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의 동이창제설과 할각절 미스터리}
한자가 동이족의 창제물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여러 가지의 설들이 있다.
집 가(家)자는 지붕인 갓머리 밑에 돼지(豕, 시)가 있다. 그런데 이 돼지를 한 지붕 밑에서 같이 키우던 것이 우리 동이족의 오랜 전통이라는 것이다. 나는 어렸을 적에 도시에 살았었는데, 집터가 원래 집을 짓기 전에는 농장이었던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아버지께서는 집의 한 쪽에 돼지 우리를 만들어서 취미처럼 돼지를 한 때 키웠었다. 이 돼지들은 독이 많은 파충류나 뱀이 멸종이 덜 되고 많이 남아있던 고대에는, 돼지와 파충류가 상극이었으므로 그러한 파충류로부터 인간을 보호하는 장치의 하나로써 한 집안에서 돼지를 사육하였다고 한다. 중동 지방에서는 종교나 관습상의 이유로 돼지고기를 먹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에 돼지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면, 고대의 중동지방에서도 돼지는 그러한 파충류를 견제하거나 남은 음식물 찌꺼기를 처리하는 음식물 쓰레기 처리 담당자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물이 많지 않은 중동지방에서 음식 찌꺼기를 많이 남기는 식문화가 아니었을 것을 상정하면, 어차피 돼지는 고대의 (동이와 문명교류를 하였다고 일부에서 주장하는) 수메르 문명에서 동이의 고대 문명처럼 한 지붕 아래에서 키우던 동물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외에도 배 선(船)자의 모양이 여덟명의 인구를 살린 배라는 사실에서 구약의 노아의 방주와 연결하여 한문과 중동 고대 역사 및 문화의 연관성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고, 여기에서 더 나아가 이러한 연구를 깊이 하여 기독교가 사실은 중국에서 시작되었다고 주장하는 대만 출신의 기독교 목사님을 만난 적도 있었다. 심지어는 옥편과 자전이라는 두 말의 의미를 구분하기를, 옥편에는 옥황상제의 메시지가 들어 있다고 하면서 옥편의 모든 문자요소(음과 훈 포함)를 전부 다 분석해 내는 지독한 집중력을 가진 분도 있는 것으로 안다.
중국의 고대왕조인 하.은.주와 심지어는 진나라까지를 포함하여 중국의 사서에서 동이족의 왕조라고 지적했다는 말이 있다. 은나라는 대표적으로 갑골문자의 시조라고 알려져 있다. 이 갑골문자가 여러 단계의 변형을 거쳐서 현재의 한자의 원형이 되었을 개연성이 높다면 동이족이 한자의 원형을 제공하였다고 해도 크게 틀린 주장이 아닐 것이다.
가림토문자, 이두, 한글로 이어지는 표음문자의 창제 또한 우리 동이족 고유의 창조물이니 만약에 표의문자인 한자(사실은 표의와 표음의 두 가지 요소가 한자에 들어있다)와 표음문자인 한글을 둘 다 창제 혹은 창조의 단초를 제공하였다면 우리 동이족이야 말로 지구상에서 가장 훌륭한 문화민족이라는 자부심을 가질 만도 하겠다.
조리 세울 륜(侖) 이라는 글자가 있다. 이 글자의 본래의 뜻은 정말로 조리(笊籬)를 세운다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글자일 가능성도 있다. 우리 고유의 도구인 쌀에서 돌을 고르는 조리는 한 개를 세우기는 불가능하지만 여러 개를 묶으면 꺼꾸로 세워 놓을 수 있다. 자전에 나온 륜자의 해석은 侖卽物之圜而未剖散者(륜즉물지원이미부산자 혹은 圜渾者원혼자)라고 했으니 둥글게 모아서 흩어지지 않고 있는 형상, 혹은 하늘의 형상을 본뜸(또는 덩어리 뭉치)이라고 했다. 조리 여러 개를 묶어서 주걱쪽이 하늘을 향하게 세워 놓으면 그 모습이 마치 옛날 사람들이 상상한 하늘 뚜껑의 모양이 아니겠는가? 이와 같이 나름대로 상당히 철학적인 의미를 가졌던 륜자는 인(人)과 합쳐지면 사람의 도리라는 의미의 륜(倫)이 되고 수레 차(車)와 합쳐지면 제대로 바퀴살이 붙어서 써먹을 수 있는 수레바퀴(輪)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대자전에는 륜(侖)의 설명이 “둥근 기둥 모양”이라고 되어 있는것도 있는데, 만약에 조리 여러 개를 묶어서 세운 모양이 원래의 뜻이었다면 많이 왜곡된 상황이다. 둥근 기둥모양과 조리 여러 개를 세운 모양과는 그 의미하는 바가 많이 다르다. 더 나아가서 “조리 세운다”에서 조리(笊籬)는 조리(條理)로 심하게 변질되고 왜곡되어 버린 것이 아닐까? 이와 같은 논리 전개는 물론 조리 세운다는 표현에 상상력을 가미한 것이므로 틀릴 수도 있다. 그러나 “侖卽物之圜而未剖散者” 즉, 물건들이 흩어지지 않고 뭉뚱그려져 합체가 되어 있는 모양이라는 표현에서 보듯이 묶어서 세워놓은 조리들을 상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한자의 동이창제설을 주장하는 분들의 주장 중에, 청나라 강희제 때 편찬한 강희자전을 증거로 드는 분들이 있다. 강희제는 서양으로부터 들어오는 서양문물의 흡수에도 관심이 많았고 수백권의 백과사전을 편찬하게 한, 커다란 학문적인 업적을 이루게 했던 황제이다.
강희자전은 그 당시 여러 민족들이 가지고 있던 한자체들을 통일하고 또한 사람들의 무한무궁한 창조성의 욕구에 의해 끝없이 많아지던 한자들의 쓰임새를 정리하여 약 4만7천자로 집대성한 한자사전이다.
그런데 이 강희자전에는 미스터리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한자들의 음이 전부 (우리관점에서 보면) 한국어 발음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배울 학(學)자의 발음기호는 할각절(轄覺切)이라고 하여, 학자의 앞 부분은 할자의 “ㅎ” 부분을 차용하고 뒷 부분은 깨달을 각자의 “ㅏ ㄱ” 부분을 가져와서 “학”으로 소리를 내라고 했으니 이것은 한국어 발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이것이야말로 가장 확실하게 한자가 동이족의 창제물인 증거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에는 또 다른 주장이 있다. 즉, 훈민정음 창제시에 만든 자전(이나 옥편)은 각 글자들의 음을 붙일 때 그 당시 중국 내에서도 우리와 가장 가까운 발음을 하던 중국 내 소수 민족의 발음 음가를 가져다가 우리의 문자로 발음기호를 붙였다는 것이다.
어느 중국 특파원에게 확인한 이야기인데 샹하이 근방에 사는 어느 종족은 학교를 우리와 거의 같이 “학교”에 가깝게 발음한다고 한다. 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정통의 북경식 발음하고는 전혀 다르다. 또한 할각절도 북경어 발음을 하는 중국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히 북경식 발음기호라는 것이다. 각은 쥬(zue)로 학은 슈(xue)로 발음이 되는 것만 우리와 다를 뿐인 것이지 이 할각절 표기 자체가 사실은 중국내 어느 소수민족이 보아도 거의 다 들어맞는 발음기호 표기법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강희자전을 만든 중국의 학자들은 이러한 자전의 발음기호 표기 방법을 놓고 한족과 여진족을 포함한 모든 족속들이 자기들 입장에서 보면 딱 들어맞는 발음기호로 표기되었다는 생각이 들도록 그러한 발음기호 표기방법을 채택하였다는 것이다. 중국내의 여덟 개 정도의 소수민족의 한자어 발음이 우리와 아주 비슷하고 또한 중국어의 고대 발음을 연구하는 중국학자들이 우리나라 성균관대학에 유학을 와서 {중국어의 고대 발음}을 연구한다고 하니, 이로부터 우리 동이족의 한자어 발음이 고대에는 하나의 합법적인 발음이었음도 짐작할 수는 있겠다.
결론적으로, 모든 종족들의 발음기호를 최대한 다 포함하는 발음기호로서의 할각절 표기로 이루어진 강희자전은 동이의 발음기호에만 맞추어서 음을 달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므로 그 발음기호 자체가 우리 눈에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 동이의 한자창제설을 뒷받침 한다고 볼 수 없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