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건축 연구자 13명 '영건의궤' 펴내 공사비부터 목수 이름·일당까지 기록
조선시대 궁궐·종묘·성곽 등의 건축 과정과 당시 목수들이 사용하던 건축 용어 등 '조선 건축의 모든 것'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책이 나왔다. 영건의궤연구회(대표 김동욱 경기대 교수)는 최근 13명의 전통건축 연구자들이 8년 동안 공동연구한 성과물인 '영건의궤(營建儀軌)-의궤에 기록된 조선시대 건축'(동녘)을 펴냈다. 조선왕실의 각종 의식 진행과정을 기록한 의궤(儀軌) 가운데서도 건축공사를 다룬 것만 따로 모아 120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으로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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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재의 수원 화성 동북포루(위쪽)와‘화성성역의궤’에 그려진 화성 동북포루. /동녘 제공
'영건(營建)'이란 궁궐이나 그에 준하는 건물을 짓는 대규모 건축행위를 말한다. 현재 전해지는 영건의궤는 1633년 '창경궁수리소의궤'부터 1906년 '경운궁중건도감의궤'까지 모두 32종이다.
이들 영건의궤는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궁궐건축의 면모를 생생히 전해준다. 궁궐을 지은 목수가 누구이며 하루 일당은 얼마인지, 목재는 어디서 구해 왔고 벽돌 굽는 장인은 누구였는지, 집을 짓고 상량식을 할 때 어떤 절차에 따라 의식을 치렀는지 등을 살필 수 있는 내용들이 흥미진진하다.
특히 정조 때 수원 화성(華城)의 성곽 축조 과정을 담은 '화성성역의궤'는 18세기 말 축성(築城) 기술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공사의 기본계획, 투입된 물자의 종류와 수량, 가격과 조달상황, 지급된 임금 액수, 공사에 참여한 관리와 일꾼들의 이름까지 낱낱이 기록했다. 총 공사비용은 86만698냥. 석재·목재 등 자재 구입비에 32만2566냥이 지출됐고, 인건비 29만7132냥, 운반비 18만9428냥, 도로 설치·토지 매입 등 기타 비용이 5만1572냥이었다. 연구회는 "자재 구입비용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화성 공사가 있었던 시기 관공사가 인건비 위주의 봉건적 공사 방식에서 벗어나 근대적 공사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영건의궤들에 나타난 조선후기 품삯의 변화도 흥미롭다. 17세기에는 인건비가 대부분 쌀과 포 등 현물로 지급됐고, 1개월 단위의 월급제였다. '창경궁수리소의궤'를 보면 전문기술직인 장인이나 잡역인 모군, 이들의 식사를 담당한 화정이 똑같이 매달 쌀 12말과 포 2필을 받았다. 하지만 후대로 가면서 지급 방식이 현금으로 바뀌고 직역별로 수당에도 차이가 났다. 1825년 현사궁 영건공사에 동원된 인력 중 대장장이 패장(기술관리직)이 가장 많은 일당(7전 9푼)을 받은 반면, 목수·조각장·소목장은 4전 2푼, 각종 톱장이와 모군은 2전 5푼을 받았다.
'영건의궤'는 특히 당시 장인들 사이에 통용된 건축용어에 대한 정리를 시도해 눈길을 끈다. 김동욱 교수는 "조선시대 건축용어는 구사하는 사람들의 지역·신분에 따라 다르고 시대에 따른 변화도 많아 정확히 파악하기가 어렵다는 점에서 영건의궤는 건축용어 연구의 보물창고와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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