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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좋은교회/20230709 주일오전예배/정광수목사님 | |
분류 | 주일오전예배 |
제목 | 하나님 앞에서(Coram Deo) |
성경 | 누가복음 20:41-47 |
정리 | 참좋은교회 청년부 |
성경말씀(누가복음 20:41-47)
41.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사람들이 어찌하여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42. 시편에 다윗이 친히 말하였으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43. 내가 네 원수를 네 발등상으로 삼을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44. 그런즉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으니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라
45. 모든 백성이 들을 때에 예수께서 그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46.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원하며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좋아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47.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니 그들이 더 엄중한 심판을 받으리라 하시니라
녹취자료 |
오늘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성취될 언약을 잡는 가장 축복된 시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이 예배 시간에 성취될 기도 제목을 찾고 그 언약 잡고 기도할 때 하나님이 반드시 응답하시기 때문입니다. 죠지 뮬러가 기도를 5만 번 받았다고 이야기합니다. 조지 뮬러는 후원 조직 없이 기도 하나로 고아를 천명이나 거두고 양육했어요. 수많은 문제가 있었죠. 그런데 조지 뮬러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성경을 펼쳐놓고 그 안에서 답을 찾았어요. 사람 문제든, 경제 문제 등 여러 가지 문제 모두요. 심지어 원아가 오는 것도 하나님 앞에 기도했어요. 답을 어디서 찾았다고요? 말씀 속에서! 그 언약의 말씀을 펴놓고 “보세요. 하나님! 하나님이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이 말씀대로 응답해 주세요.”라고 기도했어요. 여러분의 기도가 말씀 속에서 답을 찾고 기도하셔야 합니다. 맹목적으로 내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 속에서 답을 찾으세요. 여러분들에게 경제 문제가 있습니까? 질병 문제가 있습니까? 성경 안에 답이 다 나와요. 그 답을 찾고, 말씀을 언약으로 잡고 기도할 때 흑암이 결박되고 천사가 동원되는 놀라운 체험을 우리에게 약속하시는 겁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기도 제목을 가지고 예배 시간에 답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강단에 목사를 세운 것은 여러분에게 답을 주라고 심부름꾼으로 일하라는 이유입니다. 아무리 목사가 실력이 좋아도 여러분이 받을 준비가 안되어 있으면 메시지가 나올 수 없어요.
인터넷으로 우리나라에서 중국 음식을 제일 잘하는 쉐프를 검색해 보니까 이연복 씨라고 하더라고요. 이연복 씨가 하는 중국 식당에 음식을 먹으러 갔는데 계속 짜장이랑 짬뽕만 시키면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짜장, 짬뽕밖에 못 만들어요. 왜? 그것만 시키니까! 예배도 동일합니다. 여러분들이 말씀 앞에 답을 찾기 위해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 합당한 메시지를 주시는 겁니다. 그래서 아무리 이연복 씨가 화려하고 현란한 요리를 하는 재능이 있다 할지라도 손님이 짜장면만 시킬 때는 대책이 없는 거예요.
하나님이 우리가 인생을 살아갈 때 문제와 갈등, 위기를 왜 주시는가 하면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이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찾아와 예배를 드릴 때 질문을 드려야 해요. 하나님, 오늘 예배 중에 정말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시고 문제의 답을 찾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서야 합니다. 어떨 때는 목사도 설교하고도 제가 선포한 말씀 속에서 답을 찾아야 해요. 그게 강단입니다.
왜 십계명에서 안식을 기억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말씀하셨는가? 안식일에는 일도 하지 말고 불도 피우지 말라고 해요. 어디에 집중하라고? 예배에 집중하라고. 광야 길을 걸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일 내리는 만나를 거두어 먹었어요. 만약 이틀분을 거두면 다 썩어버렸어요. 그래서 매일 걷게 만들었는데 안식일 전날에는 이틀분을 주셨어요. 안식일에 만나 거두러 가지 말고 예배드리라고. 심지어 안식년에는 안식년 전해에 3년 먹을 양식을 주세요. 안식년을 제대로 하나님 앞에 지키라고 요구하는 겁니다. 온전한 예배를 드려서 정말 영적인 힘을 얻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진정으로 복음 누리는 증인된 삶을 살아가도록 제도화한 것이 안식일이요, 주일 예배인 겁니다.
왜 그렇게 하셨는가? 우리 인간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어요.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얻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라는 의미예요. 예배를 통해 힘을 얻고 하나님이 주시는 답을 얻어야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우리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예배의 모든 순서 찬송, 기도와 심지어 성시 낭독이나 사도신경, 설교, 헌금, 광고까지 모두 예배입니다. 그 가운데서 우리는 하나님 음성을 듣고 답을 찾으라고 오늘 우리들에게 말씀하신 것을 믿어야합니다.
1. 사람들이 어찌하여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예수님에 대한 오해입니다. 다윗이 오실 그리스도를 주라, 하나님이라 불렀는데 어떻게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 되겠느냐는 질문을 오늘 예수님이 던지셨죠. 사단은 예수가 하나님 되시는 것을 알기 원치 않아요. 만약에 유대인들이 예수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정말 알았다면 예수님 앞에 그렇게 시험도 안했겠죠. 정말 하나님을 믿었다면 십자가에 못 박을 수가 없는 거죠. 이게 안믿어지니까. 일반적으로 신자들이 갖는 생각은 어떤 것인가. 하나님은 더 높고 예수님은 좀 낮은 이런 생각들을 가져요. 이게 초대교회에서부터 일어났던 신학적 논쟁들입니다. 제1차 종교회의에 모였던 이유가 어디있는것인가. 예수가 하나님과 같으냐, 예수가 하나님보다 조금 낮으냐. 이것 다툼이에요. 이렇게 해서 그 당시에 아리우스라는 사람은 ‘아니다, 예수님은 하나님보다 조금 떨어진 인간 피조물 가운데서 가장 뛰어난 존재이다.’ 라고 표현하고, 아타나시우스라는 사람은 ‘아니다, 하나님과 동일하다. 바로 하나님이다.’ . 이게 바로 첫 번째 종교회의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일반 세상에서도 예수가 하나님 되심을 부정하죠. 일반 사회과학에서는 예수를 누구라 가르치죠? 4대 성인 중에 한 사람으로 사람으로 가르쳐요. 이게 신학에도 그대로 들어와서 예수가 하나님 되심을 부정하는 신학들이 있어요. 그 신학에 누가 빠진 것인가. 슈바이처가 빠져요. 슈바이처는 굉장한 사람입니다. 신학박사고, 의학박사고, 거기다 음학박사요. 그런데 그는 예수를 뭐로 아는 거죠? 인간 예수. 하나님이 아니요. 죽기까지 사랑을 실펀한 자로서 나도 그 사랑 본받아서 그 사랑 실천해야되겠다. 그래서 아프리카 가서 헌신한거에요. 예수가 하나님 되심을 믿지 못하면 슈바이처도 어디갔을까요. 미안하지만 지옥갔어요.
여호와의 증인이 예수를 하나님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냥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 가운데서 독특하게 좀 뛰어난 자로 정의하죠. 성경도 부정해요. 하나님 능력으로만 표현하죠. 결국 여호와의 증인은 뭘 부정하죠? 예수가 하나님 되심을 부정하는 거에요. 그러나 성경은 뭐라고 표현하고 있나요? 이사야 7:14 말씀에서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약속이에요. 오늘 성시낭독에 읽었던 9:6-7 말씀에서도 오실 그 분이 바로 누구인가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분이 누구라고요? 하나님 되심을 증거하고 있는 겁니다.
자,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인간세상에 개입하시면 되는 것인가. 창조주 하나님이 피조물 형상을 입으시고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다. 이 사실이 믿어지는 것. 인도 유학생이 미국에 와서 공부하는데 그분에게 전도를 했어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땅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셨다. 그랬더니. 말도 안된다. 어떻게 하나님이 인간이 될 수 있느냐. 안믿는거요. 그들은 또 윤회사상에 빠져있죠. 그래서 복음을 전한 사람과 두사람이 밭을 지나가는데 밭에 큰 트랙터가 갈고 오는데 밑에 보니까 개미굴이 있어요. 그런데 이 흰두 신자가 놀라는 것이죠. 지금 우리 할아버지가 될지도 모르는데 다 갈려 죽는다고 그냥.. 큰일 났다고 말이에요. 어떻게 내가 개미들에게 피하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인가.. 그때 이제 친구가 얘기했어요. 자네가 개미가 되어지면 가서 빨리 피하라고 얘기할 수 있을 거 아니냐고.. 그러면서 복음을 전했어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 구원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거란 말이죠. 이분이 이해를 하며 아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이로구나..
왜 크고 놀라운 사랑이라고 우리가 표현을 하죠? 하나님이 나 같은 죄인을 위하여서 피조물의 형상을 입으시고, 그것도 율법 아래에서 태어나셔서 날 건져 구원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이 이 땅에 개입을 하셔야 하는 것이죠? 인간의 근본 문제가 뭐였죠? 사단에 속고 죄를 범하고, 하나님을 떠난 이 세 가지 문제 때문에.. 죄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어요. 죄로 인하여서 완전히 멸망 속에 빠진 거예요. 이 열매를 먹는 날엔 정녕 죽으리라고 해서 우리가 죽어야 돼요. 그래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시기 위해서 죄 없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에요. 그래서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서 하나님이 이 땅에 개입하시게 되는 거죠. 그러면 왜 하나님이 개입하셔야 하는 것인가? 하나님이 아니고는 사단의 대가리를 꺾을 자가 없어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뭐가 가능하죠? 만백성이 범한 이 모든 저주를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 이외에는 감당이 안 되어져요. 하나님이신 예수님만이 가능한 거예요.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아니면 부활이 안 돼요. 예수님이 누구기 때문에? 생명의 주인이 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래서 하나님이 낮고 천한 피조물의 형상을 입으시고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세계에 개입을 하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그분이 죽으시게 된다고 성경에서 설명을 하죠.
이사야 선지자가 이 사실을 이사야 53장을 보면 이걸 계시로 깨닫게 되어져요. 바로 하나님이 우릴 구원하시기 위하여서 그 창조주가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셔서 대속해서 죽으신다는 이 말을 이사야가 깨닫게 되어졌을 때에 이사야가 탄식하며 고백합니다. 우리가 전한 걸 누가 믿었느냐.. 어떻게 창조주 하나님이 나 같은 죄인을 위하여 가지고 이 땅에 오셔서 대신 죽으신다는 자체가 이것 어떻게 믿어지겠냐?” 이사야가 탄식하며 내가 이 말을 전해서 누가 믿겠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인간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사건들이에요. 하나님이 인간 세상에 개입하셔서 우리를 건져 구원하신 바로 그 은혜, 그래서 한량 없는 은혜, 갚을 길 없는 은혜로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사랑하셔서 나를 구원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2. 예수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이시다.
예수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찬양 속에서도 나왔죠? 베드로의 신앙고백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나이다. 여기에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표현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독생자, 바로 그분이 하나님이심을 우리에게 증거하고 있는 겁니다. 예수라는 이름의 뜻 자체도 여호와의 구원이라는 뜻입니다. 그냥 구원자가 아니고 여호와의 구원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공생애 시간 동안에 예수님 자신이 그리스도 되심을 수 없이 나타내셨죠? 그리고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 되심을 증거를 하셔서 수많은 병든 자를 치유하시면서 내가 그리스도라고 내 인생의 모든 해답이라고 예수님께서 당신을 나타내 보여주셨고, 그리고 하나님 되심을 많이 보여주셨어요. 죽은 자를 살리시기도 하고, 물 위로 걸으시기도 하고, 오병이어 기적을 일으키면서 내가 하나님이라는 사실 자체를 증거를 보여주셨습니다.
4복음서 가운데서 예수가 하나님이심을 가장 많이 증거 한 책은 바로 요한복음입니다. 그래서 첫 단추 자체가 뭐로 시작하죠?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고요. 모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다고, 예수가 누구인가요? 창조주 하나님이세요. 하나님 본체시오. 히브리 1장 1-3절에서 보면 거기서도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바로 동일하다고 이야기 하는 것이지요. 예수님 자신이 누구시다? 창조주요, 전능자, 바로 그분이 하나님이세요. 왜 예수가 하나님 이셔야 하는 것인가? 하나님 아니고는 뭐가 안 된다고요? 우리의 구원자가 될 수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완전한 사람이요, 완전한 하나님 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이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를 체휼하기 위하여서 인간이 되신 것입니다. 창세기 3장 아래에 놓인 우리의 모든 고통을 예수님께서 몸소 감당해 보신 것이에요.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우리의 친구가 되시기 위하여서, 놀랍죠? 창조주가 뭐가 되시기 위하여서? 내 친구가 되시기 위하여서요. 그분은 창세기 3장 아래에 태어나셔서 인간이 당하는 모든 고통을 그분이 몸소 체휼하셔서 잘 아십니다. 영국의 메리 여왕 때에 백성들이 대모를 해요. 빵을 달라고요. 메리 여왕이 생각을 해요. ‘참 이상하다? 아니 빵 없으면 달걀 먹고, 달걀 없으면 고기 먹으면 되지 왜 빵을 달라고 해?’ 뭐를 모르는 것이죠? 메리 여왕은 가난이 뭔지를 몰라요. 빵이 없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른단 말이에요. 한 번도 그런 경험을 안해봤으니까요. 하나님이 왜 인간의 몸을 입으셨을까요?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연약한 부분을 그분이 다 체험하셨어요. 다 감당해 보시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 할 때에 주님이 우리에게 대답하십니다. ‘내가 너의 고통을 다 안다, 나도 너처럼 고통당해 봤다‘ 여러분 어떤 문제를 가지고 오셨나요? 지금 여러분이 당하는 모든 고통을 주님이 뭐 하셨다고요? 이 땅에 오셔서 다 당해 보셨다고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우리가 예수 영접하는 바로 그 순간에 내 속에 누가 함께 하시는 것이죠? 그리스도 되신 예수가 함께 하시는데 바로 그분이 누구죠?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놀랍고 놀라운 일들입니다. 내 안에 성삼위 하나님이 성령으로 나와 함께 하신 신분이 되어진 것이에요. 그래서 저는 말씀 묵상하면서 그분이 내 속에 내주, 인도, 역사 하신다는 사실 자체에 감격이 넘쳐요. 그분이 내 속에 들어오셔서, 뭐 하시려 들어오셨을까요? 내 인생의 주인 되셔서 나로 하여금 이 구원의 축복을 누리며 증인된 삶을 살아가도록 만드시기 위해서 내 인생가운데 들어오셔서 나를 대신해서 사시겠다고, 이제 여러분들은 더 이상 내가 주인노릇 하지 말라고 이야기 합니다. 누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야 할까요? 바로 그분이요. 나는 나 자신도, 세상도, 사단도 못 이겨요. 언제 우리가 승리가 가능한가요? 그분이 내 속에 주인 될 때에.. 그래서 우리의 최고의 기도가 무엇일까요? 그 분이 내 인생에 주인 되셔서 다스려 주옵소서. 나라는 존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느 길이 좋은 길인지 분별력도 없어요. 한 시간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몰라요. 내가 어떤 길을 걸어가는 것이 승리의 길을 가는 것인지 그분이 가장 잘 알아요.우리가 하나님 앞에 왜 기도할까요? ’주님 나의 갈 길을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그렇게 하나님 앞에 기도 할 때에 하나님은 매 순간 함께 하셔서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서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시작되고, 우리가 기도 응답의 확신을 갖는다는 것은 놀라운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누가 역사 한다고요? 하나님의 성령이요. 이것이 내 신분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신분인 것인가?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면 뭐가 일어날까요? 보좌가 움직여요. 하늘 보좌가요. 가는 곳곳마다 흑암이 결박당해요. 천사가 동원되는, 237에 빛을 비추게 되는 이 놀라운 신분으로 나를 불러주셨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는 뭐 해야 할까요? 그리스도가 내 인생의 주인 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때에 뭐가 일어나는 것인가? 나와 교회와 현장에 하나님의 전무후무한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을 누가 누렸죠? 일곱 렘넌트가 누렸어요. 노예 신분으로 팔려갔던 그 요셉이 언약 속으로 들어가니까 왕에게 답을 주고, 애굽 나라에 총리가 되도록 만드시는 것이에요. 이것이 우리의 신분입니다. 하나님이 모세라는 사람을 세워서 출애굽의 역사를 일으키는 그 놀라운 일들에 쓰임 받게 만들어 주셨죠. 모세는 얼마나 감격스러웠겠어요? 인생을 마감하면서 모세는 정말 마음속에 자긍심이 넘쳤을 것 같아요. 정말 내 인생이 하나님께 내가 이렇게 쓰임 받았구나. 언제요? 하나님이 내 인생을 이와 같이 정말 자존감 회복되어지고, 자긍심을 누리며 살도록 그분이 지금 뭐 하신다고요? 지금 내 속에 지금 성삼위 하나님 나와 함께하는 신분으로 불러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신분은 이런 신분으로 불러주셨어요. 그래서 우리는 오늘 제목이 어떤 제목이 나왔죠? 하나님 앞에서. 코람 데오입니다. 이거는 라틴어인데 언제나 어디 앞에 서라? 하나님 앞에서 서라. 전능자 앞에서 내 인생을 서라고 오늘 우리들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주님은 나와 함께하셔서 나를 통해 하나님은 이 구원역사를 이루도록 이 시대 나를 하나님이 불러주신 것입니다.
3.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니,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니... 당시 서기관은 모든 백성이 존경하는 최고의 종교 지도자입니다. 서기관들은 어디서 나오는 건가? 다 레위인들 입니다. 그들은 성경 박사입니다. 또 성경 필사도 그들의 전유물입니다. 어느 정도 성경에 해박한 것인가? 마태복음 2장 4절 이하를 보면 동방 박사들이 예루살렘 찾아와서 메시야가 어디서 날 것인가 하고 질문하게 됐을 때에 이 서기관들이 찾아와서 들고 옵니다. 미가서 5장 2절 말씀을 들고 와서 예수가 베들레헴에 태어날 것이라는 이야기를 서기관들이 합니다. 다 알고 있어요. 이 정도로 성경에 해박합니다.
그런데 예수님 이들의 행위를 비판을 했죠. 긴 옷을 입고 다니며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에 앉기를 좋아하나 그러나 그 속에는 거짓으로 과부의 가산을 삼키고 외식으로 길게 기도한다고 말을 하죠. 마태복음 23장 25절에 보면 잔과 대접과 겉은 깨끗하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다고. 28절 말씀에서는 겉으론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다고.
자, 이 사람들이 뭘로 지금 살죠? 오늘 제목이 하나님 앞에서 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어디 앞에서 서죠? 사람 앞에. 사람에게 보이려고. 이들은 형식적으로는 하나님 앞에 서는 것처럼 하지만 그 속에는 사실 뭐가 없어요? 예수 생명이 없는. 가짜들이요 가짜들. 우리가 오늘 예수가 그리스도고 예수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제가 강조하는 것은 이 사실을 여러분들이 믿어지지 않게 되면 미안하지만 우리를 또 뭐 하면 살아가야 돼요? 사람 눈치 보면서 살아야 돼요. 외식하면서 우리가 살아야 되는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가 정말 맞습니까? 그분이 하나님 되심이 정말 믿어집니까? 그분이 내 속에 나와 함께하심이 믿어지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뭐가 필요 없는 거죠? 외식이 사실은 필요 없는데 내가 외식을 왜 하고 있는 건가? 우리 자신의 영적상태를 점검해야 합니다. 강단에 와서 올라와서 기도할 때는 아주 믿음이 좋은 것처럼 보여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내려와서 대화하는 걸 보면 믿음이 하나도 없어. 우리는 자칫 잘못하면 기도도 외식하는 기도가 나오게 됩니다. 우린 누구 앞에 서야한다고요? 하나님 앞에.
지금 내 속에 나와 함께하시는 바로 그분이 누굽니까? 내 인생 모든 문제 해답되신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지금 나와 함께 하시는데, 모든 해답 되신 바로 그분이 나와 함께 하시는데, 근데 왜 나는 갈등하고 있나요? 염려 근심 하고 있나요?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 것인가요? 우리가 복음을 이해하고 체험하고 누리라고 계속 강조하는 것은 복음을 체험하고 누리게 되었을 때 나의 가치관이 바꿔지는 겁니다. 더 이상 세상의 것에 그것에 목매지 않아요.
하나님은 우리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다 지금도 통찰하고 계세요. 여기 앉아서 지금 예배를 제대로 드리고 있는지, 우리 마음, 내가 몸은 여기 있다 할지라도 마음은 딴 생각 갖고 있으면 그것도 누가 알아요? 하나님이 다 알고 있어요. 우리는 항상 어디 앞에 서야 될까요? 그분 앞에 서야 합니다. 나를 다 보고 계세요. 바로 그분이. 우리 어린 시절에는 엿장수가 있었어요. 고무신도 갖다 주면 엿 이만큼씩 주고 제일 값어치 나가는 것이 구리, 철사에요. 그거는 엿 많이 줘요. 한 아이가 길을 가는데 밑에 구리 칠사가 있는 거야. 이야 싶어서... 저만큼이면 엿 실컷 먹겠구나 싶은 거죠. 어디선가 이놈 한단 말이야. 그죠? 둘러보면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어. 또 들고 가려고 하면 또 이놈 하는 거예요. 그죠? 전봇대 위에서 전공이 작업을 하면서 떨어뜨려 놓은 건데 쳐다보고 있는 줄도 모르고 그냥 엿 바꿔 먹으려고 들고 갔던 거지. 그게 우리의 모습이에요
하나님이 뭘 보고 있어요? 내 모습, 내 영적 상태 지금 다 보고계세요. 우리가 하나님을 속일 수가 없어요. 오늘 그분 앞에 서라고 우리들에게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그분이 지금 어디에 계시죠? 내 안에.. 내 안에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가 지금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이에요. 내가 외식하고 내 욕심대로 살면은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 근심을 하시죠. 그래서 다윗은 시편 139편 23절에서 이렇게 기록을 합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됩니다. 사람이 들으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기도하세요. 시편 19편에서도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복음 송도 나와 있어요. “나의 입술의 모든 말과 나의 마음의 묵상이 주께 열납되기를 원하네~” 이것이 여러분들의 예배가 되어야 돼요. 이게 나의 기도가 되어야 된단 말이에요.
정말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들이 언약 잡고 기도하게 된다면은 하나님은 100% 응답하게 되어 있는 것이에요. 여러분들 속에 지금 나와 함께 하시는 바로 그분이, 누가 나와 함께 하신다고요? 그리스도요, 하나님이 되시는 바로 그분이.. 지금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매 예배 시간마다 그분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뜻을 찾아야 돼요. 여러분들이 예배 시간에 와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예배를 드리고 가게 된다면은 사실은 예배를 실패한 것이에요. 그것을 두고 내 마당만 헛되이 밟았다고 주님께서 말하는 것이에요. 예배는 뭐하는 시간입니까?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 여러분들이 정말 사모하는 마음으로 주님 앞에, 하나님 앞에 코람데오로, 하나님 앞에 내가 섰습니다. 주여 말씀 하옵소서.. 하나님이 말씀 주시는 것이에요.
이사야 선지자가 민족의 참담한 현실을 바라보면서 하나님 앞에 엎드렸어요. 바로 그 때에 스랍들 사이에 좌정하신 하나님의 음성을 이사야가 듣게 되는 겁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서 갈꼬.. 이사야가 대답을 합니다. 내가 여기에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그것이 예배입니다. 정말 예배 시간에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 주시고 성취될 기도제목을 주시고 다 얻을 수 있는 시간으로 주신 것이 예배 시간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예배를 어떻게 드리라고요? 하나님 앞에서.. 그래서 오늘 예배를 통하여서 여러분들이 앞으로 나는 어떤 예배를 드려야 될 것인가를 여러분들이 생각을 하면서 예배 한가지로 여러분들은 모든 문제가 사실 끝나야 됩니다.
오후예배 시간에 여러분들에게 이것을 연속해서 또 말씀을 드리겠는데, 바로 예배를 통해서 우리가 무엇을 찾는 거죠? 하나님의 계획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바로 무엇인가? 솔직하게 하나님 앞에 서게 되졌을 때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답을 주시게 되어있는 겁니다. 매 예배시간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승리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하나님.
예수는 그리스도요 예수는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예수 영접할 때에 성삼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놀라운 신분으로 나를 불러 주셨고 그분이 나를 자녀 삼아 주셨습니다. 내 부족과 연약을 아시는 바로 그분이 성령으로 내주, 인도, 역사 하사 이 구원의 축복을 누리며 나를 통해 이루시기를 원하시는 그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이루는 곳에 내 인생이 쓰임 받도록 오늘도 예배 자리로 불러 주신 것,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매 예배 시간마다 주의 음성을 듣게 하시고, 하나님을 정말 만나게 하시고 말씀을 통하여 해답을 얻게 만들어 주옵시며,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참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삶이 되도록 하나님이 간섭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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