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 李仲燮(1916~1956)】 「달과 까마귀」
1955년 1월 서울 전시회를 앞두고 아내에게 보낸 편지들을 보면
당시 이중섭 화가의 심정을 이해해 볼 수 있는데요
새해에는 하루에 소품 한점과 8호 한점씩은 그릴 계획이오
하루빨리 도쿄로 돌아가 당신 곁에서 그림을 그리고 싶어 견딜 수가 없오
1954년 1월 7일,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
어떤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소처럼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작품 활동에 열중하고 있소
1954년 11월,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
서울 전시가 끝나는 대로 당신과 아이들 곁으로 갈 것이 확실하니 걱정 마시오
1954년 12월 초,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
편지들을 보면 이 시기 이중섭은 삶을 포기하고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그런 절망적인 상황이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기 위해
안감힘을 쏟고 있다는 것을 볼 수가 있네요
「달과 까마귀」, 이중섭, 1954, 호암미술관
그렇다면 이 시기쯤 탄생되었던
이중섭 화가의 「달과 까마귀」 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걸까?
우리는 흔히 까마귀를 흉조라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이중섭 화가에게는 다른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작품 속 배경의 짙은 녹색 빛은
자신과 가족들을 가로막고 있는 현해탄을 상징한다고 가정한다면,
이 작품은, 저 까마귀처럼 자유롭게 날아
가족의 품에 안기고 싶다는 이중섭 화가의 바람이 담긴 그림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측에서 무리를 향해 날아가는 저 까마귀는
이중섭 본인이라 추정할 수 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좌측을 보면 까마귀 무리가 세 마리가 아니고 네 마리다.
오른쪽의 이중섭을 바라보고 있는 까마귀는
사랑하는 아내 이남덕 여사일 것이고
그 옆에서 장난을 치고 있는 두 마리의 까마귀들은
이중섭 화가의 사랑하는 두 아들 태현이와 태성이 아닐까?
그렇다면 좌측 상단 화면 밖 하늘에서
무리를 향해 날아드는 저 한 마리의 까마귀는 누구를 의미하는 걸까?
이중섭 화가는 1945년 아내와 결혼 한 직후 아들을 낳게 된다
하지만 그 아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이름도 짓기 전에 세상을 떠나버린다.
이중섭은 아이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아이가 혼자 너무 외로울까 봐
친구들과 함께 지내라며 군동화(群童畵)를 그려 아이와 함께 묻어줍니다.
「도원」 이중섭, 1953년경
그리고 이후 이중섭 화가의 작품에
수많은 군동화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아마도 저 가족에게 날아오는 까마귀는
먼저 세상을 떠난 그 첫째 아이가 아닐까?
그 아이를 포함하여
가족과 함께 지내고 싶어 하는 이중섭 화가의 바람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