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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석탑은 왜 아름다운가
한국문화유산의 이해 특별 발표 조
이상원, 박태현, 정다라, 하서영, 차진우
<1> 서론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가져야할 자세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서는 다양한 방향의 의견이 있을 수 있고 정해진 정답도 없다. 하지만 한국의문화유산의이해 수업은 우리에게 몇 가지 단서를 제공해준다.
그중 첫 번째는 역사는 편견 없는 자세로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서 탐구할 때 묻혀져 있는 진실들이 보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수업시간에 언급된 일화는 공주 석장리에서 구석기 시대 유적을 발굴함으로서 한반도에 구석기 시대가 존재함을 밝혀냈던 고고학자 손보기 선생의 사례가 소개된 바 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서로 유사한 특징을 가진 것들로부터 다양한 역사적인 추론을 하고자 하는 탐구적인 자세였다. 이와 관련하여 수업 시간에는 칠지도와 명협에 관계에 대한 고찰을 통해 유물 하나에 생김새 하나하나에도 특별한 의미와 그 시대 사람들의 철학을 탐구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누군가가 이미 연구해 놓은 것을 진지하게 학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넘어 열린 자세로 편견 없이 새로운 역사적 탐구에 임하는 것 또한 우리가 역사를 공부함에 있어서 가질 수 있는 자세인 것이다. 해당 발표와 보고서는 이와 같은 기조를 중심 가치로 두고 백제의 석탑과 백제계 석탑에 대하여 탐구해 보았다.
<2> 본론 1
1. 백제계 석탑
대표적인 백제계 석탑인 비인 5층 석탑 역시 위에 언급된 고려 시대의 석탑으로 지붕돌의 층수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양식에 있어서 정림사지 석탑과의 유사성을 보이고 있다.
첫 번째로 기단이 1층으로 되어 있고, 탑신이 배흘림 기둥의 형태를 띄고 있습니다.
두 번째 유사성으로는 석재의 쓰임을 들 수 있는데, 석재는 여러 개의 부자재로 쪼개는 데에 힘이 들기 때문에, 당시는 석탑의 부재가 단순화되고 있던 때였음에도 불구하고 비인5층 석탑은 다수의 부재로 만들어져서, 그 결구가 정림사지5층 석탑과 닮아 있다.
세번째로 탑신의 형태는 기둥을 먼저 세우고 그 사이에 돌판을 세워서 벽을 만든 것으로, 백제 시대 석탑의 전형적인 탑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비인 오층 석탑 뿐만 아니라 다른 여타의 백제계 석탑들이 차용하고 있는 백제의 형식적인 양식들의 기원은 정림사지 5층 석탑으로부터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백제의 석탑양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백제계 석탑 각각에 대한 조사보다는 그 근원이 되고 있는 미륵사지 석탑과 정림사지 5층 석탑에 대한 조사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2. 미륵사지 석탑
백제시대에 지어진 미륵사지 석탑은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규모의 석탑이다. 전라북도 익산시에 자리하고 있는 미륵사 터에는 본디 가운데에 하나의 목탑과 양쪽에 두 개의 석탑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현재 남아있는 석탑은 그중 서쪽에 있던 석탑이다. 정확한 건립 연대가 알려진 것은 아니나 백제 말 무왕대인 600년도로부터 640년도 사이에 건립되었을 것이라는 견해가 유력하다
우선 외형적으로만 보아도 미륵사지 석탑의 외형은 한반도에 존재하는 석탑들보다 목탑의 외형에 더욱 가까운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외형상의 차이는 건축 기법의 차이에서 기인하고 있는다. 보통의 석탑이 석재의 질감을 살려 비교적 부재를 단순화 하여 만드는 반면, 미륵사지 석탑은 석재를 여러 개의 부재로 나누어 목탑이 목재를 조립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구성을 하고 있다.
3. 정림사지 석탑
정림사지 5층 석탑은 오늘날 충남 부여군의 정림사터에 자리하고 있으며 국보 제 9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석탑은 미륵사지 석탑과 비슷한 7세기경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선후관계에 있어서 미륵사지 석탑보다는 조금 더 후대에 지어진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정림사지 석탑도 미륵사지 석탑과 마찬가지로 목탑의 건축양식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는데, 이는 탑의 여러 특징들로부터 파악 할 수 있다. 이 석탑을 이루고 있는 석재의 수는 무려 149개나 되는데, 이는 비슷한 규모의 전형적인 석탑들을 만드는데 쓰이는 부재의 숫자보다 훨씬 많은 숫자이다. 즉, 미륵사지 석탑이 돌을 작은 부재로 나누어 목재를 조립하듯이 만들어진 것처럼 정리사지 석탑 역시 그러한 방식을 차용하여 건립된 것이다.
그러나 미륵사지의 외형이 마치 돌로 만들어진 목탑과 같은 인상을 주었던 것에 비해서 정림사지 석탑은 그보다는 일반적인 석탑의 외형에 더 가까운 인상을 주고 있다. 즉 건축 방식에 있어서 목탑의 건축 방식을 차용하여 목탑이 갖고 있는 특징을 가져오는 동시에 석재가 갖고 있는 조형적인 특징을 동시에 만족 시키는 방향으로 설계된 것이다.
<3> 본론 2
1. 정림사지 석탑의 미학 - 비례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는 인간의 본능적으로 갖게 되는 욕구 중 하나이다. 문화유산에 대해서도 우리는 그것이 담고 있는 역사적인 가치와는 별개로 아름답다고 느끼는 문화유산이 있는 반면에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다고 느끼는 것들도 있다. 아름다움은 다소 주관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단순하게 정의할 수 없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아름다운 예술 작품을 위해 제작자가 아름다움의 메커니즘에 대해서 면밀히 연구한 바를 작품 속에 불어넣었다면 그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것이 ‘왜 우리가 그 예술 작품을 아름답게 느끼는가’에 대한 답을 찾는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1) 황금비
황금비는 선분을 한 점에 의하여 2개의 부분으로 나누어, 그 한쪽의 제곱을, 나머지와 전체와의 곱과 같아지게 하는 비율을 말하며, 약 1 : 1.618로 나타난다. 고대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이나 이집트의 피라미드 등의 아름다운 건축물을 비롯하여 미적 안정감을 주는 요소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정림사지 석탑이 주는 특유의 균형감과 아름다움을 분석하기 위해 실측도를 기준으로 각 요소들이 이루는 비율을 각각 비교한 결과 중요한 부분에서 탑의 각 부분들이 황금비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첫 번째로 1층 탑신 높이와 2층 탑신 높이의 비율을 비교한 결과 각각 약 1.64 : 1의 비율을 이루고 있었으며 이는 황금비인 1.618 : 1과 매우 근접한 수치로 1층과 2층의 높이 비율이 황금비를 이루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두 번째로 1층 탑신의 너비와 1층 지붕돌의 너비의 비율을 비교한 결과 각각 약 1.63 : 1의 비율을 이루고 있었으며 이 역시 1.618과 근접한 비율로 황금비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앞서 살펴본 1층과 2층의 탑신 높이의 비인 1.64 : 1의 비율과 비교하면 더욱더 근접한 비율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백제인들이 실제로 1.618:1이 가지는 수학적 원리를 인지하고 있었는지의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앞서 살펴본 요소들이 놀라울 정도로 일치하는 것으로 보아 특정한 비율을 의도하고 탑의 미적인 요소를 완성하였음을 추론할 수 있다.
(2) 정림사지 석탑은 숫자 7로 만들어졌다?
실제로 정림사지 석탑이 수학적인 비례의 원리로 이루어져 있음을 일본인 건축학자인 요네다 미요지에 의해 실증적으로 입증된 연구가 있다. 이 연구에 통해 비례적인 일치에 초점을 두었을 뿐만 아니라 그 비례가 가지는 수학적인 의미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어 더욱 이 탑의 아름다움을 빛나게 한다.
정림사지석탑의 건립에 쓴 척도는 전고려 시대의 자, 즉 1자의 길이가 약 35㎝ 정도인 '고려척'이었다. 이 조사 결과에 의하면 탑의 지대석 너비가 고려척으로 14척이고, 그 절반인 7척이 이 탑의 건립에 기본 척도로 쓰였으며 7이라는 숫자를 시작으로 집요하게 이 탑의 비례가 맞추어져 있다.
이러한 비례적인 원리는 백제 장인이 건너가 만든 것으로 알려진 일본의 호류지 5층 목탑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앞서 살펴본 비례적인 일치가 우연이 아닌 정교하게 의도된 것임을 확인 할 수 있다.
2. 정림사지 석탑의 미학 - 곡선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백제인들은 석탑을 건립함에 있어서 석재의 덩어리로서의 질감을 강조하는 대신 목탑의 형식을 차용하여 전체적인 형태를 만들어 냈는데 이러한 방식은 신라의 석탑에 비해서 선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방식이다.
백제 석탑의 지붕돌을 얇은 돌로 구성한 것으로 그치지 않고 각각의 모서리 부분을 살짝 들린듯이 표현하여 구성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서 백제인의 상승하는 곡선의 미감은 석탑을 통해서도 표현되고 있음을 추론할 수 있다.
<4> 결론
백제의 석탑 그 중에서도 정림사지 석탑은 미적으로 아름다움과 균형감을 모두 갖추고 있는데 이것은 백제인들이 석탑을 조형함에 있어서 수학적인 비례를 통해서 구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백제의 문화유산에서 널리 관찰되던 상승하는 곡선의 형식도 목탑양식의 얇은 지붕돌과 끝마무리를 통해서 녹여내고 있다. 즉 백제의 석탑은 백제인들이 갖고 있던 수학적인 역량과 미의식이 종합적으로 집약된 예술성이 높은 문화유산이라 할 것이다.
<참고문헌>
강우방, 『한국 미의 재발견 - 탑』, 솔, 2003.
『한국불교미술대전』, 한국사전연구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전지혜, 「백제양식석탑의 양식과 건립연대에 관한 검토」, 2011.
조경철, 「백제 무왕대 신도 건설과 미륵사, 제석사 창건」,『백제문화』39권,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2008.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충남 - 답사여행의 길잡이 4』, 돌베게,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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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서론부분이 감동적이네요 특별발표 기대됩니다 답사의 즐거움이 배가될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