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3일 모든 성인의 날 대축일 (연중 31)주일 설교
요한 11:32-44. 이사 65:6-9. 묵시 21:1-6상
거룩한 사람의 마음
오늘은 모든 성인의 날로 지킵니다. 성인 즉 거룩한 사람에 대해 생각하는 대축일입니다.
히브리어로 ‘거룩하다’의 원어 ‘꼬데쉬’는 ‘떼어놓다’, ‘분리하다’라는 뜻이라 말씀드렸습니다. 하느님을 거룩하신 분이라고 한다면 ‘우리와는 전혀 다른 분’이라는 고백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광송에 주님을 ‘홀로 거룩하시다’라고 찬양합니다. 하느님이 인간과 결정적으로 다름은 그분의 본성입니다. 인간은 선하고 좋은 사람에게만 잘하지만, 하느님은 선한 사람에게나 악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햇빛을 내려주십니다. 한자로 거룩할 성(聖)에는 귀(耳)와 입(口)이 들어 있습니다. 즉 거룩한 사람은 잘 듣고 제대로 말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성인이란 하늘의 소리를 잘 듣고, 들은 바를 다른 이에게 잘 전하고, 또 백성의 말을 하느님의 말씀처럼 귀하게 듣고, 다른 이들에게 잘 말하는 사람입니다.
이웃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자는 하늘의 소리를 들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바울로 사도는 데살로니카인들에게 거룩한 사람이 되라고 충고합니다. (1데살 3:13) 바울로 사도에게 거룩한 사람이란 누구일까요? 누가 성인일까요? 인간과 전혀 다른 고귀한 성품을 지녔거나, 교회를 위하여 목숨 바친 사람만을 일컫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수호성인으로 삼는 분들만도 아닙니다. 성인이란 예수님의 복음을 그대로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저는 이를 복음화된 사람이라고 자주 표현합니다. 세상의 모든 일과 현상 안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볼 줄 아는 사람, 모든 것을 하느님의 시선으로 하느님을 대하듯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면서, 너희 하느님이 거룩한 것처럼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라고 하십니다. 하느님이 거룩한 것은 그분이 ‘세상과 같으나 분명히 다름’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떤 사람이 성인 즉 거룩한 사람의 마음이어야 할까요?
그 하나는 잘 우는 사람이라고 말씀드립니다. 죽은 라자로를 살리시면서 두 동생의 서럽게 우는 모습에 함께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예수님의 모습을 닮은 사람일 것입니다. 온종일 굶은 가난한 무리를 보시고 측은히 여기시는 애틋한 마음, 이런 자비와 사랑이 기적을 낳은 것이 아닐까요! 예수님은 세상의 사람과 같은 듯 결정적으로 다른 분입니다.
세상과 늘 함께 하시되 세상의 가치와 질서와는 사뭇 다른 삶을 사신 분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런 인간적인 모습에 거룩함을 느끼고, 또 그분의 당당한 용기에 거룩함을 체험합니다. 잘 듣고 공감하시는 분이기에 그렇습니다. 두려울 때마다 하느님께 기도하고 순종하는 모습에 거룩함을 함께 경험합니다. 예수님에게도 고뇌와 고통, 번민이 있으셨습니다.
그럼에도 그분은 기도하셨고, 당신도 괴로움이 있지만, 다른 이를 위로하시고 공감하셨습니다. 그런 모습으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예수님을 닮아가는 이 시대 성인이 아닐까요!
복음에 나오는 마리아는 예수님께 칭찬받던 동생이었습니다. 그런 그녀도 가족의 죽음 앞에서 믿음이 흔들립니다. 하염없이 울고 있는 그녀와 주변의 사람들, 예수님도 눈물을 흘리시며 우셨습니다. 주님의 울음은 비단 라자로의 죽음과 이를 슬퍼하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측은함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눈물은 지금 여기 힘겨워하고 슬퍼하며 살고 있는 우리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이 아닐까요? 우리의 눈물과 한탄을 보시고 함께 애통해하고 함께 울고 계신 하느님의 울음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우신 것 아닐까요? 유다인들의 ‘울음’은(클라이오, κλαίω) 장례식에서 애도하는 바로 그 울음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눈물’(다크뤼오, δακρύω)은 다른 의미입니다. 주님의 울음은 죽음의 세력에 대한 강력한 분노의 눈물이었습니다.
이렇게 거룩한 사람은 예수님을 닮아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 아파하는 사람을 위해 진심으로 함께 우는 사람, 그러면서도 옳지 않은 현실에 대해 각성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거룩한 사람은 눈물이 많고 울음의 의미를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성인은 죽어서 아니 죽기까지 하느님의 품에 안긴 사람입니다. 이 시대 성인은 편안함과 안락함은 물론이거니와 가난과 치욕과 질병까지도 하느님이 주시는 선물로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신 선물이 무엇인지 찾고자 노력하며 기쁘게 맡은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진정으로 ‘부활이요 생명임’을 믿는 마음가짐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유다인들은 라자로의 죽음이 그저 안쓰럽고 불쌍하기에 울었던 것입니다. 마리아는 이 장면에서 사라집니다. 그들의 생각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진정 어린 눈물을 이해했기에 마리아는 후에 거룩한 죽음을 앞두신 예수님의 발에 기름을 발라 드릴 때 다시 나타날 것입니다.
아픔과 고통이 있으면 낫고 벗어나기를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의 아픔과 곤고함에도 함께 계시는 주님을 체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소망하며 사는 사람이 거룩한 사람을 향해 가는 존재입니다. 예레미야에서처럼 우리의 눈물을 진심으로 닦아 주실 분이 계심을 믿기에, 다른 이들의 아픔에도 눈물로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이 거룩한 사람입니다.
이 시대 성인은 지난 고통과 어려움이 다 사라지고 난 후에도 그것이 하느님의 선물임을 알고 감사할 줄 알며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으로 돌리는 사람입니다. 묵시록이 전하는 것처럼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겠다는 주님의 말씀을 진심으로 믿고 이해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거룩한 사람은 변화할 줄 알고, 고치고 늘 새롭게 나아가려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시대의 징조를 읽고, 낡은 것을 과감하게 버릴 줄 아는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어떤 처지에서든 모든 것을 존중하며 감사할 줄 알고, 내 이웃, 우리 가족의 아픔에 눈물 흘릴 줄 아는 사람, 지금의 어려움이 하느님의 선물임을 깨닫고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 시절과 세월을 탓하지 않는 사람 그리고 어려움을 이겼을 때 자신의 능력이 아닌 하느님의 은총으로 인함이었음을 고백하며 감사할 줄 아는 사람, 귀 기울여 하늘의 소리를 듣는 사람,
다른 이들의 삶을 경청하고 존중할 줄 아는 사람, 이런 사람이 이 시대 성인의 삶입니다.
천국은 이렇게 들을 줄 알고, 눈물도 많고, 감사도 잘하며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바로 우리 교회 공동체가 거룩한 사람이 넘치는 천국이기를 소망합니다.
첫댓글 아멘
성인이란 예수님의 복음을 그대로 따라 사는 사람, 복음화 된 사람,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