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기와서 삶의 깊이와 윤기얻어

[박혁거세]

‘기와 박사’ ‘와당 선생’ ‘유 도사’…. 엉뚱하게도 대검 강력·중수부장과 서울지검장을 지낸 유창종(柳昌宗·58) 변호사에게 붙여진 별명이다. 옛 기와에 대한 관심이 유별나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그처럼 기와에 마음을 빼앗긴 사람도 드물다. 기와와 벽돌의 매력에 푹 빠져들어 틈날 때마다 관련 자료를 읽고 현장 수집에 나선지 벌써 30년이 훨씬 넘었다. 과연 무엇이 법률가인 그로 하여금 이토록 기와에 심취하도록 만들었을까. 그가 소속된 법무법인 세종 사무실을 찾아 기와가 지닌 미술사적 의미와 수집에 얽힌 이런저런 뒷얘기를 들어보았다.

“한 시대의 예술적 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공예품의 하나가 바로 기와입니다. 기와를 통해 역사적인 문화이동 경로는 물론 종교·사상·권력체계까지 유추해 볼 수 있지요”. 우리 미술사·고고학의 입문 과정으로 기와가 중요한데도 학자들조차 그 의미를 지나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첫마디부터 은근한 불만이다. 옛 성터나 절터 주변에 흩어져 있는 기왓조각들. 그 역사의 파편들을 밟으며 세월의 무상함과 덧없는 인생에 대해서뿐 아니라 또 엄청난 그 무엇을 떠올린다는 것인가.

그는 특히 와당(瓦當)의 아름다움을 강조한다. 기와가 덮인 처마의 끝부분을 장식한다고 해서 ‘막새’라는 이름을 지닌 와당. 거기에 찍혀 있는 다양한 문양 때문에 기와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귀면화·학·사자·연꽃·십자문 등등. 같은 문양이면서도 시기와 지역에 따라 조금씩 변형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그런 추이를 살펴보고 비교하는 데 맛들여 있다고나 할까. 벽돌에 대한 관심도 마찬가지.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벽돌과 기와는 문양이 서로 상관관계에 있게 마련”이라는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얘기를 좀더 들어보면 기와에 대한 그의 안목이 과연 어느 경지에 이르렀는지 대략 짐작할 수 있다. 통일신라의 기와는 당나라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그보다 훨씬 정교하며, 일본 기와는 일찍이 아스카(飛鳥) 시절 백제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았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때에 이르러선 기와에 금칠을 입혔다는 점에서 이미 중국이나 한국보다 기와 문화가 훨씬 앞섰을 것이라는…. “기와의 수준은 한 나라와 시대의 문화적 수준과 거의 일치한다”는 것이 동떨어진 주장은 아니리라.

그의 관심은 역사의 밑바닥까지 헤쳐들어간다. 고구려 기와가 중원을 통일한 진·한 때와 비슷하다는 점에서 고구려가 북위의 영향을 받았다는 종래의 통설이 재검토돼야 하는 것은 물론 단순한 ‘변방의 오랑캐’만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발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출토된 와당의 공통된 양식으로 미루어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가 유지됐음을 알 수 있으며, 중국이 아닌 고구려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에서 우리 영토라고 내세울 수 있는 명백한 근거가 된다는 얘기다. “문헌 사학자들이 우리 역사의 무대를 한반도에 가둬놓고 있는 것은 잘못”이라며 관련 연구가 거의 이뤄지지 못하고 있음을 안타까워 했다.

기와에 본격 매달린 것은 충주지청 검사로 재직하던 1978년께부터. 문화재 답사에 따라나섰다가 탑평리 칠층석탑 부근에서 발견한 몇점의 와당 파편이 호기심을 자극한 것이었다. 그뒤로 공휴일마다 기왓장을 찾아 절터를 돌아다닌 것은 물론 도서관을 뒤져 기와에 관련된 논문을 빠짐없이 섭렵하게 된다. 그의 답사 모임이 뒷날 국보로 지정된 중원 고구려비를 찾아내는 뜻밖의 개가를 올린 것은 그런 결과였다. “기와 공부를 하면서 황수영·진홍섭·문명대 선생으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는데 특히 신영훈 선생을 사부님으로 모시고 있다”고 소개했다.

지금은 기와에 관해서 만큼은 웬만한 골동품점 주인들보다 안목이 월등하다고 자부하는 정도가 됐다. 골동품점에서도 진품 감정이나 가격 책정을 오히려 그의 눈에 맡기곤 한다. 도자기에 덤으로 끼워줄 만큼 값이 헐했으므로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던 까닭일 것이다. 그는 마침 며칠 전 새로 입수했다는 고구려 수막새 한점을 책장 진열대에서 꺼내 보여주었다. “만주 즙안현에서 출토된 것으로 평양 천도를 전후한 5세기말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는 설명이 간명하다.

지난해 말에는 그동안 모아왔던 1,800여 점의 기와와 벽돌을 국립중앙박물관에 선뜻 기증했다. 중국·일본·태국·베트남의 다양한 유물이 포함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주목받는 것은 30여점에 가까운 발해 유물. “발해가 우리 역사의 엄연한 부분인데도 지금껏 중앙박물관에 발해 유물이 한점도 없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고 털어놓았다. 중앙박물관측은 2005년 개관되는 용산의 새 박물관에 ‘발해관’을 만들기로 약속했으며 별도로 ‘유창종 기증실’도 설치하기로 계획하고 있다.

기왓조각에 매달리면서도 검사 본연의 업무에 결코 소홀하지 않았다. 정·관계를 벌컥 뒤집어놓았던 ‘이용호게이트’를 비롯해 최근 SK수사와 현대상선 대북송금 의혹사건에 이르기까지 중량급 사건들이 그의 손을 거쳤다. 더욱이 지난 89년 신설된 대검 마약과를 3년여 동안 이끌면서 전문·과학·정보화 수사의 토대를 이룩한 ‘마약수사의 대부’로 꼽힌다. 그가 앞장서 창설했던 국제마약협력회의가 유엔 대표도 참석할 만큼 여전히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는 데서도 그런 점이 확인된다.

지금도 마음에 걸리는 것은 대검 중수부장 때 지휘했던 ‘이용호게이트’의 부실수사 문제로 서울지검장에서 졸지에 대검 마약부장으로 좌천됐던 사실. 결국 그 여파로 검찰 생활에 종지부를 찍은 그의 심정은 차라리 처연하다. “나름대로는 명예를 걸고 수사에 최선을 다했으나 제대로 인정받지 못할 때는 정말로 울고 싶었다”는 고백이다. 수사 착수에서부터 적잖은 음해가 밀어닥쳤으며, 끝난 뒤에도 후유증에 시달릴 만큼 인간적인 고뇌를 느꼈다. 수사에 관련된 동료와 선후배들이 승진에서 빠지거나 옷을 벗었던 것은 또 다른 아픔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이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검찰권은 수사보다 인권보장에 더 무게를 둬야 하며, 따라서 마음껏 휘둘러 모든 것을 캐낸다는 의욕은 잘못”이라는 얘기다. 검찰권 행사에도 당연히 금도(禁度)가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의 이런 생각은 지난 94년 슬롯머신 사건을 매듭지은 직후 적어놓은 메모철에도 그대로 드러나 있다. 검찰이 왜 위기를 맞고 있으며, 난관을 헤쳐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후배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남긴 것이었다.

최근 진행중인 검찰개혁에 대한 느낌이 궁금했다. “검찰이 자신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반성이 있기에 시행착오를 거치면서도 잘해나갈 것”이라는 답변이다. 그렇지만 “역대의 어떤 지도자도 검찰이 정치권력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지만 자신이나 측근을 겨냥하면 불평·불만을 늘어놓았다”며 “제도를 바꾸기보다 검찰 조직을 그냥 내버려두면 된다”고 지적했다. 서울지검장 자리를 물러나면서도 노무현 대통령의 검찰 파격인사를 비판한 그였다. 인적 청산을 한다는 명목으로 오히려 정치검사를 배출해내는 악순환에 과녁을 맞춘 화살이었다.

그는 검사 시절 엉뚱한 일들을 곧잘 벌인 것으로도 전해진다. 청주지검장 재직 때 김기창 화백 등으로부터 출품을 받아 검찰청 내에 갤러리를 연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 관내에 공·사립 미술관이 하나도 없었던 때문이다. 서산지청 시절부터 불기 시작한 단소도 상당한 경지를 자랑한다. 처음부터 우리의 전통 악보인 정간보(井間譜)를 보고 배웠다니, 제대로 격식을 차려 배운 셈이다. “새벽에 일어나 잠깐씩 영산회상을 불다보면 저절로 마음의 평정이 이뤄진다”고 밝혔다.

요즘도 휴일에는 절터를 답사하고 인사·장안동의 고미술 가게를 돌아다닌다. 한주만 걸러도 “지난주에는 왜 나오지 않았느냐”는 인사를 듣기가 따가울 정도. 인사동 순례에는 부인 금기숙씨(52)씨 동행한다. 홍익대 섬유미술·패션 디자인학과 교수인 그의 아내 역시 기와 그림에 있어서는 전문가로 통한다. 언젠가는 기와 문양을 넣은 넥타이와 스카프를 만들어 선물로 돌리기도 했다.

그의 인생관은 과연 어떠할까. “삶을 깊이있고 풍성하게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로 답변을 대신했다. 그러기 위해 될수록 많은 경험을 해야 하고 남에게 베풀면서 살려고 애쓴다는 얘기다. 요즘은 마음도 비교적 홀가분한 편이다. 사무실 액자에 걸린 ‘일체유심(一切唯心)’이라는 글씨가 언뜻 눈에 들어온다. 그의 노력에 힘입어 기와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술모임인 ‘한국기와학회’(가칭)도 조만간 창립될 예정이다. 그는 정말로 행복한 사람인 것 같다.

-출처:경향신문-
기와란 것이 많은 역사적인 가치를 함축하고 있는것을 엿볼수 있지 않았나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