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암정원
주차는 초암마을회관 앞에 주차하면 된다. 더 이상 진입할래야 할 곳도 없다.
인근에 초암정원을 알리는 이정표가 있고, 회관 뒷편 골몰을 따라 올라가면 이내 초암정원 입구이다.
세련되지는 않지만 이정표를 따라 천천히 초암정까지 갔다 되돌아 오면 된다.
이곳 초암정원은 광산감씨 문숙공파 23대손 김선봉 선생이 장흥 망암에서 보성으로 와 살았던 곳이다. 선생의 8대 종손 청람 김재기씨는 일찍 생모를 여의고 2살난 누이마져 세상을 등지자 그 막막한 그리움과 자신을 정성으로 길러주신 조부모님, 사랑으로 감싸주신 어머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2만여평의 땅에 묘목을 심어 가꾸었다.
60년이 흘러 200여종의 어린 나무들이 아름드리 숲이 되고 사철 내내 꽃이 지지않는 낙원이 되었다.
옛 선비들이 속세의 영화에 마음을 두지 않고 시. 서. 화로 심신을 닦으며, 사랑방 문화를 향유하였던 바, 보성의 명필가 송설주 선생 등 시인 묵객들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260년을 지켜온 고옥에는 예인들의 묵적과 전통생활 도구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가족묘원으로 오르는 400m 잔디길은 선령님께서 버선발로도 오가시라는 깊은 뜻이 담긴 효심의 진디길이다. 한걸음 더 오르면 넓은 편백림과 대나무 숲이 우거져 천인합일 산수귀객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더불어 뒷산 초암정에 오르면 약 3km의 산책로가 있으며 오봉산이 에워산 예당평야와 은빛 득량만이 눈앞에 펼쳐진다.
글; 보성문인회장 이남섭
들머리.
정원 유지관리비 무인 수납,
카페에서 차한잔 하는셈 치면 싸다.
사랑채
날이 저물면 지나가던 길손 누구라도 머물게 하고 후하게 대접하셨던 조부님의 얼이 깃 들어 있는 이곳은 5대째 이어오면서 당대의 명필 설주 송운회 선생을 비롯한 시인 묵객의 흔적이 남아 있어 아름다운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 멋과 정취를 한층 젖게 한다.
사랑채인데 뒷편은 가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3면에 툇마루가 있다.
옛날 생활용품 및 식품 저장굴
안채
안채앞 마당에서 바라본 사랑채와 입구.
감나무도 정겹고 향나무도 세련되었다,
안채와 사랑채.
지나온 안채와 사랑채 쪽이다,
건물은 화장실이다.
초암정원 잔디길을 따라 이정표 방향으로 계속 오르면 된다.
일반적으로 안채와 사랑채 주변은 향나무, 야자수 등등 정원수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이후 초암정원 잔디길을 따르면 소나무, 묘역, 감나무, 산다화 등이 식재되어 있고 그 윗쪽에 편백숲과 대나무 숲이 있다.
맨 상부에 초암정이 있다.
지나온 안채와 사랑채 쪽이다,
건물은 화장실이다.
초암정원 잔디길을 따라 이정표 방향으로 계속 오르면 된다.
일반적으로 안채와 사랑채 주변은 향나무, 야자수 등등 정원수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이후 초암정원 잔디길을 따르면 소나무, 묘역, 감나무, 산다화 등이 식재되어 있고 그 윗쪽에 편백숲과 대나무 숲이 있다.
맨 상부에 초암정이 있다.
묘역이다.
묘역에서 바라본 득량만.
감나무 밭을 지나 휘어져 오르면,
다시 묘역의 상부쪽으로 연결된다.
묘역 상부로는 편백숲이다.
우측(오르는 입장에서) 한켠에는 대나무 숲이 정갈하다.
대나무숲 상부에 아담한 정자가 있다.
길은 여러군데로 나 있어 주 이정표를 방향잡고 이곳 저곳 다녀도 된다.
초암정으로 오른다.
정원의 상부에 위치하지만 천천히 이리저리 오르다 보면 크게 힘든곳은 아니다.
조금윗쪽 거대한 참나무 주변에 전망데크를 설치하여 그곳까지 갔다가 잠시 쉬었다 내려간다. 탐방에 약 40분 정도 소요되었다..
▣ 비니거 파크
발효 흑초를 생산하는 곳으로 해평저수지 우측 안쪽 골짜기에 위치한다.
카카오 내비에 '보성 비니거파크'를 검색하면 다른 곳을 안내하므로 이 곳을 찾아가면 안된다.
찾아가는 길은 해평저수지둑 아래 주차장 도착 직전에서 우측 산길을 따라 오르면 된다. 당일은 길 없음 현수막이 걸려있어 되돌아 나왔다,
1,900여개의 장독이 볼거리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