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의 간판투수 이상훈과 신임 이순철 감독 사이의 감정대립이 심각해지고 있다. 기타연주를 빌미로 촉발된 두 사람 사이의 감정대립은 이상훈의 트레이드설까지 나오면서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선수의 개성과 감독의 권한, 개인과 집단이라는 상반된 요소의 대립은 당사자 뿐만 아니라 팬들 사이에서도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이상훈을 지지하는 갑과 이순철 감독을 지지하는 을의 가상토론을 통해 양쪽의 주장을 정리해보았다.
갑: 이번 사건은 아직도 한국야구에 존재하는 권위주의와 집단주의의 병폐를 드러낸 것이다.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감독이라는 이유로 선수의 사생활을 간섭하는가? 다른 선수들은 전지훈련을 떠날 때에는 게임기나 노트북 등을 가져가는데, 그런 것들은 되고 기타는 안된다는 것인가? 정당성도 없고 형평에도 어긋난 지시다.
을: 사생활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않을 때나 인정되는 것이다. 게임기나 노트북은 자기 혼자 즐기면 그만이지만, 기타가 어디 그런가? 대놓고 말은 안하지만 평소 라커나 숙소에서 이상훈의 기타 연주 때문에 정신적 피해를 입은 선수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갑: 피해 본 선수가 있다면 그것은 선수들끼리 알아서 해결할 일이지, 감독이 일일히 간섭할 사항이 아니다. 그럴 거라면 상조회는 뭐 하러 있는가? 이순철 감독이 지나치게 선수들의 영역에 들어온 느낌이다.
을: 선수들의 자체적인 해결이 어디 그게 쉬운 일인가? 이상훈은 팀내 최고참이다. 그런 선수에게 아무리 불만이 있다고 해도 직설적으로 지적하기란 쉽지 않다. 이순철 감독의 지시가 권위주의적이라면, 최고참이라는 이유로 후배들에게 불편을 끼치는 이상훈 역시 권위주의적이다.
갑: 이상훈은 기타연주가 자신에게는 취미 이상의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감독으로서 선수의 개성을 인정해주는 포용력을 발휘할 수는 없었나?
을: 이순철 감독 얘기는 기타를 아예 치지말라는 것이 아니다. 전지훈련이나 원정경기에서 ? 때문에 다른 선수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는 것이다. 감독으로서 할 수 있는 지극히 당연한 지시였다. 그것을 왜 이상훈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지 이해가 안간다. 게다가 그는 팀내 최고참이고 왠만한 선수 십여명분의 연봉을 받는 선수다. 당연히 그에 따른 책임과 의무도 크다. 그런 그가 개인 사생활을 내세워 팀 분위기를 흐리는 것은 자신의 책무를 망각한 행동이다.
갑: 팀 분위기를 강압적으로 몰아가고 사생활을 통제한다고 해서 팀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서울 출신이 많은 LG의 특성상 선수의 개성과 장점이 팀 전력의 상승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더구나 이상훈 정도면 자기관리를 잘하는 선수가 아닌가? 안치던 기타를 갑자기 치겠다는 것도 아닌데, 선수의 사생활을 지나치게 통제하는 것 같다.
을: 사실 이상훈이 비시즌에 음악활동을 하는 것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물론 이상훈은 아직 뛰어난 선수이지만, 해가 갈수록 구위는 떨어지고 있다. 그것을 이상훈 본인도 잘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비시즌 동안에 체력보강이나 구질개발을 하는 게 급선무지, 음악활동이 먼저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물론 본인이야 음악활동을 하면서 운동도 열심히 한다고 하겠지만, 정신이 두 군데에 팔려있는데 하나라도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갑: 이제는 선수들의 생활에 대한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선수라고 일년 내내 운동만 열심히 해야한다는 의식을 이제는 버려야 한다. 선수도 하나의 인격체로서 자기만의 세계가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한다.
을: 선수가 하나의 인격체인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이 모여있는 팀도 하나의 인격체로 보고 존중해야 한다. 그리고 야구라는 단체 스포츠에서 팀은 선수로서의 개인에 우선한다. 'LG의 이상훈'이지 '이상훈의 LG'가 아니다. 이상훈이 활동금지기간에 기타를 치는 것은 개인의 자유지만, 전지훈련과 시즌 중에까지 기타로 팀 분위기를 해쳐서는 안된다.
갑: 이순철 감독은 이상훈의 행동을 항명이라고 표현했는데, 항명에서 자유롭지 않은 사람이 또한 이순철 감독이다. 해태 시절 전지훈련장에서 김응룡 감독에게 반항한 적이 있지 않은가?
을: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당시는 김응룡 감독의 권위주의적인 팀 운영에 팀 전체에 반감이 형성된 상태였고, 이순철 감독은 팀의 고참으로서 총대를 맸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 이상훈의 항명은 감독의 정당한 지시에 대해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적 반응을 보인 것에 불과하다.
갑: 최근 이순철 감독의 행동을 보면 그와 구단 사이의 암묵적인 담합이 있었던 것 같다. 유지현 FA 계약거부, 김재현 연봉삭감 제시까지 이순철 감독은 한번도 선수들의 입장을 변호한 적이 없다. 그는 아직 불안한 자신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서 구단과 유착하려 하고, 선수생활을 함께했던 고참들을 쫓아내려고 하고있다. 개인의 이익 때문에 프랜차이즈 스타의 자존심과 팬들의 애정을 짓밟는 처사다. 다음엔 연말에 제대하는 서용빈인가?
을: 그것은 지나친 표현이다. 팀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세대교체가 필수적이다. 과거의 성적에 얽매여 앞으로의 기대치가 낮은 선수를 계속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현재 LG의 쇠락이 바로 90년대 중반의 전성기에 미련을 두고 내부개혁을 등한히 한 결과 아닌가? 또한 자신의 야구 스타일에 맞게 팀을 개편하고 운영하는 것은 전적으로 감독의 고유권한이다. 한해 성적이 부진해도 얼마든지 해임될 수 있는 감독의 불안정한 위치를 감안하면, 선수나 팬들이나 감독의 권한을 인정하고 따라주는 게 당연하다.
갑: 결국 불쌍한 건 팬들이다. 합리적이고 건설적인 비판은 필요하지만, 얼마 전만 해도 같은 팀을 응원했던 팬들끼리 욕설과 인신공격성 발언을 주고받는 모습은 안타깝다.
을: 언론에서도 싸움 부추기기식의 보도는 자제해야 한다. 벌써부터 당사자들 사이에서 언론의 취재에 대해 불만이 나오고 있다. 민감한 사안인만큼 좀더 신중한 보도가 요구된다.
갑: 아무쪼록 양쪽이 원만한 합의를 봤으면 좋겠다. 지금은 서로 상반된 주장을 하고있지만 원래 협상이란 게 조금씩 조금씩 양보해가면서 합의점을 찾는 것 아닌가? 두 사람 모두 한국야구사에 남을 대스타인만큼 서로의 명예를 손상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결말이 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