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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여행기- 항주(2008. 11. 21) 요즘은 얼키설키 엮인 경제적 이해관계를 밑바탕으로 만남의 인연이 맺어져서 사람끼리 사귈 때가 많다. 이해관계를 떠나 사람을 사귈 수 있는 으뜸마당은 학교다. 늘그막에 접어든 나이는 주민등록증에만 올려놓고 금년에 한밭대학교 최고경영자과정 17기에 등록하여 늦깎이로 공부하면서 가으내 훌륭한 강의도 듣고 남녀노소를 넘나들며 사람도 사귀니 별천지에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이 과정에는 해외연수프로그램도 들어 있어서 오늘부터 3박4일 동안 (2008. 11. 21. ~ 24.) 중국 항주와 황산을 둘러본다. 46명(남 30명, 여 16명)이 떠나므로 두 대의 관광버스에 23명씩 나눠 타고 아침 8시 20분에 대전 엑스포남문에서 인천국제공항으로 출발한다. 간밤에 비가 내려서 아스팔트가 촉촉하다. 비구름 뒤끝에 있는 뭉게구름이 해외로 떠나는 우리를 배웅한다.
서울 쪽으로 올라갈수록 구름이 점점 엷어지더니 천안휴게소에서는 새파란 하늘에서 초겨울 햇살이 담뿍 쏟아진다. 그러나 몸에 맞닥뜨려지는 바람은 싸늘하다. 휴게소에서 커피 한 잔으로 달뜬 마음을 다스리고 이내 인천국제공항으로 달려간다.
오전 11시에 공항에 도착하여 출국수속을 밟고 오후 1시 20분에 이륙하는 비행기를 탄다. 고도 10㎞에서 시속 800㎞, 온도 -50℃ 안팎을 유지하며 2시간 쯤 날아간 뒤 항주소산국제공항(蕭山國際機場)에 도착한다. 그러나 현지시간은 우리보다 1시간 늦으므로 2시 10분이다. 이곳도 인천공항과 마찬가지로 요즘 전 세계를 휩쓰는 경기한파가 몰아쳐서 사람의 발길이 끊겨 한가롭다. 입국수속을 밟고 짐을 찾은 뒤 오후 4시에 공항에서 현지가이드를 만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처럼 배불리 먹고 좋은 경험을 많이 할수록 더 좋은 여행이므로 가장 먼저 저녁을 먹으러 식당으로 간다.
절강성(浙江省 : 저장성)과 항주는 3년 전에 아내와 함께 둘러본 곳이므로 또렷하게 기억나는 곳도 많고 그때 얻은 정보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절강성은 중국에 있는 23개의 성(省) 중 하나이고 산이 많아 아름답다. 우리나라에 한강이 흐르듯 절강성과 항주의 중앙에는 전당강이 흐른다. 아열대 날씨라 따듯하고 강수량이 많아서 녹차와 뽕의 재배지로 유명하다. 항주는 절강성의 성도(城都)로 경치가 수려한 관광지이다. 삼국지에 나오는 오․월(吳․越)나라 수도였고 남송(南宋)의 도읍지로서 중국 7대 고도(古都) 중에 하나이다. 이탈리아의 유명한 여행가 마르코폴로가 13세기 무렵 항주에 들러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칭송한 도시다. 서호의 아름다운 경치가 유명하고 6개의 구와 2개의 현이 있다. 항주와 북경 사이에 대운하가 건설된 뒤부터 점차 번영하였고, 9세기부터 237여 년 동안 14명의 황제가 항주를 수도로 선택한 도시이다.
버스로 서호 언저리에 있는 식당으로 가는 동안, 도로 양쪽에서 싱싱한 푸나무들이 11월 끝이지만 아열대 기후라고 말하면서 새파란 빛깔의 잎을 내놓는다. 높은 온도와 습도가 빚어내는 여름의 혹서(酷暑)를 막으려고 잎이 넓은 버즘나무1)를 가로수로 많이 심고 잘 가꿔서 도시를 끌어안듯 뒤덮고 있다. 도시의 발달로 인구와 교통량이 증가해도 나무를 함부로 뽑아내고 도로를 확장하지 않은 정책이 우리와 크게 견주어진다. 인상서호(印象西湖)공연장 언저리에 있는 식당에서 거지닭과 동파육을 메뉴로 한국에서 가져간 소주를 곁들이며 저녁을 먹는다. 연잎사귀로 싸서 만든 거지닭은 쫄깃쫄깃하고 맛이 좋아 소주안주로 안성맞춤이지만, 두툼한 돼지비계 덩어리로 만든 동파육은 생김새도․빛깔도․맛깔도 모두 비위에 거슬려서 선뜻 젓갈이 가지 않는다. 버커리2)일망정 술은 여자가 따라야 제 맛이 난다면서 예쁘장하게 생긴 동갑내기 최고경영자 여성이 소주를 따르기 시작해서 권커니 작커니3) 술자리가 익는 바람에 항주에 오자마자 거나하게 취한다.
저녁을 먹고 베이징 올림픽 개폐회식 연출그룹의 세 사람인 장예모, 왕조가, 판웨 등이 제작한 초대형 도시산수실경(都市山水實景)오페라인 인상서호(印象西湖)를 관람한다. 서호 일부에 무대를 만들어 수많은 출연진이 물위에서 70분(8시~ 9시 10분) 동안 벌이는 야간 쇼다. 공연의 줄거리는 ‘남녀 사이의 사랑’이다. 인품이 훌륭한 선비를 보고 한눈에 반한 백학(白鶴)이 예쁜 아가씨로 변신해서 사랑을 속삭이는 달콤한 장면부터 쇼는 시작된다. 깨가 쏟아지는 신혼생활을 공연하는 눈부신 물위 춤이 아름답고 신기해서 모든 구경꾼의 눈이 휘둥그래진다. 우리네 삶은 좋은 일에 탈이 끼게 마련이다.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들 앞에 전쟁이 터져서 서로 헤어지는 아픔을 겪는다. 어지러운 세상에서 여인은 불행히도 목숨을 잃고, 애틋한 사랑을 머금은 넋은 차마 선비의 곁을 훌쩍 떠나지 못하고 맴돌다가 하늘나라로 사라진다.
서호주변의 수려한 자연경관이 배경이고, 움직이는 대형 유람선이 무대이고, 그 위에 발목 높이 정도로 물을 넣고, 발목이 잠긴 채 물을 걸어 다니며 배우들이 움직이므로 마치 호수에서 연기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수십 명이 물위를 걷고 뛰며 전쟁을 공연하는 배우들의 몸짓과 웅장함은 뭇사람의 호기심을 한껏 불러일으키고 시선을 사로잡고도 남는다. 무대의 규모가 경주 보문호수 정도로 매우 크고, 레이저를 이용한 다채로운 조명으로 다양한 모양을 공연하는 그림마다 신비롭다. 두 사람이 사랑을 속삭이던 아름다운 2층집을 배에 지어 물에 두둥실 떠다니게 만든 공연과 땅에서 하늘까지 잇는 철골구조 타워를 레이저로 뚜렷하게 나타낸 기술 등은 가히 놀랍다. 장면에 따라 흐르는 멜로디가 분위기를 한껏 북돋아주고, 희다랑(喜多郞)이 작곡한 인상서호우(印象西湖雨) 주제가는 어찌나 애잔하고 감미로운지 귓가를 떠날 줄 모른다.
아열대지역이지만 야간에다 야외호수라서 구경하는 내내 오슬오슬 춥다. 두툼한 겨울옷을 입지 않는다면 감기에 걸리기 십상이다. 그러므로 이 공연은 12월부터 2월까지 3개월은 열리지 않는다고 한다. 관람석이 1,371개(호화석 32, 귀빈석 36, 일반석 1,303)나 될 만큼 규모도 크고 쇼도 화려하지만 입장료금도 만만찮아서 가장 비싼 호화석은 600위안(약 12만원), 일반석은 220위안(약 4만 4천원)이다. 밤 10시쯤 예약한 보성호텔(寶成호텔: Blossom Hotel)로 들어간다. 3년 전 여름에 이 지역에 묵을 때는 냉방시설이 잘 가동되고 있었는데 아열대지역이라 난방시설이 엉망이다. 겨울에 눈이 없고 새벽기온이 5℃ 안팎을 오르내리므로 예로부터 이곳은 주택에 난방시설이 발달되지 않았다고 한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므로 별 수 없이 옷을 잔뜩 입고 이불속으로 파고들지만 그런 잠에 서툴러서 이리저리 몸만 뒤척거리다가 날밤을 새운다.4)
‘인상서호’는 13억 중국 인구가 기본구경꾼이고 덤으로 외국관광객을 보태어서 벌이는 초호화 쇼다. 대전에도 과학의 도시답게 최첨단과학기기가 뿜는 빛의 효과와 입체음향, 자연, 배우 등이 어우러지는 독특한 쇼를 개발하여 관광수익을 짭짤하게 올려서 주민들의 삶을 한층 더 풍요롭게 만들 훌륭한 관광 상품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해본다. 중국보다 웅대한 쇼를 개발하든지, 규모는 작지만 독특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수많은 국내외 관광객 앞에서 아기자기하게 공연함으로써 대전이 관광산업으로 크게 발전할 것을 바라면서 새 아침을 맞이한다.
1) 버즘나무 : 플라타너스 2) 버커리 : 늙고 병들거나 고생살이로 살이 빠지고 쪼그라진 할머니. 3) 권(勸)커니 작(酌)커니 : [‘권하거니 마시거니’의 뜻으로] ‘술을 권하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면서 술자리가 오래 계속되는 모양’을 이르는 말. 4) 날밤을 새우다 : 공연히 뜬눈으로 밤을 지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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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샹하이를 거쳐 항주와 황산을 봄에 다녀왔습니다. 참 아름다운 황산의 빼어난 자태를 잊을 수가 없네요. 낮이어서 서호에서 물위를 걷는 연기는 보지 못했지만 저 유람선을 타고 한바퀴 돌아 보긴 했었지요. 그리고 샹하이 예원에 들려 중국의 고위 관리가 부정 축제하여 아버지에게 바쳤다는 엄청난 별장을 둘러보았어요. 담벼락 위에 용이 아닌 이무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중국법에 용은 임금을 상징하므로 황제만이 올릴 수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