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향기
시각장애인 위한 점자 패키지 적용 확대한 오뚜기
- “모든 소비자들이 불편함 없이, 편리하게 이용하기를 바랍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외식을 자제하는 풍토가 일었고, 컵밥과 컵라면 같은 간편식이 일상화가 되었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에게 간편식은 접근성부터 조리까지 그리 간편하지 않다. 점자 표기가 없어 상품명을 알기 어렵고, 물을 붓거나 전자레인지에 데워도 된다는 조리법 또한 시각장애인이 인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오뚜기는 컵밥과 컵라면 같은 간편식의 편의를 개선, 시각장애인의 접근성 및 알 권리를 강화하고자 했다. 더 나아가 ‘점자 표기 패키지’ 적용을 확대해 주목을 받고 있다.
Q. 안녕하세요? 우선 점자 패키지 적용 사업의 배경을 들려주십시오.
A. 제품 편의성을 높이기 위한 검토는 그동안 주기적으로 이루어져 왔습니다. 기업 이념인 ‘보다 좋은 품질, 보다 높은 영양, 보다 앞선 식품으로 인류 식생활 향상에 이바지한다’에 따라 마케팅 부서 및 연구실에서는 어떤 제품, 어느 부분에 편의성 향상이 필요한지, 어떤 방식으로 그것이 개선되어야 하는지 등을 논의합니다. 컵밥과 컵라면이 화두로 떠오른 건, 많은 사람들이 소비하는 제품이라는 점, 그만큼 누구나 편리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도 시각장애인의 접근성 문제는 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오뚜기는 점자 표기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해 지난 2021년 1월부터 점자 삽입을 검토해왔습니다. 약 8개월간 조사·연구를 진행했고, 2021년 9월부터 컵라면 제품에 점자를 삽입하기 시작했습니다. 현재는 컵밥과 컵라면 전 제품 및 용기죽 제품까지 점자 패키지 적용을 넓혔습니다.
Q. 점자 패키지 상품의 특징을 알려주십시오.
A. 컵라면과 컵밥의 점자 표기는 용기 옆면 접착부 쪽에 위치합니다. 저시력 소비자의 인지를 돕기 위해 점자는 하얀색으로, 점자 표기란의 바탕은 검은색으로 구성했습니다. 용기 형태에 따라 점자의 위치가 달라지지 않도록 최대한 통일했습니다. 현재 점자 패키지 상품에 제공되는 정보로는 제품명(점자)과 물 조절을 알려주는 선(외부 물선), 그리고 시각장애인 소비자와의 인터뷰 중 나온 조리 방법 표시(전자레인지 사용 불가는 X, 전자레인지 사용 가능은 O, 전자레인지 전용은 동그라미 안에 점 표시) 세 가지입니다. 용기죽의 점자 표기는 플라스틱 뚜껑에 했습니다. 점자 패키지 중 컵라면은 ‘오뚜기 점자 컵라면 사용 매뉴얼’이라는 이름으로 지난 2021년 9월 SNS에 게시했고,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이하 한시련)의 협조를 받아 시각장애인재활통신망에도 알렸습니다. 컵밥과 용기죽 관련 매뉴얼 또한 빠른 시일 내에 추가 정비하여 게시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Q. 점자 패키지가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A. 시각장애인 유튜버 원샷한솔 씨가 점자 패키지를 소재로 방송한 적이 있어요. 제품 소개는 물론이고 꼼꼼한 피드백을 해서 놀랐습니다. 점자 패키지를 위한 그간의 노력이 떠올랐고, 조금이나마 시각장애인에게 도움이 되었구나 싶었습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커뮤니티에 점자 패키지 상품에 대한 후기가 올라오는데, 읽을 때마다 기쁩니다. 한편으로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제품 개선 및 점자 패키지를 좀 더 서둘렀다면 어땠을까 싶은 아쉬움도 듭니다. 점자 패키지가 큰 호응을 얻은 건, 최근 대두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맞물렸기 때문일 겁니다. 이윤 창출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정의 실현, 공동선도 의미 있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했습니다.
Q. 점자 패키지 사업의 진행 과정을 듣고 싶습니다.
A. 초반에는 낙관적으로 생각했어요. 당사의 컵라면 용기는 ‘스마트그린컵’이라고 하여 용기 외면에 코팅된 플라스틱 재질이 특수 공정을 통해 발포되는 원리를 사용하는데, 그 특성을 활용하면 제조 공정 내에서 충분히 점자 표기가 가능하다고 점쳤습니다. 그래서 한시련에 협조를 구해 시각장애인이 가장 필요로 하는 사항을 조사하는 데 공을 들였습니다. 최대한 많은 분들의 의견을 수집하고 싶었는데, 감사하게도 한시련에서 그 의도를 잘 반영해주었습니다. 주요 재료, 가격, 소비기한 등 다양한 의견이 있었지만 용기 공간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두 가지 사항(제품명, 외부 물선)을 선택했습니다. 여기에 한시련과의 회의에서 나온 아이디어를 반영, 전자레인지 조리 여부 표시를 추가했습니다. 이후 수차례에 걸쳐 샘플을 제작하였고 점자 표기가 적용된 샘플에 대한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Q. 그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것 같은데요.
A. 점자 표기는 대개 종이나 플라스틱 필름 등에 해당 문구가 양각된 점형 틀을 눌러 찍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이 경우, 유통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점자가 손상되는 등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요. 저희는 그것을 보강하고자 ‘스마트그린컵’ 제조 원리를 이용해 점자 표기를 연구했습니다. 종이 외면에 코팅되는 발포 소재의 특성을 통해 점자와 기호를 용기 외면에 표현하는 것, 제조 및 유통 등의 과정에서 점자가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연구의 주요 포인트였죠. 가장 이상적인 점자의 높이와 간격을 표현하는 것도 중요했는데, 장애 정도에 따른 점자 가독성 평가를 받아 그 기준을 확립했습니다. 한편 소비자가 저시력인일 경우를 고려해 점자의 색상 및 바탕면의 색깔(바탕색 검정, 점자 흰색)에도 신경을 썼습니다.
Q. 시각장애인분의 평가는 어떠했습니까.
A.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얻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시각장애인의 자립적이고 주도적인 면모를 접했던 게 기억에 남습니다. “조리 방법 파악 시 비시각장애인에게 도움을 받는다는 선택지 외에 스스로 해볼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 “A라면인 줄 알고 뚜껑을 뜯었다가 수프 부으면서 ‘앗, A가 아니구나’ 하곤 했는데 이제 그럴 일은 줄었다” 등의 감상이 있었지요. 반면 “컵라면 외부 포장 비닐로 인해 점자 표기를 알아보기 어렵다”는 피드백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 부분은 저희도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제품의 유통 안전성과 위생적인 측면에서 당장 비닐 포장을 없애는 건 무리가 있기 때문에 SNS에 올린 ‘오뚜기 점자 컵라면 사용 매뉴얼’을 통해 제품 구매 시와 제품 구비 및 조리 시 점자와 기타 정보 확인 방법을 안내하는 차선책을 취하게 되었습니다.
Q. 개발자 입장에서 아쉬움이 있다면요.
A. 첫 번째로 포장 재질에 따른 점자 구현의 한계를 들 수 있습니다. 현재 기술로는 모든 포장재에 점자를 표현하는 데 어려움이 따릅니다. 향후 정부와 협업해 기술 개발을 한다면 더 빠른 시일 내에 점자 표기 제품 활성화가 이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예산 문제를 들 수 있어요. 기술적으로는 점자 표기가 가능하지만 추가 비용 탓에 망설이는 사례도 적지 않거든요. 그러한 기업에 인센티브 등을 지원하는 제도가 마련되면 점자 패키지 상품이 더 늘어날 것 같습니다. 일부 기업의 특정 제품뿐 아니라 많은 기업의 모든 상품에 점자 패키지화가 이뤄지는 날…. 그날이 현실화되길 기대합니다.
Q. 향후 점자 패키지 사업의 진행 방향이 궁금합니다.
A. 조리법을 포함한 구체적인 제품 정보가 음성으로 제공되는 부분을 검토 중입니다. 새로운 제품이 속속 개발되면서 조리법도 점차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컵라면만 해도 단순하게 수프를 넣고 물만 붓는 게 아니라 전자레인지 조리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수프를 조리 전에 넣는 것과 조리 후에 넣는 것으로 나눌 수도 있고, 중간에 물을 버려야 하는 제품도 있습니다. 즉, 제대로 된 제품을 취식하기 위해서는 제공된 조리법을 준수해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공간의 한계 탓에 점자 표현이 다소 어렵습니다. 그래서 QR코드를 통한 음성 안내로 표현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어요. 물론 더 많은 제품에 점자를 추가하는 방법도 검토 중이고요. 간편함과 편의성이 제품 사양에서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아무리 소수라고 해도 그 편의를 누리는 데 불편함이 있다면, 그것은 진정으로 완성된 제품이 아닐 겁니다. 앞으로도 오뚜기는 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소비자들이 불편함 없이, 더 편리하게 제품을 접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김수정·신혜령 기자
* <손끝으로 읽는 국정> 제185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