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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서의 찬송 6
Ⅵ. 클래식 음악에 나타난 사탄의 영향
일 반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대중음악이나 국악보다는 클래식 음악의 가치를 높게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클래식 음악이 고상하게 들릴지는 모르지만 성서 음악적인 입장에서 보면 클래식이나 팝 음악이나 모두 하나의 세상적 도구에 불과 할 뿐이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아무리 대중적인 것이라도 선한 것이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되지 않을 때에는 아무리 고상해 보일지라도 사탄의 도구로 전락하고 만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1) 바로크까지의 음악
서 양 음악사를 이야기 할 때는 그레고리안 성가부터 시작한다. 이 성가는 그레고리 1세에 의하여 집대성된 성가로, 수도사들에 의하여 악보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그 음악의 실체를 확실히 알 수 있다. 현재 카톨릭에서는 아직도 예배음악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개신교 찬송가에서는 147장 ‘주 달려 죽은 십자가’가 그레고리안 성가의 멜로디이다. 중세시대의 주요 음악은 그레고리안 성가를 중심으로 한 교회음악이었다.
음 악의 흐름은 16세기 말부터 새롭게 되었고, 이 새로운 경향의 음악을 바로크 음악이라고 부른다. 음악사에서는 1450년부터 1600년 까지를 르네상스로, 1600년부터 1750년까지를 바로크 시대로 구분하는데 두 시대 모두 음악의 주류는 교회 음악이었다.
바로크 음악의 마지막은 바하와 헨델로 끝을 맺는데 그들의 음악 역시 교회음악이 주종이었다. 특히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영감있는 오라토리오로 인정받고 있다.
음악에 있어서 18세기까지는 그래도 교회 음악이 세상음악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높은 위치에 있었다. 세속음악이 교회음악에 약간의 영향을 주기도 하였지만 음악의 대세는 극장이나 궁중보다도 교휘에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교회 음악이 힘차게 울려퍼지는 이 기간동안 사탄의 영향은 음악에서 그리 큰 세력을 얻지 못했었다.
2)고전주의 음악의 사상적 배경
문 제는 고전주의부터다. 바하 때 까지만도 사람들은 음악을 하나님의 선물로 생각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믿었다. 그런데 불과 수 십년 사이에 음악에 대한 가치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에서 사람 청각의 만족을 위한 것을 바뀌었다. 즉 하나님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바뀐 것이다.
이렇듯 바로크 이전과 바로크 이후의 두 음악이 크게 달라진 이유는 그 음악의 배후에 있는 사상의 차이 때문이다.
18세기에 일어난 고전주의의 음악은 계몽주의에 의하여 많은 영향을 받는다.
계 몽주의 운동은 기독교와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반발로 시작되었는데, 계몽주의의 사상적 지주라고 볼 수 있는 루소는 그의 사회계약론에서 ‘자연으로 돌아가라’ 고 외치면서 초자연적인 것을 거부하는 한편 개인의 절대적인 자유를 부르짖었다.
이러한 계몽주의 시대의 정신을 요약한다면 세속적, 회의적, 실증적, 합리적, 실제적, 자유적, 평등적, 개인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루 소는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다. 그러나 도처에서 얽매여 있다." 라고 말함으로써 정치적으로는 프랑스 혁명(1789)과 미국독립(1776)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신앙적으로는 하나님 중심의 삶에서 개인주의와 인본주의의 길을 활짝 열어놓았다.
계 몽주의의 영향을 받은 고전주의 음악은 국제적이며 인본주의적이며 대중적이었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작곡가는 하이든, 모짜르트, 베토벤을 들 수 있는데, 특히 베토벤은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작곡가들의 한 표상을 이루었을 정도로 음악사에 있어서 큰 영향력을 끼쳤다. 물론 위의 세 작곡가들도 종교음악을 썼다.
그러나 그들의 작품의 주종은 교향곡, 실내악곡, 협주곡 등의 기악곡이었는데 이렇게 기악곡이 발달했다는 것은 음악의 형식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시 되었다는 것이며 고전주에서 사용한 소나타의 형식은 서양 음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음악 형식이 되었다.
이 러한 사실은 18세기 이후의 음악이 음악 자체의 아름다움을 위하여 존재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후로 음악은 더 이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음악 자체가 목적이 되었으며, 음악의 아름다움이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 베토벤의 음악
1770
년에 태어난 베토벤은 그의 나이 32세인 1802년 가을 인생의 중대한 위기를 맞는데, 귀가 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자살할 결심을
하게 된다. 그는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 라는 고백서에서 “나는 죽으려고 결심하였다 그러나 나를 다시 살게 한 것은 오직 나의
예술이다. 아 내가 내 속에서 느끼고 있는 모든 것을 꺼내놓기 전에는 나는 이 세상을 떠날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고백한다.
베 토벤을 고난 가운데서 살린 것은 사신 하나님이 아니라 음악의 아름다움이었다. 이렇게 그는 성령의 감동으로 세상을 산 것이 아니라 음악의 감동으로 세상을 살게 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음악을 쓴 것이 아니라 자신 속에서 느끼고 있는 모든 것을 꺼내놓기 위해서 음악을 쓰기 시작한다.
1803년에 작곡된 3번 교향곡 ‘영웅’은 그 당시 프랑스를 지배하기 시작한 나폴레옹을 생각하며 작곡되었다. 그는 교향곡을 통하여 한 야심적인 인간을 우상화 하고 있다.
영 웅 교향곡은 이제까지의 음악에서 볼 수 없었던 거대한 형식을 갖추고 있으며 화음이나 형식 선 율등이 복잡하고 정교하게 되어 있는 매우 독창적인 교향곡으로서, 음악만으로도 사람에게 이만큼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보여준 작품이다.
베토벤의 음악에 대하여 금세기 최고의 음악사가라 불리우는 '도날드 그라우트' 박사는 ‘베토벤 음악의 대표적인 특성은 그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악마적 에너지의 표출이다.’라고 평가했다.
그의 음악은 마치 화산이 폭발하듯이 사람의 감정을 긴장시키기도 하며 또한 매우 아름답고 낭만적인 선율로 사람을 이완시켜 깊은 감동의 세계로 이끈다. 음악자체만으로도 어떤 깊은 체험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베토벤도 오라토리오‘감람산 위의 그리스도’와 두개의 미사곡을 작곡하였다. 하지만 이 작품들은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한 작품이라기보다 성서를 소재로 한 작품이라 평가 받고 있다.
- 제 9번 교향곡 합창
베토벤은 음악을 구세주로 생각하고 음악의 미에 몰두하였지만 점차 나이가 들수록 영적인 갈증을 느끼면서 음악이 인간의 구주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느낀다.
이러한 갈등은 그의 마지막 교향곡 마지막 악장 마지막 합창 부분에 나타나는데, 원래 교향곡은 기악곡이기 때문에 합창이 들어 있지 않은 곡이지만 베토벤은 그의 마지막 교향곡에서 처음으로 성악을 사용한다.
그는 가사로 쉴러의 ‘환희의 송가’를 택했지만 유명한 합창 선율이 나오기 전에 처음 등장하는 베이스 레시타티브는 쉴러가 쓴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적어 놓은 가사를 사용한다. 여기서 그가 느끼는 한계에 대한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오 친구여 이러한 소리들이 아니라 좀더 유쾌하고 즐거운 노래를 부르지 않으려나’ 베토벤은 자신의 음악으로 도달할 수 없는 어떤 한계를 느끼고 그의 음악을 부정하고 싶었을 것이다
젊 었을 때 하일리겐슈타트에서 한 고백처럼 그는 그의 마음 한 구석에 무언가 느끼고 있는 것이 있었고 이것을 꺼내놓지 않으면 답답하여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20년 동안 줄기차게 꺼내 놓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가슴은 시원해지기는커녕 더욱 답답해지기만 했던 것이다.
그는 좀 더 ‘유쾌하고 즐거운 노래’를 부르기 원했다. 그것이 무엇인가?
그래서 그는 쉴러의 시를 통해 기쁨에 빠져 보려고 합니다. 쉴러는 괴테와 함께 독일 낭만주의의 대표적인 작가로서 그의 작품은 낭만주의 작가답게 이상적이다.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는 비현실의 세계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 환 희의 송가' 에 나타난 환희도 막연하고 공중에 붕 떠있는 듯한 환희의 세계이다. 왜 기뻐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이유도 없이 온 인류의 형제애를 노래하고 있다. 하나님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막연한 하나님이며 나와 어떤 관게가 있는지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지 못하다.
베토벤이나 쉴러는 모두 천제적인 예술가였지만 하나님을 영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은 없었다. 베토벤의 음악은 무엇인가 추구하는 구도자의 입장이 강하게 나타나지만 그 방법이 성경적인 방법이 아니라 철저히 인본주의적 방법이었다.
베토벤의 얼굴을 기억하는가? 즐거움과 기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괴롭고 심각한 얼굴이다.
1827년 그는 60도 못되어 답답한 마음을 안은 채 눈을 부릅뜨고 몸을 비틀다가 죽었다. 그의 죽은 얼굴에 석고를 발라 만든 데드마스크가 우리가 흔히 보는 베토벤의 마지막 실제 얼굴이라고 한다.
3) 낭만주의 음악의 사상적 배경
고전주의를 뒤이은 낭만주의 음악은 베토벤의 후기 작품에서 시작한다. 고전주의에 나타난 인본주의 사상은 낭만주의 음악에서 더욱 확대되며 음악의 아름다움은 더 이상 음악이 할 수 없는 극에까지 도달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대부분의 작곡가 -슈베르트, 멘델스존, 쇼팽, 슈만, 바그너, 베르디, 브람스, 차이코프스키, 드보르작- 들이 이에 속한다.
낭만주의는 이상의 세계를 그려내려고 한다. 마치 십대 청소년처럼 끝없는 자유와 이루어질 수 없는 목표를 동경한다. 그러나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의 마지막은 행복하지 못하다.
사랑을 원하지만 그 사랑은 열매맺지 못한다. (베토벤, 슈베르트, 쇼팡, 브람스, 차이코프스키는 다 독신이다) 사랑을 노래하면서도 독신으로 일생을 보낸다는 것이 그들의 도달할 수 없는 낭만주의 정신에서 나왔다.
대표적인 낭만주의 작곡가인 슈베르트의 작품들 중 그 제목을 열거해 보면 낭만주의 음악이 어떤 사상적 배경을 갖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1) 교향곡 8번 미완성 2) 환상곡 방랑인 3) 현악 4중주 곡 제 14번 ‘죽음과 소녀’5) 연가곡집‘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소녀’‘방랑’‘어디로’‘초조’‘시든 꽃’ 6) 연가곡집 ‘겨울나그네’ 7) 연가곡집 ‘백조의 노래’ 8) 가곡 ‘마왕’‘방랑인’‘밤과 꿈’‘방랑인의 밤 노래’
이러한 제목들은 슈베르트 뿐 아니라 대부분의 낭만주의 작곡가들이 가지고 있는 제목들이다, ‘방랑’‘밤’‘죽음’‘겨울’과 같은 단어들이 그들의 작품 소재이며, 이것은 또한 향방 없는 생활관을 이야기 한다.
이 어두움의 세력이 낭만주의의 감미로운 선율에 실려 인간의 영혼을 파고들며 인간의 삶을 허무주의의 삶으로 몰고간다.
좀 극단적으로 이야기 한다면 진정한 낭만주의 음악가는 정상적인 삶을 살 수가 없다. 그들이 추구하는 생활양식은 보헤미안적 생활양식이기 때문이다. 어디엔가 정착하지 못하며 기분 내키는 대로 이리저리 방황하며 사는 생활이다. 낭만적이고 이상적이며 자유로울 것 같지만 그들의 삶의 범위는 세월이 흐를수록 점차 좁아 들어가며 영적으로는 자칫 사단에게 기회를 주는 불쌍한 영혼이 되어가고 마는 것이다.
4) 20세기 음악의 사상적 배경
베토벤에 의하여 강화된 고전주의의 인본주의는 낭만파 음악에서 꽃을 피우고 20세기의 음악에서 열매를 맺게 되는데 그 대표적인 열매는 허무주의와 파괴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달려갈 길을 다 달려갔는데, 더 이상 길은 보이지 않고, 벽을 만나게 된다면 허무와 좌절을 느끼든가 그 벽을 파괴해 보려고 무모한 노력을 계속하게 될 것이다.
최후의 교향곡 작곡가라고 불리어지는 말러는 30대 초반에 인생의 근본문제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하였던 작곡가로서 음악을 통하여 그의 내면의 문제를 나타냈다. 특히 말러는 죽음의 문제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하였던 작곡가였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도 죽음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그는 말년에 늘 죽음의 공포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는 그의 마지막 교향곡을 ‘대지의 노래’라고 불렀는데, ‘대지의 노래’는 교향곡이라기보다 칸타타 형식을 취하고 있으므로 그가 선택한 가사를 통하여 그의 음악세계의 결론을 엿볼 수 있다.
1악장 대지의 애수를 노래하는 술 노래 2악장 가을의 쓸쓸한 자 3악장 청춘에 대하여 4악장 아름다움에 대하여 5악장 봄에 취하는자 6악장 고별
총 6악장에 나타난 제목은 허무주의의 분위기로 가득차있고 제목만 보아도 우을증에 빠질 것 같이 전체의 흐름은 씁쓸하고 고독하며 무의미하다. 청춘에 대하여 또 아름다움에 대하여 무언가 이야기 해보려 하지만 청춘의 생명력 있는 발랄함이 아니라, 흘러간 청춘 잡아보지 못한 아름다움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이 가득 차 있는 작품이다.
말러의 작품은 음악적으로는 너무 훌륭하여 많은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 있지만 그 음악을 듣는 사이에 우리의 영혼은 인생의 무의미와 허무 속으로 깊이 빠져 들고 만다.
20세기 음악의 또 다른 일면은 파괴주의다. 음악사에서 새로운 음악의 출현은 언제나 그 전 세대의 음악을 어느 정도 부정하고 나온다. 20세기에 나타난 현대음악도 이제껏 고전주의 음악에 나타났던 모든 원칙들을 철저히 부정한다 조성, 리듬, 형식을 과감히 파괴한다. 심지어 인간성마저 사라져버리는 듯한 느낌을 받을만큼 불안하고 기괴하며 강렬하고 자극적인 음향들이 울려 퍼진다.
20세기의 작곡가들은 이러한 음향에 맞추기 위하여 이방종교나 옛날 미신적인 이야기에서 소재를 따오기도 하고 프로이드의 영향을 받아 인간 심리의 깊은 표현에 힘을 기울이기도 한다.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다
제 1부 대지의 예배는 태양신 이아리로에게 희생제물을 바칠 처녀를 준비하는 과정이다 2부 희생제는 선출된 처녀를 태양신에게 바치는 과정으로 검은 곰 가죽을 입은 괴상한 모습이 나타난다. 그리고 조상의 영을 불러내는 의식이 치루어지는데 선발된 처녀의 처참하고 애련한 춤이 시작된다. 두려움과 번민에서 흥분으로 흥분에서 정신착란으로 정신착란에서 죽음으로 이어지는 춤이다.
그녀가 쓰러졌을 때 그녀의 굳어진 시체는 태양신 이라리로에게 바쳐진다. 무용과 음악이 끝나면 막은 내려지고 청중들은 우뢰와 같은 박수를 보내는데 미신으로 말미암아 희생된 처녀에 대한 연민의 정은 찾아 볼 수 없을 뿐 아니라 잘못된 믿음에 대한 엉뚱한 결과에 대하여도 관심이 없다. 오로지 사람들을 흥분시키고 열광으로 몰아가는 원시주의 자극적인 음악에만 관심을 갖는 것이다.
1913년 이 음악이 파리에서 처음 연주되었을 때는 흥분한 청중들로 인해 큰 소동이 일어났다 지휘를 맡았던 피에를 몽토는 연주를 중단하고 작곡자 스트라빈스키는 극장 뒷문으로 도망을 쳤다
20세기 음악의 작곡가들 중 신앙적인 사람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20세기 현대음악가들의 작품은 그 소재를 성서에서 따왔다고 하더라도 복음적이라기보다는 신비주의로 빠져든다.
현대 작곡가들의 관심은 기독교 쪽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동양의 신비주의나 불교, 힌두교 쪽이다.
존케이지의 우연성 음악은 불교의 선에 대한 그의 관심을 반영하고 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의 작품이나 비디오 예술가인 백남준씨의 작품에도 불교적 사상이 깊이 깔려 있다.
클래식 음악이 어떤 음악이라고 단정하여 말하기는 어렵다. 또 인간에게 유익한가, 해로운가에 대해서 말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러나 우리가 이제껏 서양 음악사를 통하여 조명해 본 그 음악의 사상적 배경은 결코 복음적이라고만은 볼 수 없다.
음악치료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고전음악이 인간의 병을 치료하는데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음을 임상적으로 증명하였으며 계속 그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정신병을 조금 치료한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의 영혼에도 유익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 사단의 궁극적인 목표는 우리 육신의 파괴가 아니라 영혼의 파괴이기 때문이다.
사탄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건강한 육신을 갖도록 우리를 보호할 수도 있다. 육신적으로 편안하고 건강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적인 데 대한 관심을 잃기 쉽기 때문이다.
아무리 부드럽고 고상한 클래식 음악이라도 사상적 배경이 인본주의에 있다면 클래식 음악은 우리의 영적인 생활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다.
우리가 명심할 것은 그것이 어떤 장르가 되었든 우리가 그것을 맹신하고 무조건 수용할 때 사단은 오히려 그 음악을 이용하여 우리를 거꾸러뜨리려 할 것이라는 것이다.
출처 - http://blog.daum.net/css1227/1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