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서울 이후 24년 만에 광저우에서 아시안게임 우승을 노리던 한국 축구가 결승 문턱에서 좌절했다. 준결승전에서 아랍 에미리트 문전에 수많은 찬스를 허공에 날리고 전, 후반을 0-0으로 비긴 뒤 연장 후반 종료 직전 아흐메디 알리 알라브리의 결승골에 무너진 것이다. 3?4위전에서 이란에게 4-3으로 역전승, 동메달을 따낸 것으로 위로를 삼기에는 너무도 아쉬움이 컸던 대회였다.
“한 방에 가다니…” 아랍 에미리트와의 경기가 끝난 후 터뜨린 박경훈(제주) 감독의 탄식이 실감난다. “창의성 없는 뻔한 공격…” 김호 감독의 비평에도 공감이 간다.
그랬다. 우리 축구는 잠시 반짝하다가 늘 제자리로 되돌아왔다. 90분 경기 가운데 70~80분간 상대를 몰아세우다가도 앗차 하는 순간 골을 먹고 무너지는 축구. 그리고는 골 결정력 빈곤을 한탄한다. 공격에서도 수비에서도 집중력이 떨어졌다고 지적한다. 이 노래는 벌써 백년이 다 된 레퍼토리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선수들은 아랍 선수들보다 더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그라운드를 달렸다. 적어도 상대 미드필드로 진격할 때까지는 개인 기량도 돋보였고 경기도 절대적으로 우세해 보였다. 국가대표가 총동원된 대회는 아니지만 이날 현재 FIFA 랭킹에서도 우리는 39위, 아랍 에미리트는 104위다. 그러나 결정적 한 방이 터지지 않았다.
늘 몸에 익힌 대로 볼을 주고받으며 밀어붙이는 방식은 상대 진영으로 접근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대 수비의 예측이 가능한 패스, 예측이 가능한 공격으로는 상대의 실수가 없는 한 골문을 열 수도 없다. 상대의 의표를 찌르고 예측하기 어려운 공격의 전개, 반 박자 빠른 슈팅만이 골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플레이의 창의성이 요구되는 것이다.
플레이의 창의성이 주입식 교육과 훈련만 받아온 선수들에게 어느 날 갑자기 요구한다고 되어지는 일은 아니다. 오히려 선수와 팀을 조련하는 지도자들이 평소 훈련에서 깊이 유의하고 선수들에게 고취해야 할 사항이다. 선수들 개개인의 특성을 살려 팀 전술로 조합하고 실전에서 그것들이 발휘되도록 이끌어 주는 지도력이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2002년 월드컵을 통해서 우리 축구는 한 단계 큰 발전을 이룩했다. 세계 4위라는 영예뿐만이 아니라 선수들에게 세계 수준에 오를 수 있다는 자신감, 더 넓은 무대로 진출하려는 의욕, 그러기 위해 더욱 기술을 연마해야 한다는 의식을 불어넣어 주었다.
거기에 거스 히딩크 감독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그는 세계 강호들을 잇달아 물리쳐 그가 받은 고액의 몸값 이상의 성과를 올렸다. 세계 축구의 큰 흐름, 대회 출전국들의 경기력을 꿰뚫어보는 눈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개개인의 특성 파악도 쉽지 않았을 우리 선수들에게서 최고의 전력을 이끌어냈다. 처음 만난 선수들로부터 흔들림 없는 신뢰감을 얻어냈다. 선수들의 특기를 파악하고 적재적소에 투입하는 지도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덕분에 지금 박지성, 박주영, 차두리, 이청용, 기성용 등이 해외 프로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이 몸으로 부딪치며 익힌 선진축구는 다시 우리 축구계에 소중한 자산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런 점에서 특히 아쉬운 부분이 있다.
해외 선진축구를 직접 몸으로 익히고 나아가 지도법을 배우고 연구하는 지도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1986년부터 월드컵에 세 차례나 대표선수로 출전했던 김주성 씨는 국제축구연맹(FIFA)에서 연수를 받아가며 행정실무 능력을 익혀 지금은 대한축구협회의 국제업무 행정가로 자리 잡았다. 본인의 의지와 소속 구단, 그리고 축구협회의 지원으로 가능했던 일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 축구의 경기력을 한 단계 끌어 올릴 수 있도록 경기 지도자의 체계적인 해외연수가 필요하지 않을까.
한국 축구에는 아직도 더 많은 기술투자가 필요하다. 유능한 외국인 기술자를 불러들이건 국내 기술자들을 선진 축구무대에 파견해 교육하든 우리 축구의 경기력을 확실하게 한 단계 더 높이기 위한 정책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가령 차범근 감독이 독일에서, 허정무 감독이 네덜란드에서 선수생활을 접은 후 곧바로 현지에서 열심히 지도자 수업을 쌓았더라면 개인적인 시행착오도 줄이고, 우리 축구 수준도 한 단계 더 높여 주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프리미어리그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박지성이 선수생활을 마치고서도 고달픈 객지생활을 감수하고 현지에서 지도자 수업을 쌓을 수 있다면 역시 우리 축구계에는 큰 자산이 될 것이다.
선수 시절부터 남다른 리더십을 보여 온 홍명보 감독은 이번 아시안게임을 치르며 많은 것을 느꼈을 것이다. 그에게도 성급히 후배들을 가르쳐 성과를 얻으려는 기대보다는 먼저 체계적으로 선진축구를 연구하고 착실히 지도법을 익히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