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 대제국의 교류 한나라와 로마
<로마 황제가 한나라에 사신을 파견했다.>
기원후 1세기경 동서양에는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가장 발달한 제국이 동시에 융성하고 있었다. 한나라와 로마가 그들이다.
비록 수만 리나 떨어져 있었지만 이들 사이에 과연 접촉은 없었을까? 기록에 의하면 이들은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교역품의 왕래도 있었고 사람의 왕래도 있었다.
중국의 서쪽은 파미르 고원을 비롯해 첩첩산중으로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에 중국인들은 그 너머 서쪽으로 가기를 꺼려했다. 산맥을 넘을 때 생기는 산악병을 서행을 막으려는 하늘의 경고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래도 호기심을 억누를 수 없었던 한 중국인이 있었다. 바로 감영이다.
후한 화제 때(서기 97) 대진(당시 중국인들이 로마를 지칭한 이름)에 사신으로 파견된 감영은 바빌로니아에 도착했다. 그리고 바다를 건너 대진에 가려고 하는데 중앙아시아의 제국인 파르티아의 뱃사공들이 말렸다.
“바다는 광대합니다. 순풍을 만나지 못하면 2년이나 걸립니다. 더구나 이 바다는 인간을 망향의 병에 걸리게 하여 벌써 여러 사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여기서 감영은 로마행을 포기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것은 파르티아의 속임수였다. 당시 파르티아는 한나라와 로마 사이에서 물품을 중개하면서 폭리를 취하고 있었는데 만일 감영의 로마행으로 두 나라간의 직접 교역이 트이면 큰일이었다.
그래서 파르티아 인들은 로마로 가는 가장 짧은 거리인 메소포타미아 북부의 육로를 숨기고 일부러 페르시아만을 남하, 아라비안 반도를 우회하여 홍해로 향하는 해상로만을 알려 주며 겁을 주었던 것이다.
중국인들도 나중에는 이를 알아차렸다. 이런 기록이 있다.
'대진은 키가 크며 중국인과 마찬가지로 상행위는 공정했으나 그 의복은 중국의 것과 달랐다. 그들은 중국에 사절 파견을 항상 원했으나 안식국(파르티아) 사람들은 우리와의 교역에서 이득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대진 사람들이 안식국을 통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166년 마치내 로마의 명군으로 이름 높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파견한 사신은 안남(지금의 베트남)에 와서 상아, 물소 뿔, 거북이 등을 중국 황제에게 보냈다.
때 마침 파르티아가 쇠약해지고 있어서 이후로 대진국과의 교류가 본격화되었다. 알렉산드리아를 출발, 해상로를 이용해 동남아시아까지 온 로마의 상인들은 동남아시아의 토산품을 중국에 보냈다. 또 직접 중국의 해안에까지 가기도 했다.
이 상인 가운데 중국인들이 진륜이라고 부른 로마 사람은 직접 중국에 들어온 것으로 기록은 전하고 있다. 226년 그는 베트남을 거쳐 당시 위,촉,오 삼국이 정립하고 있던 중국으로 들어왔다. 오의 왕 손권은 그에게 로마의 국토와 민족에 대해 상세히 물어 보았고 진륜은 문서를 작성하여 보고했다. 손권은 그에게 남녀노비 각 10명을 주어 로마로 돌려보냈다.
지금부터 1700여 년 전 중국 땅에 로마 인이 체류하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