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먼저 본 터라 혹시나 영화에 대한 선입견이 남아 있어 제대로 관극을 하는 데 방해가 될까 조금 신경이 쓰였다. 게다가 내가 데리고 간 50여 명의 아이들 중엔 연극을 처음 보는 아이들이 많아서 지루하거나 재미없으면 어쩌나 하는 염려도 좀 되었다.
하지만 기우였다.
극은 짜임새 있고 재미있었다.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과 안정된 연출이 바탕이 되어 그런 것 같다. 샤를 이용한 첫 장면(여자가 살해되는)은 참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부분, 연극에서 어떻게 처리할까 궁금했었다. 빗소리에 묻혀 나오는 레퀴엠 음악은, 어떻게 보면 너무 무거운 듯하고 어떻게 보면 너무 고상한 장송곡이라 어울리지 않는 듯하면서도 묘하게 작품의 전체 분위기를 잘 끌어 주었다.
연극이 영화만큼 다채롭게 표현할 수 없는 장르라, 영화에서 대박을 터뜨린 작품을 공연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선 상승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겠으나 오히려 반대의 효과를 가져 올 위험 요소를 안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연극을 보러 갈 때부터, 너무 기대하지 않으려 노력을 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늘 이 연극을 보면서, 연극도 영화만큼이나 재미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가 가질 수 없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쓰니 꼭 연극 처음 보는 사람 같다^^ 나처럼 연극 많이 본 사람이 이렇게 느낄 수 있는 건 그만큼 이 연극이 연극으로서의 장점을 잘 살렸거나 원작이 참 좋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둘 다인 것 같다.
박상희씨의 익살 연기는 언제 봐도 귀엽다. 박형사 역으로 딱인 것 같다. 조형사역과 신도환씨도 이미지가 참 잘 어울리는 것 같다.^^ 김형사 역의 김은환씨를 보며 가끔, 잘 생긴 외모 때문에 오히려 손해를 본다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오늘은 드디어 잘 생긴 외모가 진가를 발휘한 듯하다^^* 상주여고 아이들, 오늘 모두 오빠부대가 됐다. 김은환씨도 아마 이렇게 많은 소녀팬들의 극성, 처음일 것이다^^* 박기자 역의 김현숙씨도 이미지가 참 잘 어울렸다. 오늘 연극은 무엇보다도 배우들의 이미지와 배역이 너무나 잘 어울렸던 것 같다. 용의자역엔 박현순씨가 아니라 성석배씨가 직접 나왔는데 오히려 더 어울리지 않았나 싶다. 조금 단조로운 면도 있었지만... 배역이 바뀐 것은 극단이나 배우 사정 때문인 것 같기도 한데... 연출이 아니었다면 처음부터 성석배씨가 하는 게 더 나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무대가 너무 커서 좀 안타까웠다. 배우들 참 고생하겠다 싶었다. 김천 말고 차라리 구미문화예술회관 소극장에서 했더라면 배우들 고생 덜하고 훨씬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았다. 큰 무대용 공연이 아닌데도 크게 어색하지 않게 잘 극복들을 한 것 같다.
아쉬운 점들...
경상도 사투리가 극복되지 못한 부분들은 좀 귀에 거슬렸다. 특히 '어'와 '으'를 구분하지 못하는 일부 배우들의 발음은 그 배우의 훌륭한 연기를 좀 가렸다. 스탭이 김천문화예술 사람들이라 그런지 음향이 너무 컸다. 전화벨 소리는 귀를 찢는 듯했고, 레퀴엠 음악은 가끔씩 배우들의 대사를 먹어버렸다. 가끔 음향이 제 때에 즉시 나와주지 않고 뜸을 들이기도 했다.
박형사의 연기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익살스러워 지루해질 수도 있는 극 전개에 활력을 주긴 했지만, 전라도 사투리가 완전하지 못해 좀 거슬렸다. 경상도 사투리와 전라도 사투리가 섞여 나오거나 1음절이 필요 이상으로 강조되는 부분이 많아 좀 거북했다. 그리고 모든 대사가 별로 변화 없이 단조롭다는 느낌이 들어, 자칫하면 매너리즘에 빠진 대사라는 느낌을 줄 수도 있을 것 같다. 소위 "~~쪼"라는 게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오늘 박형사, 재미있었다.
김형사의 대사 역시 좀 단조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역의 성격상 깔끔하고 지적인 이미지여야 하겠지만, 시를 쓴다든가 미스김과 묘한 관계에 빠진다든가 하는 점이 있는 것으로 보아 한 가지 성격만 가진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경직되고 깔끔한 이미지가 풍기다가 가끔씩 또 다른 모습이 보여진다면 훨씬 살아있는 캐릭터가 되지 않을까? 가장 밋밋한 캐릭터여서 사실은 표현하기 제일 힘든 배역일 거라는 생각이 들지만, 좀더 섬세하게 부분 부분의 느낌이 살아난다면...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김은환씨의 대사는 대구 사람 같지 않게 정확하다. 이것은 연극반 학생들이 꼭 배웠으면 한다.
조형사는 아주 자연스럽고 좋았지만 진짜 무술인이라기보다는 사이비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볍다는 말이다. 대본에는 무술을 꽤 한다고 되어 있다던데... 감정 표출이 조금만 더 다양했다면 하는 생각이 든다. 계속 분노만 하더라도, 범인에 따라 분노하는 정도나 방법이 조금 다를 수는 없는 걸까? 그냥 하나의 일관된 이미지보다, 이 장면에서 진짜 조형사는 어떤 기분이었을까를 고려한 그런 모습 말이다.
내 욕심이 너무 많은 건가? 이런 점들 때문에, 처음엔 정말 기가 막히게 이미지가 맞아떨어지는 캐스팅이란 생각이 들었는데도 그 다음엔 뭔가 조금 아쉽다는 느낌이 들었다.
박기자는 "돼지사냥"에서 할머니 역할을 할 때와는 너무 다른 모습이어서 처음엔 참 많이 놀랐다. 박기자에 대해선 잘 모르겠다...
미스김은 의상과 머리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든다. 순진한 모습을 표현하려고 했는지 촌스러운 모습을 표현하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화성은 내가 알기에 지금도 썩 큰 도시는 아니다. 촌다방 아가씨일 텐데 첫 등장 장면의 의상은 깜찍한 고등학생이나 대학교 새내기같다는 인상을 주었다. 더구나 촌스러운 머리 모양과 신세대같은 옷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신발도 너무 세련된 걸 신었다^^ 콧소리가 섞인 목소리와 발음은 귀엽게 보이기 위한 설정인 것 같았지만 별로 귀엽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고 목소리가 좀 거슬렸다. 발성이 되지 않은 여자 배우의 목소리를 큰 무대에서 들을 때는 조금 괴롭다.
마지막 부분, 그림자를 통해 범인이 아주 크게 나왔다. 범인이 우리 모두를 놀리고 있다는 느낌이 이로 인해 더 강하게 들었다. 그러면서, 우리 모두가 범인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 소설 "모비딕"의 마지막 장면에서 에이허브가, 그토록 쫓아다니던 흰 고래와 한 몸이 되는 것처럼... 범인과 김형사가 한 몸이 돼버리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이만하면 연출 대성공 아닌가? 아니면 관객이 너무 상상력이 풍부한 건가? ㅋㅋ
사실, 대구 공연 바로 전에 연극을 보게 되어서, 그것도 50만 대군(^^)을 이끌고 공짜로 보게 되어서, 밥값은 해야겠다 싶은 의무감에 오늘은 프리뷰 공연 보고 모니터하는 심정으로 연극을 본 것 같다^^ 내가 한 가지라도 더 지적하면 본 공연에 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그래서 꼬치꼬치 따졌지만 오늘 공연, 아주 만족스럽다. 다음 주 목~토요일은 학교 야영, 토~일요일 오전은 서울에 "그리스" 보러 가기 때문에 시간 내기가 참 힘들지만, 화요일쯤 무리해서라도 대구 가서 기어코 소극장에서 공연하는 걸 보고야 말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은 작품, 좋은 연출, 좋은 연기가 돋보인 멋진 연극을 소극장에서 본다면 얼마나 더 멋질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무리를 해서라도 꼭 가야지^^
올해 한국 영화 중 최고인 "살인의 추억"을 먼저 보고도 실망하지 않은 연극... 연출과 배우들에게 관객으로서 박수를 보내고 싶다.
첫댓글보면서 좋은 연극이라고 생각은 했었지만 몇가지 배우의 문제점을 지적한 거 뺴고는 쌤이 칭찬하는 거 보니까 정말 제가 좋은 작품을 본것 같아서 기분이 좋네염^-^ 글구 열심히 노력해서 김은환님같은 배우가 되긴 아직 멀었지만 발톱때라도?!-.-;; 갈수 있는 배우가 되도록 노력할게여^^**그러기전 복근달련이 문제
첫댓글 보면서 좋은 연극이라고 생각은 했었지만 몇가지 배우의 문제점을 지적한 거 뺴고는 쌤이 칭찬하는 거 보니까 정말 제가 좋은 작품을 본것 같아서 기분이 좋네염^-^ 글구 열심히 노력해서 김은환님같은 배우가 되긴 아직 멀었지만 발톱때라도?!-.-;; 갈수 있는 배우가 되도록 노력할게여^^**그러기전 복근달련이 문제
달련이 아니고 단련이다 ㅋㅋㅋ
어색한 사투리를 벗어나기 위해서..저는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 겠네요....ㅠ.ㅠ
박형사 짱~~~~~~ㅋㅋ
좋겠네요. 잼게 보고 오세요 다들
오늘 노정선생님이 얘기 하셨던 부분이 다 여기 있네 + ㅁ + ... 이제서야 읽어보다니 -_-ㅠ ... 그래도 글로 읽는거보다 - 선생님한테 듣는게 더좋았을지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