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할머니가 보내는 동심의 선물
박 일 (아동문학가)
1.
오원량 시인의 시집 『흔들리는 연두』에서 시 한 편 읽습니다.
막 새순이 나오는
연두 잎
나무의 어린 눈인가 했어
다음 날 보니까
새의 부리로 자라고 있었어.
부리는 점점 자라
바람이 불 때마다
반가운 수다를 하더니
어느 날 날개로 자라
푸드득푸드득
날갯짓 소리가
산을 오르고 있었어.
-「연두 잎」 전문
다음 날 보니 새순의 연두잎이 ‘새의 부리’였습니다. 나무마다 자라는 것은 새의 부리입니다. 점점 자라면서 수다를 합니다. 반가운 수다를 합니다. 녹음이 짙을수록 새의 수다가 더 푸르러집니다. 날갯짓 소리도 산을 오릅니다. 산의 녹음은 새의 부리가 노래한 것이고, 새의 날갯짓 소리 때문이라네요.
창조는 논리나 과학을 뛰어넘습니다. 문학은 실험 관찰이 아니라 남다른 상상력으로 발견하거나 관찰한 것입니다. ‘새 잎’을 ‘새의 부리’로 상상한 것처럼. 과학이 현실이라면 문학은 미래입니다. 남다른 상상력으로 즐거움(감동)을 주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 피카소는 ‘나는 찾지 않는다. 발견한다’고 한 이유를 알겠지요.
시인은 낯익은 것도 낯설게 만들거든요. 항상 보는 것도 남달리 보고, 남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을 새롭게, 새삼스럽게 보여주거든요. 문학을 높이 평가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오원량 시인!
2021년에 『아동문예』에 동시가 당선되었고, 동시집 『하얀 징검돌』을 펴냈어요. 이미 1989년 『동양문학』으로 시인으로 등단했고, 시집으로 『사마리아의 여인』, 『새들이 돌을 깬다』, 『서로는 짝사랑』 그리고 『흔들리는 연두』 등이 있습니다. 『흔들리는 연두』는 2023년 제12회 녹색문학상 수상 시집입니다. 녹색문학상은 사단법인 한국산림문학회가 숲사랑과 생명존중, 녹색환경보전의 가치와 중요성을 주제로 한 문학작품을 발굴할 목적으로 제정한 상입니다. 상금이 자그만치 1,500만원입니다.
심사평 일부를 소개합니다. ‘시집 『흔들리는 연두』 역시 숲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변화를 마치 수채화를 그리듯 섬세하게 묘사하는가 하면 운문에 산문을 담는 실험적 과감함도 보여 문학 성취도를 높였으며, ‘연두’라는 새싹에서 희망을 꽃피우는 녹색 환경을 다양하고 아름다운 시선으로 시상(詩想)을 녹여낸 시도가 매우 훌륭했다.’라고요.
첫동시집 『하얀 징검돌』의 서평을 쓴 이화주 시인은 ‘시인의 상상력은 독특하다. 그런 동시는 어떻게 태어나는 것일까? 시인의 따뜻하고 특별한 경험과 호기심과 관찰의 힘이다. 시인의 시 속에는 가족의 관심과 사랑이 있다. 언어의 밥이 있고 웃음이 있다. 넓고 두꺼운 배경지식과 사랑은 새로운 생각을 태어나게 한다. 상상력에 투명한 날개를 달아준다. 보이는 것 그 너머까지 생각의 영토를 넓힐 수 있도록.’하면서 상상력이 우수한 시인이라고 칭송하고 있습니다.
이제 동시로써 아름다운 문학을 하겠다고 합니다. 훌륭한 시인과 함께하는 아동문학이 그득해지는 느낌입니다.
2.
제2동시집 『날마다 산타』를 읽습니다. ‘산타 할아버지’는 성탄절 즈음에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나누어 주거나, 성탄절 날 밤에 어린이들의 양말에 선물을 놓고 간다는 이야기 속의 할아버지입니다. 할아버지가 계시면 할머니도 계십니다.
이 동시집은 「산타할머니가 보내는 동심의 선물」입니다. 성탄절이 아니지만 동심의 선물로 찾아옵니다. 기분을 흐뭇하게 하는 선물입니다.
소년한국일보는 시낭송캠페인 ’시를 읽읍시다‘에 매주 한 편씩 동시를 싣습니다. 오원량 시인의 「엄마 손은 꽃」이 실렸습니다(2022. 11. 17).
밥하랴
청소하랴
설거지하랴
빨래하랴
엄마는 손한테 너무 미안하단다
그래서 가끔 엄마는
크림으로 맛사지도 해주고
손톱에 예쁜 꽃잎도 그려준다
톡, 톡, 톡……
타닥, 타닥……
엄마 손이
친구들에게 카톡을 날린다
컴퓨터를 친다
엄마 손에서 예쁜 꽃잎이
팔랑팔랑 날아다닌다
꽃향기 가득한 우리 집
-「 엄마 손은 꽃」 전문
전병호 시인은 다음과 같이 해설을 곁들였습니다. ‘그래요. 밥하고, 청소하고. 설거지하고, 빨래하느라고 엄마 손이 거칠어졌어요. 그래서 아주 가끔은요. 엄마가요. 엄마 손에 크림 맛사지를 해주고, 손톱에 예쁜 꽃잎도 그려주어요. 어때요, 참 잘했지요? 그런 날 엄마 손은 친구들에게 카톡을 날리고요. 컴퓨터의 자판도 열심히 쳐요. 그런 날은 엄마 손에서 꽃잎이 팔랑팔랑 날아다녀요.
참 오랜만에 되찾은 엄마의 시간은 참 행복했을 거예요. 하지만 엄마는 또 ‘나’를 위해 청소하고. 설거지하고, 빨래하실 거예요. 그럼 또 손이 거칠어지겠지요. 엄마, 우리를 위해 희생과 봉사하는 것, 너무나 고마운데요. 그래도 될수록 엄마의 시간을 많이 갖도록 하세요. 엄마가 행복할 때 우리가 행복하니까요.’라고요.
2동시집 『날마다 산타』는 4부로 구성되어 있고, 55편이 실려 있습니다.
1부 ‘할머니와 나의 차이’는 나이 때문에 생기는 차이를 말하지는 않겠지요. 할머니의 사랑과 세월을 느껴보세요. 2부 ‘해님 발자국’은 누구의 얼굴에 찍어주는 발자국이라네요. 혹시 여러분의 얼굴에 해님 발자국이 찍히지나 않았는지 살펴보세요. 3부는 ‘날마다 산타’는 고마운 이웃에게 보내는 따뜻한 마음이며 선물입니다. 4부는 ‘우리 엄마가 계모란다’입니다. 왜 우리 엄마가 계모가 되었을까요? 궁금하지 않나요?
3.
동시가 무엇입니까?
동시를 읽으면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엄마도
아빠도
우리들 나이로
되돌아오신단다.
어린 시절로
되돌아 와서
너무 좋다고 하신다.
-「젊어지는 비결」 전문
엄마, 아빠가 우리들 나이로 돌아오게 하는 것입니다. 세월은 무정하게 흘러도 동시와 함께 하면 타임머신처럼 어린 시절로 되돌린다고 하네요.
동시를 나누는 모습은 아름답습니다.
우리 엄마
날마다 씨를 뿌린다.
올해도 책 농사 대풍
돈 안 되는 농사지만
가난한 사람에게
마음의 양식
양껏 나눠준다.
-「책 농사」 전문
동시집을 만듭니다. 글의 씨앗을 뿌리고 글 농사가 잘 되면 책 농사도 풍년이 됩니다. 책은 마음의 양식이니까, 그 양식을 가난한 이들에게 양껏 나눠줍니다.
오원량 시인은 어떤 분일까요?
들판에 앉아
과일을 먹고 있는데
벌이 날아들어 윙윙거린다.
-나 꽃 아니야!
-나 꽃 아니야!
-「착각」 전문
꽃은 아니라고 합니다. 산에 오르거나 들판에 앉아서 과일을 먹노라면 벌들이 날아오기도 합니다. 벌들에게 외칩니다. “나 꽃 아니야!”라고요. 그러나 벌들이 착각한 것이 아니라 시인 중에서 꽃이라는 것을 이미 알았나 봅니다.
너도 엄마한테
혼났구나!
구석 찾아
숨어 있게.
-「집 먼지」 전문
깨달음이란 스스로 자신을 아는 것입니다. 시인이라고 우쭐거리거나 자랑할 줄 모릅니다. 차분하고 조용합니다. 우주에서 보면 사람은 먼지보다 작은 존재라고 하던가요. 그래서 인간은 별이 남겨놓은 먼지로 만들어진 존재라고 했지요. 먼지가 되어도 좋습니다. 마냥 조용히 살고 싶습니다.
마음이 참 따뜻합니다.
띵동!
선물입니다.
묵직한 선물 박스를
현관문 앞에 놓고
얼굴도 안 보여주고
금새 사라진다.
매일 집집마다
무거운 선물 상자를
문 앞에 두고
힘들지 않으신지
또 다른 집으로
쌩 달려가는
택배 아저씨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한 보따리 지고
가는 길이 좁다.
-「날마다 산타」 전문
택배 아저씨가 상품을 갖다 놓습니다. 아저씨는 띵동! 초인종만 눌러놓고 다른 곳으로 향합니다. 쌩 달려가는 아저씨의 바쁜 일정을 보면서 그의 행동에 고마워합니다.
남을 미워하거나 원망할 줄 모릅니다.
내 앞에
빈자리 하나 있다.
주위 노약자를 찾는 사이
어떤 누나가 얼른 앉았다.
하마 같은 누나도
많이 허약한가 봐.
-「지하철 역에서」 전문
지하철에서 빈자리가 하나 생깁니다. 앉고 싶어도 노약자께 양보하기 위해 둘러봅니다. 그 사이 어떤 누나가 그 자리를 차지합니다. 순간, 미움이 솟았겠지만 ‘누나도/ 많이 허약한가 보다’ 하면서 위안을 합니다.
가난이 오히려 희망과 꿈이었습니다.
작고 구부러진 길
구불구불 가다보면
우주정거장 같은
우리 집
캄캄한 밤하늘 아래
누워 있으면
별들이 숨바꼭질 하는 곳
순간,
나는 우주인이 되어
둥둥 떠돌다가
잠들곤 하지.
-「골목집」 전문
우리 집은 도시와 좀 떨어진 구불구불 구부러진 골목에 있습니다. 캄캄한 밤, 별들이 숨바꼭질하는 모습은 외로움이나 두려움이 아니라, 우주를 떠도는 우주인이 되는 꿈이었습니다.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은 대단합니다. 낮달에도 엄마가 그려집니다.
구부정한 허리
조그만 바람에도
넘어질 것 같다.
두고 온 가족
못 잊어
저리도 서성거리는
하늘나라에 계신
울 엄마!
-「낮달」 전문
낮달의 구부정한 모습이 곧 넘어질 것 같은 엄마의 모습입니다. 엄마는 가족을 잊지 못해서 낮달이 되어 떠있나 봅니다.
자연에 대한 사랑과 애정은 대단합니다.
나무 의자가 돌아왔네.
반갑다고
신기하다고
잠자리도 앉았다 가고
고양이도 앉았다 가고
구름도 걸터앉았다 간다.
들꽃도 앉고 싶다고
다리에 붙어
낑낑대며 올라가고 있다.
-「버려진 의자」 전문
나무 의자가 버려져 있습니다. 돌아왔다고 했으니까 나무가 살았던 산기슭일 것입니다. 반갑고 신기해서 잠자리, 고양이와 구름이 앉았다 갑니다. 들꽃도 앉고 싶어서 다리를 붙잡고 끙끙대며 오릅니다. 생명이 있는 들꽃까지 사랑의 세계 안으로 끌어들여야 마음이 놓이나 봅니다.
왜? 우리 엄마가 계모가 되었을까요? 고개가 갸웃해 집니다.
찬우 엄마가 우리 엄마보고
실력 있는 원어민 선생님 있는
영어학원에 우리들을 보내자고 했다.
엄마는 나한테 물었고
내가 학원에 다니기 싫다고
안 간다고 했다.
어느 날
나를 존중한 우리 엄마
졸지에 계모로 낙인 찍혔다.
-「우리 엄마가 계모란다」 전문
생활이 곧 시이기 때문에 생활 속에서 얻어지는 소재도 참 재미있게 서술합니다. 나를 학원에 보내지 않은 것은 내 의견을 존중한 때문입니다. 그것도 모르고 찬우 엄마는 우리 엄마가 계모이기 때문에 학원도 보내지 않는다고 합니다. 어떻게 해야 오해가 풀릴까요?
이상에서 오원량 시인의 동시세계의 일부라도 살펴보았습니다. 어떤가요? 차분하고 겸손한 그의 동시가 수줍게 눈빛을 보내는 것 같지요. 사랑하고 감사하는 마음도 얼마나 소중하게 담겨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4.
2022년 7월입니다. 동시 공부를 더 하겠다며 ‘아름다운 동시교실’을 찾아왔습니다. ‘아름다운 동시교실’은 동시를 공부하는 분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막 구워낸 뜨끈뜨근한 동시집 『하얀 징검돌』을 갖고 왔습니다. 표지를 넘겼습니다. “동시의 첫걸음 많이 조언해주세요.” 그리고 “항상 겸손한 자세로 배우고 싶습니다.”라고 써놓았습니다. 이미 시인으로 등단하여 몇 권의 시집을 발간한 대단한 시인이지만, 동시를 더 배우겠다며 동시교실 회원이 됐습니다.
‘시인의 말’은 한 편의 시였습니다. 개미의 발은 딱딱할까요? 털이 나 있을까요? “내 동시는 이렇게 개미보다/ 보이지 않는 개미 발바닥이 더 궁금하다.”고 했습니다. 어쩌면 그의 동시는 신비와 환상과 이상을 찾아 떠나는 우주선일지도 모릅니다.
산에도 자주 다닙니다. 산에서 얻은 소재들이 시가 되었고, 그게 녹색문학상을 받게 해 주었으니까요. 산행은 어릴 때부터였다고 회상합니다. 시집 『흔들리는 연두』의 서문에서 산에 자주 다니는 이유가 있습니다. 산행을 하면서 성숙해진다는 것을 알았지만, 더 큰 이유는 “어느 날 산은 근엄한 스승이 되었다. 그 근엄한 스승이 그리워 산에 가고 또 간다.”라고 했으니까 산에서 큰 스승을 만나나 봅니다.
2004년에는 부산문화재단이 훌륭한 시인이라고, 동시집 발간 지원도 해주었습니다.
끝으로 녹색문학상 수상 소감 일부를 소개합니다. ‘자주 산의 품속에 들다 보면 나도 산을 닮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산에 들면 말이 필요하지 않다. 계시 같은 말씀만 들린다. 가만히 들으면 마음이 넉넉해진다. 마냥 겸손해 지고 겸손해 진다.’
이 동시집도 산을 닮은 게 틀림없습니다. 군말이 필요 없고, 하늘의 말씀이 들리고, 마음이 넉넉해지고, 겸손해지거든요.
산타 할머니가 보낸 『날마다 산타』를 읽으면서 우리도 산타 어린이가 되면 어떨까요? 나보다 남을 위하고, 감사할 줄 알고, 작은 것의 가치와 그것에도 사랑과 온정을 베풀면서 날마다 기쁨과 즐거움에 넘쳤으면 좋겠습니다.
첫댓글 오원량 제2동시집 '날마다 산타'가 5월 중 '브로콜리숲'에서 간행될 예정입니다. 먼저 발문 읽어주소서.
시선이 따뜻하네요.
오원량 시인님의 책이
나오기도 전,
이렇게 멋진 평을 써준 박일 선생님.
고마운 손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