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오가 가까워져가고 있었다. 가까이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점심약속을 잡기엔 조금 늦은감이 있었지만 별로 바쁘지 않은 일정에선 약간의 여유라도 부리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만나면 서울 다녀온 애기며 한주간 피서법을 논하려 하였더니 어쩌면 그게 실수였는지도 모를일이다.
휴대전화에선 감미로운 발신음이 흘러나갔고, 한참동안 음악이 계속되었지만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먼저 약속을 받아 나가버린 것일까? 이 시간에 반드시 자리에 있어 자신의 전화를 받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너무 이기적이고 상대방의 활동범위를 지나치게 제한하여 편하게 생각해 버리는 것은 아닐런지...
아무렇게나 웃옷을 걸치고 혼자 식당으로 들어섰다. 아직 이른 탓인지 식당엔 식객들이 별로 보이지 않고 주인은 이따끔씩 창너머 길거리를 훔쳐보며 마음속으로 손님을 청하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바깥날씨 덥지요?"
"그러네요"
나는 주인의 인사를 뒤로하고 에어컨 바람이 스며들지 않는 구석진 곳의 의자에 자리를 잡고 벽에 붙은 메뉴판을 바라다 보았다. 무엇을 먹을까? 혼자 식사를 주문하다보면 자연히 주인의 눈치를 봐야하기 일쑤였다. 특정된 메뉴는 2인분 이상이어야 주문이 가능하다는 문구를 간혹 붙여놓기 때문이다.
오늘따라 아침밥을 조금 많이 먹은 탓으로 속이 더부룩하여 식탐많은 목구멍이 제역활을 다하지 못할 것만 같다. 그래도 때를 거르칠순 없고 일단 들었으니 주문을 해야했다. 한참동안 메뉴판을 위 아래로 훑어보다 초등학생처럼 손을 들어 주인을 부른뒤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저어! 꽃게탕도 되나요?"
"1인분 준비해 드릴까요?"
"아 예! 그래 주세요."
삼복더위에 열기를 더하는 꽃게탕엔 등이 제법 큼지막한 게딱지와 한마리를 상징하는양 두쪽으로 나누어진 열개의 발가락이 나의 젓가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짜지도 맵지도 않은 마치 잉여인간처럼 특정없는 꽃게탕의 국물을 숫가락으로 떠올리며 마음은 어느새 게딱지를 타고 암흑에너지가 가득찬 광활한 우주공간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었다.
발사대에서 많은 양의 에너지를 소모해가며 발사된 인공위성체는 궤도를 수정할때마다 또 다른 에너지를 쏟아내며 우주를 향하여 질주하고, 인간에게서 주문받은 사명을 다하다 결국엔 우주미아로 사라지거나 끝내는 소멸하고 마는 것이다. 그것은 오로지 인간의 행복추구라는 명분에서였다.
이 한숫깔의 음식물에서는 얼마만큼의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걸까? 생각을 이어가다 문득 엇그제 우연히 자동차판매회사 딜러를 만났던 생각이 떠올랐다. 하루종일 자동차를 구매하려는 고객을 상대로 비위를 맞추어가며 살아가는 그의 삶은 매우 힘들게 보였었다.
그는 이전에 메이커있는 회사에서 근무하다 이곳으로 옮겨오게 되었는데, 수입도 전보다 못하고 힘은 들어 아내가 그만두라고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나는 애가 셋이나 된다는 말을 듣고서 직장을 옮기는 것도 신중을 기하여야하니 충분히 알아본 후에 결정을 하라고 말하였었다. 아직은 젊은 그에게도 이미 다섯식구의 생계라는 멍에가 씌어져 있었고, 열악한 환경은 그들의 행복을 위협하고 있었다.
커피잔을 앞에두고 다시 창밖을 바라다 보았다. 정원의 소나무 그늘아래 바둑이는 길게 다리를 뻗고 편하게 모로누웠다. 옛말에도 '개팔자가 상팔자'라고 하였던가? 그대 행복할런가? 보기에는 매우 평안해 보였지만 그럼에도 진정 행복여부는 개에게 물어 보아야 할 것이 아닐런지.
정원 가장자리엔 농구선수처럼 이미 키가 자랄대로 자라버린 해바라기가 갈래갈래 샛노란 꽃을 피웠고, 뒤질세라 산나리가 해바라기 줄기에 등을 기대고 발간바탕에 검은 줄무늬꽃을 걸쳐놓았다.
담벽을 뒤덮어가는 등나무는 자식많은 부모의 마음처럼 군데군데 세월의 아픈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거침없이 줄기차게 뻗은 것이 있는가하면 벌레먹은 잎, 세찬바람에 허리가 뒤틀려져 숨통이 막혀 시들어가는 줄기도 있다.
발아하고, 성장하고, 분열하고, 이완하고, 수축하며 끝내는 소멸해 가는 생사병노의 과정을 이어가는 것들...그 순간순간, 마디마디의 연속된 혼란속에서 비로소 행복이라는 단서를 발견해야만 하는 것도 행복이라 이름 붙일 수 있을까?
아이러니컬하게도 다른 동물에 비하여 재물이 쌓여갈수록 행복이란 감정을 제일 잘 묘사해내는 인간들은 표정이 굳어지고 행복지지수가 물욕의 크기에 반비례한다는 사실, 그럼에도 원죄라는 불공정한 인생게임을 거쳐가면서 텔레비젼 광고에서 보아왔던 것과 같이 때론 더 먼 미래를 대비해야한다는 현실앞에서 또 한번 행복이라는 단어를 떠올려 보게된다.
당장의 삶에 행.불행의 균형마져 감지하지 못하고 허덕이면서도 불확실한 미래를 위하여 지금의 작은 행복을 쪼개어 준비를 해야하는,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이 진정성이 드러나지 않은 조각된 행복일 것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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