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칙 구향용담(久響龍潭)
용담 숭신 선사께 덕산이 가르침을 청하여 듣다가 밤이 깊었다. 용담 선사께서 "밤이 깊었는데 왜 물러가지 않는가?"라고 하시니 덕산이 드디어 인사를 하고 발(簾)을 들고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서 "캄캄합니다"라고 하였다. 용담 선사께서 초에 불을 붙여 주시고는 덕산이 받으려고 하는 찰나에 이를 불어 꺼버리셨다. 덕산이 이때 곧 깨닫고 절하였다. 용담 선사께서 "그대가 어떤 도리를 보았는가?"라고 물으시니 덕산이 "제가 오늘부터 천하(天下)의 노화상(老和尙)들의 말씀을 의심치 않겠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 다음날 용담 선사께서 설법좌(說法座)에 올라 "이 가운데 대장부가 있으니 이빨은 칼숲과 같고 입은 쇳덩이와 같아서 때려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훗날 높은 봉우리 정상에서 나의 도를 크게 일으키리라."고 하셨다. 덕산은 금강경소초를 법당 앞에서 불사르며 "모든 깊은 진리의 말을 다할지라도 털끝 하나를 허공에 놓은 것과 같고 세상의 중요함을 다한다 할지라도 물 한 방울을 깊은 골짜기에 떨어뜨린 것과 같다."고 외치고 인사를 드린 후 떠났다.
龍潭 因 德山請益 抵夜 潭云 夜深 子何不下去 山 遂珍重 揭簾而出 見外面黑 却回云 外面黑 潭 乃點紙燭 度與 山 擬接 潭 便吹滅 山 於此忽然有省 便作禮 潭云 子見箇甚?道理 山云 某甲 從今日去 不疑天下老和尙舌頭也 至明日 龍潭陞堂云 可中 有箇漢 牙如劍樹 口似血盆 一棒 打不回頭 他時異日 向孤峰頂上 立吾道在 山 遂取疏抄 於法堂前 將一炬火 提起云 窮諸玄變 若一毫致於太虛 竭世樞機 似一滴投於巨壑 將疏抄便燒 於是禮辭
무문 선사 평창
덕산 선사가 깨치지 못하였을 때 입으로 다 말할 수 없이 마음에 분하고 분하여 남방(南方)에 가서 교리(敎理) 밖에 특별히 전했다는 뜻을 쓸어 없애 버리려고 예주 땅에 이르렀다. 때가 되어 길가의 떡집 노파에게 점심을 사려고 하니 노파가 "스님의 바랑 속에는 무슨 글이 들어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덕산 선사가 금강경소초라고 대답하니 노파가 "금강경 가운데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고 했는데 스님은 어느 마음으로 점심을 드시렵니까?"라고 물었다. 이 물음에 덕산 선사의 입이 콱 막혀 버렸다. 이렇게 노파에게 지기는 했으나 그냥 물러나지 않고 근처에 어떤 큰 선지식이 계시냐고 물어 오 리 밖에 용담 선사께서 계신다고 하자 용담 선사를 찾아 뵙고 노파와의 대담을 이야기했다. 용담 선사께서 덕산 선사에게 아직 불씨가 남아 있는 것을 보시고 덕산 선사를 가여운 어린 아이처럼 여겨 급히 물을 가져다가 불씨마저 없애 버렸다. 그 찬 땅을 본다면 한바탕 크게 웃으리라.
無門曰 德山 未出關時 心憤憤 口 得得來南方 要滅却敎外別傳之旨 及到澧州路上 問婆子買點心 婆云 大德 車子內 是甚?文字 山云 金剛經疏抄 婆云 只如經中道 過去心不可得 現在心不可得 未來心不可得 大德 要點那箇心 德山 被者一問 直得口似 擔 然雖如是 未肯向婆子句下死却 遂問婆子 近處有甚?宗師 婆云 五里外 有龍潭和尙 及到龍潭 納盡敗闕 可謂是前言 不應後語 龍潭大似憐兒 不覺醜 見他有些子火種 郞忙將惡水 驀頭一 殺 冷地看來 一場好笑
무문 선사 송
이름 듣는 것이 얼굴 보는 것만 못하다는데
얼굴을 보니 이름 듣는 것만 못하다
비록 그러하나, 구하던 콧구멍을 얻어서
눈이 멀어 버렸으니 어찌하랴
聞名不如見面
見面不如聞名
雖然求得鼻孔
爭奈 却眼晴
龍潭因德山請益抵夜。 潭云。夜深子何不下去。 山遂珍重揭簾而出。
見外面黑却回云。 外面黑。 潭乃點紙燭度與。 山擬接。 潭便吹滅。 山於此忽然有省。便作禮。 潭云。子見箇甚麼道理。 山云。某甲從今日去。 不疑天下老和尚舌頭。 也至明日龍潭陞堂云。 可中有箇漢。牙如劍樹。 口似血盆。 一棒打不回頭。 他時異日向孤峯頂上立吾道在。 | 덕산(德山)이 용담(龍潭)에게 청익(請益)하다 밤이 되자, 용담이 말했다. "야심(夜深)한데 왜 내려가지 않느냐?" 덕산이 "안녕히 주무십시요[珍重]." 하고, 발을 쳐들고 나가려다가 밖을 보니 캄캄한지라 돌아서서 "밖이 캄캄합니다." 하였다. 용담이 이내 지촉(紙燭)에 불을 붙여 건네주니, 덕산이 받으려 하였는데, 용담이 갑자기 훅 불어서 꺼버렸다. 덕산은 이에 홀연히 깨달은 것이 있어서 곧 절을 올렸다. 용담이 "너는 무슨 도리(道理)를 보았느냐?" 하고 묻자, 덕산이 말했다. "저는 오늘부터 천하의 노화상(老和尚) 혀끝을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다음날 용담이 승당(陞堂)하여 "마침 이빨은 칼을 세워 놓은 것[劍樹] 같고, 입은 핏동이[血盆] 같으며, 한 방망이 후려쳐도 돌아보지도 않는 놈이 있어서 장래 다른 날 고봉정상(孤峯頂上)에서 나의 도(道)를 세우고 있을 것이다." 하였다. |
山遂取疏抄。 於法堂前將一炬火。提起云 窮諸玄辨。 若一毫致於太虛。 竭世樞機。 似一滴投於巨壑。 將疏抄便燒。於是禮辭。 | 덕산이 (금강경) 소초(疏抄)를 가져다 법당 앞에서 횃불을 치켜들고 "현묘한 분별을 궁구(窮究)하는 것이 태허(太虛)에 터럭 하나 놓는 것 같고, 세상의 추기(樞機*)를 다하더라도 거학(巨壑*)에 물 한 방울 떨어뜨리는 것과 같다." 하더니 소초를 불살라버리고 하직인사를 하였다. |
*혈분(血盆); 피가 줄줄 흘러넘치는 동이. 통상 '크고 넓게 벌린 입'을 형용한다.
*可中; 가령(假若,縱使), 마침(恰好),
*孤峯; 외로이 우뚝 솟은 봉우리.
*樞機; 문의 지도리[戶樞]와 발사장치 공이[弩牙]. 사물의 관건(關鍵)에의 비유.
*巨壑; ①大海 ②深淵大谷
無門曰。 德山未出關時。 心憤憤口悱悱。 得得來南方。 要滅却教外別傳之旨。 及到澧州路上。 問婆子買點心。 婆云。 大德車子內是甚麼文字。 山云。金剛經抄疏。 婆云。只如經中道。過去心不可得。 現在心不可得。未來心不可得。 大德要點那箇心。 德山被者一問。直得口似匾檐。 | 무문(無門)이 말했다. 덕산(德山) 아직 출관(出關*)하지 않았을 때 마음이 답답한데 말을 할 수 없었는지라 당당히 남방으로 가서 교외별전(教外別傳*)의 종지(宗旨)를 없애버리려 했다. 풍주(澧州) 노상(路上)에 이르러서 한 노파에게 점심(點心)을 사 먹을 수 있는지 묻자, 노파가 말했다. "대덕(大德)의 수레에 있는 것은 무슨 책이요?" "금강경초소(金剛經抄疏*)입니다." "그 경 안에 과거심(過去心)도 얻을 수 없고, 현재심(現在心)도 미래심(未來心)도 얻을 수 없다 하였는데, 대덕은 어느 마음[心]에 점(點)을 찍으려 하오?" 덕산은 그 질문을 받고서 곧 입이 납짝해져버렸다. |
然雖如是。未肯向婆子句下死却。 遂問婆子。 近處有甚麼宗師。 婆云。五里外有龍潭和尚。 及到龍潭納盡敗闕。 可謂是前言不應後語。 龍潭大似憐兒不覺醜。 見他有些子火種。 郎忙將惡水。 驀頭一澆澆殺。 冷地看來一場好笑。 | 비록 그러하였으나 노파의 말에 기죽지 않은 듯이 이윽고 노파에게 "근처에 어떤 종사(宗師)가 계십니까?" 하고 묻자, 노파는 "5리(里) 밖에 용담(龍潭)화상이 있다오." 하였다. 급기야 용담을 찾아가 모든 패배를 받아들였으니, 가히 전에 했던 말과 뒤의 말이 맞지 않았다 하겠다. 용담은 어린아이를 가련히 여기듯 추함을 느끼지 않았고, 그에게 작은 불씨가 있음을 보고 황급히 좋지 못한 물[惡水]을 가져다 느닷없이 머리에 부어 꺼버렸으니, 냉정히 살펴보면 한바탕 좋게 웃을 일이다. |
*出關; ①변방 요새의 관문을 나서는 것.
②폐관수행(閉關修行)~문을 닫아 손님을 사절하고 은거하는 수행.
*心憤憤口悱悱; 憤憤은 번민(煩悶)을 표출하지 못하는 모양새(답답함),
悱悱는 억울한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모양새.
*得得; ①특별히 ②(뚜벅 뚜벅)걷는 모양새
*教外別傳; 禪林用語。敎法 외에 따로 전하신 文字와 言語에 의하지 않고
곧바로 깨달음에 들어가는 길.
*抄疏; 疏抄. 註釋書.
*편첨(匾檐); 현판(懸板).
頌曰。 | 게송으로, |
聞名不如見面 見面不如聞名
雖然救得鼻孔 爭奈瞎却眼睛
| 이름을 듣는 것은 얼굴 보니만 못하고 얼굴 보는 것은 이름 들으니만 못하다. 비록 콧구멍[鼻孔*]은 구제받았으나 눈알[眼睛]이 멀어버렸음을 어찌 하리요. |
*鼻孔; 修行人에게 가장 중요한 것에 비유하는 용어로서 頂門, 眼睛과 같은 뜻으로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