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닝갤러리/십만시간의행복>
Hubert Vos
네덜란드 1855-1935
고종의 전신초상화(1899, 캔버스에 유채, 199×92cm)를 그린 작가. 네덜란드 궁정화가. 영국왕립미술협회웡. 세계 각지를 돌며 초상화를 그렸다. 인종학적 인류학적 연구를 위한 데이터수집이 목적.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에 참석한 네덜란드 출신의 미국화가 휴버트 보스(Hubert Vos, 1855~1935)는 인류학 서적에 수록된 세계 인종형의 본보기가 빈약함을 발견했다. 그는 세계 인종이 지닌 미의 표준형을 수립하여 화폭에 담고 싶다는 욕망을 갖고 극동여행을 하게 되었고, 1899년 서울을 방문하게 됐다.
휴버트 보스는 공사관에 몇 달 동안 머무르면서 한민족의 표준 유형을 찾기 시작했고, 첫 번째 대상은 구한말 문신(文臣) 민상호였다. 보스가 민상호를 그린 이유는 한민족의 가장 순수한 유형이라 생각했으며, 어려서부터 미국유학을 다녀온 민상호가 가진 높은 지식수준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한 달 전에 미국화가 보스 씨가 공사관에 와서 머물고 있었는데 들리는 말에 그는 동양을 돌며 여러 풍물 등을 그려 내년(1900) 파리 만국박람회에 출품할 계획이라더니, 다시 들리는 바로는 그가 어진(御眞, 왕의 초상화)과 예진(睿眞, 왕세자의 초상화)을 그려 바치고 그 보상으로 1만 원을 받고 일전에 떠나갔다더라.”1899년(광무 3년) 7월 중순 황성신문 기사.
휴버트 보스의 민상호 초상화를 본 고종은 자신과 황태자의 전신 초상을 그리도록 했고, 이에 보스는 개인 소장을 위해 황제의 전신상 하나를 더 그릴 수 있게 해 달라 요청해 2점을 완성했다. 당시 덕수궁에 소장된 <고종황제 초상>은 화재로 소실되고 말았으나, 보스가 가져간 또 다른 <고종황제 초상>은 후손에 의해 잘 보존되어, 덕분에 1982년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에 출품될 수 있었다.
이후, <고종황제 초상>은 1997년 국립현대미술관 기획전시를 위해 두 번째 방한했다. 당시 초보 학예사였던 필자는 역사 속의 이 작품을 처음으로 대면하면서 신기함을 감출 수 없었다. 100여 년이 다 되었음에도 작품의 보존 상태는 놀랄 만큼 좋았다. 그림 속 사실적인 표현과 묘사는 1899년 이 작품이 궁을 빠져나갈 때 신하들이 마치 황제의 몸을 떼어가는 것처럼 여겼다는 기록을 실감하게 해주었다. 인물의 실물 크기로 그려진 이 작품은 여느 왕의 초상과는 다르게 좌상이 아닌 입상으로 묘사되었고, 매우 얇은 유화층으로 그려진 덕분에 작품의 원형을 보관하고 관리하는데 용이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당시 시대상의 얼굴을 그리다
인물이 깍지를 끼고 있으며 화가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으나 하체로 내려갈수록 높은 데서 내려다본 효과를 주는 구도이다. 아마도 보스가 많은 부분 사진을 참조했겠으나, 스케치 단계에서는 황제의 실물을 보고 그렸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배경을 과감히 생략해 인물만 집중적으로 묘사했고, 인물의 뒷 배경과 마룻바닥은 사선으로 구분되어 있다. 보스가 그린 고종황제의 얼굴 표정은 1890년대 초 미국 국립박물관 직속 화가 안토니오 지노 쉰들러(Antonio Zeno Shindler, 1823~1899)가 고종황제의 사진을 보고 그린 초상보다 더욱 표정이 어둡다는 해석이 많다. 곧 다가올 국가의 불운에 대한 염려와 근심 어린 표정이 그림 에 반영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보스는 당시의 정세를 잘 통찰했는데 그림 속 고종황제의 불행한 일생, 대한제국의 불운, 일본의 횡포 등에 대해 그의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었다.
“일본인들은 이곳의 모든 건축 유적을 파괴했을 뿐만 아니라 미술가들을 포로로 일본에 끌고 가 예술작품을 만들게 하는 한편, 일본인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도록 했습니다. 일본 미술은 오늘날까지도 매우 한국적인데 파스텔과 수채 물감으로 그린 옛 대한제국의 그림을 능가하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중략).. 저는 황제로부터 받은 선물, 그리고 황제와 그 백성들의 장래에 대한 슬픈 예감을 안고 이 나라를 떠났습니다.”
휴버트 보스가 서울을 방문해 그린 작품 수는, 예진도 어진과 마찬가지로 2점을 그렸다면 어진과 예진 각각 2점, <민상호 초상>, 그리고 <서울 풍경>으로 총 6 점이다. 그중 어진과 <민상호 초상>, <서울 풍경> 3점은 국내에 소개되어 알려졌으나, 예진은 행방을 전혀 알 수 없다. 그리고 <서울 풍경>은 필자가 수집을 위해 그의 후손과 협의하여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글‧박미화(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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