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 둥지 탈출
임병식 rbs1144@hanmail.net
아침에 큰 변고가 날 뻔 했다. 전립선 치료를 위해 양쪽다리 삼음교(三陰交) 자리에 뜸을 뜨고 나서 보니 발톱이 길어있어 그것을 자르려고 고개를 숙이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이때 고개를 쳐 들 사이도 없이 선인장의 일종인 커다란 리베라나무가 풀썩 머리 옆으로 쓰러졌다. 눈 깜빡할 사이였다.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화분은 이미 깨져있고 그 가시투성이의 무시무시한 리베라 몸통이 뽑혀져서 거실 창문에 걸쳐있었다. 내 입에서 ‘후유’하는 긴 한숨소리만이 나오지 않았다. 만약 그것이 얼굴을 덮쳤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바늘 같은 그 수많은 가시에 영락없이 만신창이가 되었을 것이다.
그 큰 리베라가 쓰려지면서 앵무새 새장 또한 가격을 당했는지 받침대는 받침대대로 바닥에 떨어져 나뒹굴고 있었다. 그 광경은 실로 처참하였다. 플라스틱 밑바닥은 깨져서 산산조각이 나고 그 사이에 앵무새는 창밖으로 탈출 해버렸다. 비어있는 망가진 새장을 보니 허탈하기만 했다.
얼마동안이나 정성들여 돌봐오던 앵무새였던가. 급한 대로 박살이나 흩어진 화분 조각과 세장의 플라스틱, 그리고 엉망이 된 흙을 치웠다. 그런 중에도 내 머릿속에는 탈출해버린 앵무새 생각만 가득했다.
화분이 넘어진 건 앵무새 때문으로 보인다. 녀석이 새장에 넣어둔 물그릇을 건드리고 그것이 넘어지면서 연쇄작용을 일으켜 새장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그 옆에 불안정 하게 놓인 리베라화분을 건드린 것이 분명했다.
그게 아니라면 무엇을 의심할 것인가. 바람도 불지 않았는데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는 오직 앵무새가 유일하지 않았던가. 그 점은 놈의 소행을 확신 할 수 있다. 불과 며칠 전에도 파손딘 바닥을 통해서 탈출을 감행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 바람에 잡아들이느라 실랑이를 하면서 꼬리 깃을 두 개나 뽑히고 말았다. 꼬리가 뽑히니 녀석의 꼬락서니가 말이 아니었다. 마치 물에 빠진 생쥐처럼 초라해 보일 뿐 아니라 작은 몸집이 더욱 작아보였다. 뺨을 맞는데는 구랫나루가 한몫을 하고 멋스러움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이놈이야말로 한몫을 하던 그 꽁지가 죄다 뽑히고 나니 초라해 보이기 짝이 없었다.
이날도 녀석은 탈출을 감행하려고 시도했던 것 같다. 내가 눈을 마주치지 않고 발톱 깎기에 열중을 하고 있으니 감시의 눈을 피해 은밀히 결행을 시도한 것 같다. 그러다가 결국 큰 사단을 벌여놓고 만 것이다.
하나, 나는 녀석이 괘씸하기 보다는 애잔한 마음이 더 크다. 밖이 그리워 탈출을 했는지 모르지만 어떻게 살 수 있겠는가. 조롱 안에서는 비록 갇혀 있긴 했어도 챙겨주는 모이를 먹고 살았는데 어려서부터 스스로 먹이를 구해보지 못한 녀석이 탈 없이 적응을 하겠는가.
아파트 주변은 들 고양이 천지인데 풀밭에 내려앉아 있다가는 공격받기 십상 일 것이다. 그런 위험을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녀석이 위험을 피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내가 녀석과 함께한 지는 햇수로 6년이 넘었다. 어디를 다녀오는데 가시넝쿨 속에 뱁새만큼이나 작은 새한마리가 보였다. 처음에는 그것이 무슨 새인지도 모르고 맨손으로 냉큼 움켜잡았다. 그랬더니 사정없이 손가락을 물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놀라서 주둥이를 보니 맹금류 특유의 입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때서야 앵무새인 것을 알았다.
녀석은 어디서 탈출한 것이 분명했다. 그때는 어린 새끼인 탓에 아직 날개 죽지가 튼실하지도 못했다. 나는 이것을 집으로 가지고 와서 박스에 넣어두었다가 새장을 구입하였다. 그렇게 기르기를 한 일 년 여. 그러다가 혼자 둔 것이 안 되어 보여서 한 마리를 더 들여서 짝을 맞추어 놓았다.
그런데 구입한 녀석이 5년여를 작년에 갑자기 죽고 말았다. 설사를 했는지 항문주위가 지저분해 진 상태로 눈을 감고 말았다. 그 후로 녀석은 다시 혼자가 되었다. 짝을 맞춰 줄 생각도 했으나 가까운 곳에 판매하는 곳이 없어 포기했다.
생각해 보면 녀석은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듯하다. 일찍이 어디서 탈출하여 나왔고 그 밖에도 수많은 탈출 시도와 동반자와의 사별, 마지막에는 사고까지 쳐놓고 도망갔으니 예사 드센 팔자가 아니다.
나는 그동안 녀석의 시중을 열심히 들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에 일어나면 모이와 물을 주고 주기적으로 새장 청소도 해주었다. 그런 사이에 고운 정 미운정이 들어서 처음엔 막무가내로 심히 경계를 하던 녀석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얌전해 졌다.
그러나 탈출 본능은 여전하여 기회만 생기면 새장을 빠져나왔다. 처음에는 입구를 입으로 물어서 끌어당기더니 나중에는 그곳을 머리를 밀어 올렸다. 해서 단단히 방비해 놓았더니 급기야는 벌어진 바닥 틈을 공약한 것이다.
그런걸 보면 녀석은 집요한 면이 있다. 나는 녀석이 탈출한 것에는 조금도 미련이나 아쉬움, 서움 함이 없다. 단지 걱정은 어떻게 한데서 적응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지금은 여름철이어서 벌레들이 많으니 그것을 잡아먹고 그럭저럭 지내겠지만 겨울철은 어떻게 보낼지 걱정이 된다.
나는 녀석을 떠나보낸 후 창문을 조금 열어두기로 했다. 어디 쏘다니다가 집이 그립거나 오고 싶으면 언제라도 오라는 뜻이다. 아무튼 오늘 일을 생각하면 우선은 리베라 가시에 얼굴을 찔리지 않는 것이 다행이고, 그러면서도 다만 바라는 바는 녀석이 밖에 나간 이상 잘 적응하여 제 수명을 다했으면 하는 것이다.(2021)
첫댓글 요즘른 반려동물이 유행처럼 붐이 일고 있답니다.
저도 아들녀석이 데리고온 고양이를 아들이 떠나자
떠맡아서 키우는데 여간 손이 많이 가는게 아닙니다.
그래도 정이드는건 사람이나 마찬가지로 예쁘고 귀엽습니다.
어디서든 잘살겠지요..
아침에 큰일날뻔 한 일을 당했습니다. 가시가 많은 리베라가 얼굴을 덮쳤다면
큰 상처를 입을뻔 했는데 요행이 피하게 되었네요.
그 와중에 6년간이나 키우던 앵무새가 밖으로 도망을 가벼려 허전합니다.
잃어버린 것은 아깝지 않는데 탈출하여 제대로 살기나 할지 걱정됩니다.
오랜만에 선생님 작품을 대하니 반가움이 앞섭니다 6년을 함께 한 앵무새가 사라져버렸군요 돌아올 거라는 기대도 해봅니다
문득 애써 길들인 매도 결국 주인을 떠난다는 이야기가 떠오르네요 가시투성이 선인장에 다치지 않은 것으로 위안을 삼으셔야겠습니다 다치지 않으셨으니 다행입니다
가시에 찔리지 않는게 찬만 다행이었습니다. 한숨돌릴 사이도 없이 앵무새가 탈출해 버린 것을 확인하니
그렇게 섭섭할수가 없더군요.
자력으로 먹이를 구해본 적이 없는 녀석이라 밖에서 먹이활동이나 제대로 할지 걱정입니다.