.
동쪽에서 해가 뜨고 서쪽으로 달이 지니
9·9는 81이라
넓고 빈 그 가운데 모두가 있어
꽃 피고 잎 지는 것 특이할 것 없도다.
천하를 살 수 있는 복도 작은 공덕과 비교할 수 없으니
칠보로 보시한 복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아도
반야지혜를 성취할 수 없음은
有漏 無漏와 有爲 無爲와 有限 無限과 差別 平等의 다름이로다.
일체 중생이 본래 부처이니
능소가 끊어져 제도할 것이 없도다
중생이 부처요 부처라 할 때 중생이니
분별하면 둘이나 본체는 둘 아니로다.
중근기는 하근기보다 수승하니 상을 보지(見) 않고
하근기는 중근기에 하열하여 상을 觀한다 하네
본다는 見이요 본다는 觀이나
진여는 볼 수(見)없는 것이나 살펴 계합해 볼 수는(觀) 있음이니라.
진여는 상으로 볼 수 없으니
비록 32상호가 특이해도 모두가 환(相)이나
연기 난 곳을 쫓아 불난 곳을 볼 수 있듯
다만 회광 반조해 합일하여 보는(觀) 것이니라.
색이면 일체 상이 포함되거늘
색(모습 있는)에 성(聲: 모습 없는)을 표해 드러내 말씀했도다.
상으로도 소리로도 부처를 볼 수 없으니
볼 때는 너와 내가 둘이라 어긋남이니라.
수보리가 짐짓 답하기를
32상으로 여래를 볼 수 있다 하여
부처님의 예리한 물으심으로
미혹을 깨고 32상으로 관할 수 없다 하네.
꼬리를 보고 호랑이를 알고
연기를 보고 불 있음을 아나니
색이 곧 공이거늘
어찌 성색(聲色)을 여의고 묘공이 있으랴?
상(相)을 여의고 진(眞)이 없으니
상과 상즉(相卽)하여 여래가 있도다
일체가 여래의 집 안(腹中)에 있거늘
여래가 다시 누구에게 내 집안 일을 물으랴?
비록 성색을 여의고 구한다 하더라도
여래는 볼(見) 수 있음이 아니로다
싯달타 태자가 명성을 보고 깨쳤다 하나
그때 눈에 금가루가 들어갔음이니라
부처는 성색이 아니요 성색을 여의고 있지도 않으니
성색(聲色)으로도 성색을 여의고도 부처를 볼 수 없도다
모르고 모른다
숫소가 새끼를 낳을 때 일러주리라.
눈 위에 서리라. 새가 날아간 하늘에 자취 없음이니
성색을 여읨도 성색에 즉함도 한결 같으니라
30년 후 땅에 던져진 쇳소리를
그대여 지금은 능히 들을 수 없는가?
법신은 상이 아니어서 생멸이 없으니
여래는 참으로 청정하여 항상하도다
성색으로 부처를 보려 하면
삿된 도를 행함이니 부처를 이룰 因이 없게 되느니라.
체의 성품이 항상 작용하여
고요히 있으나 쉼 없이 나투며
낱낱 나툼이 서로 다르나
체는 끊어도 끊어지지 않는 원융(圓融) 부동(不動)이로다.
상이 상 아니라 하고
모든 상을 갖추었다 함은
일체의 근본은 빈 것이요
이 相의 相은 그 가운데서 나투어진 연고니라
전하지 못하면 끊어질 것이나
전해도 전하지 못한다 함이여
한 등(부처님)이 백 천만 등을 밝히니
전하지 못하는 불꽃이 이어져 빛나고 있도다.
들어도 들음이 없고 말해도 말함이 없으니
듣는 이도 말하는 이도 말도 공함인 연고니라
상대적인 주객심이 없어지면 차별 없는(無念) 지혜가 나고
차별의 능소심이 없으면 일체가 평등하니라.
내가 있고 상대가 있는 분별심을 내면
가깝고 먼 것으로 차별하여 도와 멀어지고
나도 없고 상대도 없는 무념으로 돌아가면
열반이 본래의 청정 자성인 그것이니라.
받을 내가 없고(空)
받을 상대가 없으며(空)
주고받을 것이 없음(空)으로써
탐하고 집착할 것이 없어 함이 없이(空) 행하게 되니라
구름처럼 인연 따라 응하되
본래 비어 청정하니 구속될 것이 없어
다시 해탈을 구할 것이 없음을
역대 불조가 이를 부촉하였도다.
일체 경계에 집착이 있어 탐하니
탐이 업을 짓고 업이 무명으로 가려져
분명한 소식을 잃게 되나니
일체가 공함을 요달하면 그대로 해탈이니라.
보살은 일체를 구족하여 반야를 행하며
복덕을 바라지 않으며 보리도 구하지 않으니
탐하지 않아도 부족함이 없도다.
경 가운데 글이 실다움이 아니요
산골에 흐르는 물소리 부처의 설법이며
청풍명월이 부처의 나툼임을
스스로 앎이 이 소식이로다.
여래는 일체처에 두루 항상 머물러
가도 감이 없고 와도 옴이 없으니
四見의 잘못을 끊으면 상을 보되 상을 구하지 않고
집착이 없어 오고 감에 걸림이 없게 되노라.
수행인이 무명을 거두면
수고로이 구할 것이 없으니
가도 감이 없고 와도 옴이 없어
한산(體) 습득(用)이 함께 항상 머묾이로다.
행주좌와 가운데도 움직임이 없으니
고요하기도 하고 분주하기도 하도다
일체의 왕이나 본래면목은 상이 없이
항상 일체를 비추고 나투느니라.
이름하여 여래라 하나 오고 감이 없어
인연 따라 나투되 움직임이 없어라
구름이 가리면 보이지 않고 걷히면 비취나
본래 달은 항상 가고 옴이 없이 머물고 있나니라.
삼천 대천세계는 곧 중생의 미진 같은 번뇌요
미진이 미진 아니라 함은 본래 청정하여 공한 까닭이니라
말의 방편이 참이 아니라 하나
어찌 말의 가르침을 여의고 참 이치를 어디서 구하리요.
본래 한 물건도 없어
밝고 맑고 비어서 일체가 끊어짐이니
망념이 본래 없음을 알아
나투고 고요함에 무심하면 끊을 망이 없다하는 연고니라.
하나의 땅(심지)이 참이라서 일합상이라 하나
하나의 땅도 삼천 세계도 이름이요 참이 아니로다
그러나 삼천이 하나의 땅 가운데 있고
하나의 땅도 삼천을 여의지 않음을 일합상이라 하니라.
하나가 모두요 모두가 하나니
세계가 곧 하나요 하나가 곧 미진이라
어떤 때는 모두 그르고 어떤 때는 모두 옳다 하니
열고 닫고 죽이고 살림이 자유롭도다.
본래 둘 아니나 나누어 부수니
부순 것도 둘 아니니 둘인가 둘 아닌가?
하나도 아니요 하나 아님도 아니니
셋과 하나라 해도 본래 둘 아닌 것이로다.
법신이 곧 화신이 아니나 화신이 법신과 다르지 않으니
상이 곧 이치이며 이치가 곧 상이라 일합상이나니
세계도 미진도 본질이 함께 공하여
한 덩이 세계와 미진이 둘 아님이로다.
四見이 사견이 아니요, 사성제가 사성제가 아니요
18불공법도 나아가 팔만 사천 다라니문도 참다움이 아니니
참을 알고자 하는가?
말을 좇지 말고 뜻을 좇아 깨달을지니라.
견문각지(見聞覺知) 相에 집착하면 깨우치지 못하고
四相을 요달하면 허깨비 같아 공한 줄 알지라도
안다는 소견 지으면 무명을 키우니
삼천 대천세계 모두가 상이 없음을 깨달아 알지니라.
모두가 순간 나투었다 사라지는 幻이라
나도 환이요 삼라만상이 환이므로
환은 실로 항상 하는 것 아니니
참으로 항상 하는 것은 환 아닌 그것뿐이니라.
일체의 것 공하고, 나도 공하여
있다는 일체가 공하며
공함마저 남기지 않으면
삼천 대천세계가 내 집 아님이 없도다.
상에 집착하지 않고 여여부동이라
이를 증득하고자 그토록 애써 왔으나
삼세의 모든 부처님과 역대조사가
볼 수 없고 알 수 없고 말로써 이를 수 없음이로다.
입을 열면 어긋나고
입을 다물어도 잘못된 것이나
후학에게 등불 꽃전(傳燈)하기 위해
풍류 없는 곳에서 풍류를 일으킴이로다.
고요함에 치우쳐도 병이요
움직임에 치우쳐도 병이니
자유롭고 한가함이
모두 인연에 응하여 自在함이니라.
중생들이 환(幻)만을
참으로 항상 함을 삼나니
참으로 참된 것은 환 밖에 참이나
참과 더불어 幻이 일가를 이루니라.
복을 구함도 망이요 설법도 실은 참이 아니어서
범부 성인과 생사열반이 꿈이로다
지혜의 칼을 들어 알음알이를 잘라 제하고
한 생각이 만년 같이 쉬어가고 쉬어가라.
세존께서 거듭 비유를 드시어 설하시니
일체 함이 있는 것은 꿈, 환, 거품, 그림자, 이슬, 번개라
이로써 여여 부동함에 이르르니
삿된 소견이 남김 없어 무여 열반이로다.
법을 설함에 명리를 구함이 없으며
설하는 불법이 삿됨이 없어 깨우친 바 대로요
증득함이 진리임에 이설(異說)이 없음으로
이로써 듣고 받들어 행하게 되나니라.
열반도 정법안도 모두가 환이요 공함이니
이렇게 깨달아 아는 것 마저 쉬면
불조(佛祖)의 은혜를 갚게 되나
구지화상은 손가락을 세워 일체를 설했도다.
망령된 생각을 꾀함으로 인하여
전도몽상을 이루나니
분별로 아는 이름들이 실다움이 아님을 요달하면
부처를 이루리라.
있다는 모든 것들 인연 따라 이뤄진 것이라
본래 있음이 없어 이름도 없으니
일체가 참으로 공함을 깨달으면
사물에 얽매이지 않고 융통자재 하리라.
상이 공하니 이름이 없고 마음 또한 원적하니 경계도 고요해
가고 옴이 없으니 語默이 원만하고 고요(圓寂)하도다
理와 事를 요달하면
진속(眞俗)이 둘 아님을 알리라.
열반으로 제도한다는 것 무위로 돌아가니
일체제상, 일체태생이 하나로 돌아감이로다
번뇌망상이 남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피안의 열반으로 영원히 건너지 못하리라.
함이 없는 일체처가 정과 혜이니
온몸이 손이요 온몸이 눈이로다.
본래 구족해 있음을 밝게 알면
전삼삼 후삼삼을 어찌 모르리오?
참으로 이와 같음이 진여이니
진여는 아는 것으로도 모르는 것으로도 이르지 못하리니
경계도 여의고 마음도 여의니
천강의 달이 하나의 달이로다.
아상이 상이 없다는 소견도 곧 四相이 있음임을
모든 현상을 맑은 그 속을 살펴 요달할 지니
여여 부동이라 같고 같음이니
깨친 바 그대로를 일러줌을 유통이라 하도다.
첫댓글 이 게송은 법문 무엇.....을 두고 읊은 것임을 해량하셔야 할 것이외다.()
참으로 귀한 법문을 베푸시니 감사합니다.()()() 절대 진공이 눈앞에 티끌하나 흐트러짐이 없어 묘유하고 묘유하구나. 이것이 무엇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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