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만 듣던 타워 팰리스를 가 보게 되었습니다.
찾아 가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는데 들어 가기는 좀 까다롭더군요.
들어가기 전에 신분을 확인 하는 절차를 밟고
아주 친절한 경비요원들의 안내로 지하로 갔습니다.
방문자 전용의 지하 주차장에 가니
빈 자리가 많아 주차 공간이 여유있음을 느끼겠더라구요.
차 한 대를 세우는 칸도 서울의 다른 곳에 비하면
넓직하니 주차걱정이 사라졌습니다.
엘리베이터는 주차장에서 일층까지만 운행했고
일층 안내데스크를 경유하고 출입하게 되어 있어
일층 안내로 가니 신분과 용건을 확인하고 현관문이 열렸습니다.
짙은 회색의 대리석으로 벽체가 마감된 길을 따라가니 비로소 연회장이 나왔습니다.
사실 촌사람 서울 구경으로 두리번거렸는데
뭐 호텔보다 더 나아 보이지는 않더군요.
그래도 고급 마감재였죠.
어떻든 대학 동창을 만나는 자리였고
우린 만나자마자 타워 팰리스는 잊어 버렸습니다.
오랫만에 서로 얼굴을 맞대고 그저 인사를 나누느리 바빴고
저희 부부는 큰 애 입학 축하인사를 받다가 급기야 2차를 쏘기로 낙찰 되었습니다.
상가에 있는 노래방으로 옮겨 노래가락에 몰입되었다가
늦은 귀가를 서두르는데 집에 가서 차 한잔 대접하겠다는
그 곳 주민인 동창의 안내로 그 댁에 구경을 가게 되었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자니 60층에 사시더군요.
40층을 지나며 고산증으로 귀가 멍해졌지만
고속으로 운행되어 빠르게 60층엔 닿았습니다.
넓은 평수의 집인 관계로 아주 여유있어 보였고
안주인의 섬세한 손길이 안간 곳이 없음을 바로 알았습니다.
게다가 고르는 안목도 장난이 아니어서
뭐든 아주 품위가 있어 보였고 다들 흥겹게 어울렸습니다.
아주 성실하고 이쁜 가족이 사는 그집이 그 가족과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주 안어울리는 사람이라는 걸 인정 했습니다.
왜냐하면 유리창가에 설 수가 없었습니다, 오금이 저려서.
정말 60층은 높은 층이었습니다.
늦은 밤 서울의 밤거리는 성탄트리처럼 환상적이었지만
도시에서도 십 년 넘게 살아본 저였으므로
그 빛이 빛을 잃는 시간쯤이면 얼마나 어수선한 지를 말짱드러내는 도시가
환상적일 수 만은 없다는 걸 알기도 했으니 멋있게만 보이는 건 아니었죠. .
게다가 무엇보다 전 너무나 예쁜 그집이 편하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그 가족의 자연스러움은 당연했지만
전 시골스러움에 익숙해 있어서
마치 그곳이 모델하우스처럼 어색했지요.
돌아오며 전 이런 엉뚱한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부잣집 아가씨에게 아들을 장가 보내지는 말아야겠네.
저토록 많이 누리고 무엇을 감사할 수 있을까,"
늘 며느리에게 잘해줘야지를 남은 삶의 목표로 삼은 제겐
만약 그렇게 여유있는 가정의 아가씨를 데려오면
잘해주기가 어렵겠구나 싶어 지레 겁이 났습니다.
게다가 전 땅을 가까이 하지 않는 도시구조가 영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전 때때로 아스파트조차 구멍을 좀 내어
물이 지층에 흡수되도록 해야 홍수를 미리막아낼 수 있다고 여기는 꼴통인데
사람이 늘 60층에서 산다니 뭐가 잘못돼도 잘못 되겠다 싶어지는 거에요.
그래서 송충이는 솔잎먹고 살고 누에는 뽕을 먹겠죠.
전 남편이 벌어오는 것과는 아무 상관없이
제가 불편하지 않은 정도로만 살아갑니다.
그래야 공주가 아니니 편하지요.
전 늘 평범한 일상을 사랑하고 감사하는데
어제는 또다른 평범한 일상이죠? 익숙하진 않지만.
사람마다 경제적 여유로 각기 다른 모양으로 살아가는데
옳고 그르고를 떠나 저를 돌아 보았습니다.
저도 그런 집에 가면 위화감을 느끼고 뭔지 어색하고 불편한데
저보다 심하게 어려운 이웃이 제 집에 와서도
자신의 삶이 초라하게 느껴지진 않았으면 하고 기도합니다.
제 아이의 진학으로 한턱내는 자리에 가게 된 나들이였으므로
아이의 진학은 그 모든 위화감을 극복하고도 남았습니다.
수십억 한다는 집이 하나도 안 부러운건
행복한 가정은 멋있고 화려한 집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걸 이미 깨달은 나이 때문일 겁니다.
얘기로만 듣던 타워 팰리스도 나름대로 예쁜 사람들이 화려하게 꾸미고 사는 곳이고
시골의 하느님 꽃꽂이 아름다운 제 집도 행복한 우리 가족이 사는 곳이니
좋다 나쁘다의 관점으로 이웃을 바라보지 말고
각자 자신의 형편대로 누리며
넘치도록 감사하고 사는 것이 중요한 화두일 것 같더라구요,
여러분과 제가 두 다리 쭈욱 펴고 잠들 수 있는 곳이
바로 우리 시대 가장 멋진 팰리스입니다.
오늘도 가족이 함께 있는 한덕골궁전에서
우리 가족은 과자봉지 여기저기 쏟아 놓으며
남편은 여전히 거실에서건 안방에서건 골프채를 휘두르고
전 아침부터 성당에 나왔다가 돌아와서 라면을 점심으로 먹고
아이 둘 앞세우고 가까운 어머니 산소에 들러 감사의 기도를 바치며
해질녘 노을을 함께 바라보는 일상에서 부자를 체험합니다.
누구든 자신이 서서 편안한 곳이 가장 어울리는 자신만의 타워팰리스겠지요?
첫댓글 좋았겠네요...
본오동 성당 청년들이 지난 토~일요일에 영보 수녀원에서 피정하고 왔는요. 먼저 계시던 우신부님(천리성당)도 만나 좋았다 하던데... 한덕골 저도 가고 싶네여....
따스한 봄이 오면 제일 먼저 한덕골로 나들이 가고 싶어 지네요. 한덕골 궁전 마마님께서 환한 미소로 맞이 해 주시겠죠?
그야 물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